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효성
방효성
  • mytwelve
  • 승인 2018.11.12 15: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홍해를 건넘같이, 잿소. 먹. 아크릴.콘테, 64X50, 2006년
홍해를 건넘같이, 잿소. 먹. 아크릴.콘테, 64X50, 2006년
축복의 약속, 잿소. 먹. 아크릴.콘테, 64X50, 2006년
축복의 약속, 잿소. 먹. 아크릴.콘테, 64X50, 2006년
나를 기념하라, 잿소. 먹. 아크릴.콘, 64X50, 2006년
나를 기념하라, 잿소. 먹. 아크릴.콘, 64X50, 2006년
The first passover, 잿소. 먹. 아크릴.콘테, 64X50, 2006년
The first passover, 잿소. 먹. 아크릴.콘테, 64X50, 2006년

 

몸으로 부터..

나의 행위예술은 신체라는 도구를 이용하여 동시간 살아 숨쉬면서 관객과 호흡을 할수 있는 가장 생생한 전달 매체가 아닌가 하는데 있다. 결과물로 관객과 접하는 기존의 작품들과는 다른 맛이 담겨져 있다. 신체언어. 이것을 시간속에서 풀어나가는것을 우리는 퍼포먼스라고 한다. 요즘 모든 행동예술에 일컬어 포괄적으로 연극과 음악, 무용, 인스트루맨트가 퍼포먼스라는 말로 지칭 되고 있지만 그것은 퍼포밍아트에 일종일뿐이며 특히 미술의 영역에서 시작하는 행위예술은 행동양식이 비슷할수있으나 그 속에 감추어진 생태적 뿌리는 많은 차이가 있다고 본다.

나의 행위예술은 어린시절 길을 걸으며 담벼락(담장)을 따라 백목을 가지고 선을 그으면서 다니는 순간 행위는 이미 시작 되었다고 볼수도 있다. 또한 어린시절 대보름날 불놀이를 즐겨했던 것도 시각적 쾌를 느끼곤 했던 흔적일수도 있다. 길을 걸으며 마음속으로 어떤 수를 정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중 내가 마음먹은 수에 만난 낯모를 사람에게 인사를 하고 다녔던 고등학교 시절부터 이미 행위의 시작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무심코했든 의미를 부여했든 의식 근저에 무엇인가 신체의 행위를 통한 나름대로의 놀이로의 즐거움을 느끼고 있었다고 할수 있다.

그후 70년대를 맞아 개념미술과 미니멀리즘이 성행 할때 대학시절을 보내며 행위의 매력에빠져들기 시작 했다. 나의 행위는 ‘쾌’라고 정의를 내린다. ‘쾌’는 동시간에 행위자와 관객의 내재된 의식속에서 본능적으로 치밀어 오르는 카타르시스 같은 것으로 설명과 논리와 이론으로 이야기 되기 이전 느낌으로 일체감을 맛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러한 쾌를 이야기 할때 메카니즘으로 전제되어지는 도구로써의 몸이 있다.


나는 신체라는 말보다 몸이란 말을 사용한다. 신체라는 물리적인 존재가 아닌 몸은 우리의 육체와 영혼을 담고 있는 것으로 물질적인것과 비 물질적인 모든것을 포함한 것이라 할수 있다.
몸이란 것이 갖는 상황적 언어를 통하여 내가 말하려고 하는것은 자연 환경과 생태, 생리적인 측면과 사회적인 존재로써의 몸. 윤리와 관습으로의 몸이 있으며 기계공학적 측면과 종교적인 측면도 있다.
기독교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나는 몸이란 도구로 표현 될 수 있는 대속 제물 로 의 몸에 대하여 행위속에 많이 보여 지고 있는것도 간과 할수 없다.


몸으로써 시간과공간과 역사 의식 안에 놓여진 문제도 상황언어에 속한다 할수 있다. 
몸이란 정신의 지배하에 있으며 그 생각과 사상 가치관에 의하여 고상하게도 되고 때론 추하게도 된다. 몸의 언어는 우리가 단지 물리적 또는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것 그 이상의 것을 담고 있는 표현 도구 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