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어떻게 샹티 성을 버릴 수 있었을까
그는 어떻게 샹티 성을 버릴 수 있었을까
  • 황희상
  • 승인 2019.06.27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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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누와용“편에 이어 이후 몇 편에 걸쳐서 파리 근교와 프랑스 외곽 도시들을 다니면서 “흩어진 종교개혁자들”의 이야기를 더 찾아보기로 하자.

참 아름다운 성채다. ‘오만과 편견’에서 엘리자베스가 미스터 다아시의 대저택을 보았을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영화에서 본 그 어떤 저택보다 아름답고 웅장하고 날렵하고 맵시 있다. 지금 우리가 탐방할 곳은 콜리니 제독의 집안이 살았던 샹티 성(Château de Chantilly, 샤또 드 샹티)이다.
 

콜리니 제독은 누구인가? 우리가 왜 여기까지 와야 하고, 굳이 이런 사람까지 알아야 하나? ‘가스파르 드 콜리니’는 종교개혁이 한창이던 시절 프랑스 해군 제독이었다. 집안도 좋고 유력했지만 개신교 사상을 받아들여, 힘들어하던 위그노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던 사람이다. 그는 아직 공개적으로 개신교를 표방하기 전부터도, 위그노들을 탄압을 피해 브라질 식민지로 보내서 안전하게 살도록 하는 계획을 세웠을 정도로 종교개혁에 우호적인 인물이었다. 위그노 전쟁이 일어나자, 콜리니 제독은 위그노 편에서 싸웠다. 초반에는 그리 적극적으로 싸웠던 것은 아니었지만, 워낙 전쟁의 형편이 군급 했고 지도자는 부족했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 가장 영향력 있는 위그노 지도자의 위치에 서게 되었다.

그러던 차에 스페인과 프랑스가 전쟁에 돌입하면서, 프랑스 내부의 단결을 위해 카톨릭과 개신교가 단합해야 했고, 이때 콜리니 제독이 큰 역할을 한다. 그러나 문제의 '카트린 드 메디치(*“파리(paris) : 종교개혁자들의 바벨론”편 참조)'는 그를 자신의 정적(政敵)으로 여겼고, 음해와 모략 끝에 저 유명한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 학살'을 일으켰다. 즉, 이 말도 안 되는 대 학살극은 결국 ‘콜리니 제독’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었다. 사주를 받은 용병들은 가장 먼저 콜리니 제독의 집부터 공격했고, 안타깝게도 그는 그 자리에서 처참하게 순교한다.

▲콜리니 제독의 죽음을 묘사한 삽화

콜리니 제독은 그렇게 죽을 필요가 전혀 없던 사람이다. 가만히만 있으면 어마어마한 영지를 물려받아 죽을 때까지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인물이었다. 콜리니 제독이 몸담았던 몽모헝시 가문(House of Montmorency)은 왕의 친인척 관계로서 가족들이 군권과 교권에 두루 포진되어 있었다. 엄청난 재력을 소유했기에, 왕도 함부로 대하지 못한 위세였다. 콜리니 제독은 이 성의 소유주인 콩데 공작(Guillaume de Montmorency)의 외손자였다. 그 자신도 이미 높은 지위에 올라 실력을 인정받은 자였다. 그런 그가, 왜, 말 그대로 ‘그 모든 부귀영화를 다 버리고’ 위그노 지도자가 되었을까. 이곳 샹티 성을 직접 보기 전까지는 뭐 그럴 수도 있지,  양심적인 사람이었나 보군 - 정도로 생각했다. 그러나 샹티 성에 들어선 순간부터 필자는 콜리니 제독의 선택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샹티 성은 소정의 입장료를 받는다. 입장 티켓 종류가  다양한데, 일단 성만 둘러보는 표를 구입하자. 정문으로 돌아서 들어가도 되지만, 소규모 인원이 움직인다면 지름길(?)을 이용하자. 해자를 건너자마자 왼쪽으로 가서 레스토랑으로 들어가면, 한쪽에 기념품과 도서를 파는 공간이 보인다. 그곳으로 이동해서 더 안쪽을 보면 아름다운 나선형 계단이 나타난다. 성 내부로 곧장 진입한 것이다.

