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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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ytwelve
  • 승인 2018.01.29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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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옥 / 바티칸-미얀마 194-112cm oil on canvas 2014
김미옥 / 바티칸-미얀마, 194-112cm, oil on canvas, 2014
김미옥 / 가우디성당-앙코르와트 116-91cm oil on canvas 2014
김미옥 / 가우디성당-앙코르와트, 116-91cm, oil on canvas 2014
김미옥 / 가우디성당-동자승 91-65cm oil on canvas 2014
김미옥 / 가우디성당-동자승, 91-65cm, oil on canvas, 2014
김미옥 / 아우슈비츠-유토피아Ⅲ 91-65cm oil on canvas 2014
김미옥 / 아우슈비츠-유토피아Ⅲ, 91-65cm, oil on canvas, 2014
김미옥 / 아우슈비츠-유토피아Ⅱ, 91-65cm, oil on canvas, 2014
김미옥 / 아우슈비츠-유토피아Ⅱ, 91-65cm, oil on canvas, 2014
김미옥 / 콜로세움-요단강, 145-112cm, oil on canvas, 2014
김미옥 / 콜로세움-요단강, 145-112cm, oil on canvas, 2014
김미옥 / 바티칸-바라나시, 130-89cm, oil on canvas, 2014
김미옥 / 바티칸-바라나시, 130-89cm, oil on canvas, 2014
김미옥 / 뉴욕-방콕, 116-72cm, oil on canvas, 2014
김미옥 / 뉴욕-방콕, 116-72cm, oil on canvas, 2014
김미옥 / 뉴욕 뉴델리, 130-89cm, oil on canvas, 2014
김미옥 / 뉴욕 뉴델리, 130-89cm, oil on canvas, 2014
김미옥 / 워싱턴 베트남중부Ⅱ, 130-89cm, oil on canvas, 2014
김미옥 / 워싱턴 베트남중부Ⅱ, 130-89cm, oil on canvas, 2014
김미옥 / 워싱턴 베트남중부Ⅰ, 162-130cm, oil on canvas, 2014
김미옥 / 워싱턴 베트남중부Ⅰ, 162-130cm, oil on canvas, 2014
김미옥 / 뉴욕-갠지스강, 162-130cm, oil on canvas, 2014
김미옥 / 뉴욕-갠지스강, 162-130cm, oil on canvas, 2014
김미옥 / 아우슈비츠-유토피아, 91-65cm, oil on canvas, 2014
김미옥 / 아우슈비츠-유토피아, 91-65cm, oil on canvas, 2014
김미옥 / 아우슈비츠-유토피아, 116.5-72cm, oil on canvas, 2014
김미옥 / 아우슈비츠-유토피아, 116.5-72cm, oil on canvas, 2014
김미옥 / 야구장, 33x23.5cm, oil_on_canvas, 2013
김미옥 / 야구장, 33x23.5cm, oil_on_canvas, 2013
김미옥 / 그리스신전, 32X32cm, oil on canvas, 2013
김미옥 / 그리스신전, 32X32cm, oil on canvas, 2013
김미옥 / 가우디성당, 33X23.5cm, oil on canvas, 2013
김미옥 / 가우디성당, 33X23.5cm, oil on canvas, 2013
김미옥 / 바티칸-갠지스강, 162.1x227.3cm, acrylic on canvas, 2013
김미옥 / 바티칸-갠지스강, 162.1x227.3cm, acrylic on canvas, 2013
김미옥 / 피라미드-갠지스강, 162.2* 130cm, acrylic on canvas, 2013
김미옥 / 피라미드-갠지스강, 162.2* 130cm, acrylic on canvas, 2013
김미옥 / 앙코르왓-개선문, 91*65cm, acrylic on canvas, 2011
김미옥 / 앙코르왓-개선문, 91*65cm, acrylic on canvas, 2011
김미옥 / 앙코르왓-에펠탑, 130.5*89cm, acrylic on canvas, 2011
김미옥 / 앙코르왓-에펠탑, 130.5*89cm, acrylic on canvas, 2011
김미옥 / 토파즈 궁전-창덕궁, acrylic on canvas, 2011
김미옥 / 토파즈 궁전-창덕궁, acrylic on canvas, 2011
김미옥 / 스핑크스, 162.2*130.3cm, acrylic on canvas, 2011
김미옥 / 스핑크스, 162.2*130.3cm, acrylic on canvas, 2011

 

김미옥의 회화

생명, 문명과 문명을 매개하고 치유하는 물

 

고충환(Kho, Chung-Hwan 미술평론)

 

 

