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예배와 표현의 예배
마음의 예배와 표현의 예배
  • 가진수
  • 승인 2019.08.20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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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소울 서바이벌(Soul Survivor)’ 출신의 대표적인 예배 인도자(worship leader)인 매트 레드먼(Matt Reman)의 찬양 “마음의 예배(The Worship of Heart)”의 가사다.

찬양의 열기 모두 끝나면 주 앞에 나와 
더욱 진실한 예배 드리네. 주님을 향한 
영원하신 왕 표현치 못할 주님의 존귀 
가난할 때도 연약할 때도 주 내 모든 것. 
노래 이상의 노래 내 맘 깊은 곳에 주께서 원하신 것. 
화려한 음악보다 뜻 없는 열정보다 중심을 원하시죠. 
주님께 드리는 마음의 예배 주님을 위한 주님을 향한 노래 
중심 잃은 예배 내려놓고 이제 나 돌아와 주님만 예배해요.

이 찬양의 주제는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 우리의 행위보다는 중심으로 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사무엘상 16:7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이 외에도 성경은 여러 곳에서 하나님께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예배의 모습은 진실한 마음이라 말씀하고 있다. 마음을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내적 중심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한편 성경은 ‘마음을 드리는 예배(Worship of Heart)’와 더불어 ‘표현하는 예배’(Worship of Expression)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구약 성경의 제사는 하나님께 우리의 행위를 통해 드러나는 실제적인 예배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제사를 통해 상세하게 구별하여 드리라고 말씀하셨는데, 성경은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 등 내용에 따른 제사의 다양한 형식을 기록하고 있다. 성소와 지성소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과정은 예배의 절차 또한 얼마나 중요한지를 암시해 주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면서 한편 그 마음에 따른 행위에 대해서도 예배를 받으시기 원한다고 말씀하신다. 성경은 마음을 강조하는 예배와 형식과 절차를 강조하는 예배가 있음을 말해준다. 이에 대해 로버트 웨버(Robert E. Webber) 박사는 이를 ‘성막 예배(Tabernacle Worship)’와 ‘다윗 예배(Davidic Worship)’로 구분할 수 있다고 말한다. 

“성막에서의 예배는 보다 격식 있고 세밀한 의식으로 구성되어있고,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예배의 방법이었기는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자유롭고 즉흥적인 예배도 찬양과 감사를 드리는 행위로 받아주셨다.”(1)

요한복음 4장은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는 장면이다.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께 다음과 같이 질문한다.

“여자가 이르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요 4:19-20)

사마리아 여인은 유대인들이 드리는 예루살렘의 예배에 비해 자신들이 그리심 산에서 드리는 예배의 우월성을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드리는 예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을  하신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요 4:21-22)

그러면서 진정한 예배가 무엇인지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리신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 4:23-24)

사마리아인들은 예루살렘에서 예배드리라는 진리를 외면한 채 열심만 세워 그리심 산에서 예배를 드렸고, 유대인들은 진리의 말씀대로 예루살렘에서 드렸지만, 열정이 없는 형식적인 예배였다.

참된 예배란 사마리아 사람들이 드리는 ‘마음의 예배’뿐 아니라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드리는 ‘표현의 예배’가 함께 균형을 맞춰야 한다. 영과 진리의 예배는 마음의 예배와 표현의 예배가 균형을 이룬 예배이며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참된 예배의 자세이다.

신약시대의 예배모임은 두 가지 예배의 모습이 혼재해 있었다. 표현의 예배를 강조하는 예루살렘 중심의 ‘회당 예배’와 말씀과 성찬이 중심이 된 마음의 예배를 강조하는 자유로운 ‘다락방 예배’이다. 3~4세기의 예배는 회당예배를 드렸던 유대인들과 초대교회 예배를 드렸던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예배를 드리게 되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두 가지 요소가 혼재해 있는 예배로 발전해 나갔다. 

지난 2000여 년간 기독교 예배는 이 두 가지 예배의 패턴으로 발전해왔다. 형식과 절차를 중시하는 ‘표현의 예배’를 강조하는 흐름은 정교회, 성공회 등을 시초로 지금의 개혁파 장로교회를 비롯한 여러 교회에 영향을 주었는데 한국의 경우 장로교회가 대표적이다.
‘마음의 예배’는 10세기부터 시작된 중세 수도원 운동을 거쳐 발전해 나갔는데, 당시 교회의 타락과 규칙적인 조직화의 반동으로 영적 깊은 내면의 세계를 추구하려는 목적이 컸다. 이는 중세 개혁시대를 지나 하나님을 경험하는 예배의 중요성에 주장하는 오순절 교회와 은사주의 교회에 영향을 주었다. 한국의 경우 순복음교회, 성결교회, 감리교회 등이 대표적이다.

