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의 메트로폴리탄, 런던
종교개혁의 메트로폴리탄, 런던
  • 황희상
  • 승인 2019.08.22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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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지 탐방은 이제 영국으로 넘어간다. 벌써 전체 여정에서 막바지에 이르렀다.

    모듈 1. 이탈리아 : 로마, 바티칸, 폼페이
    모듈 2. 체코/독일 : 프라하, 따보르 / 비텐베르크, 보름스, 바르트부르크, 하이델베르크
    모듈 3. 프랑스/스위스 : 파리, 누와용, 상티, 라로셸, 스트라스부르 / 취리히, 바젤, 제네바
    모듈 4. 영국 : 런던, 에든버러, 세인트앤드루스

영국은 국가 차원에서 종교개혁을 추진했던 매우 특이한 경우이다. 종교개혁 당시 영국은 세 왕국이었는데, 그 중에서도 잉글랜드는 일찍부터 국왕이 로마 가톨릭과 결별하면서 종교개혁의 흐름을 탔고, 스코틀랜드는 시기적으로 약간 늦었지만, 그 누구보다도 종교개혁을 ‘뜨겁고 확실하게’ 추진했다. 덕분에 영국 전역에는 종교개혁과 관련된 다양한 역사가 남아있다. 비록 우리는 탐방의 비용과 시간 및 편의성 문제로 단지 세 도시만 선정했지만, 영국은 유럽 대륙과 별도로 탐방 일정을 잡아도 충분할 정도로 가볼 곳이 많다.  또한 영어권이라, 여행하기가 다른 유럽에 비해 비교적 편하다는 장점도 있다.

런던

대부분의 탐방지역이 런던 중심지, 그 중에서도 웨스트민스터 지구에 몰려있다. 종교개혁 탐방만 한다면 하루에도 가능하다. 다만, 런던은 워낙 크고 매력적인 도시이므로, 일반 관광지와 섞어서 2~3일 정도로 보는 것이 좋겠다. 그래서 여기서는 우선 런던 시내 종교개혁지를 소개하고, 다음 글에서 관광 동선을 고려한 추천 코스를 제안하기로 한다.

런던의 대표적인 답사 현장은 다음과 같다. 1번 윌리엄 틴데일 동상부터 8번까지는 모두 걸어서 이동할 수 있는 가까운 거리다.

1. 윌리엄 틴데일 동상
임방크먼트 지하철역 근처에 있는 공원(Victoria Embankment Garden) 남쪽 끝에 틴데일의 동상이 있다. 틴데일은 종교개혁 초기에 성경을 영어로 번역해서 보급했던 인물이다. 당시 이 일은 무려 ‘사회질서를 흔드는 죄’로 여겨졌고, 결국 화형을 당한다. 고작 2년이 흐른 뒤 영국의 모든 교회당에는 영어성경 번역본이 공식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했으니 너무도 안타까운 죽음이다. 하지만 그런 노력 덕분에 잉글랜드의 청교도들이 탄생했으니, 틴데일의 순교는 결코 헛되지 않았다.
(주소: 140 Victoria Embankment, Westminster, London – 동상에 따로 주소는 없지만 구글맵에 찍으면 가까운 곳이 뜬다.)

2. Banqueting House

종교개혁 당시에 이곳 웨스트민스터에는 잉글랜드 왕실이 사용하던 큰 규모의 궁전이 있었다. 시대별로 계속 증축해서, 찰스1세 때에  이르러서는 방이 1500개에 이르기까지 대형화 된다. 이 정도면 당시 세계 최대규모의 궁전이었다. 그러나 이런 공사는 당연히 세금을 축나게 했고, 잉글랜드 혁명의 원인이 된다. 결국 찰스1세는 그가 증축한 화려한 궁전 ‘화이트홀’ 앞에서 처형당한다. 궁전 지구는 이후 화재로 인해 대부분 소실되고, 남아있는 건물 Banqueting House만이 당시 흔적을 증언한다. 입장도 가능하며, 틴데일 동상에서 가까우므로 동선에 넣어보자. (주소: Whitehall, Westminster, London)

3. 영국 국회의사당

우리는 국회의사당이라고 하면 건물 하나를 연상하지만, 영국은 상원과 하원 건물을 별도로 생각해야 한다. 종교개혁 당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잉글랜드의 장기의회. 그 중에서도 청교도 혁명 당시에는 하원의 역할이 매우 컸다. 상원이 썼던 건물과 하원이 주로 모였던 건물을 구별해서 살펴보자. 밖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멋있지만, 내부 가이드 투어(유료)도 운영되고 있다. 다음 글에서 더 자세히 소개한다.

4. 웨스트민스터 홀
영국 장기의회와 관련해서 이 웨스트민스터 홀을 꼭 들어가 보자.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간처럼 느껴지겠지만 500년 전부터 국가의 중요한 논의나 재판 등을 진행하던 다목적 홀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려보자.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이 달리 보일 것이다. 이곳에서 입헌 군주제와 의회 민주주의가 꽃을 피우고, 공화정 제도를 꿈꾸었으며, 종교개혁의 방향까지 논의되었다. 아래 사진에서 맨 왼쪽에 보이는 삼각 지붕의 건물이다.

