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모양
사랑의 모양
  • 이한나
  • 승인 2018.10.15 10: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무채색의 위로 9

무채색의 위로 9

사랑의 모양 

 

 얼마 전 친구의 SNS 타임라인에서 친구 어머니의 카카오톡 메시지를 본 적이 있다. 친구의 동생은 지금 타국으로 워킹 홀리데이를 떠나 있는데, 어머니가 가족 카톡방에서 동생을 그리워하며 보낸 문자 메시지를 친구가 캡쳐해서 올린 것이었다. 어머니의 메시지는 이랬다. 

 

‘여긴 완연한 가을! 너 없는 서울은 앙꼬 없는 찐빵, 얼음 없는 콜라, 케첩 없는 감튀(감자튀김), 잡채 없는 명절, 라임 없는 긴 랩.’ 

 

 동생의 빈자리가 주는 허전함을 얼마나 잘 표현하시는지 나까지도 그 아쉬움이 생생히 느껴지는 것만 같은 멋진 고백이었는데, 나는 특히 마지막 표현이 넋을 잃을 정도로 너무 좋았다. 그냥 긴 랩도 아니고 라임 없는 긴 랩이라니. 라임 없는 긴 랩이 얼마나 괴로운지는 힙합을 열심히 들어본 사람만이 알아챌 수 있는 비밀이기에 나는 그런 사랑의 표현을 공유하는 친구의 가족이 내심 부러웠다. 친구는 평소에 어머니와 힙합을 함께 즐겨 듣곤 한다고 말해 주었는데, 친구가 공유하는 플레이리스트에는 욕설이 난무한 진짜배기 힙합도 있어 꽤나 놀랐던 기억이 난다. 우리 엄마는 랩을 들으면 ‘저렇게 부르는 것도 과연 노래인지 잘 모르겠다’고 말씀하시곤 했기 때문에 더 놀랐던 건지도 모르겠다.

 

 우리 엄마가 나에게 그런 사랑의 고백을 건네려 한다면 뭐라고 하셨을까? 엄마는 주로 직설적으로 나에 대한 사랑과 속마음을 고백하시는 분이라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예상해 보건대 ‘마가린 향만 나는 빵’ 같은 표현을 쓰셨을 것 같다. 아니면 ‘쇼트닝만 들어간 쿠키’ 라든가. 무엇이 되었든 ‘라임 없는 긴 랩’ 만큼이나 일반적인 사랑의 표현은 아닐 것이다. 

 

 엄마는 종갓집 며느리가 되고 싶었던 사람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요리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엄마의 요리에 대한 열정은 누구보다 대단해서, 한식을 넘어 당시의 엄마에게는 생소했을 양식과 제빵에까지 다다랐다. 엄마는 하나를 해도 제대로 하는 분이라 기술을 배우는 데서 만족하지 않으셨고 영양 성분이나 레시피에 관한 공부도 열심히 하셨다. 덕분에 나는 친구들은 잘만 즐기는 빵이나 맛있는 과자를 먹을 수 없었다. 내 입에는 그게 그것 같은데, 엄마는 늘 건강한 빵과 그렇지 않은 빵이 있다고 하셨다. 색소가 너무 많이 들어가서 안 되고, 동물성 크림이 아니라 식물성 크림을 써서 안 되고, 트랜스지방이 많아서 안 되고... 친구들이 학원을 땡땡이친다고 혼날 때, 나는 마가린과 버터의 맛을 구별하지 못한다고 혼났다. 

 

 소설가 김애란 작가는 한 칼럼에서 자신을 키운 8할의 기대를 배반한 작은 2할이 자신의 인생을 바꿨다고 생각한다고 썼다. 사범대학에 가라는 어머니의 뜻을 거슬러 친 예술학교 시험이 그녀의 인생을 바꿨다는 것이다. 20대의 어떤 평범한 이들처럼 부모님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을 때, 아주 가끔 그 사랑이 버겁게 느껴지는 것만 같을 때, 나는 그녀가 말했던 작은 2할이라는 단어에만 눈길이 갔다. 하지만 지금은 그녀가 그 뒤에 덧붙인 것처럼 나를 키운 8할에 대해서 더욱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그 8할에는 분명히 어떤 모양이 있다. 

 

 어릴 때 나는 엄마와 함께 누워서 이것저것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문 열어놓기를 좋아하던 엄마 덕에 늘 바람이 집안까지 살랑살랑 불었다. 엄마는 늘 오븐에서 빵을 구워 주었고, 매 끼니마다 새로 밥을 지었다. 밀가루가 폴폴 날릴 때면 나는 엄마 옆에 앉아서 다져진 피칸으로 장난질을 했다. 엄마가 구워주는 생선은 정말 맛있었고, 양념된 오이, 지진 가지, 볶은 감자까지 다 맛있어서 투정할 것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조금 더 자극적인 것을 먹고 싶어 오백원짜리를 들고 문방구 앞을 서성거리면, 혹은 엄마를 따라간 마트에서 과자 코너를 돌아다니면, 엄마는 어김없이 영양성분표를 보여주며 훈계를 하셨다. 그리고 꼭 마지막에는 그러셨다. 먹고 싶으면 조금만 먹으라고. 그건 엄마라는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독특한 사랑의 모양이었다. 

 

 누군가에게는 라임이 죽여주는 길지 않고 적당한 랩이, 누군가에게는 완벽한 배합으로 발효된 영양가 넘치는 빵이, 누군가에게는 또 어떠한 무엇인가가 사랑의 모양이 될 것이다. 사랑의 모양은 다채롭고 셀 수 없이 많다. 그런 모양들이 스며들어 누군가의 귓속에, 또 뱃속에, 또 깊은 마음속에 자리 잡는다. 그것을 온전히 내 안으로 받아들인 나 역시 나만의 어떤 모양을 만들어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 분명한 건 엄마에게만큼은 나의 어떤 모양으로도 그 사랑을 보답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그저 내가 엄마의 엄마가 되고 엄마가 나의 딸이 되는 기회가 단 한번이라도 주어지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이한나

우연히 마주친 사소한 순간으로부터 위로를 받고, 발만 보고 걸어도 걷다 보면 길이 될 거라고 믿는 사람. 해가 지기 직전의 오묘한 하늘과 공기를 좋아합니다. 
https://www.facebook.com/writerpulchr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