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민
최순민
  • mytwelve
  • 승인 2018.01.30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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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Fathers House-  You call it love  72.7x90.9xcm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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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fathers house-Story 30x36cm(9)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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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fathers house-Treasure box  91x116.7cm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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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Fathers House I ll remember you  55.5x49xcm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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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Fathers House-Its a Wonderful Life 91x116.7cm 혼합재료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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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Fathers House-B612   50x50xcm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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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fathers house-Dear my friend 72.7x60.6cm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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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fathers house-Wait  116.8x91cm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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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fathers house-Good News 72.7x91cm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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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fathers house-Dear my friend 40x30cm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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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fathers house-Party 116.8x91cm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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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집-선물 F60 혼합재료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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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집-오하나님당신의바다는 더없이 크고 제 배는 더없이 작습니다 F100 혼합재료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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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father's house 72.7x91cm Mixed media on Canvas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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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father's house 45.5x65cm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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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fathers house 100x100cm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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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fathers house 80x80cm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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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fathers house 116.7x91cm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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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fathers house 45.5x53cm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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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fathers house 44x74.2cm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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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fathers house  100x100cm Mixed media on panel 2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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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fathers house 50x74cm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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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undation 72x61cm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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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fathers house100x100cm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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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fathers house   65.5 x 133.5cm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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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fathers house 44 x100 mixed media on panel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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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fathers house  38x100cm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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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fathers house 170x300cm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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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fathers house 56x46cm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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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fathers house  117x91cm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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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ft 146x112cm 2009
Gift 146x112cm 2009
Gift  165x126cm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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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ft 100x100cm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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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fathers house 80x80cm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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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fathers house 72x25(2)cm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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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fathers house 80x80cm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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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fathers house 44x38cm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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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treasure house 110x80cm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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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undation 29x25cm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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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lence 210x100cm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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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father's tear 143x123cm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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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dern times 160x80cm 에칭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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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닻, 128x112cm, 에칭, 1998
영혼의 닻, 128x112cm, 에칭, 1998
Endure, 100x80cm, 에칭, 1997
Endure, 100x80cm, 에칭, 1997
Good, oil on canvas, 50f, 1983
Good, oil on canvas, 50f, 1983

 

작가노트

늦은 밤, 
대형건물의 환한 불빛을 보면서 고층 빌딩들이 스스로 갇히기를 열망하는 현대인의 화려한 감옥 같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나라의 상여(喪輿) 문화에서 보듯 죽음으로만 삶의 고단함을 비로소 내려놓을 수 있다고 여겼듯이 
외로운 현대인처럼 옛날에도 삶을 고단해 했음을 알았다.   

‘왜 죽음을 쉼으로 여겼을까?’  
‘죽음 이후에는 어떤 세상이 있을까?’ 
그리고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의 
질문을 앞에 
‘거대한 우주 속에 있는 너무나 미약한 ’나’를 발견 하였다. 

생명체에 대한 경이로움과 창조에 대한 호기심이 나의 작업을 이끌어 온 힘이다.

성경의 누가복음 15장에서 탕자를 반갑게 맞이하는 풍족한 아버지의 집을 그리워하는 탕자의 독백을 읽으며 
아버지의 집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 해 지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나는  상상의 통로에서 아버지의 집으로 가는 자유로운 여행을 하고 있다.

한꺼번에 그 집들이 내 생각 속으로 밀려 올 때면 주변에 보이는 어느 곳이든 
메모를 해둔다. 
주머니 속에서 메모지들을 꺼내 작업대 위에 펼쳐 놓고서 어릴적 인형놀이를 하듯이 
화려한 색채와 금속 조각이나 보석들로 꾸미며 행복한 상상을 한다.  
집들을 때론 누워 있거나 거꾸로 있고 상품 진열대의 상품처럼 가지런히 
정렬하기를 좋아한다.  
일상 속에서 숨겨진 영혼의 아름다움을 마음의 창을 통해 바라보면서~

가족을 위해 오늘도 자신의 능력 이상으로 일을 하고 지하철의 손잡이를 간신히 잡고 있는  ‘아버지’라는 이름에서 ~
그리고 
잠을 설친 듯 헝클어진 머리, 피곤한 모습으로 젖먹이 아이를 등에 업고 있는 
‘어머니’라는 이름에서 느껴지는 가슴 저린 아름다움을 집안에 담고 싶다.

