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북한 사람 얘기만 들으면 왜 눈물이 나는지…”
“북한, 북한 사람 얘기만 들으면 왜 눈물이 나는지…”
  • 이태형
  • 승인 2018.01.30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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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형의 만남
서울 종로구 부암동 한국대학생선교회 (C.C.C.) 본부에서
서울 종로구 부암동 한국대학생선교회 본부에서

 

서울시 종로구 부암동은 삼청동 및 신사동 가로수 길처럼 감각적인 공간으로 알려지며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산책코스로도 좋고, 관광지 분위기도 나는 다양한 모습을 지닌 동네다. 이곳은 몇 년 전만 하더라도 그다지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한 서울의 다소 외진 곳이었다. 나는 오래 전부터 부암동을 곧잘 방문했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곳에 한국대학생선교회(CCC·Campus Crusade for Christ)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CCC 창립자인 김준곤 목사(1925-2009) 생전에 그를 만나러 가기도 했고, 친숙한 CCC 간사들과 교제하기 위해서도 그 곳에 갔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 헌신한 CCC 간사들은 투박하면서도 진솔한 사람들이었다. 모두들 무언가에 사로잡혀 있는 듯한 분위기를 지닌 이들이었다.

한국CCC를 상징하는 격문이 있다. ‘민족의 가슴마다 피 묻은 그리스도를 심어 이 땅에 푸르고 푸른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하자.’ 민족과 피 묻은 예수 그리스도, 푸른 그리스도의 계절이란 선명한 단어가 어우러진 문장이다. 가슴을 뛰게 하는 복음의 격문으로 고 김준곤 목사가 처음 주창했고 이후 CCC맨들, 그리고 이 땅의 크리스천들에게 깊이 각인된 문장이다. CCC1970년대에서부터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교회 중흥기의 중심 역할을 하던 단체였다.

세월이 지나면서 젊었던 CCC 간사들은 은퇴를 앞둔 시니어 간사, 목사, 선교사들이 되었다.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복음의 격문, 백문일답(百聞一答·백가지 질문에 예수 그리스도라는 한 가지 대답)을 외쳤던 김준곤 목사도 이 땅을 떠났다. 세월은 흘렀지만 가끔 CCC의 노병(老兵)들을 만날 때는 늘 젊음의 패기가 느껴진다. 지금 한국교회에서 사라져가는 복음의 야성(野性)이 여전하다. 그들에게서 한 길 가는 순례자의 모습을 본다.

 

2017년 첫 눈이 수줍게 살짝 내린 1220, 부암동 CCC 본부 내 통일연구소에서 정인수 목사(67)를 만났다 그는 간사이자, 목사이자, 선교사이다. 오래 전부터 정 목사와 교제했는데 늘 한결같은 모습이었다. 과거 일간지에서 근무하던 시절, 정 목사와 함께 여러 번 해외 선교지를 다녀왔다. 그는 신사였고, 탁월한 국제 감각을 지닌 인물이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말할 때에는 늘 감격에 겨워하던 복음주의자였다. 한참동안 지갑에 고 김준곤 목사의 사진을 지니고 다녔던 열혈 CCC맨이었다. 그 역시 민족과 복음, 피 묻은 십자가, 푸른 그리스도의 계절에 매료되어 인생을 바쳤다. 그를 만나면 왠지 기분이 좋다. 단호히 한 길 가는순례자이면서도 인간의 냄새가 물씬 풍기기 때문이다.

정 목사는 오래 전부터 한반도 문제, 특히 통일에 대해 깊은 관심을 기울여왔다. 요즘 그는 북한과 북한 사람들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면 눈물이 난다고 고백했다. 실제로도 지난 경험을 통일 사역에 쏟아 붓고 있다. 그와 민족과 복음, 한반도 문제, 남북통일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정 목사님은 간사이자 선교사님으로 오랫동안 CCC에서 사역한 씨맨이십니다. 제가 보기에 누구보다도 국제 감각이 있으신 분이시고요. 또한 오래전부터 한반도 문제와 통일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지녀왔던 분이십니다. 먼저 목사님 자신에 대해서, 그리고 목사님과 CCC와의 관계, 또한 목사님의 지난 사역들을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CCC에서 주님을 만나 평생 CCC맨으로 살아왔습니다. 196945, 어떤 모임인지 알지 못한 가운데 CCC 모임에 갔다가 덜컥 회원이 되었습니다. 아직 주님을 인격적으로 받아들이기 전에 CCC와 첫 만남을 가졌지요. 지금 돌이켜보면 운명과 같은 만남이었습니다. CCC안에서 인생의 구주이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이후 학생, 순장, 나사렛 형제들, 그리고 간사로 CCC와 인연을 맺으며 살았습니다. 1980년 말에 전임 간사로 헌신, 캠퍼스 사역과 교육교재 개발 업무를 하며 간사의 삶을 시작했습니다. 그 이후 고 김준곤 목사님 비서실장과 기획실 총무 등으로 CCC를 섬겼고 대외적으론 선교동원가로 쓰임 받았습니다. 국제 CCC 동아시아본부와 동아시아신학교(EAST)에서 대표와 총장으로 사역했고 2013년까지 국제본부에서 ‘Global Operations 담당 부총재로 섬겼습니다. CCC 없이는 제 인생을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평생 CCC와 더불어 살아나갔습니다. 개인적으론 참으로 축복된 인생이라고 생각됩니다. 1년 반만 지나면 CCC회원이 된 지 50년이 됩니다. 올해로 간사가 된 지 37년이 되었습니다.

