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적 예배에 참여하라
반복적 예배에 참여하라
  • 크리스찬북뉴스
  • 승인 2019.06.17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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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사람들은 공 예배에 대한 회의적 관점들이 늘어가고 있다. 점점 “가나안 성도(이 단어는 ‘안나가’를 거꾸로 뒤집은 단어이다)”가 늘어나고 개인적 방식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간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원인이 있다고 본다. 첫째는 교회(목회자와 성도, 시스템을 총칭하여)의 부패에 대해 실망감을 느끼고 개인적 신앙생활을 선택한 경우이다. 그리고 놓치지 말아야 할 두 번째 이유로는 ‘편의주의’이다. 그냥 교회 나가는 것이 싫고, 귀찮고, 이것저것 부담되고 자신의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않기 때문에 교회에 나가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이 사회에 만연한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와 물질주의에 물든 것이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경배하기보다는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 구입하는 즉, 하나님을 소비하는 사상에 젖어 있는 것이다. 

종교개혁의 여파 

이러한 하나님과 예배를 소비하는 현상의 원인에 대해 저자 스미스는 종교개혁의 여파라고 지적한다. 종교개혁자들과 그 후예들이 로마가톨릭과 결별하면서 전통과 예전적 의식들을 제거한 ‘이성 중심의 말씀’에 치중하면서 ‘상징과 신비와 의식(전통적 예전)’을 제거하면서 거룩한 ‘상상력(주술, 신비)’까지 없애 버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믿음’은 ‘이성적 동의’에 머물면서 사람들의 실제 삶에는 별다른 영향력을 주지 못하는 현실에 처했다는 것이다. 즉, 근대의 이성주의가 기존의 기독교 봉건체제와 문자주의의 한계를 고발하고, 포스트모던의 사상이 그동안의 보편적 문자주의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성경에 대한 신뢰도까지 떨어지게 된 데다가 성직자들과 교회 중직자들의 각종 비리와 부도덕의 실체가 하나씩 드러나는 가운데 더 이상 교회는 희망은 고사하고 무익한 집단을 넘어 해로운 집단으로까지 인식되고 있다.

성육신

스미스는 끊임없이 현재 개신교회의 이성 중심의 신앙교육에 질문을 던진다. 앞 부분에서는 ‘인간은 몸을 가진 존재’임을 피력하면서 이성만으로는 예배를 드릴 수 없고, 온전한 예배에는 몸까지 참여한 예배가 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세속의 문화(예전) 젖어 드는 이유가 바로 이들은 몸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그 몸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몸을 참여시키게 하는 점을 피력한다. 그럼에도 과거 구도자 중심의 교회(예배)가 세속의 예전(문화)을 흉내 냄으로 복음의 내용과 질적인 하락(타락)이 왔음을 경고하면서, 스미스는 ‘전통적 예전의 회복’을 강조한다.

스미스는 ‘몸’, 즉 ‘성육신’이 그리스도교의 신비 핵심임을 강조하며, 하나님은 우리의 이성에 계시 하시지만, 인간의 몸으로 성육신 하심으로서 이성과 정서(체험)된 모든 예언들이 성취되었음을 강조한다. 그렇다.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 마음에 있지만, 하나님 나라의 성취는 이 땅(몸, 물질) 위에(우리 몸<순종>을 통해) 이루어진다(새 창조). 그래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이 되어야 한다.

습관
 
추측에 불과하지만, 이 마지막 부분을 보면서 이 책의 영감은 저자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강의하면서 받은 것 같다(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바를 추구한다. 이 책의 원제인 “당신이 사랑<행동>하는 바가 바로 당신이다”). 그래서 책의 1-3장까지 ‘이성’과 ‘행위(습관)’에 대한 철학적 설명들이 다소 복잡하게 다루어진다(철학 교수라서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계시의 문제는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계시에 있어서 이성의 한계는 충분히 동의가 되지만, 행위와 습관(정서적 영역)이 계시의 중심이 된다는 논지는 다소 억지스럽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저자가 주장하고 있는 ‘전통 예전의 회복’은 우리의 습관(반복적 행위로 형성된 덕)으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에 적극 동의가 된다. 즉, 저자가 말하고 있듯이 이성적 인식의 변화만으로는 그 사람의 행동과 삶을 변화시키는 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또한 자신이 무엇(누구)을 사랑하는지는 그 사람의 말을 듣고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행동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래서 습관을 재형성하는 것은 그 사람이 사랑하는 바를 재형성하는 것에 이성적 교육보다 훨씬 탁월하다. 그리고 저자는 진정한 하나님(하나님 나라)을 사랑하는 자들로서의 회복과 구원의 변화를 위한 가장 좋은 교육으로서 ‘전통적 예전’을 꼽고 있다. 정기적이고 반복적인 예전의 참여를 통해 새로운 습관(사랑으로 행동함)을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 예전의 내용이 매우 중요하지만, 예전의 내용은 이 책의 범위가 아니다(5장과 6장에 살짝 공개가 되지만).

이 책은 목회자들이 꼭 읽었으면 하는 책이다. 그리고 가나안 성도들도 꼭 읽었으면 좋겠다. 목회자들에게는 예전의 중요성을 다시 생각해 보면서 정기적으로 드려지는 현재 자신의 목회 현장에 대한 궁극적 성찰을 하게 하고, 가나안 성도들에게는 정기적 예전이 주는 중요한 가치를 깨닫게 해 주기 때문이다.

습관이 영성이다/ 제임스 K. A. 스미스/ 박세혁/ 비아토르


강도헌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본 서평의 저작권은 크리스찬북뉴스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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