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가 깨진 남자의 얼굴
코가 깨진 남자의 얼굴
  • mytwelve
  • 승인 2020.02.11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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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쌀해진 공기 속에서 나뭇잎의 색이 짙어지기 시작하는 가을의 어느 날, 체스 판처럼 펼쳐진 애비뉴와 스트리트들을 지나고 공원의 숲길을 천천히 가로질러 미술관에 도착했습니다. 대부분의 미술관이 주는 경험은 창문이 없는 널찍한 방 안에 최적의 조도로 세팅 된 조명을 받으며 설치되어 있는 작품들의 행렬을 따라 느리게 걷는 것입니다. 그러다 지칠 때쯤 창문으로 햇살이 가득 들어오는 어떤 공간을 만나게 된다면 무척이나 반가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공간은 예민해져 있던 시지각에 휴식을 주고 닫혀있던 피부의 감각을 기분 좋게 깨워줍니다. 

 

제가 그날 방문한 미술관은 그런 공간으로 높은 천정에 좌우로 긴 복도 형의 조각 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심플하고 우아한 르네상스 스타일로 디자인된 홀은 크림색의 대리석 바닥에 순백의 밀크색 벽이 어우러져 있었는데, 커다란 창문들을 통해 눈부신 햇살이 더해지자 더할 나위 없이 쾌적하고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이쪽 끝과 저쪽 끝이 아득할 만큼 넓은 공간 안에 하나 둘 여유 있게 서 있는 조각상들은 웅장한 스케일에 저마다 심오한 이야기들을 품고 황홀한 햇살을 받으며 서 있었습니다. 늦은 오후, 관람객들이 하나 둘 빠져나가고 햇살이 느리게 움직이기 시작하자, 검은 옷자락같이 아름다운 그림자들이 조용히 일렁거리기 시작합니다. 

숲의 나무들처럼 늠름하고 우아한 조각상들 사이를 느리게 거닐다가, 늙고 남루한 한 남자의 얼굴 앞에서 발걸음이 멈춰졌습니다. 외면할 수 없는 삶의 진실이 우리를 응시할 때 잠시 멈춰 서서 바라볼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처럼, 저는 그렇게 그의 얼굴 앞에서 발걸음이 멈춰져 한동안 시선을 땔 수가 없었습니다.

 

400년이라는 세월의 간극에도 불구하고, 르네상스의 거장 미켈란젤로 이후로 주목할 만한 변화를 일으키며 그 뒤를 이었다 평가받을 만한 조각가는 단연 오귀스트 로댕(1840~1917)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는 굳건하게 이어져 내려오던 전통의 금기들을 깨고 기념상 스타일의 조각상에서 벗어나 인간의 내면 세계와 삶의 다양한 경험들을 표현하기 시작한 최초의 조각가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코가 깨진 남자>(1864년)는 그가 청년시절 처음으로 파리 살롱 전에 출품했던 작품입니다. 그러나 이 코가 내려앉은 늙은 남자의 얼굴은 세련된 파리지엥들에게 문전박대를 당하고 맙니다. 그들이 곁에 두고 보고 싶어했던 것은 완벽한 비율을 가진 예쁘장한 젊은 남자의 얼굴이거나 세련된 풍모에 눈부신 아우라를 풍기는 영웅의 얼굴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후에 로댕의 전기를 집필했던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이 얼굴에 대해 이런 글을 남깁니다. 

“과연 무엇이 로댕으로 하여금 이 두상을, 일그러진 코로 고통 받는 이 늙어가는 못생긴 사내의 두상을 만들도록 부추겼을까? 그것은 이 얼굴 표정 속에 모여 있는 삶의 충만이었다. 이 얼굴은 삶에 의해 어루만져진 적이 없고 오히려 삶에 번번이 얻어맞은 얼굴이었다. 그러나 얼굴은 세상을 향하고 있지 않다. 얼굴은 자신에게 있는 모순들과 화해와 인내를, 온갖 괴로움을 견디기에 충분하도록 위대한 인내를 자기 속에 지니고 있는 듯 하다.”   

누군가의 거친 가격으로 내려앉아버린 듯 보이는 그의 코는 얼굴에 마땅히 있어야 할 대칭을 무너뜨리고, 전통적 미의 조건인 ‘비례와 균형’을 여지없이 뭉게트뜨리고 있습니다. “코가 깨진 남자”라니…! 얼굴에서 가장 믿음직한 산맥이 되어주어야 할 코가 무너져 내리던 날,  그의 코는 지울 수 없는 고통과 수치의 흔적이 되어 버렸고, 무명의 사람이던 그를 부르는 부끄러운 이름으로 자리잡고 말았습니다.   

 

그의 얼굴 주위로 원을 그리듯 천천히 돌아보았습니다. 그의 얼굴은 무너진 코 때문인지 보는 방향과 각도에 따라 무수하게 다른 얼굴, 다른 표정들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는 150년 전 파리의 

어느 뒷골목을 배회하다가 로댕의 모델이 되어 푼돈을 벌었을 한 사람일텐데도, 2019년의 어느 가을날, 지금 이곳, 이 시간에 속하여 생생한 하루를 살고 있는 한 사람을 대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의 얼굴은 식물도감 속의 나무표본들처럼 정형화된 모습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의 얼굴은 지구상의 어떤 숲, 어떤 자리에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 한 그루의 나무처럼 유일하고 특별합니다. 그는 저에게 무너지고 내려앉아버린 삶에 대하여, 균형을 잃고 절름거렸던 어떤 하루에 대하여, 익숙해진 밤의 침묵과 한낮의 고독에 대하여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그것은 폭풍처럼 거친 길을 걸어가다가 문득 안으로 깊어지는 길을 찾아낸 한 사람의 이야기, 뜻밖의 모퉁이를 돌아, 안식의 바위와 고요의 호수를 찾아낸 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나는 당신 품 속에 숨겨진 아름다운 날개가 보이는데…, 그래서 참 눈이 부신데…


심정아
드로잉, 오브제 설치, 사진, 영상, 퍼포먼스로 작업하는 예술가 울고 싶어도 제대로 울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대신 울어주는 예술가로 기억되고 싶다.
뉴욕의 Parsons 와 Pratt대학원을 졸업, 홍익대에서 “Broken Beauty”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작가홈피 www.jungahsh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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