(최순민의 집은 어떤 모양일까? 서두에서 말했듯이 언뜻 보기에는 장난감같은 모양이다. 외양상 밝고 화려한 편이며, 
종래의 화가들에 비해 서술이 배제되어 있고, 선과 면으로 간략히 요약되어 있다.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이미지가 
집이라고 인식할 수 있는 것은 단지 모양이 집과 유사한 오각형이며 제목으로도 그것이 ‘집’이란 사실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작품은 집의 단면만 크게 확대하거나 실선으로 볼록하게 처리한 것, 심지어는 철선을 용접한 경우도 있다.
다양한 변형을 꾀하지만 대체로 그의 집모양은 일정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많은 집 가운데서도 작가가 형용한 이미지는 다름 아닌 <아버지의 집>이다. 작가는 스트라이프, 별, 도트와 같은 
여러 장식과 칼라플한 색지 및 인쇄물을 이용해 집을 꾸민다. 영롱한 인조보석은 그림분위기를 한층 고조시킨다. 
흥겨운 노랫가락이 흘러나오는 잔칫집 분위기를 연출한다. 작가는 애당초 집의 구조와 세부를 재현하는데 
신경을 쓰기보다 집의 이미지, 즉 집이란 어떤 곳인가를 더 강조하려고 애쓴 모습이다. 어떤 것은 궁궐같은 곳도 있다. 
세모의 지붕과 듬직한 돌기둥, 그리고 본채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인다. 별이 빛나는 하늘에 세워진 으리으리한 
도성(都城)같은 곳도 있다. 
작가는 왜 이처럼 ‘아버지의 집’을 화려하게 꾸몄을까? ‘아버지의 집’이 대궐같거나 화려하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새삼 이런 작업을 한 것같지는 않다. 그가 생각하는 ‘아버지의 집’이란 돌이나 목재나 대리석으로 만든 가시적인
집이 아니라 우리 영혼이 거주하는 곳이란 상징성을 띤다. : 서성록서문/2009년 그림손갤러리개인전)

2005년에 그래피티아트(낙서) 작가인 스페인의 안토니오 타피에 작품을 보면서 충격을 받았는데 그때부터 건축자재
재료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거친 안토니오 타피에 작품은 대중적인 재료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생동감과 아름다움이 충분했다.
그때부터 페인팅 재료의 고정 관념을 뛰어 넘는 계기가 되었고 돌가루(연마석)나 유리가루를 작업에 자유롭게 사용하고 있다.
또한 내 작업의 주요 형태는 광택부분과 무광택부분이 한 화면 위에서 서로 조화를 이루게 하는데 이는 각 나라는 
모습과 피부색이 다르고 풍습이 모두 다르지만 하나뿐인 아름다운 별, 지구안에 공존하고 있음을 기억하고 싶기 때문에 
고집스레 붙잡고 있다.

1997년에
불편한 환경 때문에 동판을 10x10cm 크기로 잘라 부식 시킨 후 연결 하여 큰 이미지를 만들곤 했다. 
(아파트의 작은방을 작업실로 사용했다)
그 과정 중 조각그림의 매력을 발견하게 되었고 지금의 작업 형태가 되었다.  
작은 면들이 커다란 면을 형성하고 그것은 전체로 귀결되는 형국인데 내 작업의 주된 특징의 하나다. 

(이처럼 작은 낱낱의 것들이 한데 모여 하나의 세계로 집적되는 스타일이 된다-2001년 인사갤러리 개인전/박영택서문중)

2009년에 그림손갤러리에서 개인전 때에 발표하기 시작한 파쇄한 잡지를 반복적으로 붙이는 작업이 있다.
폐 잡지를 파쇄기(shredder-일명 spy killer)에 넣고 잘게 절단된 종이를 붙여 나갈때면 
올프강 라입이 노란색 꽃가루를 모아 소복이 쌓는 모습을 연상하곤 한다.
남에겐 중요치 않지만 보이고 싶지 않은 내 삶의 흔적들을 파쇄하고 기억 속에 
간직하고 싶다.
이 작업은 인내와 집중이 필요하지만 마음에 평정심이 생겨서 감사의 미소를 짖게 한다.                    

값없이 주신 아버지 사랑에 감사하고 
조금 부족하게 만드셔서 열심히 노력하며 살게 하시니 감사하고 
엄마와 아내라고 불리게 하시니 감사하고 
용서하게도, 용서 받게도 하여 삶의 깊이를 알게 하시니 감사하다.

앞으로 한동안 무언가 만들고자 하는 열정과 움직임이 계속되리라는 기대감이 있기에 
또 감사하다. 

다양한 모습으로 집을 완성하다 보면 어느새 나는 6살 어린 아이가 되어 있다.
집을 그리는 순간에 나는 두 손에 과자를 움켜 쥔 어린아이 같은 그런 행복감을 느낀다.  



 

최순민, <아버지의 집>


장난감같이 생긴 아기자기한 모양들이 여기저기 펼쳐져 있다. 그안에는 빨갛고 파랗고 노란 색깔들과 온갖 화려한 무늬들이 장식되어 있다. 금속조각이나 인조보석들로 치장한 최순민의 그림을 볼때면 십중팔구 두손에 과자를 가득히 움켜쥔 어린아이가 느끼는 그런 행복감에 젖는다. 

