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떼 섬의 노트르담 사원, 그리고 안타까운 화재
시떼 섬의 노트르담 사원, 그리고 안타까운 화재
  • 황희상
  • 승인 2019.05.23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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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는, 파리 종교개혁 답사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노트르담 사원’을 보러 간다. 파리 시내 중심부, 시떼 섬 동편에 있다. 사실 이곳도 종교개혁이 직접적으로 일어난 사적지는 아닌데, 종교개혁이 왜 일어났는지를 적나라하게 볼 수 있는 장소이기 때문에 찾아가는 것이다. 노트르담 사원은 파리 관광지의 핵심부이기도 하므로, 어쨌거나 들러봐야 하는 곳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글을 다 쓰고 잠든 바로 다음 날, 2019년 4월 16일 아침, 충격적인 소식이 들렸다. 파리 노트르담 사원에 화재가 발생해서, 많은 부분이 전소되고 첨탑까지도 붕괴되었다는 뉴스였다. 참담했다. 복원을 한다 하더라도, 수백 년의 역사가 켜켜이 쌓인 그 문화재의 느낌까지는 되살릴 수 없을 것이다. 종교개혁지 탐방 시리즈에서 노트르담 사원을 소개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향후  몇 년간 정상적인 내부 관람은 불가능할 것이 분명하다. 가능한 속히, 그리고 최선을 다하여 복원되기를 바랄 뿐이다.

▲ 세느강 한 가운데는 유명한 시떼 섬이 있다. 그 섬 동편에는 시떼 섬보다 더 유명한 노트르담 사원이 있다.

노트르담(Notre Dame)은 ‘우리의 성모 마리아’란 뜻으로, 고유명사가 아니라 이곳저곳에서 다 사용하는 명칭이다. 그래서 다른 지역과 구분하기 위해 노트르담 드 파리(Notre Dame de Paris : 파리의 노트르담 사원)라고 부른다. 시민혁명 때 분노한 시민들이 건물 상당 부분을 파괴해버렸지만, 빅토르 위고의 소설 ‘노트르담의 꼽추’가 유명해지면서 예전처럼 다시 복원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한양 옛 터를 복원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좀 더 그럴싸한 소설을 써서 히트를 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웅장한 스케일의 노트르담 사원 외양을 바라보며 세느강 주변을 잠깐 거닐어보자. 힘을 분산해주는 지지대이자 빗물을 흘려보내는 설치물이 악마와 괴물 형상으로 만든 ‘가고일’과 함께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가고일을 가까이서 직접 보면 참으로 기괴하다. 구름이 뒤덮어 해를 가리면 유럽의 석조건물들은 금세 음침한 기운을 뿜어낸다. 중세 시대, 무지한 신자들은 이 형상을 보며 잔뜩 움츠러들었다가, 건물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안전지대에 발을 디딘 안도감을 가졌을 것이다. 가고일을 바라보며 ‘성속 이원론’이 주는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느낀다. 중세 건물의 익스테리어는 신자로 하여금 죄와 저주의 올무에서 도무지 벗어날 수 없게 한다. 이러한 장치들에는 신자에게 겁을 주어 반대급부로 교회의 권위를 부각시키려는 의도가 담겼다. 이는 구원의 확신을 무너뜨리고 신자의 삶을 무가치하게 만드는 마귀의 달콤하고 강력한 수단이다. 그래서 종교개혁자들은 이 같은 성속 이원론을 극복하고자 성당 건물 내외부의 장식을 제거하고, 신앙고백서와 요리문답을 작성해서 끊임없이 올바른 교리를 가르쳤다. 

성당 서쪽면

사람들이 드나드는 사원 입구 벽면을 파사드(Facade)라고 부른다. 바로 위 왼쪽 사진을 보자. 중심에 가장 크게 심판 주 그리스도와 천사 미카엘 등이 서 있다. 자비를 구하는 듯 두 손을 모으고 빌고 있는 마리아의 모습도 보인다. 그리스도의 발아래엔 심판의 그날이 묘사된다. 저울추를 들고 서 있는 천사와 악마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천사 편에 서 있는 사람들은 천국에 들어가고, 악마 편에 서 있는 사람들은 포승줄에 매여 지옥으로 끌려간다. 그 아래엔 무덤에서 일어나는 사람들의 형상이 있다.

위층 테라스에 서있는 조각상을 보자. 우울하게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숙인 사람의 형상이다. 누가 생각나는가? 그렇다. 선악과를 따먹은 후 입사귀로 몸을 가리고 서 있는 아담이다. 아담의 반대편 테라스에는 하와 형상이 서 있다.

이런 조각상들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일까. 중세 교회는 신자들이 성당을 드나들 때마다 무서운 심판과 종말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죄, 죽음, 지옥의 공포로 인해 한껏 위축된 신자들은 속이고 지배하기 쉬운 대상으로 전락한다. 소위 ‘우민화 정책‘이다. 건물 한 채 제대로 지어놓고, 모든 종교 서비스는 사제들이 담당하고, 신자가 할 일은 헌금뿐이다. 지식을 배우지 못한 신자들 입장에서도 이는 참 편하고 좋은 일이다. 돈만 내면 내 구원을 담보해준다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이런 시스템 뒤편에, 말씀과 복음은 감춰지고 말았던 것이다.

