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영]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김준영]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 김준영
  • 승인 2018.04.21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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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현재와 미래 그리고 인생, 그 공존에 대하여.

이건 어떻게 보건 못된 장난질이에요. 진지하게 대해주는 게 바보짓이죠.”

넌 아직도 뭘 몰라... 나미야 잡화점에 이런 편지를 보낸 사람들도 다른 상담자들과 근본적으로는 똑같아. 마음 한구석에 구멍이 휑하니 뚫렸고 거기서 중요한 뭔가가 쏟아져 나온 거야... 답장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없어... 인간의 마음속에서 흘러나온 소리는 어떤 것이든 절대로 무시해서는 안 돼.”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아는가?

책을 읽어보지는 못했어도 누군가의 입을 통해 들어본 적은 있을 것이다. 영화로 제작이 되어 올해 초에 상영도 했다. 만일 처음 들어본다면 문화에 너무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일본의 유명 작가인 히가시노 게이고가 쓴 이 책은 2012년에 출간된 후 전 세계에 1,200만 부 이상이 팔린 베스트셀러다. 국내에서도 2017년까지 80만 부 이상이 팔린 것으로 알고 있다. 스테디셀러로 여전히 판매 순위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으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그러니 모르는 게 이상하다 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이 책은 세 도둑인 쇼타, 고헤이, 아쓰야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차를 훔친 그들은 훔친 차가 고장 나게 되어 당장 도망가지 못하고 아침이 밝기까지 폐가로 보이는 나미야 잡화점에 숨어 들어간다. 그곳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되어, 나미야 잡화점의 우유 상자로 도착한 고민 편지를 우연히 보게 되는데 편지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나미야 잡화점으로 도착하는 편지들이 과거에서 온 편지들이라는 것. 과거와 현재가 이어져있는 나미야 잡화점의 한 밤, 그리고 그 속에 있는 세 도둑은 날이 밝기까지 편지에 적힌 인생의 여러 고민을 마주하며 답장을 하기 시작하는데...

이 책은 판타지 장르 소설이다. 작가는 타임 슬립을 통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나미야 잡화점이라는 한 공간에 모두 담아 넣는다.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각자 현재의 시간을 살고 있지만 서로에게는 시간차가 있게 된다. 주인공인 세 도둑이 살아가는 시점을 현재로 본다면 세 도둑에게 편지를 보낸 이들은 모두 과거의 인물들이다. 또한 편지를 보낸 주인공들의 시점을 현재로 본다면 답장을 보내는 세 도둑은 미래의 인물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답장을 받는 이들은 이를 전혀 모르고 있다. 그들은 모두 자신에게 답장을 보낸 이가 나미야 잡화점의 주인(나미야 할아버지)이라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와 미래가 이어져 시간이 멈춘 공간인 나미야 잡화점, 그리고 우유 상자로 전해지는 편지를 통해 주인공들은 서로 연결된다.

*타임 슬립(time slip) : 어떤 이유를 모른 채 과거와 미래를 넘나드는 일을 말한다. 의도적으로 타임머신이나 개인적인 능력을 통해 시간여행을 하는 행위와는 구분되어 사용된다.

 

그렇다면 작가인 히가시노 게이고는 왜 이런 장르와 소재를 사용했을까?

그리고 이것을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무엇일까?

우리는 이 소설을 통해 어떤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까?

이번 칼럼은 이 세 가지의 질문에 대해 나름의 답을 하는 형식으로 풀어가려 한다.

 

판타지 장르와 타임 슬립이라는 소재에 대하여.

크리스천들 중에 판타지 장르를 부담스러워하거나 부정적으로 여기는 이들이 간혹 있는 것 같다. 말 그대로 판타지 장르는 하나의 장르일 뿐이다. 우리가 아는 다른 여타의 장르와 똑같다. 왜 크리스천들은 이를 부담스러워하고 꺼려 할까? 아마 현실세계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상상 속에서 만들어진 환경과 인물들이기에 그런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일어나는 내용도 현실과는 동떨어진 것이 많다. 그러나 비기독교인들 중에는 우리가 믿는 성경의 내용이나 역사적 사실을 판타지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포인트는 판타지라는 장르 자체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판타지라는 장르를 통해 이야기하는 내용과 주제가 무엇을 말하고 어떤 방향을 취하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이는 다른 문화예술을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것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어떤 장르나 형식 자체가 반기독교적이거나 흔히 말하는 죄라고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어떤 장르나 형식이 오랜 시간 반기독교적인 내용을 담아왔고 사용되었다면 그 장르와 형식을 비판적인 자세로 접근해야 함은 당연하다.(우리가 흔히 말하는 기독교 창작물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분별력이 부족하다면 안목을 갖추기 전까지 멀리하는 것도 현명한 방법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장르와 형식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만든 이의 세계관과 내용이 잘못된 것이다. 빈대를 잡으려다가 초가삼간을 태우는 일은 없어야 한다.

