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바에서 칼뱅은 무엇을 했을까?
제네바에서 칼뱅은 무엇을 했을까?
  • 황희상
  • 승인 2019.08.1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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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레만 호수 끝에 위치한 제네바. 이곳의 종교개혁사에서 가장 큰 족적을 남긴 사람은 누가 뭐라 해도 ‘칼뱅’이다. 제네바에 얽힌 칼뱅의  인생과 업적이 너무나도 다채롭고 광범위하기 때문에 이 글에서 다 소개할 수는 없고, 다음과 같이 짧게 정리하고 넘어간다.

토막 상식 : 칼뱅을 두 번 부른 제네바

제네바는 칼뱅을 한 번 쫓아냈던 도시였다. 그러나 2년여 뒤에 제네바 시 의회는 칼뱅을 ‘다시’ 부르기로 결의한다. 그럴만한 사연이 있었다. 동맹관계였던 베른과 제네바가 영토 문제로 날카로워진 상태였던 데다가, 엎친데 덮친 격으로 사돌레토 추기경이 제네바 시 의회 앞으로 로마 가톨릭 신앙으로 돌아오라는 편지를 보낸다. 이것은 일종의 정치적 제스처라서 무시할 수 없었다. 로마 가톨릭은 칼뱅이 부재한 제네바를, 쉽게 흔들릴 상태로 보고, 정치적 압박을 가해 다시 손에 넣으려 한 것이다. 시의회는 부랴부랴 자신들의 입장에서 추기경에게 대항할만한 사람을 찾는다. 그는 바로 얼마 전에 자신들이 쫓아냈던 바로 그 목회자, 칼뱅이었다.

칼뱅은 이 상황에서 흔쾌히 사돌레토 추기경에게 보내는 답신(Responsio ad Sadoleti epistolam)을 써준다. 자신을 위협하고 괴롭히고 결국 쫓아낸 도시였지만 개신교 신앙을 지키기 위한 싸움에 도움을 준 것이다. 아마도 이 일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 제네바는 칼뱅에게 자기네 도시로 돌아와서 제대로 사역해달라고 거듭 부탁한다. 칼뱅은 과거의 기억 때문에 두려워하고 많이 고뇌했으나, 결국에는 이를 주님의 부르심으로 여기고 제네바로 돌아간다.

더 관심 있는 분들은 관련 도서를 읽어주시길 바란다. 이 글의 끝부분에 책 두 권을 소개했다.

제네바에서 하루 동안 봐야 할 목록은 다음과 같다. 
목록이 많아 보여도, 모두 가까운 곳에 있으므로 걸어서 충분히 다 볼 수 있다.

1. 생 피에르 교회당
2. 교회당 종탑(북쪽) 올라가서 레만호수 경치 보기
3. 종교개혁박물관
4. 칼뱅 강당
5. 구 제네바 아카데미 건물
6. 마들렌느 교회당(Temple de la Madeleine)
7. 생제르맹 교회당(Saint germain)
8. 종교개혁 기념비(Mur des Reformateurs)
9. 칼뱅의 묘(왕립묘지內, Cimetiere des Rois)

이를 아래의 구글 지도에 표시했다. 1번부터 시작해서 시계 반대 방향으로 달팽이처럼 돌면서 보면 좋다.
- 혹시 벌써 오후 늦은 시간이라면 2번보다 3번을 먼저 보자. 3번이 문을 일찍 닫을 수 있다.
진입경로에 따라 7번  또는 5번을 먼저 봐도 좋다. 언덕길이 힘드니까 동선을 잘 짜자!

1. 생 피에르 교회당
일단 구도심의 중심부까지 언덕을 오르자. 칼뱅이 목회했던 생 피에르 교회당으로 갔다. 독특한 기둥양식이 꼭 신전을 연상하게 된다. 처음에 만들 때 성당이었다가, 후에 교회로 바뀌었기에 그렇다.

구도심 중심부 도착. 골목길을 걷다가 광장이 나오는가 싶으면 웅장한 생 피에르 교회 건물이 나타난다.
 

내부에 들어서니 벽면에는 화려한 벽화를 긁어냈던 자국들이 보였고 설교에 방해될 만한 장식물 들을 없앤 흔적이 곳곳에 보인다. 이 사진은 종교개혁 당시 폐쇄했던 제단(움푹 패어있고 성화가 그려져서, 신도들이 기도하던 장소) 흔적이다.

