이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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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ytwelve
  • 승인 2018.01.31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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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신, The dreaming woman's journals, 18x18cmx64pcs, 3D object and Acrylic on canvas, 2018
이영신, 꿈꾸는 여인-꿈을 부르다, 91x116.7cm, 2017
이영신, 꿈꾸는 여인-꿈을 부르다, 91x116.7cm, 2017
이영신, 꿈꾸는 여인-꿈을 부르다, 112x145.5cm, Acrylic on canvas, 2017
이영신, 꿈꾸는 여인-꿈을 부르다, 112x145.5cm, Acrylic on canvas, 2017
1. 꿈꾸는여인-꿈을부르다  130x162cm paper and Acrylic on Canvas 2017
꿈꾸는여인-꿈을부르다, 130x162cm, paper and Acrylic on Canvas, 2017
2. 꿈꾸는 여인-꿈을 부르다 162 x 130 cm Acrylic on canvas 2016
꿈꾸는 여인-꿈을 부르다, 162 x 130cm, Acrylic on canvas, 2016
3.꿈꾸는 여인-꿈을 부르다 116.7 x 91cm Acrylic on canvas 2016
꿈꾸는 여인-꿈을 부르다, 116.7 x 91cm, Acrylic on canvas, 2016
6. 꿈꾸는 여인-꿈을 부르다 53 x 72.7cm Acrylic on canvas 2016
꿈꾸는 여인-꿈을 부르다, 53 x 72.7cm, Acrylic on canvas, 2016
1 꿈꾸는 여인-꿈을 부르다 116.7 x 91 cm Acrylic on canvas 2015
꿈꾸는 여인-꿈을 부르다, 116.7 x 91 cm, Acrylic on canvas, 2015
2 이영신 꿈꾸는 여인-꿈을 부르다 145.5x112.1cm Acrylic on canvas 2014
이영신, 꿈꾸는 여인-꿈을 부르다, 145.5x112.1cm, Acrylic on canvas, 2014
3 이영신 꿈꾸는 女人-꿈을 부르다 72.7X60.6cm  Acrylic on canvas 2014
이영신 꿈꾸는 女人-꿈을 부르다, 72.7X60.6cm, Acrylic on canvas, 2014
4 꿈꾸는 여인-꿈을 부르다 60.6x72.7cm Acrylic on canvas 2014
꿈꾸는 여인-꿈을 부르다, 60.6x72.7cm, Acrylic on canvas, 2014
5.꿈꾸는 여인-꿈을 부르다 60.6x72.7cm Acrylic on canvas 2014
꿈꾸는 여인-꿈을 부르다, 60.6x72.7cm, Acrylic on canvas, 2014
6 이영신 꿈꾸는 여인-꿈을부르다 50X91cm Acrilyic on Canvas 2013
이영신, 꿈꾸는 여인-꿈을부르다, 50X91cm, Acrilyic on Canvas, 2013
7이영신 꿈꾸는女人 -You are so beautiful! 45.5X53cmAcrilyic on Canvas  2012
이영신 꿈꾸는女人 -You are so beautiful!. 45.5X53cm. Acrilyic on Canvas. 2012
8이영신 꿈꾸는女人 -You are so beautiful! 53X45.5cm Acrilyic on Canvas 2012
꿈꾸는女人 -You are so beautiful!, 53X45.5cm, Acrilyic on Canvas, 2012
9 이영신 꿈꾸는女人-You are so beautiful! 65.2X91cm Acrilyic on Canvas 2011
꿈꾸는女人-You are so beautiful!, 65.2X91cm, Acrilyic on Canvas, 2011
10 이영신 꿈꾸는女人 -You are so beautiful!  45.5X53cm Acrilyic on Canvas 2011
꿈꾸는女人 -You are so beautiful!, 45.5X53cm, Acrilyic on Canvas, 2011
이영신 꿈꾸는女人 45.5X53cm 2011
꿈꾸는女人, 45.5X53cm, 2011
이영신 꿈꾸는女人  72.7X91cm 2012
꿈꾸는女人, 72.7X91cm, 2012
이영신 꿈꾸는女人91X116.7cm 2012
꿈꾸는女人, 91X116.7cm, 2012
이영신 꿈꾸는女人72.7X53cm 2012
꿈꾸는女人, 72.7X53cm, 2012
이영신 27.2X27.2cmX3EA 꿈꾸는여인  acrylic on canvas 2012
 꿈꾸는여인, 27.2X27.2cmX3EA, acrylic on canvas, 2012
이영신 꿈꾸는女人 45.5X53cm 2012
꿈꾸는女人, 45.5X53cm, 2012
이영신 16X14cm
16X14cm
이영신 꿈꾸는女人 72.7X91cm 2011
꿈꾸는女人, 72.7X91cm, 2011
이영신 꿈꾸는女人 91X65.2cm 2011
꿈꾸는女人, 91X65.2cm, 2011
이영신  꿈꾸는女人45.5X53cm
꿈꾸는女人, 45.5X53cm

