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작은 것에 무너지는 나
여전히 작은 것에 무너지는 나
  • 전경은
  • 승인 2019.07.12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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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그대에게 주는 선물 (2)

유난히 추웠던 1월의 어느 날, 서울에는 폭설이 내려 거리가 꽁꽁 얼고 살점이 떨어져 나갈 것만 같은 매서운 바람이 불었다. 그날 친구와 경리단길 꼭대기에 위치한 음식점에서 저녁을 먹고, 아는 오빠네 가족이 운영하는 근처 카페에 들르기로 했다. 기왕 이태원에 왔으니, 굳이 다른 가게에 가는 것보다 지인의 가게에 가서 한 잔이라도 더 팔아 주자는 생각이었다. 우리는 옷 사이로 들어오는 칼바람을 피하고자 코트 단추를 목까지 채우고 걸음을 재촉했다. 

한참을 걸어간 끝에 경리단길 중턱에 위치한 W오빠네 가게에 도착했다. 커피 한 잔을 주문하고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때마침 가게에 들른 W오빠가 위층으로 올라와 나에게 인사를 했다.

“경은이 왔어? 나는 어머니 심부름하러 잠깐 들렀어. 맛있게 먹고 잘 놀다 가!”


오빠는 얇은 점퍼와 운동복을 입은 아주 편한 차림이었다. 아마도 집에서 쉬다가 차를 타고 가게에 잠시 들른 모양이었다. 오빠는 그저 나에게 인사를 하러 올라온 것뿐이었는데, 그 짧은 순간 많은 생각이 들었다.


‘역시 삶이 여유로운 사람에게서 풍겨져 나오는 분위기는 다르구나. 나는 언제쯤 저렇게 여유로워 볼 수 있을까? 죽도록 노력하면 얻을 수 있는 걸까?’


집안 사정이 어려워진 이후 내가 습관적으로 내뱉곤 하는 말이 있었다.

‘이거 안 되면 난 죽어.’

조금은 과격한 말이지만, 나는 단 한순간도 절실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길거리를 걷다 말고 주저앉아 울다가도, 병상에 누워 있는 아빠, 아빠 대신 엄마를 매일같이 협박하는 채권자들, 우리가 베풀었던 선을 배신으로 대갚음하는 사람들을 보면 나는 다시 일어서야만 했다. 그리고 그런 절박함이 의지할 것 하나 없는 광야에서도 나를 끈질기게 살게 했다. 내가 그토록 절박하게 원했던 것은 오직 하나였다.


‘내 가족,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고 싶다.’

그런데 막상 대학에 입학해 보니 나는 일개 대학생일 뿐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는커녕 내 한 몸 앞가림하기도 힘든 스무 살일 뿐이었다. 그토록 원하던 대학에 왔지만, 졸업을 한다고 해서 내가 대단한 위인이 되는 것도 아니고 잃어버린 재산을 회복할 만큼 돈을 벌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아무리 최선을 다하고 발버둥을 쳐 봐도 세상은 그대로였다.

대학만 입학하면 원대한 꿈을 이룰 수 있을 것만 같았던 막연한 기대와는 달리, 스물세 살의 나는 바닥난 체력으로 겨우 학교를 다녔고, 부도가 났을 때 방황하느라 떨어진 학점을 회복하기 위해 애를 먹고 있었으며, 주 5회 아르바이트에 봉사활동으로 바빴고, 교환학생을 가고 싶어서 번 돈을 고스란히 학원비로 쓰고, 그런 와중에 책을 써 보겠다며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있었다.

이토록 숨 가쁘게 바쁜 일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하는 삶이 아름답다고 자부하며 살아왔는데, 오빠를 보는 순간 내 태도가 착각 혹은 자기 위로에 불과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일상을 꾸역꾸역 살아 내면 뭐가 달라지긴 하는 걸까? 그래서 이렇게 하면 내가 뭐가 되기라도 해?