나선형 계단에 오르면서 아이보리빛 대리석 계단과 금박을 입힌 듯 반짝이는 철제 계단 손잡이의 섬세하고 부드러운 마감을 느껴보자. 흰색과 금색, 붉은 색과 푸른 색이 조화와 절제를 이루면서 화려하면서도 우아하게 위엄을 뽐내는 천장 디자인과 치밀하게 꾸며진 각종 인테리어에 황홀한 느낌에 빠질 것이다.
 

몽모헝시 가문의 일가가 성 안에서 예배드렸던 개인 예배실도 놓치지 말자. 유리 창문을 장식한 스테인드글라스 디자인이 찬란한 빛을 뿜는다. 고서가 빼곡히 꽂혀 있는 아름다운 서재도 보고, 거기 진열되어 있는 ‘중세 출판물’도 구경해보자. 갈색 톤으로 차분하게 가문의 역사와 성경 인물 등을 소개하는 패널도 있는데, 정보를  처리하는 기법도 놀랍지만, 미적 측면에서도 아름다움의  극치다.
 

“콩데 뮤지엄”이라는 이름으로 운영되고 있는 샹티 성은 그 자체로 살아있는 역사박물관이었다. 종교개혁사 탐방팀은 이곳에서 마치 복습하는 기분으로 전시물들을 둘러볼 수 있을 것이다. 종교개혁사에 등장하는 ‘아는 인물’이 꽤 나올 것이다. 샹티 성은 대도시의 웬만한 박물관 저리 가라 할만큼 전시품의 숫자가 많았고 또 전시 수준도 훌륭했다.

성 한 켠 뾰족한 첨탑은 조금 전에 둘러본 몽모헝시 가문의 예배실인데, 실내에서도 아름다웠던 스테인드글라스가 맞은편 창문에서 들어오는 역광에 비쳐서, 바깥에서 봐도 영롱하게 빛을 발한다.
 

성 뒤편에 좌우 대칭을 이룬 아름다운 호수 정원과 분수까지 구경하다 보면 그냥 여기서 살고 싶어질 것이다. 하지만 파리 일정 중에 이곳에 왔다면 시간이 한없이 많지는 않다. 정원 쪽에서 성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으며 아쉬움을 달래보자.

콜리니 제독은 이런 찬란함을 다 버리고 개신교 신앙을 택했다. 재물과 권력뿐인가. 끝내는 그의 목숨까지도 신앙의 형제들을 위해 바쳤다. 화려한 샹티 성 내부를 거닐면서 잠시 콜리니 제독이 겪었을 고뇌와 고통을 상상해보자. 맑은 하늘, 찬란한 햇빛 아래에서 쨍하니 빛나는 샹티 성의 아름다움과 위용이 우리를 압도하면 할수록, 콜리니 제독이 버려야 했던 물질적인 것들, 얽혀있는 관계들, 또한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 뒤따라야 했을 사람들의 희생이 얼마나 깊고 넓었을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이 깊어진다.  믿음도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고, 그에 따른 삶 역시 하나님 손에 놓여 있다. 우리의 인생은 어떻게 빚어가실까. 어떻게 단련해 가실까. 우리가 버려야 할 샹티 성은 무엇일까. 모든 것이 다 주의 손에 있음을 인정하면 어떤 인생이 펼쳐지든 자족할 수 있다. 그런 마음 주시기를 간구한다.
 


황희상
기독교 교리, 역사, 교육 등의 책을 집필하는 작가이다. 『특강 소요리문답』과 『지금 시작하는 교리교육』은 한국교회에 교리교육의 바람을 일으켰으며, 『특강 종교개혁사』는 ‘웨스트민스터 총회’에 대한 충실한 소개로, 종교개혁의 후손들이 지향할 바가 무엇인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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