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케아 신조
니케아 신조
  • 강도헌
  • 승인 2019.01.11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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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 소집된 니케아 공의회는 ‘고대교회의 신앙’을 요약하는 단일한 신조를 만들자는 여론이 형성되었습니다. 황제는 종교 자문관 호시오스에게 여러 감독들과 논의해서 세부적인 내용을 작성하라고 지시하였습니다. 이에 아리우스파와 그 동조자들은 신조를 작성할 때 성경적인 용어만 쓸 것을 강력히 주장하였습니다. 반면 알렉산더와 그의 제자 아타나시우스는 이것을 일종의 책략으로 받아 들였는데, 그들이 보기에 아리우스파는 ‘성경을 왜곡하는 일’에 능숙하였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알렉산더와 아타나시우스는 아리우스파의 성자가 성부에 종속되었다는 종속론이 이단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논쟁을 해결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성경 밖의 용어를 사용하여 아버지와 아들은 동등한 신성을 가지고 있으며 연합되어 있다는 점을 분명히 표현하기 위하여 성경 밖의 표현을 사용하려고 하였습니다.

논쟁이 계속되고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자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새 신조에 아들은 아버지와 “동일본질(호모우시아)”이라는 주장을 포함시키자는 내용의 제안을 하였습니다. 이것은 아마 종교자문관 호시우스가 콘스탄티누스에게 이 용어를 추천하였고 호시우스는 알렉산더와 아타나시우스로부터 그 방향으로 나가라고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측됩니다. “호모우시오스”는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의 본질” 또는 “하나의 존재”를 의미합니다. 이 언어는 일찍이 테르툴리아누스가 사용한 라틴어 “하나의 본질(우나 서브스탄티아)”을 상기시키는데, 황제의 이러한 제안은 아리우스파를 겁에 질리게 만들었고, 아리우스파가 아닌 일부 감독들도 당황하며 걱정하였습니다. 반면 반(反) 아리우스파의 알렉산더와 아타나시우스 그리고 그들의 친구들은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그리스어 “우시아(본질)”는 한 사람처럼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을 의미할 수 있기 때문에 성부와 성자가 “동일본질(호모우시아)”이라고 말하는 것은 똑 같은 사람이 두 개의 가면을 쓰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고, 이것은 바로 양태론이고 사벨리우스 주의입니다. 물론 “동일본질”을 주장한 쪽에서는 “본질”과 “존재”를 중심으로 하여 성부와 성자의 신성에 국한하여 동일한 본질적 속성의 공유를 의미한다고 설명을 하였지만 “동일본질”이라는 단어는 양태론으로 해석될 여지가 많은 매우 모호한 용어로서 아리우스파에 대한 정죄만을 목적으로 성자가 가지고 있는 인성적 구별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나중에 아리우스주의를 정죄하는 것을 꺼려하였던 중립적인 일부 감독들은 “동일본질”을 주장했던 사람들 중 한 사람이 앙키라의 마르켈리우스였다는 사실을 떠올렸습니다. 앙키라의 마르켈리우스는 숨은 사벨리우스주의자로 유명한 사람이었습니다. 즉, 다른 사람들 몰래 양태론을 믿고 있었는데, 양태론자라고 해서 반드시 불법은 아니었습니다. 양태론이 어떻게 주장되었는가에 관해 주의를 기울인다면 이단으로 간주되지 않았습니다(이것은 지금의 설교 강단에서도 동일합니다.). 마르켈리우스의 “동일본질” 교리에 관한 지지는 니케아 공의회가 휴회하기 전까지도 많은 감독들이 자기들도 모르는 사이에 사벨리우스주의를 정통 교리로 확정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걱정하게 했습니다. 마르켈리우스는 의기양양했고, 알렉산더와 아타나시우스는 태연했습니다. 이들에게 사벨리우스주의는 아리우스주의보다 훨씬 덜 위험한 이단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나중에 사벨리우스주의 문제를 다루려고 했던 것입니다.

황제는 신조를 성문화 하도록 감독 위원회를 임명하고 공의회에 출석할 수 없었던 사람들을 포함하여 모든 감독들이 그 신조에 서명하도록 했습니다. 그 결과 첫 번째 신조가 탄생했습니다. 이 신조는 성령과 교회에 관한 세 번째 조항은 포함시키지 않았습니다. 세 번째 조항은 381년 콘스탄티노플에서 열린 두 번째 에큐메니컬 공의회에서 첨가됐습니다. 이 첫 번째 니케아 신조는 사도 신조를 본뜬 것으로서 아리우스주의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분명히 밝히는 표현을 덧 붙인 것입니다.

우리는 한 분 하나님을 믿는다.

그는 전능하신 아버지이시며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을 만드신 창조자이시다.

그리고 한 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아버지로부터 나오신 자로서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신 하나님이시며, 빛으로부터 나오신 빛이시며, 참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신 참 하나님이시다. 낳으신 자이시고 만들어진 자가 아니다. 아버지와 한 본질이시며 그를 통해서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모든 만물이 존재하게 되었다. 그는 우리 사람들과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하늘로부터 내려오셨고, 성육신하셨고, 인간이 되셨으며, 고난당하시고 3일 만에 부활하였으며, 하늘에 오르셨다. 그리고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실 것을 믿는다.
그리고 성령을 믿는다.

황제는 모든 감독들에게 새 신조에 서명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교구 자리를 내놓고 망명을 가든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아리우스파 감독들은 마지 못해 니케아 신조에 서명을 했지만, 니코메디아의 유세비우스와 니케아의 테오그니스 두 사람은 서명을 거절했습니다. 이 두 사람이 서명을 거절하자 황제와 다른 감독들은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유세비우스와 테오그니스 모두 매우 영향력 있는 감독들이었고 모든 사람들은 이 두 사람이 신조에 서명하지 않으면 이 문제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공의회가 폐회될 때까지도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었습니다. 니케아 신조는 동방의 두 유력 감독들이 주장한 교리를 이단으로 정죄하다고 문서화했고, 이 신조는 또 다른 이단 사벨리우스주의에 문을 열어주는 동시에 실제로 사벨리우스주의를 주장했던 감독을 승리자 중의 한 사람으로 만들어준 셈이 되었습니다. 이를 두고 교회역사학자 곤잘레스는 “니케아 신앙형식 그 자체에는 여전히 커다란 모호성이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한국개신교회 안에 익숙하지 않은 에큐메니컬 공의회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강도헌
제자삼는교회 담임,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프쉬케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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