미국 교회의 경우 이 두 가지 예배는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는데, 예전(Liturgy)을 강조하는 교회와 자유로운 성령의 은사를 강조하는 자유 교회가 각각의 가치를 가지고 발전해 나가고 있다. 지금도 텍사스 지역이나 북동지역의 개혁교회에서는 설교 중심의 예전이 강조된 예배가 드려지고 있으며, 서부의 교회나 남부 일부의 교회 등에서는 자유로운 찬양이 중심이 된 예배가 젊은이들에게 호감을 주면서 발전해나가고 있다.

한국 교회는 초기 선교사들의 말씀 선포에 중점을 둔 영향과 유교적인 배경의 영향으로 형식과 절차를 중시하는 예배가 발전해 나갔다. 초기 장로교회를 중심이 되어 한국의 경우 교파에 상관없이 처음 대부분의 교회들에게 영향을 끼쳤으며, 점차 형식과 절차의 예식을 갖춘 예배의 모습이 고착화되기도 했다.
반면 최근 젊은 목회자들이 담임목사가 되면서 동시대적인 감각을 가지고 예배의 형식을 간소화하고 찬양의 비중을 더해가는 것이 특징인 현대적인 예배가 점차 늘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교회의 미래와 다음 세대를 바라보면서 어떤 모습의 예배가 바람직한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나는 무엇보다 지금 이 시기에 균형을 잃지 않는 예배를 강조하고 싶다. 지금까지 한국교회를 발전시켜 온 1세대 ‘표현의 예배’도 중요하지만, 시대는 많이 변해가고 있으며 우리의 젊은이들은 새로운 가치관으로 무장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의 시대적 상황은 문화의 급속한 발전으로 인한 지식과 이성의 시대가 지배하고 있다. 계몽주의가 설교중심주의를 만들어 낸 역사를 고찰해볼 필요가 있다.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딤후 3:1-3)

그러므로 나는 지금의 시기에 예배의 많은 부분에서 ‘마음의 예배’를 받아드리라고 권면하고 싶다. 예배가 너무 수동적이고 강연회와 같은 분위기의 예배로 치우는 것은 역동적이고 살아있는 예배를 경험하고 싶은 다음 세대에게는 갈수록 적응하기 어려운 예배가 될 수 있다.

한편 나는 예배의 형식이 무너지고 절차가 너무 무시되는 예배가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 일부 은사주의적 예배나 극단적인 기도 중심의 예배에서 잘 나타나고 있는데 이 같은 극단적인 예배는 하나님을 향한 예배의 진정성을 훼손시킬 수 있다.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서 예배를 너무 쉽게 인식해버리고 경건성을 상실한 모임들이 늘어나는 것은 이 같은 원인이 크다.

인터넷과 케이블방송이 발전하기 시작한 초기에는 TV나 영상을 통해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이 기뻐했다. 집에서 자유롭고 편하게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것이 매우 큰 장점이었다. 예배를 드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이며 형식과 장소는 중요하지 않다고 하는 많은 사람은 이 같은 문명의 발전에 각광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처음에 정장을 입고 예배를 드리던 사람들이 나중에는 자신도 모르게 속옷 차림으로 누워서 예배를 드리더라는 실소의 이야기도 있다.

예배는 무엇보다 성경적이어야 하고 영과 진리가 함께 균형을 이루어 가는 예배가 참된 예배이다. 그러므로 각 그리스도 공동체의 자유로운 특색과 장점을 살리면서 예배의 형식 또한 공동체에 맞게 만들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예배를 드리거나 새롭게 만들어갈 때마다 ‘영’과 ‘진리’가 모두 중요하다는 기본적인 인식을 갖추는 것이 좋다.

우리 인간은 완전하지 않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 균형의 아웃라인을 언급하셨으리라 믿는다. 우리가 믿는 지식과 지혜는 아주 보잘것없기에 우리의 생각과 믿음으로 예배드리는 것은 더욱 위험할 수밖에 없다. 예배는 하나님 말씀의 선포를 통한 깨달음과 하나님을 만나면서 느끼는 영적 감동이 동시에 우리에게 전해질 때 그 깊이가 있다.

모세의 시대와 여호수아의 시대가 공존하는 이 시대에 드러나는 ‘표현의 예배’를 존중하며 내재해있는 ‘마음의 예배’를 수용하는 그리스도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한다.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수 1:7)

 

(1) 로버트 웨버, “예배의 고대와 미래”, 가진수 역, (인천: 워십리더, 2019), 59p.


가진수
예배를 통한 교회의 갱신과 변화, 부흥에 비전을 가지고 있는 목회자이다. 그동안 여러 신학대와 대학원 등에서 현대예배와 영성, 예배인도 등을 가르쳤으며, 국내외 세미나와 예배학교 등에서 예배의 회복과 갱신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현재 예배전문사역기관인 <글로벌 워십 미니스트리>의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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