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_봄을 기다리는 그대에게
프롤로그_봄을 기다리는 그대에게
  • 전경은
  • 승인 2019.07.04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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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그대에게 주는 선물 (1)

 

언젠가 친구와 부산으로 여행을 간 적이 있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 숨 돌릴 틈도 없이 달리기만 하다가 마음 맞는 친구의 제안으로 오랜만에 휴식을 가져 보고자 결정한 여행이었다. 기대에 한껏 부풀어 부산에 도착한 우리를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은 친절하게 맞아 주셨고, 어쩌다 보니 그분과 이런저런 얘기도 나누게 되었다. 그러던 중 그분이 이런 얘기를 꺼내셨다.

“얘들아, 남자든 여자든 재혼 가정 아이들은 절대 만나면 안 돼. 그것도 유전이야. 아빠나 엄마가 재혼하면 그 집 아들이나 딸들도 똑같이 재혼해. 이건 인생을 먼저 살아 본 사람의 조언이란다.”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내가 바로 그 “재혼 가정 아이”였으니까. 그뿐만이 아니다. 나와 오빠는 이복 남매이고, 아빠는 100억 원대 사업 실패를 겪었으며 알코올 중독 때문에 정신 병동에도 입원했었다. 어떤 이들에게 나는 ‘만나면 안 되는’ 가정에서 자란 사람일 수도 있다. 보통 사람들이 한 번 겪기 힘든 불행을 여러 번이나 겪은 사람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제 나는 우리 가족이 부끄럽지 않고, 내가 불행한 사람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나 또한 처음부터 이 사실들을 자연스레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길고 혹독했던 겨울의 시간을 지나며, 나는 비로소 내 가족들과 나의 인생을 소중한 선물로 여길 수 있게 되었다.

몇 차례의 고비들을 견뎌 내고 나니, 주변의 친구들이 고민을 들고 하나둘씩 나에게 찾아오기 시작했다. 친구들은 빚 문제부터 장애를 지니고 있거나 몸이 아픈 가족에 대한 이야기까지, 다양한 고민에 대해 내게 꽤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아무래도 내가 주변 또래보다 비교적 많은 일을 경험했으니 함께 이야기를 나눠 보고픈 모양이었다. 사실 그런 나라고 해서 특별히 뾰족한 해결책을 내놓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의 아픔만큼은 누구보다 깊고 섬세하게 헤아려 줄 자신은 있었다.

많은 사람이 찾아왔지만, 그중에서도 한 친구의 이야기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그 친구는 겉보기에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한 것은 다 가진 친구였다. 경제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부족함 없는 환경에서 자랐고, 게다가 머리도 좋아서 소위 명문대학교에 입학했다.

그런 친구가 나에게 들고 찾아온 고민의 주제는 놀랍게도 거식증이었다. 친구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지만 실은 외모에 대한 엄청난 강박이 있다고 토로했다. 단 1kg만 쪄도 그 모습을 견딜 수가 없어서, 매일 밤 먹은 음식을 토하기를 반복한 지 3년이 되었다고. 화장실 문을 잠그고 콸콸 틀어 놓은 채로 먹은 음식을 게워 내고 나면, 개운함과 동시에 자괴감이 몰려왔다고 말했다.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마음이 너무 아팠다. 오랜 시간을 알고 지냈고, 그 사람의 많은 부분을 알고 있다고 자부했는데, 정작 나는 그 친구의 가장 아픈 상처가 무엇인지도 몰랐다. 미안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는 나에게 친구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경은아, 사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네가 기분 나쁠 수도 있겠지만, 나는 너의 솔직함이 너무 부러워. 나의 아픈 마음에 대해 다른 이들에게 털어놓는 거, 정말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거거든.”

사실 나도 처음부터 용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내 상처들이 드러날까 봐 전전긍긍했던 순간들이 훨씬 더 많았다. 불과 몇 년 전, 엄마의 친구분이 우리에게 힘이 되어 주고자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우리 집 사정을 이야기하며 기도 부탁을 하신 적이 있었다. 정말 순수한 마음에서 하신 일이라는 걸 머리로는 알면서도, 어린 마음에 때때로 원망스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기도 같은 거 필요 없는데, 왜 창피하게 그런 걸 다 말하는 거야? 남의 일이니까 저렇게 쉽게 이야기하는 거 아니야?’


하지만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정작 내가 나를 수치스러운 존재로 만들어 버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그저 나인데, 상황이 달라졌다거나 나의 이야기가 드러났다고 해서 내가 이전보다 못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닌데, 왜 나는 그것을 마냥 숨겨야만 하는 일로 여기는 것일까.

생각해 보면,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이기 때문에 소중했다. 내 곁에 남아 준 사람들은 내가 부잣집 막내딸이라서, 좋은 학교에 다녀서, 키가 커서, 멋진 옷을 입어서가 아니라 그냥 ‘전경은’이었기 때문에 나를 사랑해 주었다. 그런데도 나는 나 자신을 다른 사람들의 사회적 위치, 지식, 직업, 명예, 외모 등과 비교하고 평가했다.

우리는 때때로 화려한 결과에 시선이 빼앗긴 나머지, 너무 쉽게 자신의 노력과 땀이 담긴 과정이나 더 나아가서는 우리 자신의 존재까지 부정해 버릴 때가 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실은, 나는 나라서 너무 소중하고 가치 있는 사람이며, 내가 소중하기 때문에 나의 한 번뿐인 인생도 너무 소중하고 살아 낼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지금 우울하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나의 이야기가 와닿지 않을 수도 있다. 내 겉모습만 보고는 내가 어려움을 모르거나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혹은 현재의 내가 지니고 있는 봄 같은 생명력이나 행복한 모습만을 보고 부러워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도 아주 긴 겨울의 시간이 있었다. 그 시간은 무척이나 춥고 어둡고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그만큼 혹독한 겨울을 이겨 냈기에 나는 그 누구보다도 삶을 치열하게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은 종종 나에게 묻는다. 어떻게 그런 일들을 겪고도 여전히 삶을 선택할 수 있었냐고. 그런데도 어떻게 이렇게 행복해 보일 수 있느냐고. 그럴 때마다 나는 자신 있게 대답한다. 저 겨울의 시간이 나에게 아주 특별한 선물을 남겼기 때문이라고. 그리고 이제 그 선물을, 당신과도 나누려고 한다.

 

* 본 글은 <겨울이 그대에게 주는 선물>에서 일부를 발췌하여 작성하였습니다.

<겨울이 그대에게 주는 선물>은 현재 텀블벅에서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 중이며, 7월 22일에 마감됩니다.
https://tumblbug.com/arno_1


전경은
작가와 강사, 청소년 멘토로 활동 중이다. 『겨울이 그대에게 주는 선물』 을 통해 혹독한 겨울의 시간을 지나고 있는 사람들에게 진실된 위로를 건네고, 절망 속에서 다시 일어설 용기를 전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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