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도헌] 이레나이우스의 구속론
[강도헌] 이레나이우스의 구속론
  • 강도헌
  • 승인 2018.04.13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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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에 살펴 보았던 이레나이우스의 영지주의 비판은 영지주의의 신앙 체계가 성경과 사도적인 표준에서 볼 때 이단이라는 점을 폭로함으로서 그리스도교 신학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는 것을 살펴 보았습니다. 하지만, 이레나이우스의 진정한 공헌은 영지주의를 대신할 수 있는 그의 대안적인 신학에 있었습니다.

역사 신학자들은 이레나이우스의 공헌은 그의 “총괄 갱신론(theory of recapitulation)”에 있다고 설명합니다. 이 용어는 “근원(head)”을 의미하는 라틴어 카피투스(capitus)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이 용어에 대해 이레나이우스는 그리스어 ‘아나케파라이오시스’ 라는 말을 썼는데, 그 어원은 케팔레로서 “근원(head)”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아나케파라이오시스와 레카피투레이션은 문자적으로 “재발원(reheading)” 또는 “새로운 근원의 재공(providing a new head)”을 의미합니다. 물론 이레나이우스는 문자적 의미의 근원이 아니라 강이나 샘의 어떤 근원과 발원으로서의 근원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이단 논박』과 『사도적 설교의 증거』에서 이레나이우스는 사도적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이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에 대한 새로운 ‘근원’을 제공하는 것으로서 ‘총괄 갱신’으로 설명하였습니다.

영지주의자들은 그리스도의 사역을 순전히 영적으로만 생각하여 그리스도의 성육신적 사역과 개념을 부인하였습니다. 조금 어려운 말이지만 그리스도는 에이온(aeons)과 아르콘(archons) 등의 단계를 거치면서 세상에 내려 왔고 인간의 육체적 본성을 취하지 않은 상태로 나타났거나 아니면 인간 영혼의 영적인 근원에 관하여 가르치기 위하여 나사렛 예수로 알려진 인간의 몸 속으로 들어간 것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즉, 그리스도는 나사렛 예수라 하는 몸을 도구로 사용한 것으로 주장하면서 그의 임무는 단순히 영혼들에게 메시지르 계시하는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 예수의 인간적인 삶과 죽음은 구속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영지주의의 구속론은 예수님의 역사적이고 육체적인 삶과 죽음을 부인하였습니다.

이레나이우스는 이러한 영지주의자들의 주장에 대해 사도들이 가르쳤고, 또 사도들로부터 전수된 구원의 복음은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로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말씀은 인간적인 육과 피의 존재라는 것에 집중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은 그분의 가르침 뿐만 아니라 성육신 자체에까지 확장되며 예수님의 육신적 삶인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성 또한 구속적인 사건에 해당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성육신이 단순히 무슨 그리스도의 가르침이나 십자가 사건을 위해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단계가 아니라 하나님 아들의 인간 되심은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고 회복하는 것으로서 이레나이우스는 필요나 조건에 의한 성육신이 아니라 성육신 자체가 구속의 사역임을 강조하였습니다.

 이러한 사상은 구원의 성육신으로 알려졌고 그리스도교 신학 역사에 있어서 이레나이우스 이전과 이후를 나누는 분깃점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이레나이우스의 구속론은 이후 신학의 역사 전 과정에서 하나님의 성육신 사상을 위협하는 신학이 등장할 때 마다 교회 교부들이 강력하게 거부하였던 이유가 되었으며, 성육신 사상에 대한 위협은 아무리 미미하다 할지라도 구원에 대한 위협으로 인식되었습니다. 즉, 그리스도교의 구원은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영원한 능력과 신성 뿐만 아니라 그의 혈과 육의 출생과 삶, 그리고 고난과 죽음과 부활의 실재에 달려 있습니다.

영지주의자들은 인류 전체 혹은 개별 인간들에 대한 어떠한 희망도 주장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오직 영들, 영들 중에서도 오직 일부만이 변화될 소망이 있고 그런 변화도 오직 신비적 그노시스(지식)를 통해서만(실재적으론 자기들만) 가능하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레나이우스는 사도적 가르침을 이어 받아 성육신에 신성과 인성의 융합(?)을 통해 모든 인류의 구속주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소망이 있음을 깊이 각인시켰습니다.

이레나이우스에게 구원은 영지주의 구속론처럼 피조물을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피조물로 회복되는 과정이었습니다. 구원은 아담의 타락으로 인해 피조세계에 들어왔던 타락을 갱신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이 과정의 목적은 인간으로 하여금 더 이상 출생하는 존재로서 제한성에 예속되지 않는 새로운 생명세계로 들어가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2세기 말에 이르면 그리스도교 신학에 상당한 진척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이레나이우스의 총괄 개인으로서의 구속론은 일부 사도교부들의 단순한 도적주의를 넘어 지적인 사고의 양적 도약을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이레나이우스의 구속론은 말씀과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 성령, 그리고 삼위일체에 관련된 문제는 대답을 주지 않고 과제로 남겨두었습니다.

2세기 말과 3세기 초에 이르면 영지주의와 몬타누스주의는 점차 쇠퇴하고 다른 이단들이 득세하게 됩니다. 테르툴리아누스와 키프리아누스를 비롯한 3세기 교부들은 이런 이단자들과 맞서야 했습니다. 그런데 3세기부터는 여러 가지 면에서 새로운 양상들이 나타나는데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사도적 계보라는 독점적 권위가 교회안에서 자리잡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사도적 계보라는 독점적 권위는 여러 이단들과의 투쟁에서 승리의 중요한 요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기본적으로 유아세례와 성만찬과 같은 성례전을 통하여 받아들인 구원관은 일부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점차 표준이 되어 갔습니다. 특별히 이그나티우스와 순교자 유스티누스, 그리고 이레나이우스에 의해여 대표되는 정통파 계열이 교회 안에서 널리 인정되고 핵심적 계열이 되었습니다.

2세기가 마감하고 3세기가 시작될 쯤에, 이미 해결되었어야 할 하나의 커다란 질문이 제기되었습니다. ‘그리스 철학과 그리스도교 사상과의 적절한 관계는 무엇인가?’ 변증가들은 이러한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다음 시간부터 살펴볼 3세기의 얽히고 설킨 이야기들에서 3세기 초 두 명의 위대한 북아프리카 교부들이 그리스도교 신학과 그리스철학과의 관계 문제를 두고 씨름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의 차이점들은 왜 정통적이고 공교회적인 위대한 교회가 동방정교회와 로마가톨릭교회로 각자 다른 길을 가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단초를 제공해 줍니다.


강도헌
제자삼는교회 담임,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프쉬케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