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슐리외 추기경의 ‘라 로셸’ 포위 섬멸작전
리슐리외 추기경의 ‘라 로셸’ 포위 섬멸작전
  • 황희상
  • 승인 2019.07.0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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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방문할 도시는 프랑스 서쪽 항구도시 “라 로셸”이다. 이곳을 3회에 걸쳐 비중 있게 소개하려 한다. 여기는 왜 가야 하는가. 가서 뭘 봐야 하는가. 이런 궁금증을 가진 채, 필자가 걸었던 낯선 길을 함께 걸어보시길 바란다.

기차는 파리를 벗어나고, 차창 밖으로 널따란 논밭이 아름답게 이어진다. 평온하고 아름답고 단정하다. 세 시간이 흘러 도착한 라 로셸 기차역(Gare de Ra Rochelle)은 아름답고 웅장한 건축물이다. 지금은 세계인에게 그리 유명하지 않지만 이곳은 수백 년간 부유했던 서프랑스 끝에 있는 대표적인 해상무역 도시였다. 필자는 2015년 봄, 파리 여행 중에 위그노 취재차 1박 2일 일정으로 이 도시를 찾았다.

▲ 보통 한국인 관광객이 여기까지는 잘 오지 않는다. 파리에서 꽤 먼 거리이고, 근처에 다른 탐방지도 마땅치 않아서, 실제로 탐방 동선에 넣기는 쉽지 않겠다. 하지만  꼭 소개하고 싶었다.
▲ 보통 한국인 관광객이 여기까지는 잘 오지 않는다. 파리에서 꽤 먼 거리이고, 근처에 다른 탐방지도 마땅치 않아서, 실제로 탐방 동선에 넣기는 쉽지 않겠다. 하지만 꼭 소개하고 싶었다.

라 로셸 여행의 목표는 두 개였다. 하나는 이 도시에 있는 ‘프로테스탄트 박물관’ 및 위그노 후예들이 지금까지 지키고 있는 교회를 방문하는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이 도시의 슬픈 역사라고 할 수 있는, “라 로셸 대 포위 공방전”의 현장을 보는 것이었다. 소설 ‘삼총사’에서 리슐리외 추기경이 이끄는 프랑스군이 영국군을 완벽하게 막아냈던 곳이다. (삼총사 중에서 특히 ‘아토스’가 엄청난 활약을 벌인다.) 알렉상드르 뒤마는 이 장면을, 찰스 1세가 라 로셸의 위그노를 구하겠다며 병력을 이끌고 왔던 실제 역사에 기반해서 썼다. 뒤마는 작품을 위해 이 도시에서 얼마간 머무르기도 했다.

라 로셸은 어떤 도시인가

잠시, 이 도시에 얽힌 역사의 드라마를 알아보자. 낭트 칙령 이후 신교도들의 도피성이 된 라 로셸은 오래전부터 시민 의식이 높은 도시였다. 종교개혁 이전부터 자체 선거를 통해 매년 시장을 뽑았던 만큼, 실리적이고 자유로운 도시. 르네상스와 개신교 사상을 손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지리적 사상적 토양이 준비되어 있었다. 프로테스탄트들에게 '자유'보다 소중한 가치가 또 있을까. 도시의 번성과 함께 주변 나바르 왕국이나 스위스, 영국 등 신교도가 강세인 국가들과 긴밀한 관계가 이어졌으며, 낭트 칙령 이후로는 공식적으로 신교도의 자유도시가 되었으니, 라 로셸은 왕조차 함부로 건들지 못하는 세력으로 급부상했다.

그러나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아버지 앙리 4세의 죽음 이후, 어머니인 마리 드 메디치의 섭정에서 벗어난 가톨릭 신자 루이 13세가 왕권을 강화해야 할 상황에서, 총리가 된 리슐리외 추기경의 노련함과 추진력이 시너지를 발휘한다. 리슐리외 추기경은 라 로셸에서 멀지 않은 뤼송(Lucon) 주교로 일하던 시절부터 라 로셸이 어떤 힘을 가진 도시인지 훤히 꿰고 있었다. 루이 13세의 욕망과 리슐리외 추기경의  종교적 신념이 콜라보를 이루어, 프랑스 신교도들은 무시무시한 핍박을 받는다. 그리고 핍박의 칼날은 결국, 모든 위그노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던 라 로셸을 향한다.

