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라스무스의 엔키리디온
에라스무스의 엔키리디온
  • 정현욱
  • 승인 2019.03.13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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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면서

보수적 개신교인이라면 에라스무스에 대해 좋은 감정을 지니지 않을 것입니다. 에라스무스는 인문주의이자 루터와의 ‘자유의지 논쟁’으로 인해 부정적인 편견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에라스무스는 종교개혁가에 넣을 수는 없습니다. 종교개혁의 바람이 불 때 중세 가톨릭교회에 남아 있었고, 어쩔 수 없었다고는 하지만 가톨릭의 편에 서서 변증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있어서 에라스무스는 분명 반종교개혁가의 범주에 넣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에라스무스를 폄하하기에는 지나친 점이 적지 않습니다. 앞선 글에서도 소개했지만 에라스무스가 아니었다면 루터의 종교개혁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만큼 종교개혁이 일어나도록 지대한 영향을 미친 존재였습니다.

에라스무스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은 루터에 대한 한국교회의 열렬한 사랑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신예찬>이라는 풍자적 담화 때문이기도 합니다. 비아냥거리듯 종교지도자들을 우스갯거리로 만드는 내용은 경건한 그리스도인들에게 결코 좋은 인상을 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대의 중세교회 상황을 조금이라도 관심 있게 살핀 신자들이라면 에라스무스의 풍자가 결코 불경건한 조롱으로는 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에라스무스 = ‘루터의 대항자’, ‘불경건한 풍자가’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에라스무스는 13권 정도의 책을 출간합니다. 즉 에라스무스는 <우신예찬>만을 쓰지 않았습니다. <격언집>을 비롯해, <그리스어 신약 성경> <평화론> <라틴어와 그리스어 바르게 읽는 법> 등의 책들도 펴냈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엔키리디온>도 에라스무스의 중요한 저작 가운데 하나입니다. 

<엔키리디온>은 ‘기독교 병사의 편람’으로 번역되지만, 일종의 영적 가이드북과 같은 성향의 책입니다. 그런데 그가 ‘야만적’이라고 비웃었던 더벤터에서 생활은 그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엔키리디온>은 용감한 용적 군사에 대한 이야기인 듯하지만 내용을 살펴보면 ‘공동생활형제단’의 정신적 토대였던 <그리스도를 본 받아>와 매우 흡사합니다. 에라스무스는 입술로는 야만적이라고 말했지만 그의 영혼은 중세적 ‘데보티오 모데르나(Devotio Moderna)’에 철저하게 종속되어 있었습니다. 침묵과 금욕을 지향했던 에라스무스의 성향은 토마스아 켐피스의 중세적 금욕을 적지 않게 닮아 있었습니다. <엔키리디온>을 읽을 때는 에라스무스의 인문학적 소향과 금욕적 성향을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합니다.

그러나 <엔키리디온>의 가장 중요한 대목은 성경에 대한 철저한 신뢰와 평신도 자신의 힘으로 바른 진리를 배워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이러한 도전은 종교개혁가들의 중심 모토이자, 종교개혁이 가능하게 했습니다. 이제 책 속으로 들어가 내용을 직접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주 참조 도서는 두란노아카데미에서 출간한 기독교 고전총서 13인 <개혁의 주창자들:위클리프부터 에라스무스까지>입니다.

2. 요약

로테르담 에라스무스는 궁정 친구인 독일인 요한에게 문안하노라. 당신은 나에게 삶의 간결한 안내를 해달라고 간청했다. 그것을 연구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고 싶어 한다. 

1. 사람은 삶에 주의해야 한다.

욥은 경험 많은 군사요 패배하지 않는 군인이었다. 욥은 인간의 삶을 영원한 싸움이라고 했다. 인간들은 악의 철갑 옷을 입은 군대에게 공격하며 놀아난다. 1,000가지 이상의 술수와 방법으로 우리를 대적한다. 불화살과 독화살로 우리를 쏘아댄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군사들은 뚫을 수 없는 믿음의 방패로 무장해야 한다. 세상은 우리의 마음의 벽을 공성 망치로 공격하고, 헛된 약속들로 마음을 배반하게 한다. 100개의 똬리를 감추고 하와의 발뒤꿈치를 물기만을 기다린다. 여자를 남자의 일부로 생각해보라. 우리의 하와로서 그녀를 통해 가장 간교한 뱀이 우리의 마음을 유혹해 죽음으로 몰고 갔다. 우리가 악과 타협한다면 세례 때 했던 하나님과의 맹세를 깨는 것이다. 우리는 악에 맞서야 하고 싸워야 한다. 세례의 신비는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삶의 소유자로 인정하는 것이다. 우리가 주를 위하여 싸우지 않는다면 비참한 대가를 지불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육체의 본성과 싸워야 한다. 어리석은 자들은 자신들의 영혼과 싸운다. 건강한 육체는 음식을 갈망한다. 영혼이 건강하면 영혼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구한다. 만약 음식이 맛이 없다면 질병에 걸린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아무런 맛을 느끼지 못한다면 영혼이 병든 것이다. 하나님은 현재의 도움자이시다.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의 무기로 드려야 한다. 그리스도를 우리의 사령관으로 삼고 그를 힘입으면 마귀는 반드시 정복된다. 우리는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지체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의 승리는 운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있다. 그러므로 반드시 승리한다. 

