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는 성도의 성숙을 돕는다
예배는 성도의 성숙을 돕는다
  • mytwelve
  • 승인 2020.03.13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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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학 지도 그리기/문화랑/이레서원/방영민 편집위원
 

예배는 성도의 성숙을 돕는다

 

성도는 예배를 드리는 사람이다그러나 성도만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은 예배자이다그래서 우리는 누구를 예배하고 무엇을 위해 예배하는지 그 대상과 목적이 분명해야한다우리는 기도할 때 새로운 예배를 드려야하고 예배가 살아야하고 예배가 회복되어야한다고 자주 고백한다새로운 예배란 무엇이고 예배가 회복되어야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예배란 도대체 무엇인가?

 

예배는 신학자마다 성경의 근거를 가지고 자신만의 정의를 내릴 수 있을 것이다그중에서도 필자가 내리고 싶은 정의는 예배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시간이고 또한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시간이며 예배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구주로 믿는 자들이 자신과 공동체의 신앙을 표현하는 결정체이다예배는 콘서트가 아니고 쇼도 아니며 인간의 만족을 충족시켜주고 감정을 해소해주는 심리적 도구가 아니다.

 

오늘날 새로운 예배를 드리기 원한다거나 예배가 회복되어야 한다는 기도는 혹시 나의 감정과 만족을 채워주는 예배가 되어야 한다는 인간중심적인 기도가 아닌지 점검해 보아야 할 것이다더구나 요즘처럼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교회가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리는데 그동안 우리가 드렸던 예배의 문제점은 무엇이고 진정한 예배가 무엇인지 질문하게 된다이 책은 이러한 현실에 맞춰서 우리의 예배를 바르게 세우는 일에 도움을 준다.

 

예배의 대상

 

인간은 예배자이고 성도는 삼위 하나님의 구속을 찬양하고 그분의 성품에 감사하는 자이다우리가 예배하는 대상은 삼위일체 하나님이라는 것이 분명하다입례와 부름과 선언과 기도와 사도신경과 찬양 등 예배 모든 순서는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목표 아래 하나님의 큰 일이 계시되고 선포되며 인간의 반응과 감사가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예배는 인간중심이 되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이 중심이 되어서 인간을 만나주시는 현장이다.

 

기본적으로 예배는 성도가 드릴 수 있는 것이고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다하나님에 대하여 무지하거나 하나님을 무시하는 자는 할 수 없는 행위이다물론 교회에 처음 온 새가족이나 초신자들을 위한 배려가 예배에는 당연히 있어야 한다그러나 그들을 위한 이해와 배려는 좋으나 예배의 대상이 흐릿해지는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예배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만드신 제도이긴 하지만 궁극적인 대상은 하나님이지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교회에 오는 사람들은 자신이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생각할 것이다그러나 정말 자신이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합당한 예배자인지 점검하지 않을 수 없다자기의 욕망을 위해 예배하고 자신의 교양과 품격을 위해 예배하는 자들이 많이 있는 현실을 본다하나님을 위해 예배하고 하나님의 구속을 찬양하고 하나님의 성품에 감사한다는 예배자는 어디 있을까우리의 예배대상이 분명해지길 기도한다.

 

예배는 정체성을 형성한다

 

필자는 이 책의 5장이 개인적으로 매우 유익했다제임스 스미스가 말하듯이 우리는 육체라는 컨테이너 속에 의식을 가진 자가 아니라 우리의 몸과 행동이 곧 자아이다즉 우리의 예배는 반복을 통해 성품과 인격이 형성되고 예배를 배움으로 예배자가 된다는 것이다지식과 교리에 초점이 맞춰진 지금까지 우리의 예배와 교육과 비교해 볼 때 몸으로 예배를 익히고 그것이 우리의 성품이 된다는 것은 설득력이 있는 주장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 점에서 한 가지 의문이 있다신앙에 있어서 몸의 중요성과 진리를 체험하여 자신의 행동으로 신앙을 고백하고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한다그리고 초대교회에서는 교리를 먼저 세우고 예배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로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 중에 성부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성자 하나님에 대한 역할과 보혜사 성령님에 대한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도 알고 있다그래서 예전의 시행이 신앙의 형성을 돕고 공동체의 기억을 활성화 한다고 한다.