이 전쟁은 단순한 국지전 혹은 내 전시되리라 여겼으나, 곧 국제전의 양상으로 흐르고 만다. 리슐리외는 프랑스 정예 병력을 진두지휘하여 라 로셸을 육지 쪽에서 완벽히 포위한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라 로셸은 항구 도시였고, 프랑스는 해군이 빈약했다. 그래서 꼼꼼한 리슐리외는 이미 수년 전부터 영국의 찰스 1세를 매수했다. 프랑스 공주와 결혼하는 조건으로 지참금을 두둑이 주고, 훗날 라 로셸을 공격할 때 바다 쪽을 맡아달라고 밀약을 걸어두었던 것이다. 개신교 국가의 찰스 1세가 국내의 엄청난 반대에도 불구하고 카톨릭 국가의 공주와 결혼을 강행한 이유가 여기 있었다!

라 로셸을 공격하러 가는 척 함대를 준비했지만, 리슐리외 못지않게 야비한 찰스 1세는 실제로는 리슐리외의 뒤통수를 치려고 했다. 국내 문제로 골머리를 앓던 찰스 1세는 같은 개신교도를 공격하는 행동이 자신의 정권에 위협이 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오히려 프랑스 군을 치고, 라로셸을 구원하러 출병한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 하지만 또 그 정보가 리슐리외에게 진즉에 새 버렸고, 프랑스군은 바다에 방파제를 건설하고 영국군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게 다 라 로셸 앞바다에서 벌어진 일이다.

위 지도에서, 라 로셸은 물샐 틈 없이 포위된 상태이다. 항구는 남쪽으로 단 하나의 입구를 가진다. 해안은 갯벌이 넓게 발달해서 정기적으로 준설을 해주지 않으면 큰 배가 진입조차 할 수 없는 좁은 물길을 지녔다. 그래서 저곳에 방파제를 건설해서 포위망을 완성해버리면, 함대는 라 로셸에 닿지도 못한다. 프랑스군은 바다에 오래된 함선을 띄우고 그 안에 돌을 채워 넣어 침몰시키는 첨단 공법으로 방파제를 완성한다. 결국 영국군은 씁쓸하게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 구원의 손길까지 무산된 라 로셸 시민들은 시장 장 귀통의 지휘 아래 용감하면서도 처절하게 저항한다. 얼마나 처절하게 싸웠을까. 3만2천 명의 시민이 5천으로 줄어들었다. 결국 그들은 프랑스군의 손아귀에 떨어지고 만다. 리슐리외 추기경의 라 로셸 포위 및 위그노 섬멸작전은 그렇게 성공했다. 잠재적 반란 세력을 제압한 루이13세와 리슐리외는 이후 프랑스 절대왕정의 기틀을 다진 왕과 재상으로 역사에 남게 된다.

라 로셸을 답사하는 방법

파리에서 기차로 무려 세 시간을 달려, 라 로셸에 도착했다. 그 옛날, 수많은 무역 선박이 오갔을 라 로셸 항에는 지금도 수많은 요트들이 잔뜩 정박해 있다. 항구 쪽 뷰를 자랑하는 식당들이 늘어서 있고, 관광객도 꽤 많다.