대학생선교회(C.C.C) 설립자 빌브라이트(William R. "Bill" Bright) 박사 부부와 함께한 정인수 목사
대학생선교회(C.C.C) 설립자 빌브라이트(William R. "Bill" Bright) 박사 부부와 함께한 정인수 목사

 

민족의 가슴마다 피 묻은 예수 그리스도를 심어 이 땅에 푸르고 푸른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하자라는 CCC의 캐치프레이즈는 언제 들어도 가슴을 뛰게 만듭니다. 어떻게 나온 구호입니까?

 

1970년 말, 수원의 서울 농대 기숙사에서의 훈련을 계기로 민족복음화의 구호가 나왔습니다. 그 해 1231일 자정에 김준곤 목사님께서 민족복음화 선언 메시지를 선포하면서 이 구호를 제창했습니다. 그때부터 CCC맨들은 어디서나 그 구호를 외쳤습니다. 정말로 가슴 뛰는 구호였고, 그 구호대로 저를 포함해 수많은 사람들이 이 땅에 푸른 그리스도의 계절을 오게 하는 데 인생을 바칠 것을 다짐했습니다.

김준곤 목사님은 탁월한 시적 언어 감각을 지닌 분이셨습니다. 부암동으로 이전하기 전 서울 정동의 CCC 회관에서 김 목사님의 설교를 처음 들었을 때의 감동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지금도 가슴에 남아 있는 설교 구절이 있습니다. 김 목사님이 이렇게 말하셨습니다. “시인의 귀는 꽁꽁 얼어붙은 땅으로부터도 봄이 오는 새싹의 움트는 소리를 들을 수 있듯, 나는 우리 민족을 향해 걸어오는 주님의 발자국 소리를 듣습니다.” 그때 저는 생각했습니다. ‘정말로 목사님은 들으실까? 나도 그 발자국 소리를 들어야 하지 않는가?’

또 한 가지 더 이야기하자면 당시에는 CCC 입석 수련회가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1969년도 입석 수련회 초대장에 김 목사님은 이렇게 썼습니다. ‘인생의 운명은 세 개의 만남에서 결정됩니다. 첫 번째는 사랑의 눈동자를 지닌 어머님과의 만남이요, 두 번째는 남자와 여자가 부부가 되어 하나되는 만남입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과의 인격적 만남입니다. 이 땅의 위대한 사람들에게는 세 번째 만남이 있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그 만남이 필요합니다. 당신을 이 모임(수련회)에 초대합니다.’ 역시 대단한 문장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분은 누구일까?’라는 궁금증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메시지를 들으면서 저분은 정말 시인이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김 목사님은 과도한 몸짓 없이 조용조용히 메시지를 선포하셨지만 늘 감명 깊게 다가왔습니다. 지금도 목사님의 그 메시지가 생각납니다. 그런 격문과 구호, 메시지들이 제 삶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런 메시지를 들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고 헌신하게 됐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수많은 CCC 간사들이 비슷한 과정을 거쳤습니다.

 

정 목사님은 1950, 한국전쟁이 발발한 바로 그 해에 태어나셨습니다. 이후 남북한의 상황은 목사님의 개인사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 남북의 분단은 저의 어린 시절에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교사를 하시던 아버지는 한국전쟁이 발발되자 자원 입대하셨고 제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에야 집으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많지 않습니다. 북에 이산가족이 있거나 특별한 연고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저의 영적 아버지셨던 고 박성록 교수님의 고향이 황해도 신천이었습니다. 박 교수님의 할아버지는 한국교회 초창기에 신앙을 받아들인 분이셨습니다. 박 교수님으로부터 수없이 북한과 그곳 교회에 대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한국교회의 부흥이 평양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늘 기억했습니다.

자녀들을 한국에 두고 선교지에 나가 살면서 가족이 떨어져 산다는 것이 항상 마음의 짐이 되었습니다. 남북한 이산가족 첫 상봉을 TV로 지켜보면서 하루 종일 울어 눈이 퉁퉁 붓기도 했습니다. 중국에서는 강 건너 북녘 땅을 보며 무거운 마음을 가누지 못했습니다. 20044월의 북한 용천역 열차 폭발사고 소식을 접했을 때엔 너무나 마음이 힘들어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국제사역을 하면서 우리는 가기 힘든 그 땅에 제3국 사람들은 자유롭게 가며 북한 주민들을 만나 삶을 나누는 것을 보며 부러워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우리에겐 불가능에 가깝게 힘든 일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런 방법으로 당신의 사랑을 나눌 수 있게 하시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한편으론 피도 섞이지 않은 외국 분들이 북한을 헌신적으로 돕고 북한 주민들을 사랑하는 것을 보며 부끄럽기도, 감사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을 돕고, 통일의 그날을 준비하는 것은 우리만의 일이 아니라 주변 및 세계 여러 나라들과 함께 해야 할 사역이라는 사실도 깨달았습니다.

연변을 방문한 한국 대학생선교회 (C.C.C) 설립자 김준곤 목사와 함께
연변을 방문한 한국 대학생선교회 (C.C.C) 설립자 김준곤 목사와 함께

 

한국CCC는 한국교회와 다른 선교단체들보다 더 일찍 한반도 통일을 꿈꾸며 준비해왔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한국CCC가 기독교 한반도 통일 운동의 길을 제시하는 선구자적인 기능을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CCC의 전반적인 통일 운동에 대해서 설명해 주시지요.

