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전이냐 교회냐 : 판테온, 아고스티노, 그리고 누오바 성당
신전이냐 교회냐 : 판테온, 아고스티노, 그리고 누오바 성당
  • 황희상
  • 승인 2019.03.0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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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테온(만신전)

로마 구도심의 꼬불꼬불한 골목을 걷다가 갑자기 확 넓어지는 광장에서 관광객의 시야를 사로잡는 거무튀튀한 건축물. 거대한 통조림통(?)처럼 보인다. 여기가 바로 판테온. 판(모든) 테온(신)은 이름 그대로 모든 신을 모셨다는 뜻을 가진 로마 신전이다. 알지도 못하는 신에게 예배한다며 바울이 비판했던 그들은, 혹시 자신들이 빠뜨리고 예배하지 못한 신이 있어서 저주를 받을까 봐, 모든 신에게 한방에 예배할 수 있는 종합 선물세트 공간을 만든 셈이다. 그런데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삼은 뒤 이 공간은 교회당으로 바뀌었다.

원래 기독교는 건물 자체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기독교에 성전은 불필요하다.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이제 우리에게는 제사도, 제물도, 사제도, 성막도, 성전도 필요 없게 되었다. 오늘날 교회가 사용하는 교회당 건물은 성도가 함께 모이고, 거기서 말씀을 선포하고, 공부하는 데 도움을 주는 용도이지, 신을 모시고 사제들이 거주하는 신전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그런데 교회가 잘못된 교리로 부패하면서 다시 이런 건물을 신성시하기 시작했다. 성인들의 유골을 모아두거나 그림과 조각들을 그리거나 세워두고 그것들 앞에서 기도한다. 유명하고 권세 있는 사람들은 성당 안에 자기만의 예배실을 만들고, 죽으면 그곳에 묻힌다. 건물 이름에 템플(신전) 또는 성당이라는 명칭을 붙인다. 이 모든 것은 잘못된 교리에 따른 결과물 아닌가.

판테온도 그런 역사를 거쳤다. 고대 로마 신전의 모양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판테온은 이방 종교와 기독교,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의 교리 차이가 건물의 형태에 얼마나 큰 간격을 만들어내는지를 확연하게 보여준다.

 

 

거대하고 육중한 철문을 지나 판테온에 입장하면, 내부 공간은 완벽한 구형을 이루고 있다. 천장의 중앙엔 둥그런 채광창이 하나 뚫려있다. 건물 내부의 상승기류 때문에 이 채광창으로 비가 들이치지 않아서 신비함을 더했다고 하는데, 사실 한국의 장맛비처럼 억수로 퍼부으면 꼭 그렇지도 않을 듯하다. 어쨌든 이 창을 통해 강렬한 햇빛이 내리쏟아져 신전 내벽을 비추는 모습은 신비로움을 더해 주었다. 고대 세계에서 기둥 하나 없이 그저 동그란 모형의 돔만으로 건물을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지금 기준으로 봐도 엄청난 기술이라고 한다.

이곳에서는 해마다 5월이 되면 특별한 행사를 한다. 미사가 끝난 후, 천장 구멍을 통해 다량의 장미꽃잎이 흩뿌려져 내린다. 물론 무슨 기적이 일어난 것이 아니다. 천장 위에서 아르바이트생들이 장미 꽃잎을 엄청나게 삽으로 푸고 있다. 장미는 마리아를 상징한다. 찬란한 햇빛과 함께 쏟아지는 꽃잎을 두 손과 얼굴과 온몸으로 맞으며, 신자들은 마리아의 은총(?)을 한껏 느끼는 모양이다.

재미있는 퍼포먼스지만, 생각할수록 우습고, 한심하고 안타까운 일이기도 하다. 말씀이 밝히 드러나면 군더더기는 사라지는 법이다. 반대로, 건물이 화려해질수록, 예식이 정교하고 복잡할수록, 교회는 본래의 순수성에서 멀어진다.

    *    *    *

두 곳의 성당을 더 보면서 중세 교회를 좀 더 느껴보자. 시간이 없으면 둘 중 하나만 봐도 된다. 판테온에서 더 가까운 곳은 아고스티노 성당이다.

 

아고스티노 성당(Sant'Agostino)

 

나보나광장 북쪽에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이라는 별명이 붙은 ”안젤리카 도서관“이 있다. 보통은 그곳에 많이들 방문한다. 그러나 그 바로 옆에는 사람들이 별로 주목하지 않는 ”아고스티노 성당“이 있다. 웅장하지만 심플한 외관의 석조 건물이다. 겉모습이 주는 첫인상이 워낙 수수하고 평범해서, 관광객의 눈길을 끌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건물 외벽에는 과거에 액자도 걸렸었고 채색도 되었을 법한 심상치 않은 흔적들이 보인다. (사실, 로마의 유적들 대부분은 굳이 관광객의 눈길을 끌려는 시도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 진짜 매력이긴 하다.)

