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델베르크성, 요리문답을 잉태하다!
하이델베르크성, 요리문답을 잉태하다!
  • 황희상
  • 승인 2019.05.09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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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당시 하이델베르크는 같은 독일에 있는 개신교 도시였지만 루터의 종교개혁과는 살짝 결이 달랐다. 시대적으로도 한 세대 뒤에 해당한다. 하지만 종교개혁 탐방에서는 비슷한 동선상에 있기 때문에 한번 움직일 때 같이 간다.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기 전에 여기서 잠깐 다른 그림 찾기를 해보자.

사진 좌측은 2003년에 찍은 것이고 우측은 2017년에 찍은 것이다. 최대한 비슷한 각도로 찍으려 했지만 카메라의 화각이 달라서 차이가 난다. 그러나 15년의 세월이 무색하도록, 달라진 것이 거의 없는 유럽의 도시들... 부럽기도 하고, 참 여러 생각이 든다. 여러분도 다른 그림 찾기를 해보시기 바란다.

루터파와 개혁파

이 도시는 같은 종교개혁이긴 하지만, 루터파가 아닌, ‘개혁파의 도시라고 할 수 있다.

이 부분은 잠깐 상식으로 짚고 넘어가자.

독일의 하이델베르크는 대학이 유명하다. 아주 오래전부터 이곳은 대학도시였다. 그만큼 이 도시는 학문의 중심지였다. 당연하게도, 당시 새롭고 진보적인 사상이었던 종교개혁의 논의는 주로 이런 학문의 도시에서 활발하게 일어났다. 즉 하이델베르크는 자유로운 학문의 장이었다는 것인데, 이 말은 바꿔 생각하면 다양한 의견이 뒤섞여 혼란스러웠다는 말도 된다. 같은 종교개혁의 흐름 안에서도 루터파, 칼뱅파, 츠빙글리파 등 다양한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러다 보니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해 토론이 활발했다. 어떤 때는 토론이 격해져서 싸움으로 번지기도 했다.

그래도 주거니 받거니 토론이 이루어질 때는 그나마 다행이었다. 문제는 힘의 균형이 무너지면서 발생한다. 1555아우구스부르크 화의라는 종교회의의 결과로 로마 가톨릭과 루터파 신교가 정식 종교로 인정되었지만, 칼뱅파 등 좀 더 엄밀한 종교개혁을 추구했던 개혁파는 공식적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이제 같은 개신교 지역에서도 긴장감이 돌기 시작했다.

이런 문제 앞에서, 팔츠 지역을 다스리던 프리드리히 3세는 신학적 입장을 정리해줄 필요를 느끼게 된다. 그는 독일 서남부 팔츠 지방의 선제후였는데, 적어도 그가 다스리는 지역 내의 교회가 신학적으로 통합되기를 바랐다. 통치자로서 종교적 논쟁이 사회 갈등으로 번질 것을 우려하기도 했겠지만, 무엇보다도 그는 그 자신부터가 올바른 신앙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루터의 책을 읽으며 개신교도가 되었고, 거기서 멈추지 않고 칼빈이나 츠빙글리의 책을 더 구해 읽으면서 균형을 잡으려 했던 귀한 인물이다. 그는 드디어 수소문 끝에 유능한 학자들을 하이델베르크로 불러 모은다.

※ 중세 독일에서는 ‘누가 황제가 될 것이냐’의 문제를 지방 영주들이 모여서 ‘선거’로 해결하는 제도가 생겼는데, 그렇다고 누구나 선거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고, 황제를 선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영주들이 따로 있었다. 그들을 가리켜, 선거를 할 수 있는 제후라고 해서 ‘선제후(選諸侯)’라고 부른다.
 

하이델베르그 교리문답(1563)

프리드리히 3세의 후원으로 드디어 훌륭한 학자들이 하이델베르크에 도착한다. 우르시누스와 올레비아누스라는 젊은 학자들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팔츠 지방에서 사용할 교회법과 초신자 및 청소년에게 교리를 가르칠 요리문답서작성에 곧바로 착수한다. 특히 우르시누스는 이미 몇 년 전부터 자신만의 요리문답을 두 개나 만든 경험이 있는 이 분야 전문가였다. 그렇게 전문가의 참여로 만들어진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곧바로 인정되어, 프리드리히 3세의 영향권에 속한 모든 학교와 교회에서 청소년들의 의무교육 교재로 사용되었으며, 주일 오후 장년에게도 설교되었다. 게다가 이 탁월한 요리문답은 팔츠 지방에만 국한해서 사용한 것이 아니다. 좋은 물건은 알아보는 눈이 있는 법. 출판 즉시 유럽의 여러 나라로 급속히 확산되어, 유럽 전역에서 역사상 가장 대중적으로 보급된, 요리문답의 전설이 된다. 이 요리문답은 시대를 관통하는 매력이 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도 배우는 것이 좋은데, 필자는 교리 학습서 중에서 특강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흑곰북스)을 추천한다. 읽기도 쉽고, 무엇보다도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전체 흐름을 파악하기 좋도록 되어 있다.