누군가 통일을 이야기하면 진보적인 색채를 지녔다고 여겨지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초창기 김준곤 목사님과 한국CCC는 남북한 문제와 관련해선 보수적인 색채를 띠고 있었습니다. 여기에는 김준곤 목사님의 가족적인 아픔이 적지 않게 작용했습니다. 김 목사님은 한국전쟁에서 아버님과 사모님을 잃었습니다. 목사님 자신도 10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목사님 고향인 신안군 지도라는 곳에서 한국전쟁 전후의 짧은 기간에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공산군에 의해서도 죽임을 당했지만 수복 이후의 좌우 대립과 보복 행위로 인한 살육이 만연했습니다. 김 목사님은 그 광경을 지켜보면서 보복하지 맙시다. 사랑으로 용서합시다라고 외쳤습니다. 그때, 김 목사님은 우리 민족의 죄악 가득한 성향들의 한 면을 보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이 죄를 고쳐주시기 전에는 우리 민족에게 소망이란 없다고 보았습니다. 그때부터 김 목사님은 우리 민족의 회복을 위해 평생 아침 금식을 했습니다. 조찬 모임에 가면 먹는 흉내만 내었고 하나님 품에 가실 때까지 아침을 드시지 않았습니다. 김 목사님은 보수와 진보를 넘어 서로 사랑으로 품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남한 교회가 북한 주민들을 품자고 주창했습니다. 1994년에 여의도 광장이 사라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70여만 명이 모여 세계 기도의 날행사를 했습니다. 그 때 김 목사님은 참석자들에게 북한의 모든 행정 구역을 리 단위까지 쪼개 각자가 구체적으로 북한의 마을 하나를 위해 기도하자고 제안했습니다. 북한의 한 마을을 입양해서 통일 때까지 기도하고 준비하는 영친(靈親), 영촌(靈村)운동 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목사님을 도와 그 일을 진행했습니다.

김 목사님은 CCC 내에서 기독교통일봉사단을 시작하다 1995, 한국에서 개최된 지코(GECOWE) 세계 선교대회에서 한국교회 전체가 기독교통일봉사단에 참여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당시 잠실종합운동장에서 7만 여명이 모인 가운데 기독교통일봉사단 발대식을 했습니다. 그렇게 북한을 먼저 사랑하고 품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통일의 그날을 기다리는 것만이 아니라 준비하자고 했습니다. ‘한 손에는 사랑을, 한 손에는 복음을 가지고 통일의 문이 열리면 학생들은 학교를, 직장인들은 직장을 쉬고 적어도 6개월 동안 북한에 가서 사랑으로 복음을 전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교회 건물 짓는 것보다 북한을 사랑으로 섬기고 민족을 품는 운동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여름 수양회 때마다 학생들을 통일봉사단원으로 가입시켰습니다.

1997년부터는 북한 젖염소 보내기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1995년부터 북한의 식량난이 심각해지면서 북한 주민들의 영양 상태가 극도로 나빠졌습니다. 그 소식을 들으면서 김 목사님은 누가 마시더라도 소화가 잘 되고, 북한의 지리적 여건에서도 잘 자라는 염소를 보내자고 제안했습니다. 당시 뉴질랜드에 제일 좋은 젖염소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김 목사님은 뉴질랜드 젖염소를 한국에 가져와 6개월 정도 적응시켜 북한에 보내는 젖염소 보내기 운동을 펼치도록 했습니다. 전반적으로 한국CCC의 통일 운동은 고 김준곤 목사님의 사랑에 기초한 창의적인 비전을 수행하며 심화, 발전되었습니다.

 

최근 국제 CCC는 북한을 영역으로 하는 ‘NKCCC’를 결성했습니다. 한국CCC가 있는데도 굳이 NKCCC를 따로 만든 이유가 무엇이며 사역 범위에 대해서 말씀해주시지요.

 

CCC는 한국에서 많이 알려져 있고 한국인 파송 선교사들도 많습니다. 그러다보니까 많은 사람들이 CCC라고 하면 으레 한국만 생각하는데 원래 CCC는 국제단체로 전 세계 190개국 이상에 현지 CCC 사역이 있습니다. 한국은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시작한 나라입니다. 시기에 따라 어떤 국가의 경우, 현지에 직접 들어가 사역할 수 없다 할지라도 밖에서 방문하면서 활동하는 그 나라 CCC 사역이 있었습니다. 구소련 체제하의 루마니아에는 독립 15년 전부터 루마니아 CCC가 존재했습니다. 루마니아 CCC 대표도 있었고요. 루마니아 내에 본부는 두지 않았지만 현지에 들어가서 사역하고 나오는 활동을 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북한을 대상으로 하는 NKCCC로의 시작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입니다.

북한은 우리와 한민족이지만 국제 관계에서는 엄연히 UN에 등록된 독립된 나라입니다. 남한과는 환경 등 여러 면에서 여건이 달라 사역 측면에서 독립된 한 나라로 접근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일 때가 많다고 국제 본부에서 판단했습니다. 물론 남한이 한반도 통일을 준비하고 북한에 사랑의 복음을 나누는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일은 남한만의 일이 아닙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 가운데에도 이 일에 부르심을 받아 참여하고 싶어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특히 지금 같은 때에는 제3국 사람들이 할 수 있는 너무나 많은 일들이 있지요. 물론 한국CCC 안에서 북한 사역을 해도 되지만 너무 한국 중심이면 한국적인 사고의 틀이나 생각 등으로 다른 나라 분들이 함께 일하는 데 효과적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한국CCC에서 북한 사역을 펼치는 것과 동시에 제3국 사람들에게 효과적인 대북 사역 길을 열기 위해선 NKCCC를 결성해야 한다는 컨센서스가 있어 국제 CCC 산하에 NKCCC를 두게 된 것입니다.

 

그럴 경우 NKCCC는 한국CCC와 어떤 협력 관계를 이루게 됩니까?