5. 올리퍼 크롬웰 동상
위 사진의 웨스트민스터 홀 바로 앞에 보이는 동상이 바로 올리버 크롬웰 동상이다. 올리버 크롬웰은 청교도 혁명 당시 의회파 군대의 총사령관이자,‘ 청교도 사상에 입각한 정치’를 펼쳐서 이상적인 신정국가를 만들어보려던 인물이다. 그에 대한 꿈과 실천력과 지지기반까지 가진 사람에게 정치적 기회까지 찾아왔으니... 그러나 의욕이 너무 과했다. 찰스 1세 처형 후 수립된 공화정을 제대로 이끌지 못하고 엉뚱하게 독재로 향하다가 결국 국민의 지지를 잃어버렸던 인물이기도 하다. 그뿐만 아니라 잉글랜드의 정치와 종교개혁, 특히 웨스트민스터 총회와 관련하여 빼놓을 수 없는 영향을(긍정이든 부정이든) 끼쳤던 인물이니, 한 번쯤은 그 얼굴을 확인하고 넘어가자.

6. 웨스트민스터 사원(외관/내부) 및 예루살렘 채플(외관)

잉글랜드 종교개혁의 꽃이자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웨스트민스터 총회”가 열렸던 장소다. 종교개혁 시기에 더욱 “엄밀한 종교개혁”을 원했던 청교도들은 찰스1세의 반(anti) 종교개혁적인 정책에 반발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잉글랜드 내전(청교도 혁명)이 발생했고, 의회파는 국왕파와 전쟁하는 이 기회에 숙원사업이던 종교개혁을 국왕을 배제하고 추진해버리기로 결정한다. 의회는 청교도들을 불러 모아 향후 잉글랜드가 따라야 할 철저한 종교개혁이 무엇이며 어떤 방향인지를 결정하는 종교회의를 개최한다. 바로 그 회의 장소가 웨스트민스터 사원이었다. 이때 만들어진 문서들이 바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교회정치, 예배모범, 그리고 대교리문답, 소교리문답 등이며, 이후 전 세계 모든 장로교회가 따라야 하는 헌법이 되었다. 물론 한국의 장로교단들도 마찬가지로 이 문서들을 교단 헌법에 명시해 두고 있다. 그때로 따르고 있느냐는 다른 문제지만 말이다. (주소: 20 Deans Yd, Westminster, London)

이 종교회의는 마치 밀린 숙제를 하는 듯했다. 종교개혁과 관련해서 다룰 주제가 너무 많았다. 그래서 무려 5년 7개월 22일간이나 진행되었다. 총회의 개회식은 이 사원에서 했지만, 실무 협의나 문서 작성 등은 별도의 전용 공간에서 모였는데, 그곳이 바로 웨스트민스터 사원 서쪽 파사드 바로 앞에 덧붙은 건물, “예루살렘 채플”이다. 사원 관람을 마치고 나오면 기념품 숍에 들르는데, 바로 그 옆 건물이다. 일반 관광객 입장은 안되고, 외관만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7. 세인트마가렛 교회당

이 교회당도 웨스트민스터 사원 바로 옆(북쪽)에 있다. 거대한 사원 건물에 정신이 팔려서 잘 눈에 띄지 않지만, 영국의 종교개혁사에서 중요한 곳이다. 웨스트민스터 총회가 열릴 당시, 청교도 혁명을 주도했던 잉글랜드 하원 의원들은 이곳 예배당에 모여서 총회를 위해 기도했다. 그리고 총회에 참석한 청교도 총대들 중 일부는 주말에 따로 시간을 내어 하원의원들에게 돌아가며 설교를 했다. 당시 잉글랜드의 ‘정치개혁’에 종교적 열정과 이상이 영향을 주기도 했지만, ‘종교개혁’ 역시 경건한 정치인들의 협력과 지원사격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었다. 이 예배당은 그래서 웨스트민스터 총회가 진행된 장소 중 하나로 봐도 사실상 무방하다.
 

8. Queenhithe Mosaic

이곳은 현재 큼지막한 쇼핑몰이다. 엄밀히 따지면 종교개혁지는 아니다. 그러나 과거에 이 지역에 “있었던” 건물 중 하나에, 웨스트민스터 총회에 참석했던 스코틀랜드 총대들의 숙소가 있었다. 웨스트민스터 총회는 잉글랜드만의 총회가 아니었고, 잉글랜드보다 먼저 더욱 엄밀한 종교개혁을 이뤄냈던 스코틀랜드 장로회파 교회들의 지원과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한 역사였다. 총회 때 스코틀랜드에서는 처음에 8명, 나중엔 주로 4명이 남아서, 총회 전반에 지식을 제공하고 가이드가 되었으며, 때로는 설교와 성경공부와 서적 출간 등으로 종교개혁 사상을 전파했다. 잉글랜드측 참석자들은 그들에 대한 예우로, 런던 도심에 템즈강이 바라보이는 ‘뚝방 위에 세워진 멋진 집’을 숙소로 제공했다. 비록 지금은 건물은 물론 인근 지형까지 바뀌고 말았지만(이 지역 전체가 화재로 소실되어 재개발을 거쳤고, 현대에 와서는 교량이 건설됨), 여기서 템즈강을 바라보며 커피 한 잔을 하면서, 당시 스코틀랜드 총대들이 매일 밤 어려운 논쟁을 마치고 퇴근하여 고단한 몸을 쉬었을 그 장소에서 그때의 심정을 짐작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주소: 1 Queenhithe, London)