하이델베르크 성

 

성채에 올라 네카 강을 중심으로 길게 뻗은 마을들을 바라보자. 필자는 하이델베르크에 15년 간격으로 두 번 가봤는데, 크게 달라진 것이 없어서 놀랐다. 다만 전에는 시내에서 하이델베르크 성까지 계단을 걸어서 올라갔는데, 얼마 전에 갔을 때는 성 입구 바로 앞에 버스 주차장이 있어서, 거기서 하차했다. 편리해진 것은 좋은데, 한 걸음씩 계단을 오르던 그 운치 있었던 길을 잃은 듯해서 조금 아쉽다.

가이드의 설명도 15년 전과 거의 비슷했다. 아무리 그래도 종교개혁 유적 답사를 주제로 만든 패키지여행인데, 이 도시와 성이 종교개혁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를 설명하면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이야기가 빠지면 되나. 현지 가이드들이 이 부분을 조금이라도 공부해서 여행자들에게 알려주면 얼마나 좋을까. 아쉬움이 들었다.

이곳에는 대부분의 관광객이 꼭 들러보는 장소가 있다. 맥주 저장고이다. 당시엔 석회질 함량이 높은 물 때문에, 맥주를 즐겨 마셨다고 한다. 하이델베르크 성에는 집채만 한 초대형 맥주통이 있다. 그래서 이 맥주통을 한 바퀴 돌고 통 위로도 계단을 걸쳐 오르락내리락 해보는 관광 코스가 마련되어 있다. 실제로 보면 대단하긴 하다.

그런데 종교개혁지 탐방팀이 볼 곳은 오히려 그 저장고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다. 저장고 입구에서 오른쪽을 보면 성 내부 벽면에 부착된 왕들의 조각상이 보인다. 맥주통보다는 그곳에 관심을 가져보자. 눈을 크게 뜨고 조각상 근처 이름을 스캔하면, 루드비히 4세와 프리드리히 3세 등 종교개혁 당시 중요한 인물의 조각상이 눈에 걸려들 것이다.

성령 교회당

하이델베르크 성에서 하루 종일 시간을 가져도 좋겠지만, 또 가봐야 할 곳이 있다. 서둘러 성을 빠져나와, 도시 중심 광장에 있는 성령교회로 내려가자. 유럽 사람들은 퇴근시간이 빠르니, 잘못하면 문을 닫아서 내부를 볼 수 없을지 모른다.

이곳은 그야말로 하이델베르크 종교개혁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다. 내부의 단순하고 정갈한 장식이 개혁된 교회당의 전형을 보여준다. 현재 남아있는 장식물들은 죄다 근현대 이후의 것이다. 사실, 내부에 종교개혁 당시의 흔적이 남아있을 수가 없다. 그 이유는 끔찍한 사건때문이다. 로마 가톨릭의 프랑스군이 하이델베르크를 점령했을 때, 개신교 신자들을 교회당에 가둬놓고 불을 지른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아쉽게도 종교개혁의 흔적을 느낄만한 유물이 이 교회당 안에는 남아있지 않다.

그러나 꼭 눈에 보이는 유물이 있어야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는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이라는 유산이 남아있다. 그리고 하이델베르크의 종교개혁에 대해 더 알고 싶으면 하이델베르크에 온 세 사람과 귀도 드 브레” (성약)라는 책을 보면 된다. 소설 형식으로 되어 있어서 아주 쉽게 읽을 수 있다. 이 책의 제목에 나오는 세 사람이 바로 팔츠 선제후 프리드리히 3,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을 주도적으로 작성했던 우르시누스, 그리고 성령교회에서 목회했던 올레비아누스이다.

마지막으로 한 장의 사진을 더 보자.

성령교회 맞은 편에 화려한 르네상스 양식의 건물이 예전에도 눈에 띄어 사진에 담았었는데, 이번에는 1층에 레스토랑이 들어섰다. 전에는 보이지 않던 안내판이 보여서 살펴보니, 1572년 프랑스에서 망명한 어느 위그노가 세운 건물이라고 적혀 있다. 1572년이면 성 바르톨로매오 축일의 대 학살극이 벌어진 바로 그 해가 아닌가건물 위에 '하나님께 영광을'이란 문구를 보니 마음이 뭉클하고 애잔하다. 한편으로는 우리가 종교개혁 탐방을 한다고 다니는 것으로 과연 얼마나 그 시절을 이해하고, 과연 얼마나 종교개혁자들의 그 마음을 짐작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우리는 지금이라도 부지런히 다녀봐야 한다. 조금이라도 더 알려고, 조금이라도 더 느끼려고 다가가는 발걸음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인 셈이다.

이제 우리는 프랑스로 건너가자. 하이델베르크에서 가까운 프랑스의 도시, 신혼여행지로 각광받는 사랑스런 쁘띠프랑스, ‘스트라스부르로 떠나자.


황희상
기독교 교리, 역사, 교육 등의 책을 집필하는 작가이다. 『특강 소요리문답』과 『지금 시작하는 교리교육』은 한국교회에 교리교육의 바람을 일으켰으며, 『특강 종교개혁사』는 ‘웨스트민스터 총회’에 대한 충실한 소개로, 종교개혁의 후손들이 지향할 바가 무엇인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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