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민] 연약함 위에 임한 위로
[강준민] 연약함 위에 임한 위로
  • 강준민
  • 승인 2018.05.10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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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위로는 연약함 위에 임한다. 우리는 강하기 원한다. 하지만 인간의 많은 문제는 연약함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너무 강하기 때문에 생긴다. 인간은 힘이 있다고 생각하면 자신을 하나님처럼 생각하는 오류를 범한다. 많이 가진 사람, 강한 힘을 가진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이든 해도 된다는 착각 속에 살게 된다. 어떤 잘못도 정당화 될 수 있다는 환상을 갖게 된다. 이것이 강력한 힘이 주는 거짓된 매력이다. 우리는 이 거짓된 매력 앞에 수없이 무너지곤 한다. 강할 때 인간은 넘어진다. 강할 때 공격을 받는다. 반면에 약하면 도움을 받는다. 약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게 된다. 약할 때 하나님의 위로를 받게 된다.

 

우리는 연약함을 좋아하지 않지만 하나님은 우리 연약함을 통해 일하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연약해지는 것을 허락하심으로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신다. 바울은 육체의 가시 때문에 심한 고통을 받았다. 하나님께 세 번이나 육체의 가시를 거두어 주시도록 간구했다(고후 12:8). 하지만 하나님은 그의 간구를 거절하심으로 그리스도의 능력이 그에게 임하는 은혜를 베푸셨다(고후 12:9). 하나님은 그를 지속적으로 연약하게 하심으로 그를 교만으로부터 보호하셨다. 연약함을 통해 더욱 깊은 계시 속으로 들어가게 하셨다. 연약함을 통해 깊은 깨달음을 얻게 하셨다. 이것이 연약함의 신비다.

 

연약함의 신비는 그리스도의 신비다. 신비는 비밀이다. 그래서 신비다.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이라면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비밀은 감춰진 것이다(1:26). 하나님이 만세 전부터 감춰두셨던 비밀은 그리스도이시다(1:27). 그리스도의 비밀은 십자가에서 상처를 입으심으로 드러났다. 하나님 아버지는 그의 사랑하는 독생자를 십자가에서 깨뜨리셨다. 연약함의 신비는 깨뜨림의 신비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깨어지심으로 약해지셨다. 인간은 깨어질 때 약해진다. 병들 때 약해진다. 버림받을 때 약해진다. 거절당할 때 약해진다. 무시를 당할 때 약해진다. 오해를 받을 때 약해진다. 모욕을 당할 때 약해진다. 소중한 것을 상실할 때 약해진다. 조롱을 받을 때 약해진다. 수치를 당할 때 약해진다. 모멸감을 느낄 때 약해진다. 인간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을 만날 때 약해진다. 반복해서 실패할 때 약해진다. 핍절함이 지속될 때 약해진다. 예수님은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약함을 십자가에서 경험하셨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약해지심을 통해 구원을 받게 되었다. 치유를 경험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연약함의 신비를 깨닫게 하심으로 연약한 자를 위로하신다. 우리가 연약함의 신비를 깨닫게 되면 연약함이 저주가 아니라 축복임을 알게 된다. 성령님은 강한 자를 위해 중보하시는 분이 아니라 연약한 자를 위해 중보하시는 분이다. 성령님은 우리 연약함을 도와주신다(8:26). 우리가 연약할 때 성령님의 도우심과 위로하심을 경험하게 된다.

 

우리는 깨어짐을 통해 연약해지고, 깨어짐을 통해 눈이 열리게 된다. 깨어짐은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눈 열림이요, 눈뜸이다. 우리는 강해질 때 눈이 어두워진다. 육신의 힘이 강해지면 영적 감각이 둔해진다. 하나님의 음성에 대한 민감함이 떨어진다. 감각이 둔해짐으로 영적 각성이 주는 기쁨을 누리지 못하게 된다. 반면에 약해질 때 우리 영혼의 눈이 열린다. 약해질 때 영적 감각이 되살아나게 된다. 영적 감수성이 예민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듣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이 깊이 깨달아지고 은혜의 샘이 열리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예수님의 깨어짐을 통해 우리는 풍성한 은혜를 누리게 되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깨어지실 때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피와 물이 쏟아졌다(19:34). 깨어짐은 비움이다. 예수님의 비움은 나눔을 위한 비움이다. 깨어짐은 쏟아짐이다. 예수님의 몸에서 쏟아져 흘러나온 피는 전 인류의 죄를 용서하는 보혈이 되었다. 예수님의 보혈은 죄를 용서할 뿐 아니라 죄를 없이하는 능력의 피다. 예수님의 피는 짐승의 피와 다르다. 예수님의 피는 하나님의 아들의 피요, 하나님의 피다. 그런 까닭에 우리 죄를 능히 사할 수 있고, 능히 도말할 수 있다. 예수님의 몸에서 흘러나온 생수는 영생수다. 우리 영혼을 만족케 하는 성령의 생수다. 우리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다(4:14). 예수님의 깨어짐이 없다면 보혈도 없고, 생수도 없다.

