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을 맞이하는 얼굴에게_굿 나잇!
밤을 맞이하는 얼굴에게_굿 나잇!
  • 심정아
  • 승인 2019.09.11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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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정아, 자화상_슬픈 삐에로, 테라코타 위에 채색, 왁스, 장미꽃잎
심정아, 자화상_슬픈 삐에로, 테라코타 위에 채색, 왁스, 장미꽃잎

당신은 어떤 얼굴을 가지고 있나요?

아직 얼굴이 되지 못한 얼굴. 
표정을 짓기도 전에 무너져 내리던 얼굴. 
스스로 지워버린 얼굴. 
너무 많이 쓰다듬고 어루만져 윤곽만 남아버린 얼굴 .
겹겹의 가면 속에 파묻혀 버린 얼굴.
눈물처럼 뚝뚝 흘러내리던 얼굴. 
새벽 기차의 차가운 유리창 위로 뜨거운 입술을 누르며 이내 사라지던 얼굴. 
끄고 또 꺼도 또다시 피어오르던 불씨 같은 얼굴. 
덕지덕지 물감으로 발려지고 뭉개진 채 무언가를 간절히 호소하며 서 있던 얼굴.
눈 부신 빛에 휩싸여 서서히 다가오던 얼굴.
편백의 짙고 울창한 초록을 배경으로, 숲 향기를 풍기며 살며시 미소 짓던 얼굴.
 
그 얼굴들 속에서 당신의 얼굴을 발견합니다. 
하지만 당신의 얼굴은 아직 피어나지 못한 무명의 꽃처럼
봄의 입맞춤을 기다리며 잠잠히 떠 있습니다.
리본 끝에 매달려있는 사랑스러운 풍선처럼,
그렇게 둥실… 

얼굴은 존재의 진실이 표현되는 장소입니다. 얼굴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아마도 당신이 아침에 눈을 뜨고 깊은 밤 스르르 잠 속으로 빠져들기 전까지, 어쩌면 잠을 자는 동안의 꿈속에서도. 하루의 화면 속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이 ‘얼굴’ 일지 모릅니다. 그래서 가장 만나기 쉬운 것이 얼굴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단순한 일상의 반복에서 벗어나 깊은 성찰을 통해 다가서려 할 때, 가장 만나기 어려워지는 것이 ‘얼굴’ 일지 모릅니다.
 

심정아, 자화상_얼굴을 갖을 때까지, 왁스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할 때, 또 한 번의 하루를 맞이하는 나의 얼굴을 두 손으로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고 수건으로 닦아줍니다. 아직 어떤 이도 마주하기 전, 어떤 표정도 그려지기 전의 나의 얼굴에 인사를 건넵니다. “안녕.., 잘 지내고 있는 거지?” 거울 속의 나의 얼굴만큼 눈물겹도록 애틋하고 문득 낯설어지는 것도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외출하고 집에 돌아오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얼굴을 닦는 일입니다. 비누를 문지른 손을 비벼서 생일 케이크 위의 하얀 생크림 같은 거품을 만들어 주거나, 물의 온도를 너무 뜨겁지 않게 맞춰주는 일, 얼굴의 윤곽선을 따라 그릇을 빚듯이 부드럽게 닦아내며 쓰다듬어 주는 일, 이런 소소한 일들을 통해 얼굴에 사랑과 관심을 표현해 봅니다. 오목하게 손 그릇을 만들어 물을 담고, 손바닥 두 개 안에 담기는 나의 얼굴, 나의 ‘여기 있음’을 확인합니다.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잠깐 거울 속 나의 얼굴과 마주해 봅니다. 하루 동안의 말들과 생각들, 감정들, 그 속에 남아있는 아쉬움이나 후회들, 슬픔이나 걱정들, 그런 하루의 잔여물들이 얼굴에 남아있지 않기를 기도하며, 조용히 인사를 건네 봅니다. 
  
안식의 밤을 맞이하는 나의 얼굴에 따뜻한 목소리로, “굿 나잇…!”

 

심정아, 지붕 위의 천사_싸르뜨르 성당, 흑백사진
심정아, 지붕 위의 천사_싸르뜨르 성당, 흑백사진

심정아
드로잉, 오브제 설치, 사진, 영상, 퍼포먼스로 작업하는 예술가
울고 싶어도 제대로 울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대신 울어주는 예술가로 기억되고 싶다.
뉴욕의 Parsons 와 Pratt대학원을 졸업, 홍익대에서 “Broken Beauty”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작가홈피 www.jungahsh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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