 

NKCCC 출발에 도움을 준 분들은 CCC 동아시아 본부와 한국CCC 지도자들입니다. CCC 등 한국에서 온 분들이 많습니다. 다른 나라에서 온 분들도 있지만 한국에서 온 분들이 많고 여러 관계성 속에서 볼 때, 한국CCCNKCCC의 가장 중요한 파트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NKCCC는 북한 사역에 참여하고자 하는 전 세계 단체와 개인들과 파트너십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NKCCC 입장에서 가장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파트너가 한국CCC임은 분명합니다.

 

NKCCC를 결성할 때, 한국CCC내에서 반대 분위기가 없지는 않았는지요?

 

한국CCCNKCCC의 결성으로 인해 영향력이 감소될 것 같아 반대한다기보다는 이미 한국CCC 내에 통일과 북한 사역 팀이 있는데 굳이 새로운 나라로 CCC를 만들어야 하는 당위성에 대해 이해하기 어렵다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한국은 여전히 다양한 방면에서 통일을 준비해야 하며 한국CCC가 북한 사역을 위해 해야 할 일들이 분명 존재합니다. 그러나 과거 독립을 이루기 전에 상해 임시정부가 결성되어 장차 다가올 독립을 준비했듯, 비록 북한 내에 CCC가 세워진 것은 아니지만 상해 임시정부의 심정으로 향후 통일을 준비하며 북한을 위해 일하기 원하는 여러 나라 사람들과 함께 일할 자원을 만들 필요는 있습니다.대부분 사람들이 이런 설명에 동감해 주셨고 NKCCC 시작에 기도와 격려를 보내주었습니다.

 

NKCCC에는 몇 명의 스태프들이 있습니까? 현재 하고 있는 일과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입니까?

 

정확히 말씀드리기 힘들지만 현재 20여 명 가까운 전임 스태프들이 있습니다. 한국인들이 가장 많고 다른 3개 나라에서 온 분들로 팀이 구성되어 있습니다. NKCCC의 사역은 한마디로 북한을 대상으로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며 통일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현대사에서 구소련과 동구권 등에서 일어난 일들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경험을 토대로 갑작스럽게, 또는 점진적으로 북한의 문이 열릴 경우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며 미리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점검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많은 제약이 있지만 통일을 맞아 현장에 들어가기 전에 더 철저히 준비하자는 것이 우리의 계획입니다.

 

NKCCC에 헌신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참여할 수 있습니까?

 

CCC 간사 가운데 NKCCC의 사역에 동감하며 지원하면 우리가 인터뷰를 합니다. 이 시대에 통일을 준비하며 북한 사역을 하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간사로서 일단 사역 철학과 방향이 같으면 멤버로 영입합니다. 유능하고 좋은 분이더라도 우리 팀보다는 다른 팀에 가서 사역하는 것이 효과적이라 판단될 때에는 굳이 영입하지 않습니다. NKCCC라는 단체를 키우기 위해서 억지로 사람들을 끌어모으지 않습니다. 백화점식으로 다른 북한 선교 단체들이 펼치고 있는 일들을 경쟁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부르심에 따라, 우리가 잘할 수 있는 일에 전략적으로 집중하려 합니다. 이런 우리의 사역 전략과 잘 맞는 간사를 전임으로 영입하고 CCC 간사가 아닌 분들 중에서 같은 뜻을 가진 분들과는 파트너십으로 일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NKCCC의 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습니다.

 

그럼 NKCCC만의 특별한 부르심은 무엇일까요?

 

역사적으로 북한 사역은 1137에 달하는 중국과의 국경선을 통해서 많은 일들이 이뤄졌습니다. 중국을 베이스로 해서 사역이 이뤄졌지요. 북한 주민들에게 사랑을 실천하는 돕는 사역, 전도와 제자 사역, 인도적 입장에서 탈북자들을 한국으로 데려오는 사역, 현장에서 전도해 제자화한 이후에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게 하는 사역 등이 있습니다. CCC는 전도, 제자화 사역에 집중하면서 사랑의 실천을 해왔습니다. NKCCC도 그런 방향으로 나갈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국제적인 파트너들이 있습니다. 그 분들과 현재 주어진 상황 속에서 어떻게 하면 창의적으로 북한에 새로운 길들을 열 수 있는지에 대해 논의하고 있습니다.

 

지금 남북한 상황은 한치 앞을 예측 할 수 없을 정도로 혼미합니다. 전쟁의 위험은 여전히 존속하고 있습니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는 미묘하며 복잡합니다. 이럴 때 우리는 북한을 어떻게 바라봐야 합니까?

 

굉장히 어려운 질문입니다. 한반도에서의 전쟁 가능성과 관련해서 미국의 랜드연구소 등 여러 연구소와 학자들의 분석과 견해에 따르면 정상적인 상황에서 전쟁이 일어나기는 아주 어렵습니다. 일단 전쟁이 벌어지면 남북한 모두 절멸의 위험에 처하기 때문입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양측 모두 치명적인 피해를 입기에 제정신으로 생각한다면 전쟁은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이 논리적인 생각입니다. 그런데 최근 어느 자료를 보면서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인류 역사에서 벌어진 대규모 전쟁 가운데 3분의 2가 의도적이며 계획적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전혀 의도되지 않는, 지극히 작은 일이 발단이 되어 전쟁으로 비화되었다는 것입니다. 많은 전쟁이 우연한 일을 계기로 예측하지 못하는 가운데 벌어졌다는 분석입니다. 그래서 한반도에서도 의도되지 않은 우연한 사건으로 전쟁이 일어날 개연성이 충분합니다. 더구나 지금은 누가 봐도 일촉즉발의 긴급한 상황이 아닙니까? 한반도에서 전쟁 발발 여부는 우리 통제 밖의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크리스천들은 가장 먼저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 이 땅에서의 전쟁을 막아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이 최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우리 마음 문을 열고 북한의 형제들을 끌어안을 수 있는 자세를 갖춰야 합니다.