2. 그리스도인의 전쟁 무기에 관해

사단과 싸우기 위해 어떤 무기가 필요할까. 우리의 싸움은 육체의 소욕과의 싸움이기에 한순간도 방심해서는 안 되며 잠깐이라도 무기를 놓아서는 안 된다. ‘기도와 지식’이라는 두 개의 무기는 어떤 무기보다 강력하다. 바울은 항상 기도하라고 했다. 순전한 기도는 하늘이 자신의 열정과 뜻 앞에 복종하게 한다. 원수가 접근할 수 없는 성채요 요새이다. 기도와 더불어 필요한 것은 지식이다. 주님은 기도할 때 중언부언하지 말라 하셨다. 바울은 일만 방언보다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를 하는 것이 낫다고 했다. 당신이 말씀에 헌신하고, 하나님의 법을 주야로 묵상한다면 밤과 낮의 공포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철학자 중에 플라톤주의자들을 따르기를 원한다. 그들은 복음서와 비슷한 방식으로 생각하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에 메스꺼움을 느낀다면 인간적인 문학과 가르침을 벗고 신령한 만나를 가져야 한다. 부지런히 성경을 읽고 말씀대로 삶아가도록 실천해야 한다. 경건 하고자 한다면 매일 성경을 묵상하라. 

3. 지혜의 면류관은 당신 자신을 알며, 거짓과 진실이라는 두 종류의 지혜에 대해 아는 것이다.

평안은 하나님께서 주신다. 세상의 평안은 거짓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지혜의 아버지요, 지혜 그 자체이시다. 바울은 부르심을 받은 자들은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라고 말한다.(고전 1:25-25) 당신이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가장 지혜롭고 세상이 갖지 못한 지혜를 갖는다. 그러나 세상은 당신을 미쳤다고 말할 것이다. 

4. 외적이고 내적인 사람에 대해

사람은 놀라운 동물로서 두세 가지 다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님의 의지와 같은 영혼, 그리고 어리석은 짐승과 같은 육체이다. 몸은 동물과 같다. 영혼은 하나님의 능력을 갖고 있어서 천사 이상이며, 하나님과 하나 됨을 이룰 수 있다. 당신 혼을 받지 않았다면 짐승일 뿐이다. 영혼은 보이지 않는 것을 추구한다. 

5. 열정의 다양성에 관해

하나님이 사람 마음에 새기신 영원한 법에 의하면 우리의 왕은 압제를 받을 수 있지만, 죄를 지을 수 없고, 반항할 수도 없고, 회복될 수도 없다. 사람들이 그에게 복종한다면 그는 징벌하지도, 멸하지도 않으신다. 모든 사람을 깊이 아시고, 판단하고 이해하신다. 사람 안에 있는 육체의 소욕이나 기질은 길들이기 쉽지 않다. 사람마다 육체적 습관이 있다. 우유부단함, 쾌락을 사랑하는 것, 사람을 찾아 어울려 다니는 것, 분노와 광폭, 악담은 다혈질 사람에게 많다. 게으름이나 느릿한 것은 우울한 사람들에게 어울린다. 젊을 때는 호색이나 방탕과 경솔함이 강하다. 나이가 들면 까다로움이나 탐욕으로 바뀌기도 한다. 또한 남자와 여성이 성향이 다르다. 이성을 활용하고, 마음에 재갈을 물린다면 덕에 이르기 쉽다. 우리 자신을 알고, 어떤 것에 격정적으로 빠지지 말아야 한다. 모든 것을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사려 깊고 현명하게 행동하고 정직하게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하여 당신의 삶을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을 향해 살아야 한다. 기독교의 최고의 사명은 전심으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에 있다.