미국의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은 저서 <문명의 충돌>에서 냉전종식 이후 세계를 예견한다.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가 대립하던 시대가 가고, 문명과 문명이 충돌하는 시대가 온다고 본 것이다. 그가 문명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은 것이 종교이고 보면, 차후에는 종교분쟁이 대립과 갈등을 조장하는 새로운 원인이 될 거라고 진단한 것이다. 그러나 알고 보면, 종교와 이데올로기를 분리할 수는 없다. 오히려 종교가 이미 이데올로기가 아닌가. 해서, 다만 정치적 이데올로기와 종교적 이데올로기가, 형이하학적 이데올로기와 형이상학적 이데올로기가, 세속적 이데올로기와 내세적 이데올로기가 있을 뿐이다. 삶의 그리고 존재의 모든 길은 이데올로기로 통한다. 이데올로기 바깥에는 아무 것도 없다. 그리고 문명의 사례로 꼽은 것에서도 알 수 있듯 종교가 이미 문명의 한 형태가 아닌가. 그러므로 종교는 동시에 이데올로기이고 문명이기도 하다. 사실 종교분쟁과 문명의 충돌은 냉전시대 이전에도 있었고, 지금은 비록 관광지며 유적지로 변질된 역사적 장소가 이런 사실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인류의 역사는 유감스럽게도 성선설보다는 성악설을 더 믿게 한다. 이런 역사적 장소는 거의 예외 없이 성악설을 침묵으로서 증언해주고 있다. 폭력의 역사며 희생(희생이 아닌 희생자 만들기)의 역사, 추방의 역사며 광기의 역사가 아로새긴 상처를 기억하고 있다.

 

작가는 이런 상흔을 간직하고 있는 역사적 장소를 순례한다. 직접 그 장소를 방문하기도 하고, 몸 대신 정신을 보내는 의식의 유목을 통해서 찾기도 한다. 그렇게 역사적 장소를 찾아서 그 장소가 간직하고 있는 상처의 기억을 위로하고 보듬어주고 싶다. 대립과 갈등을 넘어 화해와 치유의 메신저가 되고 싶다. 그리고 그렇게 인간의 본성이 사악한 것이 아니라 선한 것임을 증명하고 싶고, 인류의 역사가 성악설이 아닌 성선설에 의해 견인되는 것임을 증언하고 싶다.

그렇게 작가의 그림 속엔 콜로세움이 들어온다. 주지하다시피 콜로세움은 초기기독교의 성지이기도 하다. 원래 공연과 경기를 위해 지어진 것이지만, 정작 이보다는 오히려 초기기독교인들을 사자 밥으로 던져준, 기독교인들이 흘린 피로 얼룩진 것으로 더 많이 알려진 곳이다. 르네 지라르는 폭력과 성스러움이 결국 하나라고 본다. 민중의 폭력욕망을 투사할 수 있는 희생양을 제공하는 것, 민중의 폭력 앞에 희생양을 내어주는 것에 제도와 권력의 승패가 달려있다. 그렇게 로마제국이 기독교도를 죽였고, 사실은 유태인이 기독교인을 죽였다. 시대를 건너 뛰어 나치와 아우슈비츠의 악연에도 이런 유태인과 기독교도의 오랜 반목이 유령처럼 재등장한다. 물론 히틀러의 광기가 인종청소의 일차적인 원인이지만, 민중의 이면합의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게 기독교와 유태교가 부닥치고, 유태 선민사상과 아리안족 순혈주의가 충돌한 것. 그리고 그렇게 히틀러가 유태인을 학살하고, 이번에는 거꾸로 기독교도가 유태인을 죽인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라는 유태인의 율법은 그대로 기독교도에게도 적용되는 준칙이었다.

눈치 챘겠지만, 이렇게 작가의 그림 속엔 콜로세움과 함께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들어온다. 각각 기독교의 성지(유태인에 의해 기독교인이 죽임을 당한)며 인종청소의 현장(기독교도에 의해 유태인이 죽임을 당한)에 해당한다. 이렇게 비교해놓고 보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한눈에 들어온다. 여기서 대립과 갈등을 넘어 화해와 치유의 계기를 열어놓는다는 작가의 주제의식을 상기해보자. 작가는 콜로세움의 빈 원형 경기장에 기독교의 젖줄인 요단강이 흐르게 한다. 요단강에선 세례의식이 행해지고 있는데, 알다시피 기독교에서 세례는 정화 곧 거듭나는 삶을 의미한다. 그리고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동서 베를린의 경계에 위치해 있어서 동서화합을 상징하는 브란덴부르크문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작가는 이처럼 콜로세움과 요단강,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브란덴부르크문을 하나의 화면 속에 공존시켜 아마도 폭력으로 얼룩진 역사적 현장이 화해와 치유의 현장으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현했을 것이다. 그리고 아우슈비츠를 그린 다른 그림에서 작가는 수용소 멀리 디즈니랜드를 그려 넣었다. 여기서 디즈니랜드는 말할 것도 없이 유태인이 꿈꾸었을 유토피아를 상징하고, 꿈답게 그리고 유토피아답게 신기루를 보는 것 같은 비현실적인 느낌이다.

