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 :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주님 시선을 따르라
선택 :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주님 시선을 따르라
  • 이지현
  • 승인 2019.08.13 09: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리는 날마다 크고 작은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그 결과에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한다. 수많은 선택은 우리의 삶을 직조하며 선택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 선택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그리스도인에게 선택은 정체성과 깊은 관계가 있다. 올바른 선택을 하려면 ‘나는 누구인가’부터 알아야 한다. 그 답을 찾지 못한다면 일생 삶의 목적을 찾지 못한 채 누군가의 뜻대로 살기 때문이다.

나는 누구인가

모세는 ‘누구로 살아갈 것인가’ 선택의 갈림길에서 혼란을 겪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데리고 나오라고 명령할 때였다. 자신과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부족했던 모세는 두 가지 질문을 했다.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출 3:11)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하나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출 3:13)라고 물었다. 

모세는 애굽인에도 속하지 못하고 히브리인에게도 배척받는 정체성의 혼란에 빠져 있었다. 하나님은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출 3:12)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출 3:14)고 말씀하셨다. 이 대답은 내가 누구이기에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야 하며, 당신은 누구이냐는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본연의 ‘나’를 알게 하셨다.
 

르비딤 전투에서 아론과 훌이 모세의 팔을 붙들고 있는 그림이다. 존 에버렛 밀레이 작 ‘모세의 승리’ 1871년, 영국 맨체스터미술관 소장.
르비딤 전투에서 아론과 훌이 모세의 팔을 붙들고 있는 그림이다. 존 에버렛 밀레이 작 ‘모세의 승리’ 1871년, 영국 맨체스터미술관 소장.

모세는 자신의 정체성을 두고 ‘의심’과 ‘믿음’ 중에 믿음을 선택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겠다는 약속이었다. 모세의 정체성 찾기는 하나님을 알고 그분을 따라 홍해를 가르는 삶의 시작이었다.

‘나는 누구인가’란 질문에 우린 무엇이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 정권에 항거하다가 순교한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는 ‘나는 누구인가’란 시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나는 누구인가/ 이것이 나인가 저것이 나인가/ 둘 다인가/ 사람들 앞에서 허세를 부리고/ 자신 앞에선 천박하게 우는 소리 잘하는 겁쟁인가/ 내 속에 남아있는 것은/ 이미 거둔 승리 앞에서 꽁무니를 빼는 패잔병 같은가/ 나는 누구인가?/ 으스스한 물음이 나를 조롱합니다/ 내가 누구인지/ 당신은 아시오니/ 나는 당신의 것입니다/ 오, 하나님!” 

두려움 대신 믿음을 선택

어떤 선택은 우리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리스도인들은 인생의 갈림길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직장사역국제연합 책임자 오스 힐먼에 의하면 먼저 하나님과 수직적인 초점을 맞춰야 한다. 수직적인 초점을 맞춘다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거하며 친밀한 교제를 나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뜻을 들을 수 있고 행할 수 있다는 것, 또 우리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쓰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오스 힐먼은 저서 ‘결정의 책’에서 “첫째, 기도를 통해 둘째, 말씀 묵상을 통해 셋째, 환경에 대한 진지한 숙고를 통해 자신의 능력과 지식을 최대한 발휘해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문제를 판단한다”고 말한다. 특히 문제를 결정할 때 두 가지 선택을 제안한다. “하나는 우리 자신의 생각과 추론에 근거해 최선이라고 판단되는 것을 정하는 것(수평적 구도)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서 그 문제에 대해 무엇이라 말씀하시는지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찾는 것(수직적 구도)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수직적인 초점을 맞추기 위해 힘쓸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구체적인 상황에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요인이 돼 주신다.” 좋은 선택에는 기도 이성 그리고 신앙 간의 상호작용이 포함된다.

믿음의 사람은 인간적인 논리와 추론으로 선택하지 않는다. 모세가 가나안 땅에 정탐꾼으로 보낸 12명 중 갈렙과 여호수아만 믿음을 선택했다. 10명은 “가나안 사람들은 거인처럼 덩치가 엄청나게 커 그들에 비하면 우린 작은 메뚜기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갈렙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올라가자. 그러면 우리가 그 땅을 점유하게 될 것이다. 이는 우리가 반드시 그것을 이길 것이기 때문이다”(민 13:30)라고 말했다. 동일한 환경을 보고 어떤 이는 자신을 메뚜기같이 나약한 존재로 봤고 어떤 이는 능히 가나안을 물리칠 수 있는 힘이 있는 사람으로 봤다.

그 믿음의 차이는 어디에서 온 걸까. 실패는 실패를 인정하는 사람에게만 힘을 쓸 수 있다. 주님의 시선을 선택하는 것이 믿음이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홍해를 가르고 광야에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신 기적의 하나님을 기억했다. 주님의 시선으로 믿음을 선택할 수 있었다. 현실에서도 선택의 순간이 수없이 주어진다. 어디에 시선을 두느냐가 중요하다. 

절망 대신 희망을 선택

고난 당할 때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고통이 있는 곳에 함께하신 하나님’이다. 주님이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은 고난 중에서도 우리와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다. 믿음은 저절로 믿어지는 것이 아니리라 믿기로 선택하는 것이다. 이 사실을 믿을 때야 우리는 희망을 볼 수 있다. 믿음을 선택했다는 것은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신약성경 고린도후서에 바울의 절망적인 상황을 묘사한 내용이 나온다.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실 것이며 이후에도 건지시기를 그에게 바라노라.”(고후 1:8~10)

어떤 고난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바울이 살 소망이 없는 절망 중에 희망을 선택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바울은 절망 중에서도 하나님을 기억해 냈다. 그가 누구이신가를 묵상했다. 묵상의 결론은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이었다. 바울은 “하나님이 지나간 날에 나를 도우셨다면 오늘 이 순간도 나를 도우실 수 있다”며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는 하나님만을 의지하라”고 고백했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선택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내 생각과 느낌으로 섣부르게 판단해 ‘하나님의 인도’라고 단정 짓는 것은 위험하다. 성경은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 3:5~6)고 말한다. 

좋은 선택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기도에 대해 호주 발드힐즈장로교회 피터 블룸필드 목사는 저서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인도’에서 이렇게 말한다. “먼저 성경의 바른 해석을 위해 기도한다. 문맥과 문학 장르를 무시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거나 곡해하지 않는다. 결정을 내려야 하는 모든 상황을 정확하게 평가하는 데 필요한 지혜와 분별력을 위해 기도한다. 모든 것의 균형과 우선순위를 제대로 파악하고 부차적인 일에 매달리는 것을 피한다. 성경에 복종할 수 있는 겸손과 훈련을 위해 기도한다. 하나님의 주권적 권리를 우리가 인정하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해 절대 절망 대신 절대 희망을, 의심 대신 믿음을, 미움 대신 용서를 선택해야 한다. “나는 네게 유익하도록 가르치고 너를 마땅히 행할 길로 인도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사 48:17) “너희가 오른쪽으로 치우치든지 왼쪽으로 치우치든지 네 뒤에서 말소리가 네 귀에 들려 이르기를 이것이 바른길이니 너희는 이리로 가라 할 것이며”(사 30:21)



이지현
국민일보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