6. 내적 그리고 외적 인간에 관해, 그리고 성경에 근거한 인간의 두 부분

모든 권위는 성경에서 온다. 성경이 인정하지 않는 권위는 무의미하다. 사도바울을 철학자들이 말하는 이성을 영이라고 불렀고, 가끔 ‘속사람’ ‘마음의 법’으로 말했다. 그와 반대로 죄성이나 열정은 ‘육체 ’‘몸’ ‘사람’ ‘육체의 법’이라고 부른다. 바울은 성령을 따라 행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갈 5:16-17)  바울의 말을 들으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갈 5:15) 플라톤은 한 사람에게 두 혼을 구분한다. 바울도 마찬가지다. 혼과 육은 분리될 수 없다. 처음 사람은 흙에 속했다.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왔다. 흙에 속한 자는 흙에 속한 자와 같고, 하늘에 속한 자는 하늘에 속한 자와 같다. 바울은 육체와 영혼의 상반된 열매를 밝히면서 육체를 위하여 심으면 육체로부터 썩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해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둔다.(갈 6:8) 우리는 질그릇에 보화를 간직하고 있다. 죄에 의해 방해받을 때 즉시 기도하여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한다. 만약 우리가 모든 소욕이 종속되면 헛된 영광을 구하는 유혹은 선함 속에 남겨 있게 된다. 소욕은 거대한 히드라와 같은 괴물 같지만 지속적인 노력은 모든 것을 정복한다. 바울은 말하기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라고 말한다(갈 5:24). 그리스도인들은 육체를 죽이고 영에 속해야 한다.

7. 사람의 세 부분인 영, 혼, 육에 관해

오리게네스는 바울을 따라 인간을 세 부분 영, 혼, 육으로 나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살전 5:23)라고 말했다. 몸과 육은 가장 낮은 부분이다. 그 위에 죄를 통해 옛 뱀 마귀가 죄의 법을 새겼다. 이로 인해 우리는 즉시 악에 물들고 정복되어 마귀에게 연합했다. 영은 하나님의 본성과 닮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그 형상 안에서 축복받는 사람들이 자신의 영한 법을 새긴다. 영으로 우리는 하나님과 연락되었고, 하나가 되었다. 하나님은 혼을 세 번째로 세우시고 다른 둘 사이에 매체로서 본성적 감각과 충격을 갖게 하기 위해 만드셨다. 육으로 사랑하지 말고 영으로 사랑하라. 사람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발견한다면 진정한 사랑이다. 

8. 진실한 기독교의 몇 가지 일반적인 규칙들

첫 번째 규칙은 성경을 이해해야 한다. 성령을 의지하며, 온 마음으로 고백해야 한다. 
두 번째 규칙은 온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위해 삶과 소유물을 바쳐야 한다.
세 번째 규칙은 세상의 안락함을 멀리하고, ‘육체’ ‘마귀’ ‘세상’이란 적들을 대항해서 끊임없이 싸워야 한다.
네 번째 규칙은 그리스도를 당신 앞에 두어 당신의 삶에 유일한 목표가 되게 하라.
다섯 번째 규칙은 성숙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추구해야 한다.
여섯 번째 규칙은 그리스도를 닮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이 즐겨 하는 것을 거부하고 그들의 의견에 동조하지 말아야 한다.
일곱 번째 규칙은 하나님께 기도하여 더 나은 삶으로 인도하도록 간구해야 한다.
여덟 번째 규칙은 유혹이 강하고 극복하기 힘들어도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돌아선다고 생각하거나 실망하지 말아야 한다.
아홉 번째 규칙은 평화로운 시기에도 항상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 
열 번째 규칙은 마귀를 이기려면 마음을 비우고 간구하고 온 마음을 다해 영적인 일을 쫓아야 한다.
열한 번째 규칙은 모든 공로는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로 돌려야 한다.
열두 번째 규칙은 악이 당신을 자극할 때 하나님을 더욱 의지해야 한다.
열세 번째 규칙은 소망을 잃지 말고 끝까지 싸워야 한다.
열네 번째 규칙은 악을 얕보지 말고 항상 경계하라.
열다섯 번째 규칙은 죄의 달콤함을 찾지 말고, 승리의 기쁨을 소망하라.
열여섯 번째 규칙은 영적인 무기는 어떤 일이 있어도 내려놓지 말라.
열일곱 번째 규칙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깊이 묵상하라. 그리하면 전쟁에서 받은 상처가 치유될 것이다.
열여덟 번째 규칙은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전임을 알고 항상 마음을 돌아보아야 한다.
열아홉 번째 규칙은 하나님과 마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스무 번째 규칙은 마지막 운명인 천국과 지옥을 계속하여 생각하라.
스물두 번째 규칙은 회개하고 날마다 천국을 향해 나아가라.