 

예수님은 깨어지심으로 우리에게 풍성한 생명을 허락해 주셨다. 깨어짐이 없이는 풍성함이 없다. 우리는 비우기를 싫어한다. 하지만 비움 없이는 채움을 경험할 수 없다. 비움이 없이는 풍성함을 경험할 수 없다. 리처드 로어는 이 놀라운 진리를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가르쳐 준다.

 

모든 비워냄’(emptying out)은 오직 큰 쏟아져 나옴’(a Great Outpouring)을 위한 것이다. 하나님은, 자연이 그렇듯이, 모든 공백들을 싫어하여 급히 그것들을 채우신다,” (리처드 로어, 위쪽으로 떨어지다, 국민북스, 232)

 

우리는 탐욕스럽다. 비우려고 하지 않고 끝없이 채우려고 한다. 끝없이 축적하려고 한다. 누군가가 우리 것을 빼앗아 갈까 두려워한다. 우리는 비움과 텅 빔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바로 거기에 죄악의 뿌리가 있다. 시몬느 베이유는 모든 죄악은 텅 빔으로부터 달아나려는 시도다라고 말했다. 야고보는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1:15)라고 말한다. 욕심은 끝없는 채움이다. 반면에 참된 사랑은 비움이다. 나눔이다. 비움과 나눔으로 더욱 충만해지는 것이 사랑이다. 욕심으로 가득 찬 사람들은 물질은 많지만 정서적으로 빈곤하다. 그들의 영혼이 핍절하다. 그들의 영혼은 황폐하다. 그들은 비움과 나눔이 주는 즐거움을 알지 못한다.

 

예수님의 깨어짐은 나눔의 풍성함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피와 물만 쏟아주신 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몸도 나누어 주셨다. 깨어지심으로 자신의 몸을 나누어 주신 것이다. 그것이 성찬이다. 예수님은 자신의 몸을 생명의 떡으로 우리에게 나누어 주셨다. 오병이어의 기적처럼 나누면 나눌수록 풍성해지는 것이 나눔의 신비다. 깨어짐이 있을 때 풍성한 생명의 흐름이 일어난다. 깨어짐은 풍성한 생명을 위해 문을 열어준다. 한 알의 밀이 떨어져 죽을 때 풍성한 열매를 맺는다. 씨앗의 죽음은 소멸이 아니다. 씨앗의 죽음은 씨앗의 껍질이 벗겨지는 것을 의미한다. 씨앗의 껍질이 벗겨지는 순간 씨앗 속에 감춰진 생명이 흘러나와 싹을 내고 결국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된다.

 

바울은 예수님이 자신을 비우셨다는 사실을 강조한다(2:7). 바울은 예수님의 비움과 함께 그 안에 거하는 하나님의 충만과 풍성과 부요를 찬양했다(1:23, 2:4, 3:19; 1:19; 4:19; 10:12). 사도 요한도 비우신 예수님 안에 거하는 충만을 기록했다(1:14). 비움을 통한 충만, 연약함 위에 임한 성령님의 강력한 능력은 역설이다. 십자가에서 깨어지시고 죽으신 예수님의 몸은 연약했다. 모든 것을 쏟아낸 예수님의 몸은 텅 빈 상태가 되었다. 바로 그 몸 위에 지극히 크신 성령님의 능력이 임했다(1:19). 그리함으로 죽으신 예수님은 부활하셨다.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고전 15:20).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수많은 영혼들이 구원을 받게 되었다. 예수님이 친히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죽으심으로 많은 열매를 맺으신 것이다(12:24).

 

연약함을 통해 임하는 가장 소중한 위로는 친밀함이다. 우리는 약해질 때 친밀한 사랑을 경험하게 된다. 강하면 싸운다. 강함은 갈등을 유발한다. 분열을 만들어낸다. 반면에 약함은 화목케 한다. 약함은 친밀한 사랑을 나누게 만든다. 하나 되게 한다. 연합하게 만든다. 아내가 폐암 수술을 받은 후에 많이 약해졌다. 왼쪽 폐를 절단한 후에 오른 쪽 폐 하나로 호흡을 하며 생활하고 있다. 연약하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하지만 아내와 나는 연약함을 통해 더욱 친밀해졌다. 하나님의 친밀한 사랑을 깊이 경험하게 되었다. 수많은 분들의 중보기도를 받고 사랑을 받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연약함 위에 하나님의 위로가 임했다. 깨어짐을 통해, 비움을 통해 풍성한 은혜가 임하는 것을 경험했다. 친밀한 사랑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런 까닭에 나는 오늘도 연약함을 감사하며 살아간다.

 


강준민
L.A. 새생명비전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