(한국 교회 안에서 큰 인기를 누렸던 C. S.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도 판타지 장르의 소설이며, 한국에서는 영화로 더 많이 알려진, 기독교적 가치가 물씬 풍기는 J.R.R. 톨킨의 반지의 제왕또한 판타지 장르다.)

올바른 상상력을 통해 창작된 것이냐, 헛된 공상과 환상에 의해 창작된 것이냐 이것이 중요한 관점이다. 지면을 통해 길게 설명할 수 없으니 이 둘의 차이를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창조주 하나님이 주신 창조성을 통한 상상력은 우리를 현실세계로 이끈다. 즉 창작자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상상이 세상에 가시화되어 전달될 때 외부인 현실로 감상자들을 이끈다는 말이다.

현실에 없는 인물과 환경을 통해 이야기하는 내용이지만 감상자에게는 현실을 돌아보게 하고 적용케 하는 매개체가 된다. 이것이 상상과 예술이 가진 매력이며 힘이다. 개인적으로 이것이 뛰어날수록 작품성과 완성도가 높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올바른 상상이 아닌 헛된 공상과 환상은 감상자를 외부인 현실과 동떨어지게 한다. 자신만의 공상과 환상인 내적 세계 안에 스스로를 가둬버리게 된다. 상상은 힘이 있다. 그래서 상상력이라 불리는 것이다. 하지만 공상력이나 환상력이라는 말은 사용하지 않는다. 판타지는 잘 사용하면 너무나 매력적이지만 잘못 사용한다면 그만큼 안 좋은 결과를 가지고 올 수도 있기에 분별력 있고 적절하게 사용해야 한다.

이 소설에서 작가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잘 드러내고자 타임 슬립이라는 소재와 판타지라는 장르를 선택했다. 그리고 강한 매력을 통해 독자들이 현실과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이 매력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책이 되어 시대의 공감을 이끌어 내고 있다. 그렇다면 작가는 왜 타임 슬립이라는 소재를 사용했을까? 이에 대한 답은 작가가 소재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주제와 함께 설명해야 한다.

 

과거와 미래를 넘나드는 타임 슬립을 통해 작가는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을까?

이 칼럼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시간의 개념 즉 시간이 어떻게 흐르고 있는지를 묻고 싶다. 대부분은 과거 현재 미래로 시간이 흐른다고 하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학교에서 그렇게 배웠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말로 시간이라는 것이 하나의 직선처럼 혹은 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일까? 우리에게 매시간, , 초는 그렇게 흘러가고 매일 새롭게 주어지는 것일까? 좀 더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알버트 아인슈타인과 그가 발견한 상대성이론에 대해 아는가? 이것이 조금 어려운 질문이라면 영화 인터스텔라를 보았는지 묻고 싶다. 그 영화의 내용이 바로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이야기다. 시공간은 분리된 것이 아니라 통합된 개념이다. 우리는 공간을 통해 시간을 인식한다. 짧게 설명하기 어려운 내용이라 아래의 유튜브 동영상을 꼭 참고했으면 한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러한 시간 개념을 잘 알고 있지 않았을까? 그러기에 시공간이라는 통합된 개념을 나미야 잡화점에 투영했을 것이다. 그곳이 실은 시간이 멈춘 공간이 아니라 우주를 상징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작가는 자신만의 세계에서 우주와 같은 나미야 잡화점을 창조해내고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라는 시간과 인생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보여줌으로써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렇다면 그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부족한 이해를 통해 해석해 보자면 과거, 현재, 미래는 하나의 직선처럼 한 방향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하나의 공간 안에 펼쳐져 있다는 것이다. 즉 공존해 있다는 말이다. 나에게는 이미 지나간 것처럼 여겨지는 과거가 누군가에게는 현실이고 미래가 된다.(쉬운 내용을 어렵게 풀어가는 건 아닌지 슬슬 걱정되기 시작한다.) 나의 현재는 누군가의 과거이며 또 누군가의 과거와 현재는 나의 미래이기도 하다. 결국 우리의 인생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이를 현실화 시키는 또 다른 매개체가 바로 편지다. 편지를 통해 고민과 상담을 하게 되는데 바로 이것을 통해 서로의 삶이 연결된다. 나미야 잡화점이라는 통합된 시공간 안에서 주인공들은 각자의 이야기를 통해 삶이 어우러진다. 우리의 현실세계는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공존한다. 아이와 청년 그리고 장년과 노년 등 말이다. 이를 물리적인 시간개념으로 적용해서 풀어본다면 모두 현재라는 시공간을 살고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상대의 삶이 과거이기도 하고 미래가 되기도 한다.