※ 중간 점검 : 위의 2번부터 8번까지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 특히 웨스트민스터 총회와 관련된 탐방을 위해서는 “특강 종교개혁사”(흑곰북스)를 꼭 읽으시기를 바란다. 그래야 그 중요성과 맥락이 이해된다. 1~7은 웨스트민스터 지역에, 8~12는 시티 지역에 있다.

9. 런던탑
 

이곳은 원래 왕실 소유의 성이자 요새였지만, 런던의 중심지가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점차 음침한 용도로 사용되어, 주로 정치범을 수용하는 감옥으로 사용되었다. 특히 수많은 청교도들이 이곳에 갇혔다가 처형당했는데, 잉글랜드 종교개혁사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주요 종교개혁자들은 죄다 런던탑을 거쳤다고 보면 된다. 피의 메리 시절에는 토마스 크랜머, 리들리, 라티머, 후퍼 등이 이곳에서 고통을 당했고, 엘리자베스1세 시절에는 토마스 카트라이트가, 제임스1세 시절에 와서는 스코틀랜드 종교개혁을 강하게 이끌었던 지도자 앤드류 멜빌까지도 이곳에 갇히게 된다. 킹 제임스는 그가 스코틀랜드 왕 제임스6세에 불과(?) 하던 시절에 앤드류 멜빌에게 모욕을 당했던 기억을 잊지 못하고, 훗날 잉글랜드의 왕관을 머리에 얹고 강력한 왕이 된 뒤에 지극히 사적인 복수심으로 그를 런던까지 소환해서 괴롭힌다. 이처럼 잉글랜드의 왕들은 겉으로는 종교개혁을 허용하는 듯했으나 ‘제대로 개혁하려는 시도’까지는 결코 허락하지 않았다.

10. 세인트 폴 대성당

종교개혁 시기에 영국 최대이자, 세계에서 두 번째로 컸던 대성당이다. 이런 거대한 위엄에 기대어, 영국 왕실과 영국 교회는 정치적으로 교황과 갈라서는 종교개혁(?)을 이룬 뒤로는 더 이상 엄밀한 종교개혁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많은 신자들도 청교도들의 그런 주장을 “귀찮아”했다. 글로벌 흐름에 발맞춰 종교개혁도 했고, 이렇게 크고 화려한 건물도 그대로 이용할 수 있고, 왕과 귀족들도 잘 참석하고 있고, 성가대의 음악도 멋지고, 신대륙에서 금도 가져오고 있고, 무적함대도 격파했고... 도무지 아쉬울 것이 없는데, 무슨 놈의 종교개혁을 더 하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진실은 항상 선명하게 드러나는 법이다. 종교개혁은 웨스트민스터 총회의 결과로 이 거대한 성당을 “장로교회 제 1노회 제 1교구(parish)” 예배당으로 만들었다. 물론, 이후 크롬웰의 실정으로 영국 시민들은 다시 왕정복고를 선택했고, 종교 역시 기존 성공회로 돌아가버렸다. 허무하게 다 끝난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웨스트민스터 총회가 이루었던 그 진실된 성과는 역사 속에, 그리고 신앙인들의 가슴 속에 영원히 남아서, 이제 우리 종교개혁 탐방객들이 그 사실을 알고 이곳에 방문하게 되었으니... 아직 끝은 아닐 것이다.

11. 스미스필드(존 로저스, 존 필포트, 존 브래드포드): Rogers, Bradford, Philpot Memorial : 56 W Smithfield, London

12. 번힐 필드(토마스 굿윈, 존 번연, 존 오웬): Bunhill Fields Burial Ground : 38 City Rd, London
위 두 장소는 순교자들의 기념비와 종교개혁자들의 묘지가 있는 곳이다. 두 곳 모두 런던 중심부, 세인트 폴 대성당 북쪽에 있다. 바쁜 탐방 일정에서, 만약 차가 없다면 끼워 넣기 애매한 장소들이다. 그렇다고 언급하지 않을 수는 없어서, 여기서는 간단히 주소만 밝힌다.

다음 글에서는 위 장소들을 어떻게 런던 관광 일정에 녹여 넣을 수 있겠는지 하나의 샘플을 제시해보기로 하자.


황희상
기독교 교리, 역사, 교육 등의 책을 집필하는 작가이다. 『특강 소요리문답』과 『지금 시작하는 교리교육』은 한국교회에 교리교육의 바람을 일으켰으며, 『특강 종교개혁사』는 ‘웨스트민스터 총회’에 대한 충실한 소개로, 종교개혁의 후손들이 지향할 바가 무엇인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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