꿈꾸는 여인 – 꿈을 부르다

꿈을 찾아 집을 나섰습니다.
석양이 비취는 어느 날
너무 멀어져서 다시 돌아오는 길을 잃지 않도록
추억의 길 옆에 아름다운 꿈이 담긴 조약돌을 하나씩 놓고 갑니다.

인생이라는 함께 가는 길 위에서
내 인생의 힘듦과 지침을 고백할 때
누군가 내 등을 두드려 줌과 같이 세상을 향해서
“당신은 정말 아름다운 분입니다”라고 고백하고 싶습니다.
제 그림을 보는 많은 이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격려가 되기를 꿈꾸는
그런 꿈을 부릅니다.


“꿈꾸는 여인-꿈을 부르다”의 테마는 30년 그림 작업 중에 20여 년간 지속된 나의 그림 테마로서 ‘나를 찾아가는 여행’을 그리는 작업이다.
그 여행은 ‘관계들’이다. ‘나와 절대자의 관계’ ‘타인과의 관계’ ‘내 속안에 수많은 나와의 관계’ 이들과의 조화와 화해를 꿈꾼다. 거친 붓 터치의 흩어짐과 모으는 작업을 반복하는 일련의 과정과 함께 색상의 유동적 표현에서 오는 음악적 리듬감은 ‘관계’에 대한 회복을 설정한다.
최근 ‘꿈꾸는 여인’에 한복을 입혔다. 한복은 어릴 적 인형에 한복을 입히며 놀았던 내 안에 묻혀있는 나의 고향이다.

인생을 작품에 투영시키기도 하지만 작업을 통해 인생을 정립하기도 한다.
‘꿈꾸는 여인’의 테마를 작업하면서 그림 속 여인들의 변화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초기의 꿈꾸는 여인은 분명 건조한 삶과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열망으로 가득하여, 자신의 꿈을 키우고 간직하며 그 꿈을 동경하는 형태로 출발했었다.
꿈을 동경하는 것에만 그쳤던 그 여인은 해를 거듭하면서 일시적인 도피가 아닌 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그곳에서 진정한 행복을 찾는 삶을 노래하고 고백하는 여인으로 바뀌어 간다.
인생은 하모니와 관계성이다.
이를 표현하기 위해 솔로의 여인으로부터 듀엣, 삼중창, 사중창, 합창을 등장시켰다. T.V드라마에서처럼 누구는 주인공이고 누구는 엑스트라가 될 수 없다. 모두가 각자 인생의 주인공들로서 인간의 관계성에 따라 서로의 고유 색깔이 정해질 뿐이다.
또한, 인생은 유머와 익살과 해학이 있어야 진정 맛과 멋이 있다.
삶의 무게만큼이나 커다랗게 빛나는 화관, 모든 소망과 열정을 노래하는 다소 과장된 익살스런 눈과 입 모양에서 나오는 표정은 비극조차도 희극으로 바꿀 수 있는 삶의 여유를 꿈꾼다.
작업을 시작할 때 맨 먼저 화려한 색상의 바탕칠로 꾸민다. 밑과정에서 부터 경쾌한 리듬을 보여주는 패턴적 붓놀림을 사용한다. 붓놀림의 패턴이 거듭 나열되고 믹스되면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색채의 우연한 형상들 사이로 필요한 부분은 살려내고 불필요한 부분은 덧칠하고 지워나가는 과정을 통해 꿈을 가지고 인생을 행복하게 만드는 여인들을 떠올리며 설정하고 배치하고 형상화시킨다. 색채의 우연한 형상들은 ‘꿈꾸는 여인’으로 탈바꿈된다.
삶의 부분을 볼 때, 인생의 밝을 면과 어두운 면이 있다. 인생의 마디마디를 연결하면 한편의 아름다운 인생드라마가 완성되듯, 이러한 작업의 일련과정을 통해 우리가 언젠가 서게 될 그 곳에서 우리의 인생 전체를 한눈에 조망하며 미소 짓고 활짝 웃는 여인의 모습을 모두에게 제시한다.
모든 불평과 원망과 미움이 사라지는 그 날, 천사들의 코러스가 울려 퍼지는 그 곳에서 우리 모두가 행복하게 웃으며 ‘내 생애 참 행복했었노라’고, 그리고 또 내 인생의 드라마를 멋있게 연출해주신 창조주께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우리들의 꿈들이 계속 이어지길 소원한다.
이 ‘꿈꾸는 여인‘의 꿈들이 다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싶은 기대감에 설레는 마음으로 꿈꾸는 여인들의 드라마를 이어갈 것이다.
(이영신 작가노트)


