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갈래의 구원론
여러 갈래의 구원론
  • 강도헌
  • 승인 2019.07.12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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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주의 조직신학의 유산을 물려받은 한국 개신교회는 당시의 정통주의 신학 풍토를 받아서 각각의 신학적 주제에 대하여 한 가지 관점만을 고수하며 다른 관점들에 대해서는 배타적 변증법의 태도를 취하는 풍토의 유산을 물려받았습니다. 그러나 신학이 발전함에 따라 그 어떤 관점도 다른 모든 관점을 흡수 통합해 내는 완전한 관점은 존재하지 않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현대 신학의 특징은 다양한 관점이 존재함을 인정하며, 각각의 그 관점에 맞는 신학적 견해를 통섭적으로 아우르는 방향을 취하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두 학파 간의 ‘성경 해석’의 차이에 대해 살펴보았고, 이번 시간에는 구원론의 차이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이미 여러 번 언급하였듯이 알렉산드리아 신학자들은 오리게네스와 아타나시우스의 개념으로 채색되어 있었습니다. 즉, 우리 인간의 구원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섭리(은혜)에 의한 하나님과 인간의 연합을 강조하면서 하나님에 의해 우리 인간의 본성은 변화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연합 가운데 인간의 타락한 본성이 우리 안에 연합하고 있는 하나님의 본성을 오염시켜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였습니다. 이렇듯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전형적인 접근 방법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해서) 우리 인간 안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에 로고스의 신적인 본성은 피조물의 제한성이나 불완전성으로부터 완전히 자유하다는 주장을 펼치게 됩니다.

여기에 안티오키아 학파의 구원론도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견해와 전적으로 다른 것은 아니었습니다. 양측 모두 구원의 중요한 핵심은 그들의 말로는 신화(神化) 혹은 신성화(인간의 본성을 치유함으로써 불멸성과 같은 신의 속성들을 공유하는 것)를 포함한다는 점에서 동일합니다. 또한, 이 두 학파는 인간과 신의 본질에 대하여 각각 본질적인 차이를 인정하였으며, 인간이 신으로 혹은 신이 인간으로 변형된다는 사상을 확고하게 거절하였습니다.

그러나 안티오키아 학파는 구원의 과정에서 인간의 역할과 관련하여 알렉산드리아 학파보다 훨씬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인간의 자유 의지는 성례전들을 통해 하나님의 치유 능력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 반면, 안티오키아 학파는 구원의 과정에서 인간의 자발적인 결단을 중요하게 보았던 것입니다. 쉽게 말해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구원론은 좀 더 형이상학적이고 성례전적 이었던 반면, 안티오키아 학파의 구원론은 좀 더 도덕적이고 윤리적이었던 것입니다.

이 두 학파는 사실 콘스탄티노플을 누가 차지할 것인가의 싸움에서 신학적으로 서로 각자의 입장을 고수하면서 상대방의 신학을 무시하고 서로 비난하였습니다.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신학자들은 구원을 예수 그리스도 안의 인성과의 연합을 통한 로고스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놀라운 형이상학적(성례전적) 신비로 보았고, 안티오키아 학파는 구원을 신의 로고스와 인간의 의지(삶의 순종)의 연합을 통해 이루어지는 놀라운 도덕적-윤리적 성취로 보았던 것입니다.

사실 그리스도교 신학 안에서 알렉산드리아와 안티오키아 이 둘 중의 어느 하나를 선택하거나 버릴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형이상학적이고 성례전적 관점에서 알렉산드리아의 로고스의 주권과 섭리는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들을 제공해 주며, 또한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갈 때 안티오키아 학파의 자발적 결단과 믿음으로 순종하는 의지 모두 우리에게 중요한 부분입니다.
 


강도헌
제자삼는교회 담임목사,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프쉬케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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