성당 기둥에 추가 장착된 설교단. 종교개혁은 미사가 아니라 설교가 중심이 되므로 설교단이 회중석 가까이 설치되었다.

생전에 칼뱅이 앉았던 의자가 설교단 계단 입구에 전시되어 있다. 처음에 봤을 때는 이것이 정말로 칼뱅이 썼던 그 의자일까 싶어서 뭉클해졌다. 그런데 나중에 유럽을 더 다니다 보니, 칼뱅 의자가 여기만 있는 건 아니었다.

5백 년 가까이 된 중세 성가대석. 등받이 쪽에 보이는 손잡이를 잡고 내리면 의자가 된다. 접이식 의자다.

2. 종교개혁 박물관

입구를 안내하는 입간판에 칼뱅 어르신 캐릭터가 보인다. 재치 있다.
 

Tip. 종교개혁 박물관, 종탑(첨탑), 지하 고고학 박물관은 각각 입장료를 받는다. 
셋 다 한꺼번에 볼 수 있는 통합 입장권을 사는 것이 편리하고 저렴하다.

먼저 종교개혁 박물관에 들어가자. 혹시 시간이 늦을 수 있으니, 종탑보다는 종교개혁 박물관부터 보는 것이다. 건물 뒤로 돌아가면 입구가 보인다. 여러 가지 유물과 책, 필사본, 그림, 판화와 최신식 시청각 자료들을 잘 정리해 두었다.

이곳은 원래 가이드 없이 관람하는 곳이지만, 혹시 해설자를 동반한다면 박물관 측에 양해를 구해 작은 목소리로라도 설명을 들으면서 다니는 것이 좋겠다. 전시물 설명문이 주로 불어로 되어 있다. 개인용 음성 수신기를 주기는 하는데, 아쉽게도 한국어 지원이 안 된다. 한글 안내서를 나눠주긴 하지만 내용이 부실하다. 필자가 해설자로 갔을 때는 담당 직원께 아주 불쌍한 표정으로 최대한 조용히 설명하겠다고 부탁했다. 잠시 생각하더니 "오케이!" 했다. 마침 다른 관람객이 거의 없었던 덕분이다. 대략 1시간 정도 그룹을 이끌고 각 방을 다니며 주요 전시물을 해설했다. 항상 된다는 보장은 못 하겠으니 참고만 하시길 바란다.

2012년에 갔을 때 종교개혁 박물관 내부는 사진촬영이 불가했다. 그런데 2017년에 다시 갔을 때는 노플래시로 간단히 찍는 것은 허용되었다. 역시, 항상 된다는 보장은 못 한다.

 

3. 종탑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종탑에 올라갔다. 현재 커다란 종은 고정되어 있고, 전망대 역할만 하고 있다. 종탑이 두 개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힘드니까 둘 다 올라가지 말고, 호수 쪽 전망이 보이는 한 곳(북쪽)만 올라가면 된다. 아래 사진에서 Nord라고 적힌 쪽이 북쪽이다.

레만 호수가 보이는 멋진 경치.
 

4. 칼뱅 강당

파렐 거리에 있는 칼뱅 강당. 생 피에르 교회당 바로 옆에 있다. 광장에서 교회당을 바라보고 서서 오른쪽에 바로 보인다. 칼뱅과 제네바 목회자들이 여기서 공부도 하고 토론도 했다. 평소에 문이 닫혀있는 경우가 많다. 내부는 평범하다.

5. 생제르맹 교회당(Saint germain)
6. 마들렌느 교회당(Temple de la Madeleine)

5~7번 건물들은 현재에도 비슷한 용도로 쓰이고 있다. 5~6번은 종교개혁 당시 교회당이었으나 지금은 성당이 됐다. 당시 제네바는 종교개혁과 함께 망명자 유입을 비롯하여 인구가 급증했다. 그래서 예배당도 여러 개 필요했다. 그래서 구도심 내의 성당들을 교회당으로 개조했고, 몇 명의 목사가 돌아가면서 설교했다. 가장 큰 예배당은 물론 생 피에르 교회당이었지만, 이 두 곳도 대표적인 예배 장소들이었다.

생 제르맹 교회당. 좁은 골목으로 걷다 보면 놓치기 쉽다.
 

7. 구 제네바 아카데미 건물
제네바 아카데미는 지금도 학교 건물로 쓰고 있다. 보통은 4번까지 보고 끝내지만, 시간이 넉넉한 탐방자라면 5~7번도 찾아가 보자.

