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터라이트 신앙고백서
후터라이트 신앙고백서
  • 정현욱
  • 승인 2019.11.06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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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터라이트 신앙고백서

현대의 시각으로 본다면 재세례파는 여러 면에서 사회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종교개혁 시기는 결코 긍정적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국가를 인정하지 않았고, 유아 세례를 반대했습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재세례파는 핍박을 받았고, 순교를 당해야 했습니다. 우리가 재세례파를 볼 때는 그들의 신학적인 사상에만 한정 시켜 보지 말아야 합니다. 루터의 의해 촉발된 종교개혁은 이번에 완전한 개혁을 이루고 싶다는 갈망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재세례파는 그중에서도 매우 극단적이고 철저하게 성경으로 돌아가려 했던 이들입니다. 철저한 개혁, 재세례파를 이해해야 하는 중요한 관점입니다. 이제 후터의 후예인 피터 리더만에 의해 진술된 <후터 라이트 신앙고백서>를 살펴 봄으로 종교개혁 시기의 재세례파의 신학 사상을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 책은 피터 리더만이 진술하고  존 J. 프리즌이 영어로 번역하고 편집한 것입니다. 전영포가 번역하여 대장간 출판사를 통해 한국에 출간된 것입니다. 메노나이트가 아닌 후터라이트의 사상이기 때문에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후터라이터, 그들은 누구인가?>에서는 간략하게 후터라이트를 정의합니다. <후터라이트 신앙고백서가 말하는 그들의 신앙>에서는 피터 리더만이 진술한 내용을 전제로 필자의 입장에서 간략하게 정리합니다.

후터라이트, 그들은 누구인가?

먼저 후터라이트라는 단어부터 알아보자. 구글링을 통해 후터라이트를 검색하면 가장 먼저 ‘후터파’라는 위키백과 사전을 만나게 된다. 그곳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후터파 또는 후터라이트(Hutterites)는 기독교에서, 종교 개혁 시기에 등장한 급진 종교개혁 계통인 재세례파의 분파를 일컫는 말이다. 초기에 순교한 지도자인 야코프 후터(Jacob Hutter)의 역할이 워낙 컸기 때문에 후터파라고 부른다. [출처 위키백과 ‘후터파’]

일단 간략하게 정리해 보자. 먼저 후터파 즉 후터라이트는 기독교이며, 종교 개혁 시기에 등장한 급진적 개혁을 주장한 재세례파이며, 그 중에서도 야코프 후터의 강력한 영향을 받아 ‘후터파’라는 별명이 붙은 공동체이다. 일단 이렇게 생각하고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 보자.

후터라이터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후터파에게 강력한 영향을 미친 야코프 후터(Jacob Hutter)에 대해 알아야 한다. 다시 위키백과 ‘야코프 후터’로 돌아가 보자. 길지 않으니 그대로 인용했다.

야코프 후터(독일어: Jakob Hutter, 1500년경 ~ 1536년 2월 25일)는 급진 종교개혁가이다. 오스트리아 티롤 지방의 재세례파 지도자이자 후터파의 지도자이다.

후터는 현재의 이탈리아 볼차노현(남티롤)에서 모자 장인으로 태어났다. 1520년부터 1530년 무렵까지 근본적인 종교 개혁 지도자로 활동했다. 로마 가톨릭교회가 타락하고 영적인 양식을 주지 못했기 때문에 많은 남녀가 로마 가톨릭교회를 멀리하고 있었다. 많은 신도들이 세례를 원했지만 이는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 행위였다.

1529년 합스부르크가의 탄압을 피해 피신한 재세례파 신자들이 종교적 관용을 베풀고 있던 모라바에서 후터의 지도하에 모였다. 재세례파 공동체는 비폭력주의, 성인 신자에 대한 세례를 실천했다. 후터는 모라바와 티롤 지방에서 설교하는 세례를 지도했다. 1535년 11월 30일 브란촐(Branzoll, 브론촐로(Bronzolo)) 요새에서 자신의 아내와 함께 체포되어 고문을 받았고 1536년 2월 25일 산 채로 화형 당했다. 후터의 글은 그가 박해를 받았을 때에 자신의 형제자매를 상대로 쓴 8통의 편지에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는 재세례파가 무엇인지, 왜 성인들에게만 세례를 베푸는가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을 것이다. 그 문제는 인터넷을 검색하거나 종교개혁사 관련 서적을 읽으면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주된 내용은 재세례파도 결국 루터나 칼뱅처럼 종교개혁자들이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후터는 1536년 화형을 당한다. 1517년 루터가 95개조를 붙인 해이다. 1533년 11월 1일은 칼뱅이 파리 대학 학장에 취임하는 공식 석상에서 ‘니꼴라 콥은 선생님들의 고위 성직자들 앞에 두고 기독교적 철학, 그리고 법과 복음의 관계 등에 관해 비판적인 연설을’(출처 위키백과 ‘존 칼뱅’) 하는데, 연설문은 칼뱅이 쓴 것이다. 그 후 칼뱅은 망명길에 올랐고, 자의반 타의반으로 종교개혁가의 길을 걷게 된다. 그러니까 1936년, 후터가 화형을 당한 해는 이러한 종교개혁의 폭풍이 유럽을 휘몰아쳤던 시기인 것이다. 그렇다면 후터는 무슨 주장을 했기에 화형을 당해야 했을까? 그 문제에 대해서는 본서의 내용을 주도면밀하게 살펴볼 수밖에 없다.