 

그러나 필자가 볼 때 예전의 반복이 메시지를 강화시키고 그것이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아니다물론 교리가 체계화 되기 전 예배를 경험함으로 지식이 생기고 감동이 되어 변화를 받은 것은 맞다그러나 지금은 초대교회가 아니라 2000년이 흐른 현대를 살고 있다반복과 훈련이 중요하고 참여함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지식과 교훈이 있겠으나 이것이 공부와 지식을 통해 공부 없이 참여하는 것이라면 매번 몸으로 반복을 해도 무의미한 사건일 것이다.

 

그래서 현대교회가 성경공부와 교리에 치중한 나머지 몸으로 배우고 예전을 하는 것에 약해졌다는 것은 인정한다그러나 필자가 볼 때는 지금은 몸으로 무엇을 더 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보다 성경과 교리를 더 잘 가르쳐야 할 것 같고 그중에 몸으로 행하는 예전의 필요성과 중요함을 포함시켜야 할 것 같다아무튼 몸으로 행하는 예전을 통해 신앙을 배우고 정체성이 형성된다는 것은 필자도 인정하는 바이다.

 

예배는 아름다운 것이다 

 

우리는 매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예배를 드리고 우리의 존재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인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분을 기뻐하는 것이다예배는 자신이 출세하기 위해서 드리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한 굿을 하는 것도 아니다예배라고 하여 신천지처럼 인간신을 만들어서 경배하는 것이 아니고 콘서트처럼 우리의 오감을 자극하는 기쁨을 누리는 것도 그렇다고 좋은 강연을 듣는 강의시간도 아니며 문제를 해결하고 소원을 이루기 위한 방법을 찾는 굿도 아닐 것이다.

 

예배는 성도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되고 성장하고 온전해지는 것이다개신교의 예배가 보수적인 교단에서는 하나님의 초월성에 집중하여 개인의 내면과 믿음에 초점이 맞추어졌다면 진보적인 교단에서는 하나님의 내재성에 집중하여 민중과 사회변화에 관심을 많이 가졌었다그러나 예배는 어느 하나만 강조되는 것이 아니라 두 가지를 향하는 목적이 있다예배는 자신의 변화와 성숙을 통해 더 나은 시민이 되어서 더 밝은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배는 윤리적이고 정치적인 것이다그래서 예배를 잘 드리는 사람은 성도이고 성숙한 시민이다예배는 자신의 성공으로 끝나지 않고 우리 주위에 약자를 돌아보고 사회의 성숙을 이바지하는 도구가 된다예배를 통해 바벨탑의 정신이 남겨지는 것이 아니라 성육신의 원리가 새겨지는 것이다예배에 목숨건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한 목숨이 아니라 그것을 이루려는 옛자아를 죽여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그러므로 예배는 자기사랑이 죽고 삼위일체 사랑으로 살아가며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것이다.

현대교회에 완벽한 예배양식과 세부적인 규칙은 없다각 교단마다 정해놓은 예배모범은 있지만 지역교회마다 교회의 상황과 특성에 맞게 순서는 제 각각이다필자는 이것을 부정하게 여길 필요가 없다고 본다교회는 그 시대와 문화와 그 구성원의 특성에 맞게 예배순서를 적절하게 구성하여 은혜롭게 드리면 되는 것이다순서마다 삼위 하나님의 구속과 성품을 잊지 않고 성도의 고백이 들어가도록 지혜롭게 구성해야 할 것이다.

 

끝으로 예배는 교회성장의 도구가 아니다교회마다 사람에게 만족을 주기 위해 예배를 기획하고 회의를 하고 변화를 준다그야말로 예배전쟁시대이다물론 이런 고민이 필요한 시도이고 도전이다그러나 누구를 향한 것이고 무엇을 위한 것인지 끊임없이 질문해야 할 것이다이 책을 통해 성도가 드리는 예배가 무엇인지 우리의 예배가 어떠해야 하는지 도움이 되길 바란다여전히 어려운 과제이지만 은혜로운 예배를 향한 고민은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위 저작권은 크리스천북뉴스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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