그리고 작가는 가톨릭의 메카인 바티칸과 인도의 성지인 바라나시를 하나의 화면에 불러들여 서양의 종교와 동양의 정신을 화해시킨다. 인도사람들이 갠지스 강에서 몸을 씻는 것은 기독교도가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는 것과 같다. 여기에 인도사람들은 죽은 사람들의 재를 뿌려 흘려보내기도 한다. 갠지스는 말하자면 생명의 강인만큼이나 죽음의 강이기도 하다. 여기서 죽기 위해 세계 도처에서 사람들이 모여드는 죽음의 성지라고나 할까. 기독교도에게 요단강이 죽은 사람이 건너가는 성스러운 강이듯(세례는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으로 거듭나는, 그 속에 죽음에 대한 예행연습이 들어있다) 인도사람들에게 갠지스는 생명을 낳고 거두어가는 우주의 어머니를 상징한다. 그리고 작가의 그림에서 인도는 문명의 첨단이며 자본주의의 꽃인 뉴욕과 매치되기도 한다. 세상에서 시간이 가장 빨리 가는 곳과 가장 느리게 흐르는 두 곳을 대비시킨 것이다. 시간이 모자랄 만큼 빨리 도는 자본주의의 시계는 동시에 욕망의 시계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걷잡을 수 없는 욕망과 느리게 흐르는 욕망을, 자본과 자연을 대비시킨 경우로 봐도 되겠다.

작가의 그림에선 이처럼 문명과 문명, 종교와 종교, 자본과 자연, 삶과 죽음의 역사적 현장이 하나의 직물로 직조된다. 그리고 직물은 예술과 자연이 직조되는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스페인의 천재적인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가 건립한 대성당과 마치 얼기설기 엮인 거대한 나무뿌리가 신전을 지탱하고 있는 것 같은 앙코르와트의 장면을 대비시킨다. 자연에서 영감을 얻는 가우디의 원천을 생각하면 예술이 예술의 원천으로서의 자연과 매치된 경우로 볼 수 있겠고, 기괴한 것으로 치자면 초현실주의의 낯설게 하기와도 통하는 대목이지 싶다. 신전을 지지하고 있는 나무 자체를 자연이 만든 예술로 본다면, 자연이 만든 예술과 사람(아님 천재?)이 만든 예술을 매치시킨 경우로 볼 수도 있겠다. 자연이 예술의 스승이라는, 오랜 미학적 전언을 새삼 되새겨 봐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이데올로기적 현실이 충돌한다. 베트남 전쟁이 팍스아메리카나의 무모한 소산임은 잘 알려져 있다. 베트남 농부들이 모심기에 여념이 없는 논이 끝나는 자리에 무슨 선사시대 우주인들이 건립해놓은 스톤헨지 같은 모뉴멘트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미국의 상징인 워싱턴기념빈데, 장면 자체가 오리무중인 것처럼 미국의 베트남 참전은 뜬금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작가는 불협화를 협화로, 대립과 갈등을 화해와 치유의 계기로 바꿔놓고 싶다는 자신의 이상을 그림 속에 투사하고 있었다. 그림 속에서의 매치가 비현실적인 것처럼 비록 실재하지 않는 풍경이지만, 그래도 공동선을 향한 인류의 미래며 인간의 신뢰를 믿고 싶었다. 비록 디스토피아가 보편적인 진실로 받아들여지는 현실이지만(누군가는 디스토피아를 넘어 헤테로토피아가 작금의 현실인식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여하튼), 그래도 유토피아를 향한 인간의 이상을 믿고 싶었다. 그리고 그렇게 인류의 미래며 인간의 신뢰를, 인간의 이상을 그림으로 풀어놓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런 미래며 신뢰며 이상은 어떻게 가능한가. 여기서 작가의 그림에 나타난 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비록 작가의 모든 그림에 물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이곳과 저곳을 매치시키는 매개가 물의 상징적 의미와 통한다고 보면 되겠다. 작가의 그림에는 예컨대 콜로세움에 요단강이 흐르고, 바티칸의 열주를 따라 갠지스 강이 흐르고, 뉴욕 시가지를 가로질러 인도의 강(아마도 역시 갠지스 강일 것)이 흐른다. 그리고 유태인의 현실과 이상 사이에도, 심지어 베트남 농부의 논에도 물이 흐른다. 그림에서 강은 피로 얼룩진 폭력의 역사 위로 흐르고, 홀로코스트의 비현실적인 기억 위로 흐르고(홀로코스트와 디즈니랜드의 매칭이란, 얼마나 비현실적인가), 동서 문명의 토포스(지정학적 장소며 인문학적 장소) 위로 흐르고, 자본과 욕망과 이데올로기 위로 흘러넘친다. 그렇게 범람하면서 이것과 저것을 연이어주고, 이곳과 저곳을 봉합한다. 아마도 물의 상징적 의미 곧 생명이 하는 일이며, 그 일 탓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작가는 이처럼 갈등과 대립, 차별과 차이를 넘어 범람하는 물의 생명력을 매개로 문명과 문명, 종교와 종교, 이념과 이념간의 화해와 용서와 소통을 제안한다(물은 무한한 포용력을 상징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그 제안은 적어도 표면적으론 거대담론이 그 의미를 상실한 시대에 제시된 문명사적 스케일을 가진 것이어서 새삼스럽고, 그런 만큼 오히려 그 울림이 크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