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는...
새해는...
  • 이대헌
  • 승인 2019.01.08 16: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새해 들어 여러 날이 지나갔지만 유난히 올해는 마음이 잘 정돈되지 않고 어떤 무거움이 나를 누르는 듯한 느낌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글이나 쓰고 있으면 무엇 하나 하는 생각에 글 쓰는 것도 힘들어 매일 입력해야 하는 자료와 쓰지 않으면 안 되는 글만 쓰고, 메모도 하지 않고 여러 날을 보냈는데 이제는 더 머뭇거릴 시간도 없다. 세월이 흐르는 속도는 달리는 차가 내리막길에서 가속도 붙듯이 나이에 비례해서 빨라진다는 데.

나 자신이 처한 형편을 생각하며 연초에 내 살아온 날들을 천천히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는데 많은 것들이 생각나고 나를 무겁게 했다. 내가 기억하는 것 중에 잘못한 것도 있고 잘 한 것도 있지만 내가 잘못한 것은 무의식중에라도 잊었을 가능성도 있으므로 실제로 그 비중은 잘못한 것이 더 클 것이다. 이제 살아가는 동안, 얼마가 남았는지는 모르지만 기회가 주어지면 좋은 흔적을 많이 남기며 살고 싶다. 그분에게도 모든 사람에게도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 같이’ 살고 싶다.

그리고 나는 큰 뜻을 품고 나라나 세계의 미래를 어찌해 보겠다거나 뭔가 기여를 해보겠다는 사람이 아니지만, 앞날을 생각하면 늘 걱정이 내 마음을 떠나지 않는다. 전에 썼던 글에서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는데, 교회에서도, 나라 안에서도, 나라 밖에서도, 친구들 간에도 서로 다른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

누군가가 나에게 내가 인정할 수 없거나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하고, 나도 그에게 그가 인정할 수 없거나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할 것이다. 그 이야기의 옳고 그름은 각자 자신의 잣대로 판단할 것이다. 그런데 그 잣대가 다르다는 것이 문제다. ‘속이는 저울’, ‘한결같지 않은 저울 추’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신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늘 앞날을 염려할 때마다 결론은 언제나 ‘역사의 주인’이신 분이 계시기 때문에 염려하지 말고 그분의 뜻에 맡기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분의 뜻을 말하는 데도 서로 달리 말하는 것이 판단을 어렵게 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어쨌든 연초의 여러 염려와 불편함은 다른 해보다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그분을 의지하는 것으로 해소되었음을 고백한다. 

겨울이 혹독해지니 또 생각나는 것은 여러 해 전 어느 산 밑에서 폐교 교실을 방으로 개조해서 살고 있을 때의 일이다. 수도 시설이 안 되어 있어서 옥상 물탱크의 물을 파이프로 연결해서 사용하고 있었는데 배관이 수평으로 길게 노출되어 있어서 한겨울에 얼고 말았다. 물론 얼지 않게 한다고 열선도 넣고 보온재로 감싸주기도 했지만 공사를 워낙 허술하게 해서 그렇게 되었는데 그걸 녹이느라 고생께나 했다. 

그래서 물이 똑똑 떨어지게 하면 얼지 않는다 해서 그렇게 했더니 이번에는 그 물이 내려가면서 밤새 얼어붙기 시작해서 하수관 전체가 얼었는데 하수관이 상수관보다 굵어서 그것 녹이는 데는 사흘이 넘겨 걸렸다. 상수관이 얼면 어디선가 물을 받아서 가져와 쓰면 되지만 하수관이 얼면 아예 물을 사용할 수가 없어서 불편함이 더 했다.

그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가 살아가면서 특별한 생각 없이 누리는 작은 하나라도 그것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얼마나 불편한가, 의미 없어 보이는 일상을 누리는 것조차도 참으로 감사한 일이 아닌가 하고 어느 신문에 쓴 적이 있다. 서울에 계신 분들이 얼마 전에 겪었던 ‘통화대란’의 경우가 그런 것 아니겠는가.

여러 가지 세상 일이 염려스럽고 불만스럽더라도 아직은 큰 어려움 없이 우리의 작은 일상이 유지되고 있어 감사한 일이나 그마저도 위태한 지경에 이르지 않도록 우리 모두가 잘 살피며 살아야 한다. 이미 그런 일상을 누리는 것마저도 어려운 이웃도 있으니 그들을 위한 사랑의 배려도 필요하다.

이번에 소개할 곡은 뭔가 정리되지 않고 어수선할 때, 마음이 편하지 않을 때 내가 자주 듣는 곡이다. 주관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이 곡을 들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이 곡 음반을 얼마나 자주 듣는가 하는 것으로 내 마음의 상태를 내가 짐작할 수 있다. 

레스피기(Ottorino Respighi, 1879-1936)의 ‘류트를 위한 옛 춤곡과 아리아 모음곡 3번’이다.
레스피기는 바르톡이나 스트라빈스키와 동시대 작곡가이고, ‘로마의 분수’, ‘로마의 소나무’가 그의 작품이다. 그가 옛 음악에 관심을 가지고 그 곡을 오케스트라 곡으로 편곡하여 만든 모음곡이 ‘류트를 위한 옛 춤곡과 아리아 모음곡’인데 그 가운데 세 번째 모음곡이 이번에 들으실 곡이다. 

네 곡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각 이 악장의 개념은 아니고 독립된 스타일의 곡이다. 네 곡 모두 원곡은 17세기의 곡들이다.(인터넷에서 검색하면 연대가 일치하지 않는데, 음반 표지해설에 따른 것임)
무명의 작곡자의 곡(1, 3번)도 있고, 작곡자를 알 수 있는 곡(2번 베사르도, 4번 론첼리)도 있다.

레스피기는 류트 연주곡이었던 곡을 현악기만의 오케스트라로 연주하는 곡으로 편곡했고, 화성적 색채, 춤곡으로서의 리듬과 이탈리아 스타일의 노래하는 듯한 선율의 원곡 특성을 유지했다. 음악사적으로 이 곡은 신고전주의에 속한다.

신약성경 고린도후서 6장에 이런 말씀이 있다. 

“아무도 우리가 섬기는 이 일에 흠을 잡지 못하게 하려고, 우리는 무슨 일에서나 아무에게도 거리낌거리를 주지 않습니다. 우리는 속이는 사람 같으나 진실하고, 이름 없는 사람 같으나 유명하고, 죽는 사람 같으나, 보십시오, 살아 있습니다. 징벌을 받는 사람 같으나 죽임을 당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않고, 근심하는 사람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사람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사람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사람입니다.”(성경전서 표준새번역 개정판)

이 말씀이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말씀이었고, 올해는 이 말씀에 나오는 ‘우리’처럼 살아가려고 한다. 

새해에는 모든 독자들에게 각자 합당한 복 주시기를 바란다. 그리고 차가운 날씨에 마음조차 싸늘하게 식지 말고 어느 하나에서라도 훈기를 주는 무엇이라도 찾아내어 겨울 잘 나시기 바란다.


이대헌
학창시절 아는 음대생들이 ‘브람스’라고 불렀고, 아직도 크로매틱 하모니카로 ‘틸레망 따라 불기’를 꿈꾸는 언론학 전공의 60대 사역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