단편적인 지식만 계속 주입하는 교육의 결과는 얼마나 비참한가.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자기 뜻을 계시하시기 때문에, 신자는 성경을 펼쳐 읽어야만 비로소 하나님을 알 수 있다. 특별히 설교자는 성경이 말하는 것을 최대한 전하고, 말하지 않는 것에서는 멈추어야 한다. 중세 교회의 고위급 성직자들이 아무도 복음을 몰랐을까? 그건 아니었다고 본다. 다만, 그들은 그 귀한 복음을 자신들만 소유하고 신자들과 공유하지 않았다. 그렇게 방치된 신자들에게는 온갖 잡다한 비복음적 신화와 사상들이 덧씌워지고 만다. 종교 지도자들은 그러한 오류를 수정해주고 올바른 길로 지도해주기는커녕, 오히려 그것을 이용해서 자신들이 원하는 세상을 구축했다.

성당 내부
(* 앞에서 말한 것처럼, 화재로 인해 내부 관람이 당분간 불가능할 것이고, 내부 구조도 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지금부터 이 글은 ‘과거형’으로 표현하면서, 짧게 마무리하겠다.)
 

 

관광객들로 언제나 발 디딜 틈이 없는 사원 내부. 입장료는 무료였지만 줄을 좀 서야 했다. 성당 한쪽에는 노트르담 성당 건축 발전사를 요약해둔 팸플릿이 있었고, 다른 한편에는 ‘기도를 대신해 주는 촛불’ 구입처가 있었다. 헌금 하라는 문구가 바로 눈에 띄었다. 유럽 어느 나라를 가든지 성당에 들어가면 건물(문화재) 유지를 위해서라도 기부를 요청하는 안내표지판이 있곤 하는데, 파리의 노트르담에 적혀 있는 문구는 조금 색달랐다. ‘헌금은 여러분들의 자발적인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하는 것입니다’라고, 꽤 큰 글씨로 적혀있었다. 시민혁명의 철퇴를 맞았던 기억 때문일까? 그 어투에 조심스러움이 잔뜩 묻어있다. 종교심과 경쟁심, 체면 등을 자극해서 어떻게든 헌금을 더 걷어내려 혈안이 된 한국의 몇몇 교회들이 떠올랐다. 우리는 언제쯤 정신을 차릴까. 신자들은 언제 그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성당 내부에는 스테인드글라스와 예수님의 생애를 묘사한 부조작품, 그리고 성경의 이야기를 표현한 몇 개의 작품이 더 있었다. 중세 교회는 성경 말씀보다는 이러한 그림과 조각상을 통한 교육에 더 신경을 썼다. 이것도 하나의 교육 수단이기는 하나, 신구약 하나님의 말씀이 풍성하게 가르쳐지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다. 단편적이고 인상평에 치중하는 지식 위주로 전달될 뿐이고, 상징이나 기호에 집착하는 신비주의에 빠지기 쉽다. 이런 분위기는 중세 문화 전반에 영향을 끼쳐, 건축물과 그림에 온갖 기호를 넣고, 음악, 미술, 조각 등의 예술품과 예식 행위 등에도 억지스러운 상징이 가득 담겼다.

사원 내부, 가장 깊숙한 곳에는, 노트르담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성모 마리아 조각상이 있다. 뒤로 돌아가 보면 마리아상 뒤편에 조각상 하나가 누워있다. 누구일까? 모자와 옷에 화려한 보석이 달려 있었을 텐데, 보석은 누가 다 떼어가고 보석 붙였던 자국에 페인트가 칠해졌다. 성당의 가장 알짜(?) 자리에, 그것도 성모 마리아 옷자락 바로 뒤에 무덤을 만들었으니, 적어도 엄청난 부자였음은 틀림없다. 이 석상을 바라보며 마음이 무거워졌다. 우리가 추구하는 바른 신앙이란, 죽어서 이런 곳에 묻히기를 바라는 그런 것은 아닐 터... 한참을 바라보다 노트르담 사원을 빠져나왔다.

* 파리의 노트르담 사원은 화재로 인한 손상을 복원하는 동안 입장이 불가할 수 있다. 그렇다면 파리에서 갈 수 있는 대체 장소는 어디일까. 그리 멀지 않은 곳(도보 1.4km)에 성 유스타슈 성당이 있다. 프랑스 발음으로는 ”쌩퇴스타슈“에 가깝다. 파리 시청(Les Halles:레 알)역 광장 바로 앞에 있다. 웅장하고 독특한 기둥들이 인상 깊다.


황희상
기독교 교리, 역사, 교육 등의 책을 집필하는 작가이다. 『특강 소요리문답』과 『지금 시작하는 교리교육』은 한국교회에 교리교육의 바람을 일으켰으며, 『특강 종교개혁사』는 ‘웨스트민스터 총회’에 대한 충실한 소개로, 종교개혁의 후손들이 지향할 바가 무엇인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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