제 친한 친구 가운데 북한에서 15년 살다 나온 형제가 있습니다. 그 형제는 세 달 전에 한국에 와서 10여 일 동안 북향민 등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돌아갔습니다. 가기 전에 저를 만나 이렇게 말했습니다. “형제가 혹시 기분 나쁘게 들을 수 있겠지만 이 말은 해야겠네. 이번에 와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관찰한 결과, 크리스천들을 포함한 한국인들이 북한에서 온 사람들을 너무나 무시하는 것 같아. 그들을 인격적으로 대하지 않는 것 같단 말일세. 이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야. 물론 자네나 다른 한국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지만 제 3자의 눈에는 그렇게 보인다네.”

그 말을 듣는 순간,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깊이 공감했습니다. 우리 안에 우리도 모르는 우월감이 있는 것 같습니다. 북에서 온 형제들을 보며 당신들은 지독히 가난하고 어려운 여건에서 살았으니 남한에서 어떤 상황에 처하든지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분명 있습니다. 지금 한국 내에는 3만 명에 달하는 북향민들이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들을 진정으로 품고 있는지를 정직하게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 분들이 남한 사회에 적응하기란 참 어렵습니다. 저는 선교사로서 여러 나라에서 살았습니다. 세 나라에서는 3년 이상 장기간 살았습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정착하려 할 때, 처음에 문화적 쇼크를 경험합니다. 그러다 어느 시점이 지나면 , 이제 내가 이곳에서도 살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하는 시점이 옵니다. 그 시점이 언제부터였는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진정한 현지인 친구를 만났을 때부터였습니다. 내 마음을 모두 나눌 수 있고, 그 사람의 말이라면 어떤 것도 믿을 수 있는 현지인 친구가 생긴 다음부터는 선교 현지에서의 제 삶이 달라졌습니다. 편해졌습니다. 그곳이 살 만한 곳으로 바뀌었습니다. 북향민 형제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남한의 누군가가 그들의 진정한 친구가 되어줘야 합니다. 남한 사람 가운데 저 사람의 말은 분명 나를 위해 해 주는 것일 거야라고 생각되는 친구가 한두 명이라도 생기면 그들의 다음 삶은 달라질 것입니다. 사실 그 과정이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그 일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말하는 사랑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남북한은 지금 분리된 나라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같은 뿌리를 가진 한민족입니다. 남과 북의 대치 상황이 엄중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같은 언어와 문화, 역사를 공유하는 한민족이라는 사실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 한민족이 이렇게 분단된 것은 우리의 실수도 있었지만 우리의 선택과는 상관없이 열강에 의한 인위적인 결과이기도 합니다. 역사적으로 한반도 주변의 강대국은 항상 우리에게 위협이 되어왔었습니다. 지금도 그들은 한반도의 평화를 말하지만 정작 한반도의 통일에 대한 진정성은 없어 보입니다. 이런 가운데 우리 스스로가 형제애를 지니며 서로를 향한 열린 마음으로 나아가는 것이 절실합니다. 주변의 북향민 형제들에게 마음을 열고 다가가며, 동시에 북한을 향해서도 마음을 열어야 할 것입니다. 정말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를 늘 생각해야 합니다.

 

말씀을 듣다보니 독일 통일 후에 극심했던 동서독 주민들 사이의 갈등이 생각납니다. 경제적으로 부강한 서독 사람들은 동독인들을 오시(Ossi)라고 부르면서 게으르고 만족할 줄 모르고 감사할 줄 모르는 족속이라고 경멸했습니다. 동독 사람들은 서독인을 베시(Wessi)라며 거만하고 돈만 알고 우리들을 삼등 국민 취급하는 속물주의자로 폄하했습니다. 이를테면 통일이 만든 상처라고 할까요. 통일 과제를 안고 사는 우리가 연구해야 할 선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얼마 전 독일 드레스덴에서 온 크리스천 독일인이 한국을 둘러본 뒤에 저에게 슬프게도 한국인들은 통일에 대해 말은 많이 하지만 정말로 간절히 통일을 원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말을 들으면서 우리는 정말 통일을 원하는가? 통일을 위한 상처와 희생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정직하게 우리를 들여다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안에 들어온 3만 명의 북향민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통일 실험을 해야 하겠습니다. 목사님 말씀대로 그들의 진정한 친구가 되어야 하겠고요.

, 국제 관계적인 측면에서 미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 열강은 한반도 통일을 내심 원하지 않고 현상 유지만을 추구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통일은 가깝기도 하고, 또한 멀기도 한 것 같습니다. 목사님의 통일에 대한 전망은 어떠하십니까?

 