요트가 잔뜩 모여 있는 항구와 식당가를 지나 도심으로 들어가면, 오래되어 보이는 석조 건물들이 빼곡히 늘어서 있다. 좁은 거리에는 사람들이 비를 맞지 않고 상점 앞을 지날 수 있도록 아케이드가 지어져 있다. 16~17세기 느낌이 그대로 난다. 라 로셸은 전통적으로 해상 무역이 발달했기에, 항구에 인접한 상업 지구에 소매점이 번성했다. 상업 교역과 문화 교류가 도심가 상점에서 동시에 이루어졌다. 아케이드를 지나며 수백 년 전 진귀한 물건을 사고파는 라 로셸 시민들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

 부둣가 식당에서 간단히 식사를 마치고 짐가방을 풀기 위해 숙소부터 찾아 나섰다. 예약한 숙소 이름은 ‘프랑수아 1세였다. 한국에서 숙소를 고를 때, 원래는 바다가 보이는 숙소를 골랐다가, 마음을 바꿔 이 숙소로 정했다. 구시가 중심에 위치한 17세기 건물이라고 해서, 여기서 하룻밤을 보낸다면 당시 위그노들의 마음을 상상하기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였다.

그림과 글로만 보며 상상했던 역사적인 장소에 직접 와 보는 일은 언제나 가슴 뿌듯한 일이다. 특히 라 로셸처럼 역사의 기록이 건축물에 고스란히 잘 보존된 경우는 더욱 그렇다. 이 도시는 작아서 어디든 도보로 충분히 이동할 수 있다. 시내에 숙소를 잡고 1박 2일로 다니는 것을 추천하지만, 일정상 불가피하게 당일치기를 할 경우 조금 바삐 움직여야 한다. 파리 기준으로 기차 시간이 3시간은 걸리기에, 왕복하려면 시내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 일찌감치 새벽기차를 타는 것은 필수이다. 가벼운 발걸음을 위해, 무거운 짐은 숙소에 두고 오거나 기차역에 보관하고 움직이자.

▲ 도심 관광코스를 알려주는 표지판 맨 아래에 앙리4세 호텔이 보인다.
▲ 도심 관광코스를 알려주는 표지판 맨 아래에 앙리4세 호텔이 보인다.

길을 걷다가 방향 표지판에 ‘앙리 4세’ 호텔을 발견하고 미소 지었다. 어딜 가나 앙리 4세로구나. 우리가 머무는 곳 이름은 르네상스 문화를 사랑했던 프랑수아 1세. 프랑스인들이 사랑하는 두 왕, 프랑수아 1세와 앙리 4세의 이름을 딴 호텔이 라 로셸에 있고, 그중 하나에 묵는다는 사실이 재미있다. 다만 글을 쓰면서 생각해보니, 종교개혁 탐방팀이라면 프랑수아 1세보다는 앙리 4세 이름이 붙은 호텔에서 묶는 것이 역사적 맥락에서 더 어울리지 않나 싶다.

▲ 추천 동선은 기차역에서부터 위와같이 시계방향으로 걸어서 움직이는 것이다.
▲ 추천 동선은 기차역에서부터 위와 같이 시계방향으로 걸어서 움직이는 것이다.

라 로셸은 중요하기 때문에 총 3회에 걸쳐 연재한다. 가장 먼저 가볼 곳은 라 로셸 프로테스탄트 박물관이다. (이 박물관 투어와 관련된 자세한 이야기는 뒤에서 하기로 한다.) 박물관 투어를 마치고 항구 근처를 여유롭게 걸어 다니다 보면 자연스럽게 발걸음이 향하는 곳은 라 로셸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두 개의 탑 중에 한곳이 될 것이다. 이 탑들에 대한 이야기도 따로 다룰 것이다. 이어지는 글에서 우리는 이 도시를 지키는 상징이자 구원의 횃불이었던 두 개의 탑을 방문할 것이며, 세 번째 글에서는 라 로셸의 위그노 후손들과 프로테스탄트 박물관을 소개하도록 하겠다.


황희상
기독교 교리, 역사, 교육 등의 책을 집필하는 작가이다. 『특강 소요리문답』과 『지금 시작하는 교리교육』은 한국교회에 교리교육의 바람을 일으켰으며, 『특강 종교개혁사』는 ‘웨스트민스터 총회’에 대한 충실한 소개로, 종교개혁의 후손들이 지향할 바가 무엇인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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