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보르 : 보헤미아의 군사요새와 카타콤
따보르 : 보헤미아의 군사요새와 카타콤
  • 황희상
  • 승인 2019.04.04 11: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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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에서 남쪽으로 1시간쯤 차로 달리면 따보르(Tábor)라는 작은 도시가 나온다. 이곳은 얀 후스의 종교개혁을 이어받은 저항세력이 군사적 목적으로 건설한 요새 도시이다. 요새라고 해서 뭔가 막 성벽과 무기가 많을 것을 상상하고 갔는데, 지극히 평범하고 조용한 마을이다.

흔히 어떤 조용한 마을을 묘사할 때 시간이 멈춘 것 같은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곳은 진짜로 중세 시대 그대로 멈춘 듯한 고즈넉하고 예쁜 마을이다. 참고로 따보르는 성경에 나오는 다볼산(변화산)과 같은 지명이다. , 우리가 이곳에 왜 가봐야 할까.

보헤미아 지역 신자들의 항전과 개혁운동

후스는 증거가 조작된 불법적인 재판을 받고 허무하게 화형을 당한다. 그렇게 개혁의 목소리를 짓밟아버리면 될 거라고 생각했던 자들은 그날 밤 모든 것이 끝난 것으로 알고 잠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소식을 들은 수많은 양심은 격분하였고, 오히려 더욱 크고 체계적인 저항이 일어났다. 그 중심지가 바로 따보르였다.

당시로서는 당연하게도, 따보르는 도시 전체가 반역자로 몰리고 만다. 이제 그들은 황제와 교회의 권세에 반대하는 저항군이 될 수밖에 없었다. 신앙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를 위해 거짓과 속임수에 타협할 수 없었던 순진한 신앙인들은, 끝이 빤히 보이는 싸움에도 물러설 수 없었다. 제국 전체와 도시 하나의 싸움은 누가 봐도 그 결말이 정해진 듯했다. 자신들에게 닥친 임박한 상황을 세상의 종말과 재림 예수가 다시 오실 날로 받아들인 이들이 다볼산에 모여 요새를 구축하고 전쟁을 준비했다. 이들을 이끈 지도자는 쥐시카 장군....

, 무슨 드라마 시놉시스처럼 읽히지만, 문제는 우리가 쥐시카 장군은커녕, 후스에 대해서도, 그를 따랐던 수백 명의 보헤미안 귀족들에 대해서도, 보헤미아가 어떤 지방인지에 대해서도, 도통 아는 바가 없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래서 우리가 이곳에 왔다. 우리의 부족한 지식을 꽉 채워줄 박물관이 이 도시의 심장부에 마련되어 있다. 따보르에 왔으면 반드시 따보르 종교개혁 박물관 투어를 해야 한다. 입장료도 저렴하다. 겉모습은 초라하지만, 정말 잘 만들어진 박물관이다. 몰랐던 것을 짧은 시간에 참 많이 깨닫게 된다. 속된 말로, ‘이 터진다. 박물관은 주로 전쟁에 관련된 자료와 죽음의 공포를 담은 영상물, 그리고 최고의 전쟁영웅 쥐시카 장군에 대한 기록들 위주로 잘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 입구에 들어서면, 상징적인 커다란 나무 통과 그림 한 점이 보인다. 당시 사람들은 이 도시로 이주하면 자신들의 전 재산을 여기 통에 쏟아부었다고 한다. 그러면 시민들은 그것을 모두가 공평하게 나누어, 평등한 삶을 시작했다. 매우 급진적이다. 사실 그들의 이런 행동은 후스가 가르치려 했던 본질과는 크게 상관이 없는 것이었다. 사유재산을 모아서 공유하는 모습은 초대교회 교인들이 잠시 그랬던 것인 바, 모든 시대 모든 지역에서 보편적으로 행할 원칙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어쩌면 홀몸으로 온 유럽과 대항해야 했던 따보르인들은 신앙과 자유를 지키기 위해 자진해서 한마음의 공동체가 되었던 것이 아닐까. 극도의 탄압을 겪는 사람들은 성경이 말하는 종말의 때가 임박했다고 생각하기에 종종 이런 선택을 한다.

이렇게 극단적인 공동체를 형성하는 분파들은 보통 그들을 이끄는 리더가 신비주의자인 경우가 많다. 그렇다 보니 내실이 약하고, 시간이 지나서 자멸하거나 외부의 파상 공격에 쉽게 무너지곤 한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따보르는 달랐다. 쥐시카 장군은 흡사 임진왜란의 이순신처럼 단 한 번도 황제군과의 전쟁에서 패배하지 않았다. 엄청난 무공을 보여 준 백전백승의 쥐시카 장군은, 전장이 아니라 집에서 죽었다고 한다.

물론, 전쟁은 결국 황제군의 승리로 끝난다. 물량의 차이를 버틸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따보르의 저항은 이후로도 계속된다. 30년 전쟁 후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를 받으면서 체코는 철저히 로마 가톨릭화됐는데, 그 와중에도 따보르의 저항정신은 계속해서 항쟁의 역사를 써왔다. 수백 년이 지난 지금 따보르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들을 체코인이 아닌 따보르인이라 부를 만큼 그들의 역사에 자부심이 넘친다.