개인적 견해론 통일은 갑작스럽게 올 가능성이 훨씬 크다고 생각합니다. 통일의 그때가 상당히 임박했다고 생각합니다. 논리적으로 생각해도 국제 정세를 볼 때 많은 일들이 마지막 단계에 온 것 같습니다. 종착점에 가까워졌다는 말입니다. 내년이 중요합니다. 2018년은 남북한 이 분단되어 각각 정부를 수립한 지 70년이 되는 해입니다. 70이란 숫자는 영적으로 큰 의미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바빌론 포로 상태에서 70년 만에 돌아왔습니다. 공산 혁명 이후 구소련이 개방되어 변화가 찾아오기까지 70년이 걸렸습니다. 당시에도 구소련 지역의 크리스천들은 이제 70년이 되었다면서 문을 열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간구와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그런 일들을 지켜볼 때 70년이 된 지금 한반도에도 유사한 일이 일어날 것을 기대합니다. 이것은 예언이 아닙니다. 제가 믿는 하나님은 히브리서에 기록된 대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일을 행하시고, 구소련과 동구권에서도 그런 일을 행하신 하나님께서 한반도에서도 동일하게 역사하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2018년 전후로 하나님께서 한반도에 특별한 일을 행하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기도하며 사역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때와 기한은 오직 하늘 아버지께서 정하시는 것이라는 사실 또한 기억하며 인내해야 합니다. 예수님 승천 직전에 제자들은 아버지 나라가 회복될 때가 언제이니까라며 언제에 대해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하박국서에서도 지속적으로 주여, 우리가 언제까지 기다려야 합니까라는 하박국 선자자의 절규가 나옵니다. 그러나 역사의 주권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래서 때와 기한은 우리의 한계 밖의 일입니다. 우리는 언젠가 다가올 그때를 위해 준비해야 합니다. 통일이 급작스럽게 오든, 점진적으로 오든, 분명한 것은 준비된 가운데 통일을 맞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거듭 말하지만 남북통일이 오리라 믿고, 또 오기를 바란다면 당연히 준비해야 합니다. 준비 없는 통일은 심각한 혼돈 상태를 야기하고 엄청난 값을 지불하게 만들며 또 다른 문제의 시작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선조들은 일제의 압제 속에서 해방만 되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될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오죽하면 시인 심훈이 그날이 오면 나는 내 가죽을 벗겨 북을 만들어 그 북을 종로에서 울리겠다고까지 말했겠습니까? 그러나 해방은 문제의 끝이기도 했지만 새로운 문제의 시작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역사를 통해서 배우지 않았습니까? 반드시 준비해야 합니다!

외부적 변수와 관련해서, 우리 민족의 역사에서 주변 나라들이 분단을 자극하거나 촉진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외교통상부 장관을 지낸 서울대 윤영관 교수는 이를 원심력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주변 나라들의 영향력은 남북한 두 나라를 멀어지게 합니다. 그러나 윤 교수에 따르면 남북한은 같은 민족으로 서로 끌리는 구심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구심력이 멀어지면 통일은 요원해집니다. 우리 마음속에는 분명 이런 끌림이 있습니다. 북한과 중국이 축구 경기를 하면 우리는 당연히 북한을 응원합니다. 적어도 저는 그렇습니다. 지난 인천 아시안게임 마지막 날의 축구 결승전에 남북한이 맞붙었습니다. 저도 현장에 있었습니다. 남한 팀을 응원했지만 남자와 여자 축구 결승에서 남북한이 각각 우승을 나눠 가지니 기분이 너무 좋았습니다. 물론 북한의 정권이나 체제, 정책을 지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같은 민족으로서 기쁨과 아픔을 나누는 마음의 연대 길은 열려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남북한 지도자들은 이런 민족 간의 끌림, 구심력이 지속될 수 있게 접촉 기회를 열어둬야 합니다. 아픔도 나누고, 기쁨도 나누는 마음 연대의 길은 열려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2018년의 중요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건국 70주년과 남북한 정부 수립 70년이 되는 2018년에 뭔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입니다. 통일은 영적·실제적으로 긴박한 것일 수도, 다소 지체되는 것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말씀대로 준비해야 한다는 점에는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럼 남북통일 시대를 앞두고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합니까?

 