이영신의 ‘꿈꾸는 여인’
이영신의 그림에는 화관을 쓴 여인들이 상수(常數)로 등장한다. 머리는 행복을 상징하는 예쁜 꽃으로 곱게 단장하였을 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분위기는 잔치집처럼 떠들썩하다. 두 손을 가슴에 얹거나 귀를 틀어막고 열창하는 모습에서 흥겨운 한때를 보내는 여인을 떠올리게 한다. 얼굴에는 중년티가 묻어나지만 그들의 해맑은 표정에는 고사리만한 손에 빨간 봉숭아물을 들이고 책갈피에 은행잎을 끼우며 낭만을 즐겼던, 꿈 많았던 소녀시절을 엿볼 수 있다.
그의 노래하는 여인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6년도 2회 개인전때부터 그 낌새를 엿볼 수 있는데 그 무렵에는 남녀가 입맞춤을 하는 등 행복한 여인이 모습을 그렸다가 이듬해인 2007년 “오페라 하우스를 가다”란 주제로 가진 전시에서는 본격적으로 여인(들)이 독창을 하거나 합창을 하는 장면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무언가를 힘껏 내지르는 모습인데 즐겁고 환한 표정에서 절로 그들의 행복감이 전해질 것만같다. 2010년의 개인전도 같은 양상을 띠었다. 그때 전시에선 복스럽게 생긴 여인들이 화관을 쓰거나 머리를 말아올린 채 합창에 열중이다. 꿈과 열정을 담아 노래하는 여인들이란 느낌을 가질 수 있었다.

이번 개인전의 레퍼토리 역시 노래하는 여인들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종래의 인물 중심에서 탈피해 머리에 치장을 화려하게 하고 색동 무늬와 같은 추상적 패턴을 기용하는 등 조형문제에 좀더 주의를 기울였다는 점이다. 하지만 대체로 노래하는 여인의 기조에는 변함이 없다. 이영신은 왜 이처럼 노래하는 여인에 주목하는 걸까? 그의 초기작품에 나타난 여인들은 건조한 삶과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갈망을 표출했다면 제3회전부터는 자신의 꿈을 키우고 간직하며 그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살아가는 여인을 표현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작가에 따르면, “TV 드라마에서처럼 누구는 주인공이고 누구는 엑스트라가 될 수 없다. 모두가 각자 인생의 주인공들로서 인간의 관계성에 따라 서로의 고유 색깔이 정해질 뿐이다”고 말하고 있다. 이 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흔히 사람을 판단할 때 그 사람의 실재와는 상관없이 어떤 지위에 있느냐, 얼마나 능력이 있느냐에 따라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아니 대부분은 그렇게 판단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작가는 그것이 잘못된 인식임을 확언하고 있다.