최순민이 작업의 레퍼토리로 삼아온 것은 다름 아닌 집이다. 힘찬 필선이 넘실거리는 수묵화풍의 회화작품을 해오다 2005년 이후에는 집의 이미지만을 집중적으로 선보이고 있다. 집만큼 든든하고 마음 놓이는 곳이 어디 있겠는가. 하루 종일 세파에 시달리다가도 집에 돌아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피곤이 싹 가시고 안도감을 갖는다. 이런 집에 대한 인식은 그의 작품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편안함을 주며 언제든지 돌아가고 싶은 예쁘고 아담한 집이 그의 작품에서 풍기는 이미지들이다.  
이전에도 집을 그려온 사람들이 있었다. 일제때 활동한 김종찬의 <토담집>(1939)은 쓰러져가는 흙으로 된 집을 보여준다. 말이 집이지 실상은 초라한 움막에 가깝다. 장욱진의 <마을>(1956)에도 집이 등장한다. 두 채의 집이 그려져 있는데 창문을 통해 한 사람씩 얼굴을 내밀고 있다. 한 사람 살기에도 버겁게 느껴지는 자그마한 집을 표현하였다. 향토적인 화풍을 선보인 박수근도 집을 자주 그린 편이다. 시골의 기와집과 초가집을 가리지 않고 그렸는데 논밭이 딸려 있거나 마당에 장독대가 있고 닭이 있는 전형적인 농촌 분위기를 잘 나타냈다. 이렇게 작가마다 집을 대하는 시각이 다르며 화풍에 따라 특색있게 조형화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순민의 집은 어떤 모양일까? 서두에서 말했듯이 언뜻 보기에는 장난감같은 모양이다. 외양상 밝고 화려한 편이며, 종래의 화가들에 비해 서술이 배제되어 있고, 선과 면으로 간략히 요약되어 있다.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이미지가 집이라고 인식할 수 있는 것은 단지 모양이 집과 유사한 오각형이며 제목으로도 그것이 ‘집’이란 사실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작품은 집의 단면만 크게 확대하거나 실선으로 볼록하게 처리한 것, 심지어는 철선을 용접한 경우도 있다. 다양한 변형을 꾀하지만 대체로 그의 집모양은 일정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많은 집 가운데서도 작가가 형용한 이미지는 다름 아닌 <아버지의 집>이다. 작가는 스트라이프, 별, 도트와 같은 여러 장식과 칼라플한 색지 및 인쇄물을 이용해 집을 꾸민다. 영롱한 인조보석은 그림분위기를 한층 고조시킨다. 흥겨운 노랫가락이 흘러나오는 잔칫집 분위기를 연출한다. 작가는 애당초 집의 구조와 세부를 재현하는데 신경을 쓰기보다 집의 이미지, 즉 집이란 어떤 곳인가를 더 강조하려고 애쓴 모습이다. 어떤 것은 궁궐같은 곳도 있다. 세모의 지붕과 듬직한 돌기둥, 그리고 본채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인다. 별이 빛나는 하늘에 세워진 으리으리한 도성(都城)같은 곳도 있다. 

작가는 왜 이처럼 ‘아버지의 집’을 화려하게 꾸몄을까? ‘아버지의 집’이 대궐같거나 화려하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새삼 이런 작업을 한 것같지는 않다. 그가 생각하는 ‘아버지의 집’이란 돌이나 목재나 대리석으로 만든 가시적인 집이 아니라 우리 영혼이 거주하는 곳이란 상징성을 띤다. 그곳에서는 하나님과 대화하고 교감하며 일체감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맥스 루케이도(Max Lucado)의 말처럼 우리는 하나님을 진지하게 연구해야할 신적 대상으로만 생각했지 우리가 머무를 곳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 우리는 하나님을 기적을 일으키는 신비스러운 분으로 인식할 뿐 그분과 함께 산다고 생각지 않는다. 다윗은 이런 우리의 인식에 일침을 가하였다.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시 27:4) 