이해를 돕고자 좀 더 설명을 해보자면 아이 입장에서는 청년이 자신이 자라가게 될 미래가 되는 것이고 청년은 아이를 통해 자신의 과거를 보게 된다. 이는 반대로 적용될 수도 있다. 장년이나 노인에게는 청년과 아이가 다음 세대인 미래로 여겨지나 청년과 아이는 장년과 노인이 과거의 삶을 살아간 존재가 된다. 이처럼 다양한 연령의 사람들이 공존해 살아간다는 것은 현재 안에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과거의 시행착오를 통해 미래의 발전을 이룬다. 지난날로부터 지혜를 얻어 점점 더 성숙해지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이것이 시공간에 대한 원래의 개념이며 삶의 원리가 아닐까?

히가시노 게이고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 아니었을까? 나미야 잡화점 안에서 주인공들의 삶이 연결된 것처럼 우리의 모든 삶이 실은 연결되어 있는 것이라고, 우리는 누군가에게 과거이며 현재고 미래라고 말이다.

 

우리는 이 소설을 통해 어떤 의미를 얻을 수 있을까?

나미야 잡화점의 주인인 할아버지의 상담은 그가 죽은 후에도 이어진다. 바로 스스로 보잘 것 없다고 여기는 세 명의 도둑을 통해서 말이다. 그들은 얘기치 않는 곳에서 과거의 인물들을 상담하게 된다. 그것도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고민들에 대해서다. 그리고 어찌 보면 엉뚱한 답을 해주는 것 같아도 고민자들은 그 조언으로부터 스스로 해답을 찾아가게 된다. 여기서 생각할 거리가 주어진다. 보통 우리는 사회에서 설정된 어떤 기준에 따라 자신을 가치 있거나 없다고 평가한다. 자신이 살아온 삶을 의미 없다 여기고 그로 인해 역시 자신의 미래도 보잘 것 없으리라 판단해버린다. 그러니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거나 사회에 보탬이 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세 도둑도 그런 생각을 가진 친구들이었다. 그런데 누군가에게 고민을 해결해 주는 조언자가 된 것이다. 그리고 무심코 보낸 백지 편지의 답장을 나미야 잡화점의 할아버지로부터 받게 된다.

이름 없는 분에게. 어렵게 백지 편지를 보내신 이유를 내 나름대로 깊이 생각해보았습니다...

당신의 지도는 아직 백지인 것입니다. 그래서 목적지를 정하려고 해도 길이 어디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일 것입니다.... 하지만 백지이기 때문에 어떤 지도라도 그릴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은 당신 하기 나름인 것이지요. 모든 것에서 자유롭고 가능성은 무한히 펼쳐져 있습니다. 이것은 멋진 일입니다...”

자신의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 본인 스스로는 결코 알 수 없다. 그리고 우리는 늘 현재를 살아갈 뿐이다. 다가올 미래 또한 나에게는 늘 현재일 것이다. 그러니 미래에 대해 섣불리 평가하고 판단하지 말자. 나의 오늘은 새로운 내일이다. 대망이라는 소설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이렇게 이야기한다. ‘오늘은 어제가 되고 내일은 또 오늘이 될 것이다.’

어제 일로 오늘을 포기하지 말고 오늘을 포기함으로 내일을 버리지 말자. 우리에게 삶이 연결된 사람들이 존재하는 이유다. 그들이 오늘을 살아가는 내게 과거의 지혜를 전해주고 미래의 소망을 품게 해줄 것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그러한 존재다. 아이는 아이로서 청소년은 청소년으로서 청년은 청년으로 마찬가지로 장년과 노인 등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 연결된 존재다. 한 공동체로 어우러지는 지체임을 우리는 놓쳐서는 안 된다. 보여 지는 직업과 환경으로 평가하고 판단을 하면 안 된다. 누군가의 삶이 나에게 도움과 영향을 주는 가치 있는 존재라는 것은 분명하다. 이것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이루어질지 결코 알 수 없기에 우리는 늘 겸손해야 한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시지 않았는가?(6:25~34)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하라고 말이다. 모든 것을 통치하시는 주님을 믿고 오늘을 살아가라고 말이다. 시공간을 창조하시고 초월하시는 하나님이신 성령께서 우리와 늘 함께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지체들이 공동체로서 늘 함께 살아간다. 우리는 과거를 돌아보고 내일을 기대하며 오늘을 살아가야 한다. 그렇다면 어떤 관점과 기준으로 살아가야 하는가? 더불어 살아가는 가족을 포함한 사회 안에서 공동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바라보아야 하는가?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라는 책을 통해 스스로 해답을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책을 덮는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바로 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 기적이다.”

 

 

※ 동일한 내용을 인터넷 라디오 방송인 ‘문화심방’을 통해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팟빵’, ‘팟캐스트'에서 ‘문화심방’을 검색하셔서 청취해주세요.

 


김준영

마커스 미니스트리 설립자 및 대표 / ) 나의미래공작소 대표, 예학당 설립자 및 주강사

저서 : 나는 마커스 입니다(샘솟는기쁨), 고백수업(와엠퍼블)

부르신 곳에서, 주님은 산 같아서, 동행 등 40여 곡 작사

숭실대, 명지대, 총신대, 가밀교신학대 등 다수 대학교 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