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사는 게 낫다
그래도 사는 게 낫다
  • 송광택
  • 승인 2019.06.18 10: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다시 시작하라_ 도로시 파커

면도칼은 아프고
강물은 축축하다
산(酸)은 얼룩을 남기고
약은 경련을 일으킨다.
총기 사용은 불법이고
올가미는 풀리며
가스는 냄새가 지독하다
차라리 사는 게 낫다.

 

도로시 파커(Dorothy Parker, 1893-1967)는 미국의 시인, 단편 작가, 비평가. 풍자 작가이다. 재치 있는 농담과 20세기 도시인의 어리석음과 약점에 대한 예리한 통찰로 유명하다.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도로시 파커는 <뉴요커>(The New Yorker) 같은 매체에 발표한 문학 작품 때문에 그리고 알공킨 원탁모임(Algonquin Round Table)의 창설 회원이라는 이유로 갈채를 받았다.

그녀는 최초의 시를 1914년 <베니티 페어>(Vanity Fair) 지에 발표했고, 수개월 후 콩데 나스트(Condé Nast)의 간행물인 <보그>(Vogue) 지의 부편집자가 되었다.

파커는 1926년 첫 시집 <충분한 밧줄>(Enough Rope)을 출간했고, 4만 7천 부나 팔리면서 베스트셀러가 되고 평론가들로부터도 호평을 받았다.

알공킨 원탁모임이 해체된 후 파커는 할리우드로 갔고, 거기서 성공을 거두었다.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른 〈스타 탄생 A Star Is Born〉(1937)을 포함해 15편 이상의 영화 대본을 썼다. 도로시 파커는 두 차례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라갔는데, <스타 탄생>(A Star Is Born〉(1937)을 포함해 15편 이상의 영화 대본을 썼다.

1930년대와 1940년대에 파커는 시민의 자유와 인권과 같은 대의명분을 위해 목소리를 점차 높였다. 파커는 1967년 6월 7일, 심장마비로 73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이 시는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흘끗 보는 독자라고 섬뜩함을 느낄지 모른다. 사실 그렇다. 다양한 자살 방법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면도칼은 아프고 / 강물은 축축하다/ 산(酸)은 얼룩을 남기고 / 약은 경련을 일으킨다.”

1980년대 초 종로서적에서 나온 <자살에 관한 어두운 백서>를 읽은 적이 있다. 프랑스 인권변호사 드니 랑글로와가 수천 명의 자살 사례를 심도 있게 연구한 결과물이다. 백서라는 말처럼 한 개인이 죽어가는 과정을 재구성하여, 이 사람이 왜 결국 자살을 선택하게 됐는지는 생각하게 만든다. 이 책에서 랑글로와는 “자살은 자살한 자의 곁에서 살았던 사람들, 그 사람들의 존재와 애정이 자살자가 죽음을 거부할 만큼 충분하지 못했던 사람들에 대한 질책”이라고 말한다. 자살에 대해 한두 마디로 ‘단순하게’ 정죄하는 일이 얼마나 가벼운 판단이 될 수 있는지 이 책은 잘 보여준다. 청년 시절의 내게 깊은 인상을 준 책 가운데 하나다.

시인은 이 시의 마지막 행에서 ‘차라리 사는 게 낫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자살을 시도하려는 이에게 툭 던지는 한 마디가 아니다. 그의 고통과 아픔에 깊이 공감하는 데서 나온 위로와 응원이다. 어떤 이에게 삶은 기대와 소망을 불러일으키지만 그렇지 못한 처치에 있는 이들도 많다. 극단적 선택을 생각하는 이에게 시인은 조용히 다가가 말한다. 그래도 사는 게 낫다고.

마음이 무너져 내린 이에게 필요한 것은 많은 말이 아닐 것이다. 가벼이 등을 토닥이며 안아주는 작은 몸짓이 그 사람을 일으켜 세울 수 있다. 주저앉은 이 옆에 함께 앉아서 그의 한숨 소리를 들어주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에게 친구가 되어주고, 아직 세상에 사랑이 힘이 남아 있다는 것을 보여줄 때 당신은 죽음의 그림자를 밀어내고 생명의 빛을 초대하게 된다.


송광택
한국교회독서문화연구회(www.bookleader.org) 대표
크리스찬북뉴스(www.cbooknews.com) 편집 고문
바울의 교회 글향기 도서관 담당목사
한국기독교작가협회 고문
계간 국제문학 신인작품상 심사위원
고정필자 : 
유럽 크리스천신문, 월간 신앙세계, 월간 교사의 벗 '테마독서',
주간 기독신문 '힐링독서' 북리뷰, 주간 크리스천투데이 인문고전 북리뷰
주간 들소리신문 독서칼럼, 한통신문 자문위원 & 인문고전 북리뷰 고정필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