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말모이’ 인기에 선교사가 만든 ‘영어사전’ 재조명
영화 ‘말모이’ 인기에 선교사가 만든 ‘영어사전’ 재조명
  • 국민일보
  • 승인 2019.01.29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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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G 언더우드(앞줄 가운데)와 JS 게일(앞줄 오른쪽) 선교사가 1906년 성경번역위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국민일보DB
HG 언더우드(앞줄 가운데)와 JS 게일(앞줄 오른쪽) 선교사가 1906년 성경번역위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국민일보DB

‘사전의 재발견’ 기획전이 열리고 있는 서울 용산구 서빙고로 국립한글박물관 기획전시실. 23일 이곳에 들어서자 HG 언더우드와 JS 게일 선교사의 이름이 눈에 띄었다. 

그들의 이름 아래엔 두 선교사가 1890년대에 만든 영한사전과 한영사전이 관람객을 맞이했다. 빛바랜 종이에 또박또박 기록된 영어 단어와 한글의 조합은 지금의 사전과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조선 땅에 현대식 인쇄소가 없던 시절, 선교사들은 일본 요코하마로 원고를 보내 인쇄한 뒤 다시 조선으로 들여와 배포했다.

언더우드는 1890년 ‘한영자전’과 ‘한영문법’ 사전을 잇달아 펴냈다. 한영자전은 최초의 한영·영한사전으로 구성됐다. 한영사전 챕터엔 4910개, 영한사전 챕터엔 6720개의 단어를 담았다. 한영문법은 영문으로 된 한국어 기초 문법서다. 품사에 따라 국어 문법을 체계적으로 기술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조선에 입국한 지 5년 만에 이룬 업적이었다. 후배 선교사들은 그가 만든 사전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한글 공부를 했다. 초창기 조선 선교사들에겐 성경 다음으로 중요한 필독서였다. 

안교성 장로회신학대 교수는 “개신교 선교의 꽃이 성경 번역이기 때문에 조선 땅에 온 선교사들도 초기부터 사전을 만들었고 후배들은 이 사전을 ‘한글 학습의 등대’로 삼았다”면서 “언어를 습득한 뒤에는 바로 성경 번역에 참여했다”고 했다. 그는 “선교사들은 조선에 입국한 뒤 3년이 지나면 한글시험을 봐야 했는데 낙제하면 무조건 귀국시켰을 정도로 강력한 한글 교육 정책을 폈다”고 덧붙였다.

언더우드 선교사가 만든 ‘한영자전’. 국민일보DB
언더우드 선교사가 만든 ‘한영자전’. 국민일보DB


고종이 한글을 우리나라의 공식문자로 선포한 것은 1894년이다. 초창기 혼란스러운 한글 표기와 띄어쓰기는 한글 대중화의 걸림돌이었다. 선교사들이 만든 사전은 한글이 문법을 갖춰가는 데 길잡이 역할을 했다.

게일 선교사는 한글 전문가였다. ‘한영자전’(1897)과 증보판 성격을 띤 ‘한영대자전’(1931)을 펴냈을 뿐 아니라 번역에도 힘썼다. 1895년 최초의 한글 번역서인 천로역정, 1925년 ‘게일번역성경’을 출간했다. 

독립신문은 1897년 4월 24일 자 기사에서 게일을 극찬했다. “조선 사람은 몇천 년을 살면서 자기 나라말도 규모 있게 배우지 못했는데 외국 교사(선교사)가 이 책을 만들었으니 어찌 고맙지 아니하리오. 조선 사람 누구든지 조선 말도 배우고 싶고 영어와 한문을 배우고 싶거든 이 책을 사서 첫째 조선 글자들을 어떻게 쓰는지 배우기를 바라노라.”

국립한글박물관이 지난해 9월 시작한 기획전은 최근 최초의 우리말 사전을 만드는 과정을 그린 영화 ‘말모이’가 개봉하면서 새롭게 관심을 끌고 있다. 전시회엔 1911년 집필된 말모이 원고의 원본도 전시돼 있다. 조선말 큰사전이 완간된 건 1957년이다. 기획전은 오는 3월 3일까지 열린다.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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