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영혼의 안식처 선물은 그의 아픔에 동감하는 것
한 영혼의 안식처 선물은 그의 아픔에 동감하는 것
  • 국민일보
  • 승인 2019.08.12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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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근우 건축사의 ‘사람’ 세우는 ‘셀터 포 소울’ 캠페인
천근우 건축사. 강민석 선임기자
9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서울도시건축전시관. 우리 주변에 있는 다양한 사회적 약자를 돌아보고 관심을 두자는 취지의 ‘셀터 포 소울(Shelter for Soul)’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전 세계 39개국에서 공모한 200개 작품 중 입상한 40개 작품은 저마다 누군가를 위한 안식처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중 15 작품은 특선으로 선정됐다.

미국계 한국인 청년은 이민자로 가족을 위해 치열한 경쟁의 바다에서 살면서도 소외된 자신의 아버지를 위한 안식처 ‘숨(Exhale)’을 소개했다. 도시 한가운데서 아버지가 어느 한 공간으로 들어가면 오직 자기 자신을 둘러싸인 자연, 그리고 머리 위의 하늘만 대면할 수 있다. 단 한 사람만이 혼자 몰래 숨을 내쉬는 방이다.

한 중국계 미국인 여성은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마음껏 울 수 있는 공간 ‘오픈 어 윈도우 포 어 크라잉 소울(Open A Window for a Crying Soul’을 발표했다. 심한 우울증 증세를 가진 그녀는 대중들 가운데서 갑자기 울음을 참을 수 없는 상황에 당면하는 일이 많았다. 특히 도시에선 편안하게 울 수 있는 장소를 찾기 어렵다. 종종 작은 구석에 숨거나 감정을 억제해야 했다. 그가 기획한 공간은 마음껏 울고 심리적 안정을 취할 수 있으면서도, 다른 이의 눈에 띄지 않는 계단이다.

이 전시를 주최한 (사)한국건축가협회와 주관 단체인 국제전문인 도시건축봉사단 바미(Builders As a Mission International)는 ‘셀터 포 소울 캠페인’도 진행한다. 전시회 총괄 책임을 맡은 바미 대표 천근우 건축사는 “한 사람을 위한 영혼의 안식처를 선물하는 것은 그 영혼의 아픔을 이해하고 동감하는 사랑의 표현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천근우 건축사(오른쪽)가 아이티 아이들과 함께 찍은 사진. 천 건축사 제공
천근우 건축사(오른쪽)가 아이티 아이들과 함께 찍은 사진. 천 건축사 제공
1999년부터 바미를 이끌며 어려운 이웃을 위해 재능과 마음을 나누던 천 건축사는 2010년 아이티 지진 현장에서 충격적인 사실을 마주했다. 기아대책의 요청으로 건축전문가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간 그곳은 재난으로 초토화됐다.

“10대 여아들은 임시 텐트에 살면서 성폭행을 당하고 매춘을 강요당하는 사회적 무방비의 현실을 보면서 참담했습니다. 한 시대를 같이 사는 사람으로 자신을 스스로 구원할 수 없는 내 자녀 또래의 아이들을 내버려 둘 수 없다는 자책을 하지 않을 수 없었죠."
아이티 지진복구 현장. 천 건축사 제공
아이티 지진복구 현장. 천 건축사 제공
1500명의 지진 고아들이 안전하게 최소한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텐트를 기획해 아이티 정부에 제안했다. 현지에서 대지를 제공하기로 협약했다. 아이티 정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우리나라 정·재계와 코스타 집회 등을 통해 크리스천 동역자들에게도 호소했다. 합동음악회 등 열심히 홍보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 공사비를 확보하지 못해 그 사업은 끝내 열매를 맺지 못했다.
천근우 건축사. 강민석 선임기자
천근우 건축사. 강민석 선임기자
건축사로서 어려움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건축의 재정 단위가 크다 보니 모금하는 게 쉽지 않다고 했다. 자기 일을 하면서 자비량 봉사를 하다 보니 업무 과중은 늘 살고 산다.

“그때부터 빚진 자의 마음이 있었어요. 아이티를 당장 돕기 힘드니 우리 주위에 있는 한 사람이라도 돕는 운동이 일어나야겠다고 생각했죠. 한 영혼의 셀터를 선물한다면 세상이 바뀔 것입니다.”

‘부자이거나 가난하거나 모든 사람은 따뜻하고 쾌적한 방뿐 아니라 그 영혼을 쉬게 하는 안식처를 갈망하고 있다.’ 일생을 건축사뿐 아니라 사회계몽가로 헌신해 2004년 AIA Gold Medal을 수상한 고 사무엘 막비(Samuel Mockbee)의 말이다.

막비가 남긴 말은 천 건축사에게 늘 도전이 된다. 바미는 그동안 약 16개국에 걸쳐 50여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독거노인 주거환경 개선작업’을 통해 외로운 어르신들이 삶의 희망을 찾는 걸 볼 때 감사할 뿐이다.
바미의 ‘독거노인 주거환경 개선작업’ 현장. 천 건축사 제공
바미의 ‘독거노인 주거환경 개선작업’ 현장. 천 건축사 제공
한 중국교포 어르신은 어린 나이에 가족과 중국 만주 근방에서 살다가 병을 얻고 수년 전 한국에 다시 돌아왔다. 심장 수술을 하고 치료받아야 하는데 중국에서는 도저히 감당되지 않았다. 한국에 같이 온 두 언니가 유일한 혈육이었는데 큰 언니는 최근 돌아가시고, 작은 언니도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었다. 어르신은 어서 빨리 이생이 끝나길 바라며 자신의 인생을 한탄했다. 바미 스태프 30여 명이 반지하 집에 있는 짐을 모두 꺼내 곰팡이를 제거하고 도배하고 문짝과 창문 등을 새롭게 붙여 나가며 구슬땀을 흘리자 깨끗한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어르신은 “종일 한 번도 찾아오지 않던 젊은 청년들이 우리 집을 들락날락하며 날 위해 좀 더 잘 살라고 애써주는 모습을 보니 잘 살아야겠다”며 “이 모든 일 뒤에 계시는 하나님의 존재도 믿게 되었다. 남은 생 기회가 되면 나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돌보고 싶다”고 고백했다.

“그냥 하루 쉬었으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하루였는데, 누군가에게 살 소망을 드리게 했으니 감사할 뿐입니다. 사람을 세우는 건축사가 되고 싶습니다.”(천 건축사)

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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