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을 그리는 일_달빛의 이야기
얼굴을 그리는 일_달빛의 이야기
  • 심정아
  • 승인 2019.09.2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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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실에서의 조르주 루오

조르주 루오(1871~1958)가 살았던 20세기 초의 파리는 벨 에포크(Belle Époch), 즉 ‘아름다운 시절’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거리는 우아한 옷과 장신구로 치장한 신사와 숙녀들로 넘쳐났고, 예술의 도시로 모여드는 보헤미안 예술가들, 만국박람회, 에펠 탑, 지하철의 개통 등 모든 것이 ‘아름다운 시절’의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켜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벨 에포크’는 화려한 문패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도시로의 인구 유입이 증가하면서 빈민굴이 출현하게 되고, 혼란의 시대를 부와 권력을 움켜쥘 기회로 삼던 부르주아들은 미(美)와 지(知)를 자신들의 점유물인 양 과시하면서 가난한 이들을 차별하고 멸시했습니다. 

루오가 숨 쉬며 존재했던 자리는 그처럼 아름답고 거짓된 벨 에포크의 도시 한 귀퉁이에 위치한 가난하고 허름한 작업실이었습니다. 그는 미의 축제가 한창이던 도시의 그늘 속에서, 감춰진 채, 그러나 생생하게 실재하던 추에 대하여 꿰뚫어 보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는 부르주아들에 대해 이렇게 일기에 쓰고 있습니다. 

“나는 그들의 잔혹함이나 가장된 호의 하에 나타나는 이기주의를 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자신들만의 행복을 꿈꾸면서 세상을 움직여 우리 모두에게 행복을 제공해 주겠노라 큰소리 치는 그 거만한 모습을 증오한다” 

조르주 루오, 대면 (미제레레 58점 중 하나), 동판화, 58X40cm, 1927년
조르주 루오, 대면 (미제레레 58점 중 하나), 동판화, 58X40cm, 1927년

제가 펼쳐보고 있는 루오의 화집 속에는 얼굴을 그린 그림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대부분이 얼굴을 그린 그림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그는 얼굴을 그리는 일을 좋아했습니다. 그는 따뜻한 사람이었고, 그의 시선은 늘 사람을, 얼굴을 향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욕망의 도시에서 영혼이 상하고 사람들의 오만과 폭력에 좌절하면서, 스스로, 혹은 나치의 억압에 의하여 얼굴을 바라보는 일, 얼굴을 그리는 일로부터 한동안 떠나 있게 되기도 합니다. 

 

조르주 루오, 가을 야경, 유화, 74.8X100.2cm, 1952년, 동경 파나소닉미술관
조르주 루오, 가을 야경, 유화, 74.8X100.2cm, 1952년, 동경 파나소닉미술관

그런데 그의 화집을 천천히 넘겨보며 결국 들게 된 이 생각 때문에 가슴이 뭉클해져 버렸습니다. 그는 얼굴을 그리는 일로부터 진정으로 떠나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가 인간의 도시로부터 떠나고, 얼굴을 그리는 일로부터 떠나 도착한 곳이 노을이 지는 아름다운 들판, 노을을 그린 풍경화라 해도, 황홀한 색채의 덩어리들이 서로에게 스며들며 거룩한 환희의 세계를 완성하고 있는 풍경화 한 켠에서, 결국 지친 손을 잡고 서로를 의지하며 걸어오는 한 무리의 가련한 사람들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 곁에서 겸손하고 자애로운 모습으로 함께 걷고 있는 그리스도의 얼굴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텅 빈 도시, 불빛 하나 없는 밤거리에 남겨진 고아들의 얼굴, 그들 곁에 달빛처럼 다가와 잠잠히 머무시는 그리스도의 얼굴. 조그만 크기에 디테일이 생략된 얼굴들일지라도, 루오는 여전히 얼굴을 그리는 일을 통하여 사람들을 향한, 얼굴들을 향한 연민과 사랑, 그리고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조르주 르오, 교외의 그리스도, 유화, 1920~1924년, 동경 파나소닉미술관
조르주 르오, 교외의 그리스도, 유화, 1920~1924년, 동경 파나소닉미술관

심정아
드로잉, 오브제 설치, 사진, 영상, 퍼포먼스로 작업하는 예술가
울고 싶어도 제대로 울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대신 울어주는 예술가로 기억되고 싶다.
뉴욕의 Parsons 와 Pratt대학원을 졸업, 홍익대에서 “Broken Beauty”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작가홈피 www.jungahsh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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