후터라이트 신앙고백서가 말하는 그들의 신앙

본서는 16세기 후터라이트 형제단의 중요한 지도자였던 피터 리더만에 의해 작성된 것이며, 후터에 이어 제2의 말씀의 종이 되어 형제단을 섬겼다. 그가 감옥에서 형제단을 대신하여 제출한 신앙고백서이다. 어떤 면에서 이 책은 신앙고백서인 동시에 후터라이트 형제단의 변증서이기도 하다. 이 점을 인지하고 읽어 나가기를 바란다.

전체를 2부로 나누었다. 1부는 신앙고백과 성경관을 닮았다. 2부는 대사회적 관점을 논한다. 첫 장, 사도들의 신앙고백에서는 일반 종교개혁자들과 별다르지 않다. 그러나 후반부에 나오는 ‘성도의 공동체’에서는 기존의 교회의 개념을 넘어 공유와 교제가 강조된다. 이것은 사적 재산을 거부한 그들의 공동체 개념과도 일치한다. 

유아세례

세 번째 장인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님과 그의 은총을 발견할 수 있는가’에서 유아세례가 등장한다. 후터파 외에도 재세례파는 유아세례를 반대 한다. 그 근거는 먼저 성경이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는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셋째는 선얀 양심의 언약으로 인해, 네 번째는 어린아이들은 아직 선악을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즉 이러한 이유들은 어린아이들이 스스로 믿음의 고백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강요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재산 공유 공동체

후터파의 가장 큰 특징 중이 하나는 재산의 공유다. 모든 성도는 한 하나님을 함께 나눈다. 그리스도를 한 사람의 개인 소유가 될 수 없듯 영적·물질적 은사도 공유되어야 한다. 한 사람이 적신으로 고통 받는데 다른 사람이 풍족하게 사는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모든 성도는 영적 은사들을 함께 나누듯이, 그만큼 더 물질적인 것도 함께 나누어야 하며, 그것들을 탐내거나 자신의 것으로 주장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118)

통치 권력

바울의 권면에 따라 하나님께서 임시적으로 허락한 것임을 믿는다. 그러나 삼상8장에 기록된 대로 인간의 악함과 ‘하나님을 떠난 것에 대한 하나의 표지요, 이미지이며, 상기물’(135)이다. 권련은 옛 언약의 상징이며, 또한 그리스도인은 통치 권력을 업으로 삼을 수 없다. 이곳에서 후터파는 기존 권력 체계에 대해 명백한 입장을 밝힌다. 그들이 악의 화신을 아닐지라도 악한 것이며,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권력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분명히 밝힌다. 전쟁 참여의 문제는 더욱 극단적이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은 전쟁에 참여해서는 안 되며, 보복을 목적으로 힘을 사용해서는 안’(139) 된다고 말한다. 

“누구든지 그렇게 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버리고 부인하는 것이며, 그리스도의 성품에 신실하지 못한 것입니다.”(141)

상업적인 행위

후터파는 단호하다. 사업가나 상인이 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161) 왜냐하면 사업가는 유혹을 피하기 힘들고 장사꾼이 죄를 안 짓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물건을 사서 다른 물건을 만들어 판다면 괜찮지만 동일한 물건을 이윤을 남기고 되파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162) 여관과 술집을 운영하는 것도 금지된다.(162)

나가면서

<후터라이트 신앙고백서>는 종교개혁 시기의 모든 재세례파를 대표할 수는 없지만, 중요한 교리에 있어서는 대부분 공유하고 있습니다. 이상을 근거로 살펴볼 때 후터파는 당대의 종교개혁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정치적 상황은 그다지 관용을 베풀만한 아량이 없었습니다. 루터를 비롯하여 칼뱅까지도 정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었고, 재세례파는 세속 권력에 대해 극단적 관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가톨릭과 종교개혁가들 모두에게 핍박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그들은 질서를 무너뜨리고, 성경적 가치관을 혼란에 빠뜨리는 위험한 존재들로 그려졌습니다. 칼뱅주의 신학 사상을 가진 필자로서 모든 부분에서 동의할 수 없지만, 기대 이상의 좋은 점과 배울 점이 많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정현욱
책이라면 정신을 못차리는 책벌레이며, 일상 속에 담긴 하나님의 신비를 글로 표현하기 좋아하는 글쟁이 목사다.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인이고, <생명의 삶 플러스> 집필자이며 한국컴퓨터선교회 및 여러 기독교 신문과 출판사 서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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