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 예배당으로
교회가 예배당으로
  • 가진수
  • 승인 2019.04.11 09: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독일의 보니 엠(Boney M)’이라는 디스코 밴드 그룹이 불러 인기를 끌었던 “By the river of Babylon(바빌론 강가에서)”의 곡의 내용은 시편 137편이 배경이다. 이 노래는 1978년 싱글로 녹음, 출시되어, 영국에서 5주간 1위를 차지했을 정도로 당시 매우 인기를 얻었다.

By the river of Babylon
There We sat down
Ye-eah We wept
When We remember Zion

바빌론 강가에 앉아 우리는 슬퍼하네
시온을 기억하며
바빌론 강가에 앉아 우리는 슬퍼하네

한국에서는 이 노래를 개사해서 이렇게 부르기도 했다.

흘러가는 강 물결을 바라봅니다
나뭇잎 하나 살며시 띄워봅니다
물결 따라 정처 없이 흘러갑니다
이제는 다시 볼 수도 없을 겁니다
 

 이 노래의 모티브인 시편 137편은 이렇게 시작한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시 137:1)

이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BC 6세기 경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 남유다 백성들이, 예루살렘에서 드린 예배를 기억하면서 불렀던 모습이, 떠오르며 나의 마음은 찡해진다. 슬픔의 상황을 빠르고 경쾌한 디스코 풍으로 불러 더 슬퍼지게 만든다.
 

나는 이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당시 포로로 끌려갔던 모습이 떠오르면서, 한국교회가 오버랩 된다. 한국교회의 현재 상황이 위기이며 영적으로 약해져있는 시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뿐 아니라 한국교회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생각이라 믿는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외적인 성장 면에서 세계 교회사에 길이 남을 족적을 남겼다. 세계 선교사 파송뿐만 아니라 영향력 면에서도 탁월한 성장을 이루어왔다. 앞으로는 더 큰 성장이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지금의 상태를 유지만이라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지 생각해본다.

지금 한국교회의 내적 현실은 사실 심각하다. 각 교회의 성도 중 다음 세대인 청년과 청소년들의 비율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역 피라미드를 넘어 이제는 교회의 존재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나는 이 같은 한국교회 현실을 타파할 방법으로 예배의 갱신과 변화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우리의 교회가 내적으로 단단한 공동체로 거듭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것의 시작은 예배의 회복과 갱신이다.
 

예배는 교회의 본질이자, 영적 능력과 생명의 근본체이다. 하나님을 경험할 뿐만 아니라, 영원한 창조주와 관계를 맺는 초석이기 때문이다. 한국교회가 예배에 좀 더 집중하고 강화하려는 노력이 있다면, 우리는 바벨론 강가에 앉아 시온을 생각하며 울고 있는 모습이 하나의 역사로만 치부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한국교회 예배의 갱신과 변화를 위한 근본적인 방법으로 두 가지를 제안하고 싶다.
 

첫째는 “본질의 강화”다.
예배의 본질은 우리가 드리는 예배 한 시간을 요한계시록 4장과 5장의 천상의 예배, 즉 하나님께 온전히 영광 돌리며, 하나님을 만나며, 감동이 넘치는 예배를 지상으로 옮기는 것이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영과 진리의 예배’이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 4:24)
 

본질은 교회의 하드웨어와 같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이며, 계속적으로 강화해야하는 영적 마그마와 같다. 
 

예배의 요소가 찬양과 기도, 말씀, 성찬이라고 한다면 이를 더욱 강화시켜 나가는 것이다. 예배의 요소들이 매우 유기적으로 마치 하나인 것 같이 되려면 예배의 목적이 매우 명확해야 한다. 로버트 웨버(Robert E. Webber) 박사는 예배란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말씀들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공생애, 죽으심과 부활, 그리고 다시 오심이 드러나고 기억되어야 한다.”고 했다. 예배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생생해지고, 찬양과 기도와 성찬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선명히 기억하고 기념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를 위해 우리의 예배는 전적으로 세상은 간 곳없고 하나님의 영광만 드러나고, 예수 그리스도와 구원의 노래와 다시 오심에 대한 확신과 결단을 고백해야하는 것이다.

예배 가운데 찬양은 하나님의 영광과 존귀를 위한 ‘수직적인 찬양(Vertical Worship)’이 불려야 하고, 기도는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를 바탕으로 형식적이 아니라 깊고 간절함이 더 동반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말씀의 선포는 성경적인 말씀의 본질이 회복되어야 하며, 점점 사라지고 약해져가는 성찬의 회복은 시급하다. 성찬은 예배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강력하게 기억하고 기념하는 상징성이 강한 중요한 예배의 요소이기 때문이다.

지난달 나는 <말씀을 낭독하라(Public Reading of Scripture)>의 저자인 세계적인 설교 학자 제프리 아서스(Jeffrey Arthurs)를 초청해 ‘말씀 낭독 세미나’를 개최하며 여러 교회에 소개했다. 참석한 교회 사역자들과 성도들이 말씀에 대한 관심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이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강화시킬 말씀에 대한 다양한 노력과 관심이 더욱 많아져야 할 것이다.
 