각종 위험이 도사리는 세상에서 우리가 숨을 수 있는 곳은 그다지 많지 않다. 이 세상에서는 영원한 안식도 위로도 없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역설적으로 부와 향락에 올인하는 경향이 있다. 거기서 무언가 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 그것은 ‘바람에 나부키는 겨’처럼 부질없는 짓이다. 행여 누군가의 말 때문에 상처를 받거나 사업의 실패로 낙심할 때 아무도 자신을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방치된다면 어떨까? 성경은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8-39)고 말한다. 우리 존재의 심연에 하나님의 사랑이 흐르고 있음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참된 내면의 준비가 담보되지 않는 한 진전은 더딜 수밖에 없다. 그 사랑이 심겨진 것을 깨달을 때 그것은 자신과 남들에게 끝없는 기쁨과 새 힘의 출처가 된다. 
오늘도 갈 곳을 잃고 방황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최순민의 작품은 이런 사람들에게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다. 그의 집은 광채로 번뜩이고 기쁨이 넘쳐나는 곳이다.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요 4:14)을 보고도 무관심하거나 태연한 척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려면 아버지의 집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같다. 우리 영혼이 새 기운을 얻고 싶을때 ‘하나님의 집’만큼 좋은 곳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 품안에 있을 때에만 맘 편히 안식할 수 있다.  
그의 그림은 마치 시대를 초월하여 많은 사람들이 애송하는 시편 23편에 펼쳐진 장면을 떠오르게 한다. 여호와는 우리를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심으로써 우리에게 만족을 주시고 고요에 잠기게 하신다. 단순히 집을 제시하였을 뿐이지만 작가는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에 서 있을 때처럼 만족감과 행복감을 전달한다. 그 분의 집에 들어가 내내 살기를 바라는 마음, 세상에서 가장 평안하고 안전한 곳에 있을 때의 정조(情操)를 실어냈음을 뒷받침해준다.

사실 우리가 창조주의 영화로움을 사실적으로 전달하기는 어렵다. 색과 리듬감 만으로 그 상태를 표현할 수 있을 뿐이다. 실제적 상태를 시각언어로 바꾸는 제약이 뒤따르게 마련이다. 그럴수록 조형언어에 귀 기울여야 할 이유가 있을 것이다. 화면을 들여다보면, 흰 바탕은 단아하면서도 포근하다. 질료감을 주려고 바탕에 하드보드를 깔고 다시 한지를 서너 번 입히고 그 위에 다시 페인트를 칠하거나 돌가루를 뿌려서 견고한 바탕의 느낌을 살려냈다. 말하자면 재료의 고유한 맛을 살려내면서 평면을 잘 가다듬어 내밀성을 잘 간직하도록 한 셈이다. 그리하여 배경의 충실함을 통해 주제의식이 분명해지도록 했다. 
작가는 마음의 은밀한 집을 보여준다. 그안에서 영원한 기쁨의 모형을 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창조주의 집에 들어간다는 것은 이전에는 한번도 경험할 수 없었던 것을 경험하는 순간이자 모든 피조물이 고대하는 ‘영원한 행복’과 ‘끝없는 안식’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을 뜻한다. 달라스 윌라드(Dallas Willard)의 표현을 빌면, 하나님은 “우주에서 가장 즐거운 분이시다. 그 분의 풍성한 사랑과 관대함은 그 분의 무한한 기쁨과 깊이 이어져 있다.” 우리가 가끔 경험하는 선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하나님은 자아내시고 바깥으로 유출시키시기에 우리는 기쁨과 사랑을 제공받는다. 최순민이 아버지의 집을 지극히 사랑스럽고 정성스럽게 꾸민 것은 실제로는 집 주인의 풍성한 사랑과 관대함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리라.

근래에 작가는 집 시리즈에서 정물로 소재를 약간 넓혀가고 있다. 작은 종이조각으로 된 모자이크식으로 바꿔 종전보다 훨씬 장식적인 느낌을 더하였는데 화분에 꽃과 식물이 자라는 것이라든지 물고기와 빵을 수북이 담은 광주리를 표현한 것 등 조밀한 짜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 작품들의 제목은 <선물>이다. 이미지는 살짝 다르지만 사실 작품상의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아버지의 집>이 창조주의 영화스러움을 나타냈다면, <선물>은 은혜 충만한 세상을 나타냈다. 우리가 사는 것은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란 사실을 상기하면 모든 게 '선물'로 다가온다. 하나님이 이처럼 온 세상 사람들을 위해 베푸신 것은 그 분의 자비와 사랑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작가는 아마도 감사의 마음을 그림에 담지 않았나 싶다. 최순민의 그림에는 빵이든 열매이든 식물이든 풍족하다. 음식으로 치면 '성찬'이요 꽃으로 치면 '백화난만한 동산'이다. 그것을 단순히 꽉 찬 이미지로 파악한다면 작품이해로는 부족할 것이다. 그것은 마음에 그득한 충만한 은혜의 표시로 감사의 표시가 아닐까 싶다. 굶주린 사람들에게 예수께서 오병이어를 베푸셨던 것처럼 오늘도 가슴에 멍울이 든 우리에게 '영혼의 만나'를 제공하고 계심을 알게 해준다. 이것은 바로 <아버지의 집>에서 받은 <선물>임에 틀림없다.

  서성록(안동대 미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