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게네스의 생애와 권력
오리게네스의 생애와 권력
  • 강도헌
  • 승인 2018.06.29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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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게네스는 185년 혹은 186년경에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났고 254년 혹은 255년경에 생애 대부분을 보냈던 팔레스타인의 가이사리아에서 사망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그리스도교 박해 기간 동안 로마 당국에 의하여 순교당했습니다.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아버지가 감옥에서 사형 집행을 기다리고 있을 때 아들인 오리게네스 자신도 당국에 자진 신고하여 그와 함께 죽기를 원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어머니가 집 밖에 못나가도록 열여섯 살 아들의 옷을 모두 감춰 버림으로 목숨을 건졌다고 합니다. 더욱이 천국을 위해 고자가 되었다는 어떤 남자에 관한 복음서에 있는 예수님의 말씀을 읽고 나서 그는 스스로 거세했다고 합니다. 이 같은 행동은 그 후 크게 논쟁거리가 되었으며, 알렉산드리아 감독은 이를 이유로 오리게네스를 성직자로 임명하지 않았습니다.

 

오리게네스는 알렉산드리아 교리문답 학교의 학생이었기 때문에 분명히 클레멘트로부터 가르침을 받았을 것입니다. 또한 그는 그 도시에서 플라톤 철학의 이방 학문을 공부했던 것 같고 당시 막 유행하기 시작한 신플라톤 철학의 핵심 이론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습니다. 어떤 학자들은 오리게네스 자신이 신플라톤 철학의 기초자들 중 한 사람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오리게네스가 암모니우스 사카스와 포르피리우스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며 그들은 플로티누스의 스승들이었기 때문입니다. 플로티노스는 신플라톤 철학을 확립하여 후기 로마 제국의 유력한 철학으로 저변을 확대시킨 사람으로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받았던 인물로서 신플라톤주의의 대표자입니다.

 

오리게네스는 지난주에 말씀 드린 것처럼 천재 중의 천재였습니다. 클레멘트가 박해로 인해 알렉산드리아를 피해 있을 때 교리문답 학교는 새로운 교장을 필요로 하였는데, 오리게네스는 18세의 나이에 이 학교의 요직을 맡아 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학교를 경영하게 된 그는 이곳에서 지성적이며 학술적인 저작을 포함한 수많은 저술들을 펴내기 시작하였습니다.

 

먼저 오리게네스는 로마 철학자 켈수스를 지목하여 반박하였습니다. 켈수스는 참된 교리에 관하여라는 책을 통하여 그리스도교를 무지하고 미신적인 것이라고 공격하였습니다. 이에 오리게네스는 켈수스를 논박함이라는 책을 펴냄으로 계속되는 박해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교를 존경할 만한 새로운 시대의 종교로 발돋움하는데 기초를 놓았습니다.

 

그의 저술은 많은 영향을 끼쳤는데, 발렌티누스의 영지주의로부터 정통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암브로시우스라는 한 부자는 오리게네스의 저술을 읽고 너무 감동한 나머지 그를 위하여 필경사들과 삽화가들은 물론 집 한 채와 비서, 그리고 속기사 일곱을 마련해 주었으며 그의 원고를 출판하기 위해 출판비를 지원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이 같은 후원으로 오리게네스는 거의 8백 편에 이르는 원고들을 저술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오리게네스는 철학자로 알려지게 되는데, 그 이유는 로마 황제 알렉산드 세베투스의 어머니인 율리아 맘마에가 오리게네스에게 자신의 개인 지도 교사가 되어줄 것을 요청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녀는 그리스도교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리게네스를 선택한 것은 그의 지적인 능력과 가르치는 기술에 대하여 소문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인기와 명성은 양면의 칼이었는지 오리게네스는 알렉산드리아의 데메트리우스 감독과 충돌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오랫동안 오리게네스는 정식 성직자로 안수 받기를 원했지만 데메트리우스는 오리게네스가 스스로 고자가 되었다는 이유로 거절하였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핑계에 불과했습니다. 진짜 이유는 오리게네스가 안수를 받는다면 알렉산드리아 교계 안에서 자신과 경쟁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질투심과 공포심으로 거절한 것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오리게네스는 팔레스타인 가이사리아의 감독에게 안수해 줄 것을 요청했고 거기서 안수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고향 감독과의 불화로 233년 가이사리아로 이사를 하여 죽을 때까지 알렉산드리아로 돌아올 수 없었습니다.

 

오리게네스는 그가 바랐던 대로 순교로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3세기 중반 제국 전역에서 일어난 데키우스 대박해로 오리게네스는 로마 당국에 체포되어 심한 고문을 당했고 그 결과로 사망하였습니다. 그가 남긴 유산은 참으로 유익하면서도 혼란스러웠습니다. 그의 신학적 저작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켈수스를 논박함원리론입니다. 전자는 켈수스의 참된 교리에 관하여의 책 전체를 인용하다시피 하여 하나 하나 논박하였습니다. 그리고 후자는 오리게네스의 그리스도교 철학 체계를 훌륭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본질과 그의 로고스와 창조, 그리고 그 밖의 많은 주제들에 관한 신학적 사고를 유감없이 전개하고 있습니다.

 

다음주에는 오리게네스가 이성주의자로 가끔 오해를 받는데, 그의 신앙과 이성에 관해 살펴보겠습니다.

 

 


강도헌
제자삼는교회 담임,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프쉬케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