그 순간에는 어떻게든 살아 보겠다고 버텨 온 나의 모든 노력들이 다 부질없게 느껴졌다. ‘경은아, 너라도 잘해야지. 그래야 너희 부모님이 살지.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라는 위로가 듣기 싫었을 때, 내가 너무도 하찮아 보일 때마다 나를 위로했던 것은 그런 삶이 아름답고 멋지다는 자부심이었다. 그런데 그 자부심이 나를 먹고 살게 해 주나? 고작 책 한 권 써 보겠다고, 여러 사람들을 붙잡고 부탁하고 있는 나 자신이 가여워 보였다.

W 오빠네 가게에서 나와 녹사평역까지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자니, 살을 에는 듯한 이 추위가 차가운 현실의 벽처럼 느껴졌다.

‘우리 집도 오빠네랑 비슷한 형편일 때가 있었는데, 어느 순간에 이 모양이 되어 버린 걸까?’

걸음을 옮길 때마다 부정적인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마치 내가 이 세상의 먼지보다 못한 존재가 된 것 같았다. 제 앞가림도 제대로 못하는 생계형 대학생 주제에 그 추운 겨울, 친구네 가게에 들러 커피 한 잔을 ‘팔아 준다’고 생각했던 나 자신이 너무 우스웠다.

사실 나는 많은 것을 바란 적이 없었다. 좋은 차, 아주 비싼 옷, 모두에게 뽐낼 만한 넓은 집이 아닌 그저 조금 숨통이 트이는 삶, 더운 날 돈 걱정 없이 에어컨을 틀어 보는 것, 손이 얼 것같이 추운 겨울에 따뜻하게 지내는 것, 딱 그 정도가 내가 바라는 것이었다. 다른 이들에게는 너무 사소해서 일상이라고 불리는 가족과의 행복한 저녁 시간, 생계형에서 아주 조금 벗어난 여유로운 생활, 아등바등 살지 않아도 별문제 없이 지낼 수 있는 집안 환경 같은 것들이 나에게는 더 이상 꿈도 꿀 수 없는 일들처럼 느껴졌다. 마치 평범한 일상의 꿈을 꾸다가 하늘의 별이 된 성냥팔이 소녀처럼 나 또한 그 일상을 갈망하고 있었다.

동화 속 성냥팔이 소녀에게는 커다란 꿈이 없었다. 성냥을 팔지 못하면 집에 돌아갈 수도 없는 소녀는 단지 꽁꽁 언 손을 녹이고 싶어서 성냥 한 개비를 그었고, 따뜻한 난로, 맛있는 음식, 크리스마스트리 같은 것의 환상을 보고 싶어서 성냥을 켜고 또 켜다가 결국 죽음을 맞이했다. 누군가에겐 너무나 사소해서 행복이라고 부르지도 못할 그런 것들이 소녀에겐 마지막 남은 성냥을 쓰고 마침내 목숨을 잃을 정도로 소중했던 것이다. 어쩌면 나도 그 작은 행복이 그리워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애쓰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마음이 이렇게 힘든데, 내가 겪은 어려움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희망을 준다고? 도대체 누가 누구한테 희망을 주겠다는 거야? 내가 대학을 졸업한다고 해서, 취업을 좀 한다고 뭐가 달라질 수 있다는 거야? 내 힘든 마음은 도대체 누가 알아주나…….’

그저 친구네 가게에 들러 커피를 마시고 온 것뿐인데, 서러운 마음은 걷잡을 수없이 커졌고 커피 한 잔을 팔아 주겠다고 간 나 자신이 너무도 작아 보였다. 다른 사람들 눈에 비친 겉모습은 어려움을 잘 이겨 내고 꿈을 향해 열심히 생활하는 발랄하고 상냥하고 씩씩한 여대생이었지만, 내 안에는 여전히 지나가는 희미한 바람에도 무너지곤 하는 지극히 약한 모습이 숨어 있었다.

 

* 본 글은 <겨울이 그대에게 주는 선물>에서 일부를 발췌하여 작성하였습니다.

<겨울이 그대에게 주는 선물>은 현재 텀블벅에서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 중이며, 7월 22일에 마감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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