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을 제대로 다뤄야 영성 깊어진다"
“욕망을 제대로 다뤄야 영성 깊어진다"
  • mytwelve
  • 승인 2019.11.08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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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와의 만남-김기석 목사]

 


빼어난 우리말 표현을 활용해 성경을 인문학적 관점으로 탁월하게 풀어내는 김기석(63) 청파교회 목사가 최근 ‘욕망의 페르소나’(예책)를 펴냈다. 이번이 27번째다. 이 책을 포함해 올해 하반기에만 3권의 책을 냈는데, 공통점은 모두 ‘욕망’을 다뤘다는 것이다.

새 책에선 욕망을 제대로 다루지 못해 시작은 아름다웠어도 끝은 추했던 성경 인물 속 이야기를 담았다. 자칫 과도하면 한 사람의 인생은 물론이고 제국의 운명까지도 바꿔버릴 수 있는 욕망을 어떻게 다뤄야 할까. 지난 5일 서울 용산구 청파교회에서 김 목사를 만났다. 정갈한 글투처럼, 말투도 자분자분하고 명징했다.

김 목사는 인간의 죄된 속성을 고민하다 ‘욕망’에 천착하게 됐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강화의 욕망이 있는데, 그러면 어느새 타인과 비교하고 경쟁하게 된다. 경쟁은 이웃을 사랑하는 대신 욕망 충족의 대상으로 소외시키는 폐습이 있다. 욕망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면 영성이 깊어질 수 없다. 성경 인물도 예외가 아니다. 믿음의 영웅부터 범인까지 욕망에 사로잡힐 때 실각했다. 그만큼 쉽지 않은 문제다.

그는 결핍만 생각하며 욕망의 문법을 따르는 기독교인이 한국교회에 적지 않다고 봤다. 하나님나라 시민으로 자부하면서도, 은총보다는 욕망의 관습에 이끌려 산다. 하지만 ‘이대로 행복한가’란 질문을 던질 때, 기독교인은 비로소 삶 가운데 흘끗흘끗 나오는 영혼의 세계를 관찰할 수 있다.

기독교는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인정하며 그의 나라와 영생을 추구하는 종교다. 기독교인이 본령대로 살기 위해선 욕망을 최상의 가치로 추구하는 세상과는 다르게 살아가야 한다. 그 길은 빈민과 난민 등 고통받는 이에게 눈길을 돌리는 것이다.

김 목사는 이를 위해 ‘종교적 언어’를 ‘사회적 언어’로 번역할 것을 주문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영생, 화해 등의 종교적 언어가 실천을 통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사회적 언어로 번역돼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가 고립될 뿐만 아니라 신앙도 정체된다고 했다.

“믿음이 깊어진다는 건 신앙 행위의 고착화를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자기 밖 타자의 세계로 나가는 것입니다. 그저 ‘좋은 사람’이 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는 기독교인에게 ‘삼등 열차적 믿음’을 거부할 것을 주문한다. 이는 일제강점기 월간 ‘성서조선’을 발행한 김교신 선생이 쓴 표현이다. 주일에 헌금하고 술·담배를 멀리하며 누구와 비교해도 부끄럼이 없다고 자족하는 데 그치는 신앙생활을 비꼬는 말이다.

특실다운 믿음으로 도약할 방법은 있을까. 김 목사는 여기서도 고통받는 이의 곁으로 가라고 제안한다. 안온한 내 세계를 깨고 나오는 노력이 있어야 하나님이 요구하는 삶을 살 수 있다.

최근 진영 싸움으로 진통을 겪는 한국 사회에서도 기독교인은 아집 대신 타인을 향한 존중과 아낌을 실천해야 한다고 김 목사는 당부했다. 진정 주님을 믿는다면, 하나님이 창조하고 그분의 숨결이 어린 모든 피조물을 허투루 대할 수 없다. 설령 상대가 부정적으로 느껴져도 이는 잠시 왜곡된 모습일 뿐이다. 사회를 양분하는 혐오와 배타, 존중 없는 태도는 신앙인의 모습이 아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는 인간이 세운 편견과 적대적 장벽을 친히 몸으로 무너뜨리는 사역을 펼쳤다. 그분처럼 우리 사회를 편으로 가르는 장벽을 허물고 소통을 돕는 존재가 되는 것이 기독교인의 책무다.

김 목사는 주님의 이런 말씀을 잊고 한국교회가 장벽을 쌓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믿음의 눈으로 보면 상대의 아픔도 내 슬픔과 통한다는 걸 알 수 있는데, 이를 거부하고 자기 고통만 부여잡는 기독교인이 적지 않다며 아쉬워했다.

김 목사는 내년 목회 40주년을 맞는다. 그가 바라는 건 한국교회가 믿음으로 더 아름답게 성숙하는 것이다. ‘그렇게 아름다운 예수를 그렇게 추하게 소비하는 한국교회에 속상하다’고도 했다. 그는 ‘요즘 이 생각뿐’이라며 이렇게 당부했다.

“소란스러운 시대에 네가 옳으냐 그르냐 하며 성내지 말고 침묵 속에서 그분의 현존을 느낍시다. 사람을 해치는 기관총 같은 말을 내려놓고, 본원적 세계로 가기 위해 침묵하는 그리스도인이 될 때 평화가 깃들 것입니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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