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도헌] 클레멘트와 그리스 철학
[강도헌] 클레멘트와 그리스 철학
  • 강도헌
  • 승인 2018.05.11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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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초대 그리스도교의 저술가보다도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는 그리스도교 신앙과 당대의 가장 훌륭한 학문과의 통합을 가치 있게 평가했습니다. 그의 좌우명은 “모든 진리는 그것이 어디에서 발견되든지 하나님의 진리이다.” 였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철학과 종교 체계들에 분산되어 있던 신의 섬광들(stray rays)을 한데로 모아 히브리성경(알레고리적으로 해석된)과 사도적 전통의 우선적인 권위에 종속시키려 하였습니다.

 

클레멘트가 활동하던 당시 그리스 철학은 알렉산드리아, 아테네 그리고 로마 전역에 두러 퍼져 있었고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그 시기는 중기 플라톤주의와 신플라톤주의 사이의 교차점에서 신플라톤주의로 거의 기울어진 시점에 해당 됩니다.클레멘트는 바울이 자신의 서신들에서 철학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취한 점에 대하여 바울이 말하는 철학은 그리스 철학 전반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에피쿠로스 철학(쾌락주의)이나 스토아 철학 같은 어떤 특이한 사상체계를 말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그러나 바울도 이미 그리스철학의 영향 가운에 있었다).

 

클레멘트는 일종의 올바른 철학은 의미상 “신적 섭리의 작업”이라고 믿었습니다. 즉, 모세의 율법이 메시아로서 그리스도의 오심을 위하여 히브리 사람들을 준비시킨 하나님의 방법이었던 것처럼, 철학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리스 사람들을 준비시킨 하나님의 방법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클레멘트가 플라톤 철학을 이토록 중요하게 생각했던 이유는 그리스인들과 로마인들의 부도덕하고 변덕스러운 신들(신화적 남신과 여신들)을 거절하고 유일하고 궁극적인 영적 실재에 초점을 맞추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플라톤주의는 죽음 이후의 삶과 모든 것에 대한 영적인 차원의 비전을 주장하였고 사람들로 하여금 보다 높은 영적 실재들을 향해 물질적이고 육체적인 쾌락을 멀리하도록 주의를 환기시켰기 때문에 클레멘트는 그리스 철학의 장점 중에서 그리스도교 진리와 유사점들이나 반향들을 찾았습니다.

 

또한 클레멘트는 철학이 이단들에 대항한 그리스도교의 투쟁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단들의 거짓 교훈들에 대해 철학은 논리적으로 문제를 풀며, 변증법을 사용하여 계시를 해석하면 확실하고 건전한 신앙과 도덕적인 체계들로 인도 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철학이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이단 운동의 원인이 된다고 위협한 테르툴리아누스의 경고와 비교해 볼 때 매우 역설적입니다. 하지만 클레멘트에게 철학은 그리스도교인들 사이에 있는 이단들을 치료하는데 봉사하였습니다.

 

진정한 영지주의

클레멘트 신학에 있어서 좀 더 논쟁적인 영역들 중 하나는 그가 그리스도인을 “진정한 영지주의자” 또는 “완전한 영지주의자”로 생각한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클레멘트의 주장으로 인해 일부 사람들은 클레멘트를 2세기 영지주의와 3세기에 남아 있는 그 잔존 세력들과의 동맹자였다고 결론을 내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섣부른 판단으로서 클레멘트의 “영지주의자”라는 개념은 육체적인 욕구와 쾌락을 추구하는 저속한 삶을 멀리하고 지성적인 삶을 사는 지혜의 사람을 뜻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클레멘트가 의미하는 영지주의는 술과 연회와 색을 즐기며 물질적인 이득을 추구하는 무리로서 ‘흐름 따라 살아가는’ 일반적인 풍조에 맞서는 사람을 지칭하는 것으로서 클레멘트는 이들을 일종의 그리스도인으로 간주하였던 것이고, 여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진정한 영지주의자”라고 의미를 부여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클레멘트는 진정한 영지주의자는 현세에서 욕망을 버리고 화내는 일로부터 해방되고, 성급하지 않게 되는 가운데 ‘하나님이 될’ 수 있다고 언급하기에 이르게 됩니다. 물론 그가 말한 진정한 영지주의자가 실재 하나님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그렇게 완전해진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의존되어 있지만 진정으로 선한 존재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였습니다.

 

클레멘트 사상이 끼친 그리스 철학의 영향은 다양한 방법으로 나타났습니다. 우선 그는 육체와 물질을 일반적으로 ‘낮은 본질’로 본 반면 영혼을 ‘더 높고 더 좋은 본질’로 뚜렷이 차별화하였습니다. 그리고 영혼을 인간의 이성적 부분으로 묘사하였는데, 이것은 영지주의와 다른 관점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클레멘트는 물질과 육체가 악하다고 하는 관념을 분명히 부인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물질이 영혼에 비해 열등하다는 것 또한 성경적인 견해보다 플라톤적인 견해에 더 가깝습니다. 그래서 클레멘트의 사상적인 경향은 거의 ‘그리스 철학’에 가깝습니다. 즉, 클레멘트의 신관은 3세기의 반향(echo)이며 2세기 변증가인 아테나고라스의 가르침의 정교한 설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클레멘트의 신학 또한 전체적이지 않고 부분적이며, 불완전한 신학입니다. 하지만 그는 성경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묘사에 대한 다양한 이단들에 대해서 하나님의 묘사를 알레고리적 혹은 신인동형론적으로 해석을 했고, 예수 그리스도를 성육신한 하나님 아들로서 인간적인 측면을 묘사하기 위해 당시 영지주의의 그릇된 영향과 맞섰던 것입니다.

 

다음 주에는 클레멘트의 대척점에 있는 테르툴리아누스를 살펴 보겠습니다.

 


강도헌
제자삼는교회 담임,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프쉬케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