박물관에 들어가면 먼저 따보르의 역사를 설명해주는 짧은 영화를 감상할 수 있다. 체코어로 이야기하고 영어로 자막이 나온다. 이어서 박물관 관람을 시작하면 여러분의 입에서 감탄이 절로 나올 것이다. 박물관이라는 공간은 어떤 콘텐츠를 얼마나 유효하게 전달하느냐가 핵심인데, 이곳 따보르 박물관은 필자가 경험한 유럽의 역사박물관 중에서도 탁월했다. 스토리텔링, 레이아웃, 컬러, 조명, 시청각 효과 등 모든 면에서 수준급이다.

쥐시카를 따르던 따보르인들은 훈련받은 전문 군인들이 아니라 그저 농사꾼들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농기구를 개조해서 무기를 만들어 싸웠다. 그런 그들이 어떻게 백전백승을 거두었을까. 당시 전쟁은 단조로운 전법만 사용했다고 한다. 군대들을 모집하고 대열을 갖춘 후 일제히 돌격하여 성을 함락하면 끝이었다. 하지만 쥐시카는 황제군으로서는 듣도 보도 못한 지극히 현실적인 전술과 전략을 구사했다. 땅속에 설치한 방어무기들은 상대적으로 전투력이 높은 기마병의 말에게 피해를 입혔다. 또한 많은 수의 병사들이 몰려와서 백병전을 펼치면 위협적이다. 쥐시카는 이에 대응하기 위해 농산물을 나르던 손수레를 전차로 개조했다. 여러 대의 손수레를 일렬로 배치해서 마치 이동식 성벽처럼 활용했다. 그 뒤에 숨어 있다가 달려드는 적군을 해치웠다.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하면서도 적에게는 큰 피해를 안겨 주었다. 그리고 좁은 지형을 이용해서 게릴라 전술을 펼치고 심리전을 구사했다. 이렇게 다양한 방책으로 황제군을 당황시키고 패배감을 안겨주는 동시에, 포로들을 학살하지 않고 정중하게 대해주었다. 이 같은 모습은 황제군으로서도 경외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고, 그 모든 것이 어우러져 황제군의 사기를 저하시켰던 것이다.

 

당시 전투 장면을 재현해둔 모형들. 여성들이 치마를 입은 채로 용감하게 싸우는 모습이 묘사되었다.
당시 전투 장면을 재현해둔 모형들. 여성들이 치마를 입은 채로 용감하게 싸우는 모습이 묘사되었다.

박물관 관람을 마치면 끝이 아니다. 이제부터는 공사현장에서 쓰는 안전모를 쓰고, 좁은 계단을 통해 지하로 내려가게 된다. 지하실에 일종의 카타콤이 있다고 한다. 어떤 곳일까? 고립된 따보르가 전쟁을 치르면서 살아남기 위해 고안한 것이다. 그들은 지하 암반을 긁어내서 공간을 만들고 노약자를 보호했다. 일종의 지하 대피시설이다. 동굴처럼 뚫린 지하 시설은 꽤 넓어서, 이 도시의 여러 건물들을 지하 통로로 연결하고 있다. 직접 내려가 보니, 높이는 낮지만 사람이 지나다니기에 충분한 크기의 통로가 개미굴처럼 이리저리 꼬불꼬불 이어지고 있었다.

그 안에는 동물농장에서 산후조리원까지... 제법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웬만한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되어서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하게 보낼 수 있었다고 한다. 곡괭이 같은 도구로 이 동굴을 파고 손수레로 파낸 돌을 옮기는 그림에서, 카타콤을 건설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희생이 있었을지 짐작이 간다.

지하 동굴을 한참 걸으면 출구가 보인다. 지상으로 올라와보면 깜짝 놀랄 것이다. 박물관 입구가 저 멀리 광장 건너편에 보일 것이다. 이렇게 멀리까지 지하로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다. 관광객에게 공개된 코스 외에도 수없이 많은 통로가 이 산 아래에 건설되어 있다 하니, 따보르 사람들의 저항 의지가 얼마나 강렬했는지 알만하다.

우리는 후스에 대해서는 들어봤지만 그 가르침을 따라 초기 종교개혁의 분위기를 형성했던 따보르에 대해서는 너무도 몰랐다. 만약 그 시절에 인쇄술이 더 발전했다면 역사는 어떻게 흘렀을까. 후스의 가르침이 조금 더 일찍 퍼졌더라면 루터의 개혁이 몇 십 년 더 당겨졌지 않았을까... 지하 동굴과 적막한 골목길을 걸으며 생각에 잠겨보자.

따보르는 하루의 절반 정도면 충분히 볼 수 있다. 프라하로 돌아와서 나머지 여정을 마치고, 다음 도시로 떠나보자.
드디어, 루터를 만나러 가는 것이다.


황희상
기독교 교리, 역사, 교육 등의 책을 집필하는 작가이다. 『특강 소요리문답(흑곰북스)』과 『지금 시작하는 교리교육(지평서원)』은 한국교회에 교리교육의 열풍을 불러 일으킨 장본인이며, 최근 출간한 신개념 교회사 학습서 『특강 종교개혁사』는 장로교회 헌법의 기초가 된 ‘웨스트민스터 총회’의 역사와 배경 및 결과물에 대한 현존 최고의 대중적 소개서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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