한편 예배의 마침은 또 다른 ‘삶의 예배’의 시작이므로 좀 더 강한 역동성의 찬양과 결단과 고백이 뒤따라야 한다. 다시 오실 주님의 재림과 우리의 공동체와 교회는 세상을 이길, 영적으로 담대히 무장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비본질의 변화”다.
예배의 비본질은 예배를 담는 그릇이다. 어떤 그릇에 담느냐에 예배의 품격이 달라질 수 있다. 예배에 대한 간절함에 정성과 열정이 예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갈 수 있다.
 

한편 교회에서 예배에 대한 갈등이 있다면 그것은 주로 예배의 비본질에 대한 이야기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논의들이다. 예배의 시간을 어떻게 정할 것인가? 악기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공중기도는 누가 어떻게 할 것인가? 예배 시간은 얼마나 할당할 것인가? 조명과 음향은 어떤 식으로 할 것인가? 등 형식과 구조, 관계, 이해에 관한 것들이다.

예배의 비본질적인 부분에서 고려되어야 할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공동체이다. 공동체가 누구인가를 먼저 고려하는 것이다. 공동체의 구성원인 예배자가 예배에 집중하지 못한다면 얼마나 예배가 역동성이 사라지고 생명력이 없을 것인가. 
 

세대 간의 갈등도 예배의 비본질적인 면에서 고려해야 할 중요한 부분이다. 1세대와 다음 세대와의 간극을 어떻게 좁힐 것인가? 예를 들면 찬양에서 많은 갈등이 일어나곤 하는데, 1세대의 찬양과 다음세대의 찬양에 대한 선호가 다를 경우, 예배 또는 찬양 위원회에서 이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면서 각 교회 공동체의 찬양들을 먼저 이해하고 수렴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후 꾸준하게 왜 1세대의 찬양이 필요한지, 그리고 다음세대의 찬양이 필요한지 공감대를 형성하고 세미나 등을 통해 성경적인 찬양의 모습을 훈련할 필요가 있다.

 

또 한 가지 예배의 비본질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과감하게 수용하는 ‘수용성’이다. 우리 한국의 예배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너무 획일화되어 있고, 각 공동체의 특성이 없으며 교파별로의 특색도 거의 없다. 부교역자로 사역하던 목회자가 자신이 사역했던 교회를 거의 벤치마킹하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지역의 교회는 열린 마음이 필요하고, 문화적인 개방성도 과감하게 도입되는 것이 좋다. 그렇다고 해서 본질이 희석되거나 훼손되지는 않는다.
 

예배는 타협이 아니다. 한 가지 예로 그동안 1세대와 다음세대의 선호를 섞어놓은 ‘통합예배(Blended Worship)’가 한국교회에도 많이 소개되어 있는데, 이것을 성경적, 그리고 신학적인 예배의 기본 가운데 세우지 못한 부분이 많다 보니, 많은 교회의 예배가 각 세대의 요구를 따라가는 소비자지향적인 예배가 되고 말았다. 

다음과 같은 요소들 즉, 공동체, 지역 특성, 계층, 환경, 세대의 구성 등을 담임목사를 중심으로 예배위원회가 신중히 의논하고 기도하며 협의하여 예배를 세워나가는 것이 갈등을 줄이고 본질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가는 비본질의 요소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요즘 한국교회는 여러 가지 일과 사역으로 분주하다. 교육, 선교, 구제, 공연, 문화와 체육 등 기능 복합적인 센터가 되어가고 있다. 모두 사명이고 좋은 일이고 계속해야 하는 것이 교회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라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은 좀 더 본질에 신경 써야 할 때이다. 교회의 본질은 우리 각 사람들, 즉 교회가 함께 모여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곳이다. 이것이 무너지면 교회는 더 이상 교회 답지 못하고, 우리는 더 이상 많은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껍데기 교회가 될 수밖에 없다. 세상을 향해 담대하게 선포할 수 있는 영적 능력과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자랑스럽게 선포되지 않는 교회가 무슨 교회인가?
 

예수님께서 마르다의 초청으로 그녀의 집에 가서 나누신 말씀은 우리에게 무엇이 더 중요한 것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예수님은 분주하게 일을 열심히 하는 마르다보다, 예수님 말씀에 집중하는 마리아를 귀하게 생각하셨다.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눅 10:39-42)

내가 어렸을 때 교회를 ‘교회’라 부르지 않고 ‘예배당’이라 불렀던 기억이 있다. ‘교회에 간다’가 아니라 ‘예배당에 간다’고 늘 부르고 들었었다. 그 때 나는 ‘교회는 예배를 드리는 곳’이라는 개념이 무척이나 선명히 기억되고 있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우리의 교회가 ‘교회’가 아니라 ‘예배당’이라 불려야 하는 시기이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3-16)


가진수

예배를 통한 교회의 갱신과 변화, 부흥에 비전을 가지고 있는 목회자이다. 그동안 여러 신학대와 대학원 등에서 현대예배와 영성, 예배인도 등을 가르쳤으며, 국내외 세미나와 예배학교 등에서 예배의 회복과 갱신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현재 예배전문사역기관인 <글로벌 워십 미니스트리>의 대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