요즘 나이 들어 시니어 선교사가 되다 보니 제 삶을 정리해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저는 요한복음 마지막 장인 21장을 읽으며 많은 감동을 받습니다. 요한복음 21장에는 부활 이후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전 마지막 부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말하자면 예수님의 이 땅에서의 삶의 마지막 부분이 나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21장에는 예수님이 행하시는 거대한 기적 이야기가 아니라 그저 갈릴리 바닷가로 돌아간 제자 베드로를 찾아가시는 예수님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요한복음 21장 제목을 회복이라고 붙였습니다. 수제자였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적어도 두 번 이상 만났던 베드로였지만 그는 다시 과거 삶으로 돌아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새벽 미명에 뜻밖의 장소, 즉 베드로의 삶의 실패 현장에 그를 찾아가십니다. 구운 생선과 떡을 준비하신 주님은 베드로를 불러 아침을 먹으며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묻습니다. 그 장면을 그려봅니다. 예수님은 승천 직전의 가장 소중한 시간을 사랑하는 제자 베드로를 다시 제자로 회복시키는 일에 쓰셨습니다. 그 회복의 하이라이트는 실패감과 부끄러움에 함몰된 베드로에게 내 양을 치라고 위임하는 장면입니다. 그 말 속에는 베드로를 향한 예수님의 절대적 신뢰가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생명처럼 사랑하는 양들을 베드로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그 예수님의 신뢰를 바탕으로 베드로는 다시 주님을 전하는 복음의 사명자가 되고, 끝까지 그 사명을 감당하게 됩니다. 저는 요한복음 21장을 읽고 또 읽으면서 사람 세우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통일과 관련해서 정치적·제도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 안에서의 온전한 민족적 회복을 바라보며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구약의 대표적인 지도자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는 내용이 느헤미야서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13장까지 있는 느헤미야서를 읽다보면 615절에 성벽이 완공된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벽 재건이 목표라면 느헤미야서는 6장으로 끝나야 합니다. 그럼에도 이후 7개의 장이 더 펼쳐지는 이유가 있습니다. 성벽 재건이 주요한 프로젝트이긴 하지만 보이는 성벽의 재건이 궁극적인 목표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회복이 최종 목표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의 회복을 위해선 무너진 성벽과 불에 탄 성문을 재건하는 것이 과정상 중요한 과제였습니다. 느헤미야는 거기서 더 나아가 재건된 성벽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영적·민족적 회복을 꿈꿨습니다. 그런 점에서 느헤미야는 참으로 위대한 지도자였습니다. 마찬가지로 남과 북이 제도적·정치적·시스템적으로 하나가 되는 것이 중요하지만 주님 안에서 사랑으로 민족이 화해하며 회복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러면 답은 간단합니다. 무조건적인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을 한국교회와 크리스천들은 북한 형제들을 향해 보여주기 위해서 준비해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통일을 위한 가장 큰 준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민족적 회복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먼저 남한 안에서 우리가 하나 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먼저 우리 남한 내의 회복도 중요하다 봅니다. 남한 내에 통일에 대한 컨센서스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의견들이 나뉘어 있습니다. 예수 운동은 결코 나눠질 수 없는 것 아닙니까? 목사님은 평생 예수 운동에 삶을 헌신하셨습니다. 진정한 예수 운동이란 무엇이며 크리스천으로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예수 운동은 예수님을 닮아가고 배워서 예수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그것은 먼저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열정(passion)을 갖는 것입니다. 예수 운동가들은 잃어버린 한 영혼을 얻기 위해 다른 모든 것을 내려놓을 만큼의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한국교회는 여전히 성장에 대한 열정은 있습니다. 그러나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열정은 과연 과거만큼 있는지를 자문해 볼 때, 자신 있게 그렇다고 말하기 힘든 것이 현실입니다. 한국교회가 이 시대에도 변함없이 예수 운동을 펼치기 위해서는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열정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 운동은 삶의 변화를 가져오는 운동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기만 하면 그 전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제자훈련은 다른 말이 아니라 삶이 바뀌는 훈련입니다. 한국교회에서는 성도들이 일정한 커리큘럼을 통과하면 제자화가 됐다고 선언합니다. 그러나 정작 제자화 됐다는 사람들에게서 삶의 변화는 명확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온전한 예수 운동이 진행되면 사람들에게 삶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저는 늘 지난 시절 우리나라가 이룬 급속한 발전에 대해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생각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한국 사회는 빠른 성장을 이루면서 많은 가치의 혼돈을 경험했습니다. 이 같은 풍조에서 교회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한국교회 역시 사회와 마찬가지로 빠르고 강하게를 추진하며 본질을 잃어갔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더 빨리, 더 강하게를 추구하는 수직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늘 보좌의 힘을 지니신 그 분은 얼마든지 그 힘을 사용하실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땅에서 죄인들의 친구로 사셨습니다. 수직적인 리더십을 통해서는 강력한 힘으로 짧은 시간에 외적인 변화는 일으킬 수 있지만 삶을 변혁시키는 내면적인 변화는 가져오지 못합니다. 본질적 변화는 수평적인 영향력에서 옵니다. 그렇기에 우리 주님은 자원하여 죄인들의 친구가 되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육신의 정신이며 주님의 방법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신앙의 측면에서도 마치 경제 개발과 군대 작전과 같이 강력한 힘으로 수직적 영향력을 발휘하려 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그릇된 가치관이 우리 안에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지난 시절에는 사장 한분이 예수를 믿은 뒤에 전 사원과 함께 예배를 드린 것을 민족복음화의 최고의 간증처럼 여겼습니다. 또한 군에서는 예수님을 받아들인 사단장이 전 장병을 한 자리에 모아 말씀을 듣게 하고 집단 세례를 받게 하는 것이 최선인 것처럼 칭송받았습니다. 물론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지위를 이용해 사람들로 하여금 복음을 들을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것 자체를 부인하거나 무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반드시 생각해야 할 점은 우리 주님은 과연 그런 방법을 모르셨을까?’라는 사실입니다. 로마의 절대 권력 하에서 주님은 자신의 메시지를 전하고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 로마 정부보다 더 강력한 방법을 얼마든지 사용하실 수 있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분은 수직적 리더십을 사용하지 않으시고 그저 죄인들의 친구가 되셨습니다. 그것은 주님이 삶의 변혁을 가져오게 하는 것은 오직 수평적 리더십을 사용할 때뿐이라는 사실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한국교회는 우리 주님의 성육신적 리더십을 다시 배워야 합니다. 그래서 이 땅의 상처 받은 영혼들과 죄인들의 진정한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그들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북향민들에게 진정으로 다가갈 때, 우리는 그들의 친구가 될 수 있고 장차 북한의 동포들을 마음에 품고 통일을 준비하는 역할을 감당하리라 확신합니다. 그러할 때, 이 땅의 사람들이 변화되어 사회를 바꾸고, 국가를 새롭게 하는 놀라운 트랜스포메이션(변혁)의 주역으로 설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참으로 성육신적인 리더십이 절실한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주님과 같이 낮고 낮은 자리에 내려와 죄인들의 친구가 되어 모두가 함께 회복의 길로 가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중요한 가치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정 목사님에게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입니까?

 