8. 종교개혁 기념비(Mur des Reformateurs)

이제 반대쪽 길로 비탈길을 내려가서 종교개혁 기념비가 있는 공원으로 걸어가 보자. 생각보다 거대하고 생각보다 많은 말을 하고 있는 종교개혁 기념비가 여러분을 맞이할 것이다.

제네바 대학 근처 공원에 있는, 종교개혁자들의 조각이 새겨진 벽. 파렐, 칼뱅, 베자, 존 낙스 같은 제네바에서 활동한 개혁자들이 가장 먼저 보인다. 하지만 그 외에도 크롬웰, 츠빙글리 같은 개혁자들의 이름도 만날 수 있다.

탐방팀과 함께 갔을 때, “기념비에 열 명이 있습니다.” 했더니 다들 놀래셨다. 잘 보면 “열 명의 위대한 개혁자들”이라고 적혀있다. 그 이름들을 찾아보도록 하자!
 

9. 칼뱅의 묘

칼뱅은 자신의 묘가 기념되거나 우상화되지 않기를 바랐다. 그래서 공동묘지 안에 소박한 묘지에 묻혀있다. 그리 넓지 않으므로 직접 찾아가 보자. 묘지 위치는 지금까지 둘러보던 곳들과 약간 떨어져 있으므로, 구글맵에서 “Cimetiere des Rois”를 검색하자. 왕립 묘지라는 뜻이다.

제네바에서 칼뱅의 사역

칼뱅이 제네바에서 무엇을 했는지, 오직 단 하나의 단어로 말해보라고 하면 그것은 “교육”이다. 두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이와 관련해서 일반적인 이야기들은 여기저기서 많이 들을 수 있다. 제네바까지 찾아가는 탐방자들에게 꼭 들려드리고 싶은 이야기는 따로 있다.

칼뱅이 처음 제네바에 왔을 때 그곳에서 함께 일한 교육자가 있었다. ‘마튀랭 꼬르디에’였다. 어린 시절 칼뱅의 스승이었던 그는 인격적인 교수법으로 칼뱅을 감동시켰다. 꼬르디에는 1538년 칼뱅이 제네바에서 쫓겨날 때 파렐과 함께 뇌샤텔로 떠났다. 그 후 로잔에서 12년 정도 머물며 가르치는 일을 계속한다. 그는 어린이를 가르치는 것을 좋아했고, 또 특별한 감각이 있었던 것 같다. 직접 어린이들을 위한 책들을 쓰기도 했다. 이런 사람들의 존재가 제네바의 종교개혁에 거름이 되지 않았을까. 칼뱅의 라틴어 실력도 꼬르디에 선생님에게서 비롯되었다. 칼뱅의 기록에, 다른 교사들은 최고급반 학생들에게 '야심'을 가르쳤다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그것이 진정한 교육의 지향점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아무런 의미 없는 허상일 뿐임을, 꼬르디에 선생님은 칼뱅에게 잘 가르쳤던 모양이다.
후에 칼뱅은 제네바 아카데미를 세우고, 옛 스승을 교장으로 초빙한다. 1562년, 그의 나이 83세에, 20년 전처럼 그는 제네바 의회로부터 교수직을 맡는다. 그리고 1564년(85세)에 사망한다. 그의 요청에 따라 그는 세 달 먼저 세상을 떠난 칼뱅의 무덤 가까이에 있는 묘지에 묻힌다. 스트라스부르의 요하네스 슈투름이 김나지움 체제를 치밀하게 설계해서 칼뱅에게 전수했다면, 꼬르디에는 앞선 세대의 노장으로서 칼뱅을 코치했던 인물이 아니었을까? 동시대를 살았던 교육가들을 바라보며 우리 시대에도 하나님께서 은혜와 긍휼을 베풀어주시길 간구한다.

※ 제네바에 가기 전에 읽으면 좋은 - 칼뱅 관련 참고 도서
칼뱅의 전기 관련, 읽기 쉬운 책 : 테아 반 할세마, “이 사람, 존 칼빈”(성약출판사)
칼뱅에 대한 오해를 푸는 책 : 정요한, “칼뱅은 정말 제네바의 학살자인가”(세움북스)


황희상
기독교 교리, 역사, 교육 등의 책을 집필하는 작가이다. 『특강 소요리문답』과 『지금 시작하는 교리교육』은 한국교회에 교리교육의 바람을 일으켰으며, 『특강 종교개혁사』는 ‘웨스트민스터 총회’에 대한 충실한 소개로, 종교개혁의 후손들이 지향할 바가 무엇인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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