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쉬지 못해도 괜찮아
숨 쉬지 못해도 괜찮아
  • 크리스찬북뉴스
  • 승인 2019.12.02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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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쉬지 못해도 괜찮아, 하나님이 나의 호흡이 되시니까

숨을 들이마시고, 곧이어 숨을 내쉽니다. 다시 숨을 들이마시고, 숨을 내쉽니다. 매 순간 호흡하는 우리는 우리의 호흡이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숨 쉬지 못해도 괜찮아”의 주인공 김온유 씨는 그 진리를 알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진리를 직접 호흡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열네 살 어린 나이에 의료사고로 인해 병원 생활을 시작한 저자는 수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스스로 호흡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잘못된 진단과 치료를 한 사람에게 얼마나 많은 원망과 분노가 생겼을까 헤아려보지만, 저자는 오래전에 이미 모든 것을 하나님께 온전히 맡겼습니다. 매일매일 얼마나 고통스럽고 죽고 싶을 만큼 괴로운 시간을 보낼까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생각해보지만, 저자의 고백에는 오히려 기쁨과 소망 그리고 주변 이들에 대한 사랑이 가득 묻어납니다.

 

마치 슬픔과 비통에 빠져 있어야 할 욥이 “주신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라고 고백한 것처럼(욥 1:21), 저자는 모든 상황을 허락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분을 찾고 바라고 찬양합니다. 그렇다고 슬픔이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욥이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한 것처럼(욥 1:20), 저자의 삶은 찢어지고 밀리고 엎드러지는 고통으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저자가 드리는 삶의 예배는 결코 고통과 슬픔이 없는 예배가 아니라, 고통과 슬픔으로 점철된 하지만 그것을 초월하는 기쁨과 소망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온전히 주어진 예배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욥의 해피엔딩을 기억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욥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그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셨습니다(욥 42:10). 아들과 손자 사 대를 보았고 늙어서 나이가 차 죽었습니다(욥 42:16-17). 바로 이것이 현재 고통 중에 있는 사람이 욥기를 읽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언젠가 하나님께서 욥처럼 자기의 삶에도 보상을, 그것도 두 배에 가까운 보상을 해주실 것이라는 기대와 소망을 품는 것입니다.


많은 기도회나 부흥회, 치유 집회를 가보면, 모두가 바라는 결론이 욥의 해피엔딩입니다. 하나님이 고통을 끝내주시기를, 온전한 몸으로 회복시켜주시기를, 경제적인 문제나 관계에서 오는 큰 어려움을 거두어가시고 풍요와 화평을 허락하시기를 간구합니다. 누가 이것을 원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욥기의 핵심은 하나님의 보상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욥기의 핵심은 하나님 그분께 있습니다. 고난 중에 괴로워하며 그 이유를 알고 싶어서 친구들과 길고 긴 논쟁을 벌인 욥에게 하나님은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여러 가지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하셨습니다. 오직 창주조만이 알 수 있는 비밀과 지혜에 관한 질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욥의 마지막 결론이자 아름다운 고백이 이어집니다.

욥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주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할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욥 42:1-3).


욥이 고난 중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온전히 인정하는 장면입니다. 하나님은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는 분이시며 무슨 계획이든지 이루실 수 있는 절대 주권을 가지신 창조주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인정한 것입니다.


사람은 참 희한한 존재입니다. 모든 과실을 마음껏 먹으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셨지만, 그분의 주권 아래 제한하신 단 하나의 과실인 선악과를 따먹으려 하니 말입니다. 어떻게든 하나님의 주권 밖으로 벗어나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는 것이 죄인의 본성입니다. 진실은 호흡과 건강, 생명에 속한 모든 것을 하나님께 철저히 의존하고 있으면서도 말입니다.


하나님은 욥을 통해 하나님의 모든 백성에게 중요한 교훈을 알려주셨습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 우리에게 속했다고 여겼던 모든 사람과 자원이 사실은 하나님의 것이며 언제든 하나님께서 주권과 소유권을 주장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내 생명조차 그분의 것이며 언제든 영혼의 주인이 찾으시면 이 몸을 벗고 주인 앞으로 가야 합니다.


쉽게 호흡하고 크게 아프지 않아 건강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 귀하고 중요한 진리는 삶 속에서 크게 와닿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 그리고 욥은 이 진리의 정수 속에서 살아갑니다. 물론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그녀에게 완전히 회복된 몸과 건강을 주실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믿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그것을 간절히 바라고 기도하면서도, 현재 주어진 삶 속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온전히 인정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호흡과 건강에 있어서 하나님의 주권을 저자만큼 신뢰하고 인정하지 못하는 필자를 포함한 모든 독자에게 커다란 감동과 가르침을 전해줍니다.


또 한 가지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우리가 기억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선하심입니다. 하나님은 절대 주권을 가진 창조주이실 뿐만 아니라 죄인을 위해 자기를 낮추신 구원자가 되십니다. 모든 것을 잃고 자기 몸의 상처를 기왓조각으로 긁었던 비참한 욥의 모습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보입니다. 사실 예수님은 욥에게 찾아와 창조주와 누가 비기려고 하느냐고 꾸짖었던 하나님과 동등한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자기를 낮추셔서 욥처럼 비천한 상태를 스스로 취하신 이유가 죄로 인해 고통받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함이라는 사실은 모든 육체와 정신 그리고 영혼의 질병을 앓고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참된 소망을 줍니다. 베드로는 이것을 살아있는 소망, ‘산 소망’이라 불렀습니다.


의료사고를 낸 의료진, 그 병원을 상대로 잘잘못을 따졌을 때 환자로 있던 저자에게 닥쳤던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처사들, 피가 거꾸로 솟을 것 같은 억울하고 화나는 일에 저자가 평안을 누리고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를 돌릴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으심이 저자에게 큰 위로를 가져다주었고, 그리스도의 부활이 저자에게 큰 소망을 주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과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본 청년들이 그녀에게 직접 호흡을 불어넣어 주기 위해 24시간 봉사합니다. 저자가 스스로 물어보는 것처럼 누가 강제로 이들을 시켜서 릴레이로 조를 짜서 봉사하게 만들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선하심이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그들의 영혼에 부어지신바 되었기 때문에, 그 힘으로 그들은 성도의 필요를 기쁨으로 돌보는 것입니다.


C. S.  루이스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쾌락 속에서 우리에게 속삭이시고, 양심 속에서 말씀하시며, 고통 속에서 소리치십니다. 고통은 귀먹은 세상을 불러 깨우는 하나님의 메가폰입니다.”


저자는 자기의 간증이 담긴 이 책을 통해 고통 속에 소리치시는 하나님의 목소리를 들려줍니다. 그 목소리는 거룩한 주권과 한없는 사랑의 목소리입니다. 이 책에 담긴 저자의 고통 속에 들리는 하나님의 목소리와 그 고통 속에 서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는 저자의 아름다운 신앙인의 자세가 귀먹은 독자를 불러 깨우는 하나님의 메가폰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래서 삶의 여러 가지 것을 자기 것으로 여기며, 제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불평과 원망과 염려를 뿜어내는 우리가 하나님의 주권과 사랑에 온전히 들어가 범사에 감사하고 기뻐하며 찬양할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본 서평의 저작권은 크리스찬북뉴스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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