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오키아와 알렉산드리아 간의 성경해석 차이
안티오키아와 알렉산드리아 간의 성경해석 차이
  • 강도헌
  • 승인 2019.07.05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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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도교는 “새 로마(로마의 새 수도)”로 불렸던 콘스탄티노플(비잔티움)을 자기들의 중심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북아프리카의 도시 알렉산드리아와 소아시아의 도시 안티오키아의 치열한 각축전, 즉 자신들의 도시 명성과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하여 자기들의 독특한 신학 이론을 발전시킬 뿐만 아니라 교회의 요직, 즉 기관목사나 장로, 부제와 감독 및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에 이르기까지 자신들이 ‘총애하는 사람들’을 앉히려고 물심양면으로 노력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이 두 도시의 신학적 차이는 점점 커져 갔습니다.

알렉산드리아 학파와 안티오키아 학파 사이의 주요 신학적 차이는 성경해석을 둘러싸고 일어났습니다. 알렉산드리아의 성경 해석법은 그리스도 시대의 유대인 신학자이며 철학자였던 필로에 의하여 확립되었고, 필로는 히브리 성경의 문자적이고 역사적 언급들을 별로 중요하지 않게 여겼습니다. 즉, 성경의 내용들을 알레고리적이고 영적인 의미를 찾고 해석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필로의 이러한 성경해석법은 히브리 종교와 그리스(특별히 플라톤 철학) 철학을 통합하려고 했기 때문에 특히 예언서의 내용의 중심을 이루는 역사적 사실들을 알레고리적 해석을 통해 그리스의 윤리적이며 철학적인 사고와 연합을 증명해 보일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또한 초대 그리스도교의 많은 사상가들의 성경해석도 필로의 해석법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알렉산드리아만큼 필로의 성경해석법을 따랐던 도시는 아무 데도 없었는데, 알렉산드리아가 존재하는 이유가 바로 필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필로의 이러한 알레고리적 해석법은 사도 바울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는데, 갈라디아서에서 율법과 복음을 토론할 때 알레고리적인 해석을 사용한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갈 4:21-31).

안티오키아는 알렉산드리아와는 달리 문자적이고 역사적인 성경해석학으로 유명하였습니다. 물론 안티오키아의 학자들도 알레고리 해석법에 대해 진리를 드러내는 하나의 합법적인 방법으로 인정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본문이 알레고리로 되어 있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이유가 없다면 그것을 알레고리로 해석하여 영적인 의미를 발견하려는 시도는 거부하였습니다. 이러한 안티오키아 학파의 성경해석법으로 대표되는 학자는 몹수에스티아의 테오도레투스(428년 사망)였습니다. 그는 안티오키아의 뛰어난 성경 주석가요 신학자였습니다. 테오도레투스는 많은 성경 주석을 썼으며, 본문 자체가 알레고리적인 의미를 담고 있지 않는 경우 그 해석법을 엄격하게 피하였습니다. 히브리 성경의 아가서는 종종 오늘날 보수적인 프로테스탄트들조차도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 사랑의 알레고리로 간주하고 있는데, 테오도레투스는 아가서를 사랑의 시라고 문자적으로 해석을 하였습니다. 그는 아가서를 알레고리적으로 해석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알렉산드리아와 안티오키아 학파의 신학자들은 성경 해석이라는 매우 원초적인 뿌리부터 입장이 달랐습니다. 안티오키아 학파의 역사적-문자적-문법적 해석은 오늘날 서방 그리스도교에서 좀 더 영향력 있는 해석법인 반면,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알레고리적이고 영적인 해석 방법은 초대 그리스도교를 지배했고, 중세시대 동방과 서방교회 양측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였습니다. 이러한 성경해석의 차이는 기독론(그리스도론) 논쟁의 무대를 설정하였습니다.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예수의 신성을 강조하는 경향을 취함으로써 예수의 신성은 예수의 인성이라는 껍질 속에 감추어져 있는 영적인 보배와 같았습니다(가현설의 잠복). 반면, 안티오키아 신학자들은 그들의 방법론상의 위험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이들은 성경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드러난 계시의 역사적, 문자적 실재들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에 성경과 예수의 신적 계시성을 온전히 정당화시키는데 어려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들은 성경의 영감과 그리스도의 신성을 고백하였지만, 어쩔 수 없이 이러한 신비들의 영적이고 신적인 측면들을 최소화하려는 경향으로 흐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사모사타의 바울).

이 두 도시 신학자들의 성경해석법이 어떻게 기독론(그리스도론)에 영향을 주었는지 다음 주 구원론부터 살펴보겠습니다.
 


강도헌
제자삼는교회 담임목사,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프쉬케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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