그의 그림에서는 누구나 다 평등하다. 모두가 주인공이며 역할은 노래부르는 일이다. 두 눈을 부릅뜬 여인, 목청껏 노래하는 여인, 눈꼬리를 치켜올리거나 예쁘게 보이려고 입모양을 억지로 오므린 사람 등 익살과 유머감각이 넘친다. 어떤 비극조차도 그림에 있어선 희극으로 바꿀 수 있는 여유와 풍부함을 선사한다.
폴 투리니에(Paul Tourier)는 ‘꿈꾸는 어른’이란 책에서 인간의 불행은 현대사회의 인간성 상실에서 원인을 찾았다. 모든 사람이 ‘기술적인 시각’으로만 문제를 보는 바람에 본질을 놓치고 있다는 것이 그의 논지이다. 가령 성에 대한 지침서를 읽을 경우 어떻게 사랑을 나눌 것인가 하는 것은 없고 기술적인 묘사만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다고 토로한다. 사랑한다는 것은 ‘기술적인 요령’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이 서로를 맡기는 하나의 약속임을 망각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기술은 필요하지만 그것은 사물의 한 단면이며, 그 일면조차도 비인간적인 단면임을 직시하라고 요구한다.

이영신의 그림을 보면 현실의 어떤 중압감도 이겨나갈 힘이 도사리고 있지 않을까 추측하게 된다. 노래를 부르는 일이 즐거워서 일까? 노래하는 일은 표피적인 현상일뿐 본질은 아니다. 더 깊은 실재와 더 넓은 배경이 있을 것이다. 루벰 알레스(Rubem Alves)는 “소망은 미래를 향한 음악이며, 믿음은 그 음악에 맞춰 춤추는 것이다”는 말을 남겼다. 필자가 보기에 여인들은 소망을 따라 사는 사람들이며 믿음의 여인들이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영혼이 없는 세계는 권태를 내뿜고 권태는 사람들을 고뇌로 이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소망을 따라 사는 사람들은 반대로 내적인 충만함을 지닌 사람들이다. 그것은 자신의 개인적 통찰과 경험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앎이며 평범한 교육과정을 통해서는 전달될 수 없는 것이다. 그림에선 내적 충만은 리드미컬한 붓놀림과 화려한 칼라로 나타난다. 주인공의 상태를 나타내는 머리는 짧은 터치로 점철되어 있다. 색깔도 온갖 화사한 색상이 다 동원된다. 머리카락을 나타냈다고 보기에는 그 표현이 실재와 거리감을 지니고 있다. 그러한 표현은 주인공의 즐거운 마음상태를 전달하려는 기호쯤으로 이해된다. 그것은 튼튼한 삶의 구조에 합류되었을 때나 가능한 만족감이 아닐까. 작가는 무엇을 바라보는가가 무엇을 쟁취하였는가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이 작품을 통해 은연중 강조하고 있다.
어찌 영혼보다 물질이 중요하겠는가. 욕망을 위한 경쟁속에서 우리는 삶의 중요한 부분을 잃어버린 줄도 모르고 계속 앞으로만 달음질치는 경향이 있다. 생각으로는 이 사실에 동의하면서도 행동으로는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투리니에의 말이 아니더라도 생각만으로는 충분치 않으며 행동과 생각이 서로 발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마치 보행자의 두 다리처럼 행동과 생각이 같이 앞으로 움직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노래부르는 여인들이야말로 생각과 행동이 같이 가는 사람들이며 완벽한 하모니를 이룬 장본인들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사실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신나게 꿈을 ‘부르고’ 있는 중이다. <꿈꾸는 여인>이란 타이틀을 붙인 것도 따지고 보면 꿈과 소망을 동경하며 그것의 리듬에 맞추어 살고 있는 것을 형용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물질에 집착하지도, 경쟁에 동요하지도 않기에 그들은 행복할 수가 있다. 웃음은 얼마나 인생의 소중한 활력소인가. 그들은 아예 함박웃음을 달고 산다. 그들이 부르는 노래는 소망의 아리아이며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많은 위로와 희망을 갖게 한다. 이영신이 원하는 것이 이것뿐일까? 아니다. 나는 이것보다 더 큰 것을 작가가 원한다고 본다. 누구나 그림의 주인공처럼 인생의 무대에서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다.  노래 부르는 여인들이 찬란하고 아름답기만 하다.

서성록 (평론가, 안동대 미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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