가장 소중한 것은 관계라고 봅니다. 앞서 말씀드렸지만 저의 영적 아버지인 고 박성록 교수님의 고향이 황해도 신천이기에 저는 늘 북한을 생각하면 가슴 울컥합니다. 저는 박 교수님을 통해 주님을 믿고 그 분의 사랑을 알았습니다. 제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서 가는 데 정말 아버지처럼 잘 양육해 주셨습니다. 박 교수님은 자신의 삶을 통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진정한 관계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크리스천의 삶은 3가지 관계를 통해 전개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믿음의 형제들과의 관계, 믿지 않는 사람들과의 관계이지요. 하나님을 경배하며, 믿음의 친구들과 함께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나가며, 믿지 않는 사람들과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는 것입니다. 그것이 크리스천들의 인생입니다. 이 관계를 잘 맺는 것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박 교수님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 먹먹한 사연이 있습니다. 저는 1984년에 첫 선교지에서 돌아왔습니다. 그 해 겨울은 무척 추웠고 외로웠습니다. 박 교수님은 정년퇴임하신 지 10년 정도 지났습니다. 크리스마스를 일주일 앞두고 박 교수님이 갑자기 저희 집을 찾아오셨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당시 선교지에서 갓 돌아온 저의 집을 아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 어떻게 찾아오셨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아이들 줄 선물을 들고 오신 교수님의 대답이 저를 감동하게 만들었습니다. 교수님은 CCC 간사들에게 물어도 저의 주소를 아는 사람이 없고 그저 서울 잠실 근방에 집을 얻어 이사했을 것이라는 소리만 들었습니다. 그래서 잠실 내 3개의 동사무소를 찾아가 지난 3개월 동안의 전입자 명단을 모두 찾아본 끝에 저의 집 주소를 알아내셨습니다. ‘찾아오시는 스승님의 사랑과 기도, 돌봄이 있었기에 부족한 제가 사역자로 설 수 있었습니다. 고 박 교수님은 삶을 통해 진정한 사랑의 관계가 무엇인지를 저에게 본으로 보여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관계입니다. 하나님은 물론 이웃과 더불어 진심과 진정의 관계를 맺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목사님과 고 박 교수님과의 아름다운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를 추적하시고 끝내 찾으시며 당신의 제자로 세우시는 하나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감동적인 이야기였습니다. 목사님의 향후 계획은 어떠하십니까? 통속적인 질문이지만 다시 태어난다 해도 지금까지 걸었던 그 길을 걸으시겠습니까?

 

제 생애를 돌이켜 보며 감격하고 감사한 것은 하나님이 우리 민족과 교회에 특별한 부흥을 주신 시기에 한국 땅에서 태어나 예수님을 만났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한국CCC가 한국교회를 위해 중요하게 쓰임 받는 현장에 제가 있었고, 그곳에서 작은 일이지만 주님 위해 헌신했던 것도 너무나 감사하고 감격스럽습니다. 1971년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열린 최초의 민족복음화 훈련, 1972년 춘천성시화 집회, 1974년 엑스플러74 대회, 1980년 세계복음화대회, 1995GCOWE 대회 등 하나님 역사가 이뤄지는 현장에서 증인으로 섬겼던 것은 특권 중의 특권이었습니다.

저는 CCC 안에서 형제보다도 더 가까운 인생의 소중한 분들을 만났습니다. 마음이 어렵고 힘들 때면 언제나 찾아가 함께 울고 껴안을 수 있는 동역자들을 만났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스승님들을 CCC 안에서 만났습니다. 제 인생에서 소중한 것들을 모두 CCC 안에서 만났기에 다시 태어난다 해도 주저 없이 이 길을 다시 걸을 겁니다.

앞으로도 변함없이 통일 한국을 준비하는 일을 도울 것입니다. 지난 시절과 같이 사람을 신뢰하며 세우는 일에 쓰임 받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천국을 사모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긴 여행길을 마치고 고향집으로 돌아가는 나그네처럼 남은 삶을 살기 원합니다.

 

올해 첫 눈이 살짝 내린 이날 평생을 행복한 순례자로 살았던 목사님과 행복한 대화를 나눴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웠던 지난 시절이었군요. 목사님이 편안하고 행복한 얼굴을 지니신 것은 행복한 분들과 함께 하셨기 때문이었다고 생각됩니다. 민족과 통일, 복음, 피 묻은 십자가, 그리스도의 계절 등 지금은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와 같이 흐려진 단어들을 들으며 가슴이 저며 들기도 했습니다. 오늘 긴 대화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고 김준곤 목사님이 쓰신 민족 복음화의 환상과 기도를 직접 읽어주시지요. (‘민족복음화의 환상과 기도를 읽어가는 정 목사의 눈시울이 점차 적셔져갔다. 마치 고 김준곤 목사의 카랑카랑한 절규가 들리는 것 같았다. 민족복음화의 환상과 기도는 시대와 상관없이 이뤄져야 할 대명제이다. 민족복음화의 환상과 기도가 북녘의 형제들에게도 반드시 펼쳐지리라.)

 

[민족복음화의 환상과 기도]

 

어머니처럼 하나밖에 없는 내 조국

어디를 찔러도 내 몸같이 아픈 내 조국

이 민족 마음마다 가정마다 교회마다

사회의 구석구석 금수강산 자연환경에도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처럼 이 땅에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이 땅에 태어나는 어린이마다

어머니의 신앙의 탯줄, 기도의 젖줄, 말씀의 탯줄에서 자라게 하시고

집집마다 이 집의 주인은 예수님이라고 고백하게 하시고

기업주들은 이 회사의 사장은 예수님이고

나는 관리인이라고 고백하는 민족,

 

두메마을 우물가의 여인들의 입에서도

공장의 직공들, 바다의 선원들의 입에서도

찬송이 터져 나오게 하시고

 

각급 학교 교실에서

성경이 필수 과목처럼 배워지고

국회나 각의가 모일 때도

주의 뜻이 먼저 물어지게 하시고

 

국제 시장에서 한국제 물건들이

한국인의 신앙과 양심이 으레 보증수표처럼 믿어지는 민족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삼으며

신구약 성경을 신앙과 행위의 표준으로 삼는 민족

민족의식과 예수의식이 하나 된 지상 최초의 민족

그리하여 수십만의 젊은이들이 예수의 꿈을 꾸고

인류구원의 환상을 보며

 

한손에 복음을, 다른 한 손에는 사랑을 들고

지구촌 구석구석을 누비는

거룩한 민족이 되게 하옵소서!

 

대담 이태형

justin1057@hotmail.com

기록문화연구소 소장, [국민북스 대표], 전 국민일보기독교연구소 소장, 더 있다』 『두려운 영광등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