아무튼, 겉모습은 그러하나, 막상 문을 열고 들어가면 별세계가 펼쳐진다. 내부 장식은 화려하기 그지없다. 커다란 장미 창(rose window)에 배치된 채색 유리(stained grass)를 통해 마치 조명처럼 햇빛이 들어온다. 그 조명이 비치는 곳곳에 서 있는 진귀해 보이는 핑크빛, 옥빛 대리석 조각상들은 마치 그 안쪽에 핏줄이 있고 실제로 뜨거운 피가 흐를 것처럼 생생해서 금방이라도 살아 움직일 듯하다. 황금빛이 영롱한 예배실, 천장의 간접조명 효과, 대리석에 박혀있던 보석의 흔적들에도 주목해보자. 이곳은 반종교개혁(counter-reformation) 시기의 흐름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반종교개혁 운동이란 무엇일까. 16세기에 종교개혁이 한창 진행되면서, 드디어 그토록 굳건해 보이던 로마 가톨릭 세계가 무너질 것처럼 보였다. 이런 시기에 종교개혁자들이 제기했던 본질적인 문제에 답하고 겸비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로마 가톨릭은 트렌트 종교회의를 열어 전혀 엉뚱한 결론을 내린다. 본질적인 문제는 덮어버리고, 종교개혁 사상을 교회의 적으로 규정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로욜라를 통해 예수회를 창시하여 청빈과 구휼을 중시하면서 교회와 성직 계급에 대한 호감을 다시 불러일으킨다. 거기에 감각적인 자극으로 신자의 종교심을 북돋워 준다. 바로, ”예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말이다.

 

 

제단 입구를 둘러싼 휘장을 보자. 쉽게 믿기 어렵겠지만, 저게 돌로 만든 조각품이다. 가까이 가서 만져보기 전까지는 믿기지 않았다. 단단한 돌을 저렇게 표현할 수 있다니, 입이 떡 벌어진다.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예배실 앞에 놓인 저 기계 장치이다. 기둥 사이사이에 마련된 예배실마다 성화가 그려져 있는데, 마침 저 동전을 넣는 기계는 거장 카라바조의 작품 앞에 설치되어 있었다. 처음에 필자는 그림이 잘 보이지 않아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옆에서 다른 관광객이 저 기계 장치에 동전을 집어넣으니 불이 환하게 켜지면서 작품의 계조가 살아났다. 예배실을 장식하는 종교적인 기능과 함께, 명화 감상을 목적으로 하는 관광객들에게 돈을 받아내는 저 꼼꼼한 생각을 누가 해냈을까! 종교 행위와 매매 행위가 동시에 일어나는 공간... 참 많은 생각이 들게 한다. (* 작품의 보호와 보존을 위한 저광도 정책일 수는 있겠다.)

누오바 성당(Santa Maria in Vallicella)


밖으로 나와, 나보나 광장을 지나 남서쪽으로 이동하면 누오바 성당을 만난다. 누오바 거리에 있어서 그렇게 부르지만, 정식 명칭은 산타마리아 인 발리첼라이다. 그냥 길거리에 덩그러니 서 있는 성당이라 별 기대 없이 들어갔다가는 여기서도 그만 입이 벌어지고 벌어질 것이다. 로마에서는 구할 수 없다는 붉은색의 값비싼 대리석과 태피스트리, 황금색을 비롯한 형형색색의 명화와 살아 움직이는 듯 정교한 조각상들로 한껏 치장된 곳이다.

 

성당 바깥과 안쪽의 대비가 매우 강렬하다. 으리으리한 실내 디자인에 감각적으로 압도당하는 기분이 들 것이다. 바티칸 미술관에서 보았던 작품들이 이곳 성당 벽화로 떡하니 붙어있다. 필자가 바티칸에서 보고 눈물을 흘렸던 카라바조의 명화 그리스도의 매장도 이곳에 있었다. 박물관에서 군중 가운데 멀찍이서 감상하던 것과 성당에서 조용히 감상하는 것은 또 다른 느낌이었다. 필자와 같이 사전 정보가 없이 방문한 관광객들을 위해서, 예배실마다 붙어있는 벽화들이 사실은 얼마나 유명한 작품들인지를(그것도 무려 15~16세기에 그려진!) 자랑스럽게 소개하는 안내판까지 비치되어 있었다.

 

예술은 좋은 것이다. 종교개혁은 중세의 예술을 모두 부정한 것이 아니었다. 종교개혁은 ‘분별’을 하고자 했던 것이었다. 무지 속에서 온갖 신비주의에 빠져있었던 신자들에게, 특권 의식에 사로잡혔던 성직자들의 독재 아래 노예처럼 살던 신자들에게, 그리스도인으로서 참 자유를 안겨다 준 것이 종교개혁이었다. 그 후손들인 우리가, 이제 또다시 감각적인 안락함에 취해 분별력을 잃고, 소경처럼 거짓 목자들이 이끄는 길로 따라가서는 안 될 일이다.

로마에서 중세 교회의 위세는 이 정도 보면 충분할 듯하다.
우리의 다음 여행지는 로마 남부, 나폴리와 소렌토 지방 사이에 있는 폼페이 유적이다.


황희상
기독교 교리, 역사, 교육 등의 책을 집필하는 작가이다. 『특강 소요리문답』과 『지금 시작하는 교리교육』은 한국교회에 교리교육의 바람을 일으켰으며, 『특강 종교개혁사』는 ‘웨스트민스터 총회’에 대한 충실한 소개로, 종교개혁의 후손들이 지향할 바가 무엇인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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