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레스덴의 랄프 이야기-No War in Korea
드레스덴의 랄프 이야기-No War in Korea
  • 이태형
  • 승인 2018.11.14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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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상황이 1년여 사이에 극적으로 바뀌었다. 아직도 갈 길은 멀어 보이지만, 변화는 시작되었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북한 지역에서 남한 지역으로 필사적으로 건너오려던 북한 병사가 같은 북한 군인들로부터 총탄 세례를 받았던 것도 지난해였다. 남북군사합의서에 따라 지난달 25일부로 JSA의 비무장화가 시작되었다. 그야말로 극적인 전환이다.
 
변화된 환경을 보면서 나는 2017년 8월 독일 드레스덴의 유명한 성모교회(Frauen Kirche) 앞 광장에서 만난 랄프라는 독일인을 생각한다. 당시 나는 뭔가에 이끌린 것처럼 드레스덴을 방문했다. 트럼프와 김정은의 '말 폭탄'으로 인해 한반도에 일촉즉발의 전쟁위기가 고조된 때였다. 남한에서는 전쟁에 대비한 '생존배낭' 구입이 현실화 되었던 시기였다. 

독일 드레스덴은 전쟁의 참극을 경험한 도시다. 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연합군의 폭격기 수천대가 전쟁물자 생산기지였던 드레스덴을 맹폭했다. 2만 5천여 명이 사망했고 '엘베강의 피렌체'라 불리던 고도(古都) 드레스덴의 90%가 파괴됐다. 성모교회도 완전히 파괴됐지만 전쟁 후에 과거의 모습을 기억한 수많은 사람들이 사방에 흩어진 파편들을 모아 복구했다. 

관광객들로 붐비는 광장에서 나는 한 사람의 모습을 눈이 뚫어져라 보게 되었다. 한 독일인이 가슴에 'No War in Korea'(한국에 전쟁이 없기를)라고 쓰인 종이 피켓을 들고 광장에 서 있었다. 사람들은 무심한 듯 그 사람을 쳐다보며 지나갔다. 그러나 한국인인 나는 그럴 수 없었다. 그 모습을 보며 가슴이 너무나 뜨거워졌다. 그에게 다가가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그는 랄프라는 드레스덴 시민으로 성모교회 신자였다. 과거 전쟁의 참극을 겪은 동독인으로, 크리스천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모는 전쟁이 한반도에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마음으로 광장에 나왔다고 했다. 전쟁은 한 사람의 인생 뿐 아니라 한 도시, 한 국가를 잿더미로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드레스덴을 통해서 배워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떤 경우에도 전쟁은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하나님께 전쟁을 막아달라고 함께 기도하자고 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 세상에 좋은 전쟁도, 나쁜 평화도 없다'고 말했던 벤자민 프랭클린의 말이 생각났다. 우리와는 전혀 관계가 없을 것 같은 저 머나먼 드레스덴에서 한 사람이 한반도를 위해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광장에 섰다. 랄프는 그렇게 내 마음에 새겨졌다.

 

올 5월과 6월 연이어 열린 남북과 미북정상회담에서 '한반도에서의 전쟁을 종식한다'는 내용이 나왔다. 아직도 길은 멀지만, 전쟁에서 평화로의 극적인 전환이었다. TV를 통해 그 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머나먼 드레스덴에서 한반도를 위해 광장에 섰던 랄프를 떠올렸다. 'No War in Korea'를 외쳤던 그의 기도가 응답되었다고 믿는다. 우리는 그가 누군지 알지 못한다. 그는 이름 없고(Nameless) 얼굴 없는(Faceless) 그저 한 명의 크리스천이었다. 그러나 그는 한반도를 위해 기도했고, 광장에 섰다. 그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기도했고 도저히 견딜 수 없는 마음에 광장으로 나와 사람들에게 호소했다. "No War in Korea"라고. 그는 지금도 기도하고 있으리라. 지금도 우리는 알 수 없지만 이름 없고, 얼굴 없는, 아무것도 아닌, 그러나 아버지의 마음을 지닌 수많은 크리스천들이 한반도 평화를 위해, 이 땅의 부흥을 위해 광장에서, 골방에서 손을 모으고 있을 것이다.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의 희망은 바로 거기에 있다. 내겐 랄프가 희망의 사람, 평화의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의 이야기를 여기에 기록으로 남긴다. 


이태형 
기록문화연구소장 

[기록문화연구소]는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 예수 그리스도를 따랐지만, 일체의 유익이나 어떤 금전적 유익도 얻지 못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길(The Way)을 '끝까지' 걸어갔던 알려지지 않은 소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는 연구소입니다. [kirok2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