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찾아야 할 가치
되찾아야 할 가치
  • 송수민
  • 승인 2019.05.21 09: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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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하고 자유롭게, 자기 생각을 담아서 쓰면 됩니다.”

어른들을 대상으로 하는 글쓰기 강의에서도, ‘토론과 글쓰기라는, 어마 무시하게 지루함을 풍기는 학교 수업 시간에도 항상 강조하는 말입니다. 말은 쉽습니다. 다만, 우리가 솔직하기 어렵고, ‘자유롭지 않으며, ‘생각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른다는 데서 어려움이 생깁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저 스스로 경험하고 목격한 일을 포장 없이 얼마나 솔직하게 전달할 수 있을지 확신하기 어렵습니다. 글을 읽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면 평소에 쓰지 않는 단어도 슬쩍 집어넣고 빌려온 생각을 내 생각으로 둔갑시켜 한껏 폼을 잡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면 자유롭지 못하고 생각이 굳어버립니다. 심지어 라는 존재의 실체가 드러나는 것 같아 두려움이 엄습할 때도 있습니다.

성인들에게는 삶의 경험이 축적돼 있기 때문에 쓸 수 있는 말들이 가슴속에 많이 담겨있습니다. 청소년과 어린이들에게도 할 말들이 가슴에 담겨있지요. 때로는 어른들보다 더 나은 글이 아이들에게서 나오기도 합니다. 숨어있는 말들을 밖으로 꺼내는 과정이 어려울 뿐입니다. 한 줄짜리 글을 쓰는데 어르고 달래며 수십 분이 걸리기도 하고, 협박과 회유의 과정을 거치며 실랑이를 벌이기도 합니다. 이미 속에 있는 말들을 솔직하고, 자유롭게풀어내는 일이 왜 그렇게 어려운 걸까요?

글을 잘 쓰기 위해서 삼다(三多)를 하라는, 널리 알려진 글쓰기 비법을 이야기하려는 데 글의 목적이 있지 않습니다. ‘좋은 글은 좋은 삶에서 나온다라는 원론적인 이야기를 나누려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실패하고, 갈등이 있고, 절망스러운 상황에서 좋은 글이 나옵니다. 인류는 이미 좋은 글들을 이라는 형태로 보유하고 있지요. 좋은 책을 읽는 게 인생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은 아이들부터 어른들까지 모두가 동의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좋은 텍스트를 읽는 게 힘들고, 심지어 싫기까지 할까요. 이 부분에서 좋음이라는 단어가 담고 있는 가치에 균열이 생긴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을 제기해 봅니다.

독서 모임에서 만나는 많은 아이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걸 아주 싫어합니다. 관심 주제의 책 읽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은 더러 있지만 글쓰기는 대체로 어려워하고 꺼립니다. 읽고 쓰기를 정말 싫어하는 초등학교 고학년 남자아이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첫 만남에서 간단한 글을 써보자는 요청에 눈을 뒤로 뒤집어 까고 몸을 앞뒤 좌우 위아래로 불규칙하게 사정없이 흔들며 포효하던 모습에 당황한 기억이 있습니다. 갈수록 아이들이 이상해진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정상적인 아이가 하나도 없다는 학교 선생님의 절망 섞인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에는 이상행동(?)을 보였던 아이들을 떠올리며 한바탕 웃고 넘겼지만 교사도, 아이들도 감당하기 힘든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 한편이 쓰렸습니다.

지금 시대를 가치가 무너진 시대라고들 이야기합니다. 대체로 동의하지만 지금에 강조점을 두고 싶지는 않습니다. 인간의 삶에는 항상 가치에 반하는 사건과 사고에서 비롯된 결핍과 고통이 있었고, 가치 회복을 위한 움직임과 외침이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잃어버린 가치에 중점을 두고 탄식할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회복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초점을 맞추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책과 글쓰기로 만나는 아이들의 질문에서 빠지지 않는 주제가 있습니다.

선생님 연봉이 얼마예요?”

선생님 자산이 얼마나 되세요?”

이 모임하고 하루에 얼마 받으세요?”

이런 질문을 하는 아이들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충분히 궁금할 수 있고 물어볼 수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언젠가 도서관에서 만난 아이와 가치를 주제로 주고받은 대화 이후에 스스로를 돌아보게 됐습니다.

돈보다 중요한 것들이 많아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많다는 이야기지요. 선생님도 인생에서 돈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돈 벌려고 여기 오신 거잖아요.”

아니에요, 여러분들이 계속 오겠다고만 하면 얼마든지 무료로도 할 수 있어요.”

에이, 거짓말.”

그 순간만큼은 무료로 할 수 있다는 말을 진심이라고 믿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돈 벌러 왔다라는 질문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습니다. 과연 도서관에서 단 한 푼도 주지 못한다고 했을 때 아이들과 모임을 이어갈 수 있을까. 던진 말이 있으니까 어느 정도는 모임을 계속하겠지만 결국 바쁘다는 핑계를 대면서 중도 포기하게 될 거라는 게 분명했습니다(물론 정당한 대가를 받고 일을 하는 게 당연합니다). 의도치 않게 거짓말을 하고 말았지요. 솔직하고 자유롭게 생각을 말하고 쓴다는 게 이렇게 어렵다는 걸 새삼 깨달았습니다. 아이들이 최우선으로 여기는 가치가 무엇이고 왜 그 가치를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됐는지는 따로 이야기하지 않아도 되겠지요.

책면돌파를 시작하는 이유입니다. ‘왜 읽고 써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답하라고 한다면 사람마다 각자 다른 대답을 할 수도 있을 테지만, 책면돌파에서는 잃어버린 가치를 되찾을 목적으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모임의 이야기, 책 이야기를 담고자 합니다. 각 분야의 도서를 소개하면서 책이 담고 있는 주제와 시대의 이슈를 연결하면서 어떻게 하면 솔직하고 자유롭게 자신을, 세상을 바라볼 수 있을지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가치를 잃어버렸다는 건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래도 다시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이 있습니다. 모든 인간이 신이 되고자 하는 시대에 잃어버린 가치를 되찾는다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함께 의견을 나누다 보면 분명 길을 찾을 수 있게 되리라 믿습니다.

하이타니 겐지로의 상냥한 수업에 소개된, 중학생 소녀가 쓴 글을 소개하며 끝을 맺습니다.

우리보다 세상을 오래 산 어른들에게 배우고 싶은 것은 수학이나 영어만이 아닙니다. 인간으로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배우고 싶습니다.

우리는 아직 어리니까 앞으로 많은 벽에 부딪힐 테고, 어쩌면 산산조각이 나버릴지도 모릅니다.

그때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와 벽을 마주할 수 있는 힘을 어른들에게 배우고 싶습니다.”


송수민
사단법인 땡스기브 후원사업팀 팀장. 독서 진흥 간행물 <땡스북> 편집을 담당하면서 시대의 문화를 이해하고 분별하는 일의 중요성을 공유하기 위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모임을 만들어 왔다. 초, 중, 고등학교, 도서관 등에서 학생들과 만나 책을 중심으로 모임을 하면서 좌충우돌하고 있다. 아웃사이더를 자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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