9. 특정한 죄악들에 대한 치유법들, 그리고 먼저 욕심에 대항해

많은 죄 가운데 욕심이 가장 먼저 찾아온다. 쾌락이란 욕심은 인간을 동물 이하로 떨어뜨린다. 건강을 해치고, 병들게 한다. 젊은 사람들은 특히 욕심을 조심해야 한다. 욕망에 사로잡히면 이성을 잃고 미움과 악의로 가득 차게 한다. 욕심은 늙은이들은 비참하게 만들기도 한다. 절제를 배우고, 근신하라.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도록 해야 한다.

10. 탐욕의 도발에 대항해

만약 탐욕에 격동되거나 마귀에게 선동되었다면 앞서 소개한 규칙들을 다시 상기해 보라. 무엇보다 당신은 하나님의 위대한 목적을 위해 창조되었다는 것을 기억하라. 가치 없고 저급한 일에 몰두하지 말라. 세상의 성공이나 부에 몰두하지 말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전대나 주머니를 가지지 말라 하셨다. 하나님께서 채우심을 믿어야 한다.

11. 야망에 대해

야망이 당신을 유혹한다면 진정한 명예가 무엇인지 생각하라. 모든 명예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옳고 바름을 통해 명예를 얻었다면 좋은 것이다.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 돌려야 한다. 만약 나를 위한 명예를 구한다면 내려놓아야 한다. 세상에 주목받기보다 이름 없이 살아가기를 선택하라. 당신의 영광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위에 있게 하라.

12. 교만과 거만한 마음에 대항해

말씀들과 격언들을 마음에 새긴다면 당신의 마음은 교만해지지 않을 것이다. 당신 마음속에 위대하고, 아름답고, 유명한 것이 있다면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것은 당신에게 난 것이 아니다. 당신은 얼마나 가난하고 비참한가를 생각하라. 우리가 얼마나 많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가도 생각하라. 우리는 위대하신 하나님과 비천한 자신을 잊어버리면 안 된다.

13. 분노와 복수의 갈망에 대해
복수하는 것은 악한 것이다. 사람은 타인의 악랄함에 더욱 악랄하게 갚아주고 싶어 한다. 분노를 제어해야 한다. 분노는 자신에게 더 큰 고통을 준다. 경미한 잘못은 용서하라.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의 위해 죽으셨다. 무엇이 당신이 마음을 격동 시키는지 분별하라. 그리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당신에게서 떠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결론

성경을 읽는 것이 이 모든 것을 풍족하게 한다. 부족한 글을 통해 거룩함에 이르기를 바란다. 보이는 것보다 항상 영적인 것을 먼저 세우라. 무엇이든 그리스도를 닮도록 노력해야 한다. 특히 바울에게 배우라. 나는 예수께서 당신과 함께 하셔서 당신을 선하게 인도하고 온전히 빚어 가실 것을 기도하다. 
그리스도께서 오신 해로부터 1501년, 성 오메르에서.

3. 나가면서

서론에서 말씀드렸지만 에라스무스의 <엔키리디온>은 토마스 아 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와 적지 않게 닮아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 권의 책으로 에라스무스의 신학을 평가할 수는 없지만 몇 가지 점에서 확연하게 종교개혁가들과 다른 점을 발견합니다. 가장 두르러진 부분은 인간을 육, 혼, 영으로 구분하는 삼분설(trichotomy)을 지지합니다. 현대에도 삼분설을 지지하는 이들이 적지 않지만 개혁주의 전통은 이분설(diachotomy)을 지지합니다. 최근의 학자들은 이분설보다 육과 영의 분리가 아닌 통합적 존재로 보려고 합니다. 우리가 난해한 주제에 깊이 관여할 필요는 없지만, 사람이 단지 육신으로만 존재한다는 현대 과학의 관점은 수용하기 힘듭니다. 

<엔키리디온>의 가장 큰 업적은 성경에 절대적 권위를 부여했다는 점입니다. 또한 사제를 통해 성경을 해석하고 읽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직접 성경을 읽고 실천하여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촉구합니다. 성경에 대한 깊은 사랑과 충고는 앞으로 루터 및 다른 종교개혁가들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에라스무스의 <엔키리디온>은 중세의 수도원적이고 소극적인 신앙에서 능동적이고 활동적인 종교개혁가들의 신앙관 사이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앞으로 읽게 될 <우신 예찬>과 <자유의지론>은 그의 신학적 성향들을 살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정현욱
책이라면 정신을 못차리는 책벌레이며, 일상 속에 담긴 하나님의 신비를 글로 표현하기 좋아하는 글쟁이 목사다.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자이자 <생명의 삶 플러스> 집필자이며, 한국컴퓨터선교회 및 여러 기독교 신문과 출판사 서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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