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승회 사진전 'Name (이름의 이름)'
구승회 사진전 'Name (이름의 이름)'
  • mytwelve
  • 승인 2018.09.18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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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일부터 27일까지 은평구에 있는 포토그래퍼스 갤러리 코리아에서 구승회 사진전 'Name(이름의 이름)'이 열립니다.
우리들교회가 후원하는 문화나누기로 열리는 이 전시에서 작가는 이름의 회복을 통한 존재와 관계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작가 노트

이름은 무엇인가?

이름의 어원은 '이르다'에서 시작된다
'이르다'는 무언가가 '닿다'라는 의미이다
우리에게 무엇이 닿았는가?
우리에게 무엇이 왜 닿았는가?
이것은 이 닿음에 대한 이야기고 그 만남에 대한 이야기이다.

모든 만물은 이름을 갖고 있다.

철학자 발터 벤야민은 ‘언어 일반과 인간의 언어에 대하여’라는 논문에서 창세기 1장에서 11장까지의 내용을 통해 이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성경에 기록된바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 할때 말씀으로 창조하셨다
말이 곧 실재가 되어 존재가 탄생되었다. 따라서 하나님의 언어는 창조의 언어이고, 모든 만물에는 언어적 본질이 내재되어 있다.

최초의 인간인 아담은 그러한 존재를 보고 그 존재 안에 담겨있는 본질이 드러나는 이름으로 번역하였다.
따라서 신의 언어가 창조의 언어라면 아담의 언어는 존재를 언어로 드러내는 이름의 언어였다.
만물이 언어를 갖고 있기에 인간은 모든 대상을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는 존재로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이후 인간이 타락해 가는 과정에서 인간의 언어가 변질된다.
사물의 본질에 일치하는 이름의 모습이 사라지게 되었다.

뱀의 유혹에 넘어간 인간이 선악과를 먹음으로 죄를 짓게 되었고, 타락한 인간의 언어는 이제 사물을 있는 그대로 일컫는 언어가 아닌 내가 중심이 되어서 다른 것들을 판단하는 판단의 언어로 변모한다.
여기에서 언어에 대한 변질은 인간과 모든 대상과의 관계에 변화를 일으킨다.
이제 모든 관계가 나와 너라고 하는 인격적인 관계가 아닌, 나와 그것의 관계, 즉 나의 필요에 의해 맺어지는 비인격적인 도구적 관계로 변질된다.

결국 인간은 '우리의 이름을 우리가 짓자.'라고 하며 바벨탑을 쌓는다.
이름은 누군가 불러줌으로써 그 사람과 인격적 관계를 맺게 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이제 인간은 인격적 관계가 사라진 자기들이 스스로 짓는 이름을 짓는다.
이후 인간의 언어는 단순 기호화, 즉 도구화 되었으며
이름은 이제 본질이 드러나는 고유명사로서의 모습을 상실하고 개별자를 보편화 시키는 일반명사화(추상화)로 되어버린다.

하지만 언어는 인간이 세상에 만들어지기 전에 이미 있었고 인간이 도구화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언어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언어학자인 소쉬르가 이야기하는 언어의 기호는 기표와 기의라는 구조를 통해 존재론적인 연관성이 결여된채 인간이 만물에게 부여한 자의적 기호 행위로서의 이름을 지어줄 수 밖에 없는 것이고 이것은 결국 인간이 만물에게 폭력을 가하게 되어 만물에 내재되어 있는 존재의 가치를 상실하게 되었으며, 또한 존재와 사물에 대해 다른 언어(기표)를 사용하다보니 커뮤니케이션의 문제가 생기게 된다.

따라서 난 이 작업을 통해 이름이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며 현실에서 왜곡 되어진 이름을 회복해 보고싶다.
먼저 그 대상으로 자본주의시대 시뮬라크르의 구조 속에 관리와 교환가치의 수단으로 수치화, 추상화 되어져 있는 것들의 이름을 회복하려한다.

결국 이름의 회복은 존재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의 문제이며
그것을 얼마나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라 보는가의 문제이고
나와 그것의 관계가 아닌 나와 너의 관계의 회복으로서 회복되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전시 기간
2018. 10. 2(화) - 10. 27(토) 11 am- 6 pm
갤러리 휴관 - 일요일, 월요일


전시 장소
포토그래퍼스 갤러리 코리아(서울특별시 은평구 증산서길 65 / 070-4655-5753)

 
오프닝
2018. 10. 3(수) 2 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