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대로 봐도 되나
보이는 대로 봐도 되나
  • 손철주
  • 승인 2018.07.12 13: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중국 황하에 용문이라는 여울목이 있다. 물살이 드세 물고기가 거슬러 오르기 힘든 곳이다. 하여 용문을 통과하는 잉어는 용이 된다고 믿었다. 이게 ‘어변성룡(魚變成龍)’의 전설이자 ‘등용문(登龍門)’의 고사다. 우리 민화에 용으로 변신하는 잉어 그림이 꽤 많다. 높은 벼슬에 오르기를 바라는 길상도였다. 

고기 한 마리가 물보라를 일으키며 펄쩍 뛰어오른다. 씨알이 탱탱하고 힘이 센 놈이다. 등짝을 돌려 아가미와 비늘이 보이는데, 아마 잉어일 성싶다. 물 위로 몸통이 반 남짓 솟아올랐다. 머리 부분은 짙고 단단하게, 배 쪽은 옅고 부드럽게 그렸다. 겸재 정선이 재미삼아 붓을 놀렸다. 기운 찬 동세가 드러나 자그마해도 크게 보이는 작품이다. 

물고기 ‘어(魚)’는 나머지 ‘여(餘)’와 중국어 발음이 같다. 물고기는 여유를 상징한다. 세 마리를 그리면 ‘삼여(三餘)’란 뜻이다. 책 읽을 시간이 없다는 건 핑계다. 세 가지 여유만 있으면 충분하다. 곧 하루의 나머지인 밤, 일년의 나머지인 겨울, 맑은 날의 나머지인 흐린 날, 이 삼여는 독서하기에 알맞다고 했다. 

중국에선 물고기를 왕의 신민으로 여겼다. 그래서 낚시 기술은 통치술과 통한다. 서투른 낚시질이 백성을 괴롭힌다. 한 마리를 그렸으니 장원급제를 빈 모양인데, 두 마리를 그리면 무엇이 될까. 한 쌍의 물고기는 합일, 그중에서도 성적인 환희에 비유된다. 하여 겸재가 그린 이 잉어가 마치 양물처럼 보인다고 한 이도 있었다. 보이는 대로 본다더니 보는 눈이 요상하다. 그리 봐서 그런가. 어이구, 그놈 참 잘생기기는 했다. 
 


손철주
미술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