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욱] 토마스 아퀴나스 '자연의 원리들'
[정현욱] 토마스 아퀴나스 '자연의 원리들'
  • 정현욱
  • 승인 2018.04.11 16: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자연의 원리들/ 토마스 아퀴나스 / 김율 옮김 / 철학과 현실사

 

1. 들어가면서

토마스 아퀴나스는 철학자이면서 동시에 신학자입니다. 아직 철학이 신학의 시종으로 있었던 시기였기에 철학은 곧 신학이며, 신학은 곧 철학이었습니다. 이러한 학문적 상황은 중세만의 독특한 신학 체계를 만들어 냈습니다. 스콜라 철학으로 부르는 중세철학은 자연과 신학이 버무려진 형태입니다. 지난번에 살펴본 토마스 아퀴나스의 <사도신경 강해>는 중세적 신학의 신학을 맛볼 수 있는 독특한 책이었습니다. 오늘 다루게 될 <자연의 원리들>은 오로지 철학만을 다룬 책입니다.

 

<자연의 원리들>은 아퀴나스의 이십 대 후반에 기록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저술 시점이 정확하지 않으나 대략 1252년에서 1254년 사이로 봅니다. 이때는 토마스 아퀴나스가 연금에서 풀려나 3년간의 모호한 시간을 보낸 뒤 쾰른의 도미니코수도회에서 알베르투스 마그누스에게 철학을 배운 후였습니다. 이 시기에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과 디오니시우스의 신학을 함께 병행해 나갔습니다. 동료들은 아퀴나스를 과묵하고 말이 없는 사람이라고 표현합니다. ‘시칠리아의 벙어리 황소라고 불렸다고 하지만 정확한 근거는 없습니다. 대체로 아퀴나스는 큰 몸집에 과묵한 성경을 가진 황소 같은 사람이었던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1252년 초엽에 알베르투스는 도미니코회 총장으로부터 파리에서 강의를 할 만한 신학자를 추천받습니다. 알베르투스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적극 추천하게 됩니다. 그러나 도미니코회 총장은 토마스 아퀴나스가 고작 스물일곱이라는 사실을 알고 난색을 표합니다. 알베르투스는 총장이 주저하자 선배이자 당시 추기경이던 생 셰르의 위그(Hugues de Saint Cher)까지 동원하여 총장을 압박합니다. 결국 토마스 아퀴나스는 알베르투스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파리로 신학 강의를 하기 위해 떠나게 됩니다. 그곳에서 아퀴나스는 신학 교수의 자격을 위한 필수 과정인 페트루스 롬바르두스 명제집 강독자로 강의하면서 명제집 집필에 착수하게 됩니다. 명제집이 1256년에 완결되기 때문에 <자연의 원리들>은 명제집 집필과 함께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평생 동안 아리스토텔레스를 연구합니다. 최초의 소논문에 해당하는 <자연의 원리들>을 시작으로 11권의 아리스토텔레스 주석을 펴냅니다. <자연의 원리들>을 펴낸 후 곧바로 <존재와 본질에 관하여>(De ente et essentia, 1252-56)를 출간합니다. <자연의 원리들>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개요하고 정리한 것이라면 <존재와 본질에 관하여>는 아리스토텔레스를 뛰어넘어 자신만의 철학을 정립한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해제한 김율은 <자연의 원리들>자연철학 입문서, <존재자와 본질에 관하여>형이상학 입문서로 소개합니다.

 

들어가기 전에 스콜라철학은 무엇인가를 간략하게 정리해 보겠습니다. 스콜라 학파, 스콜라 철학, 스콜라의 주의는 다르게 부르는 철학의 방법이자 학파입니다. 스콜라는 고대 그리스어인 여유라는 뜻의 스콜레(σχολη)를 라틴어로(schola) 음역 한 것에 불과합니다. 스콜라 학파는 9세기에서 15세기, 그러니까 종교개혁이 일어나기까지의 중세 전반을 아우르는 신학이자 철학의 방법입니다. 초대교회가 플라톤 철학의 강력한 영향 아래 있었다면 중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강력한 영향 아래 있었습니다. 극단적 정의이기는 하지만 플라톤 철학은 연역적 방법을 통한 사유 방식을 취하고,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은 귀납적 또는 경험적 추론을 통해 사유합니다.

 

스콜라철학의 영향 아래 있었기에 중세는 이성적 사유를 통해 진리에 이를 수 있다고 믿게 됩니다. 이러한 철학의 방식은 신학에도 지대한 영향을 전적 타락을 부정적으로 바라봅니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아리스토텔레스적 사유 방식은 그의 대작인 <신학 대전>에 깊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그는 비록 유물론자는 아니었지만 그의 철학적 사유 방식으로 인해 유물론적 신학을 낳는 토대를 마련하게 됩니다. 비록 종교개혁 시대가 도래 하면서 전작 타락을 통해 인간의 이성의 한계와 모순들을 지적하지만 결코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적 방법론을 버리지는 못합니다. 종교개혁 시대가 발전해 나가면서 개혁자들은 치밀한 교리의 체계를 만들어 내는데 그 방법들은 모두 논리적이고 귀납적인 아리스토텔레스적인 방법들입니다. 철학 전공자가 아니기에 더 이상 깊은 이야기는 독자들의 몫으로 돌리고 책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참고로 [ ]로 표시된 부분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저의 해설로 보시면 됩니다.

 

2. 책의 목차와 요약

번역하고 해제한 김율의 주장을 기반으로 요약하고 정리하며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약간의 평가를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이 책은 제목은 있으나 각 장의 제목은 없으며 소절 또한 구분되어 있지 않습니다. 역자인 김율은 독자들의 편의를 위해 각 장에 제목을 붙이고 해제하였습니다. 먼저 목차를 살펴본 다음 각 장별로 요약하겠습니다.

 

1장 생성과 소멸

2장 질료, 형상, 결여

3장 작용인과 목적인, 원리, 원인, 요소

4장 원인들의 상호 관계

5장 원인들의 종류

6장 유 비

 

역자는 책을 번역한 뒤 해제를 달아 책의 내용을 쉽게 했습니다. 그러나 일반인들이 읽기에 해제조차도 그리 만만치 않습니다.

 

1장은 생성과 소멸이란 제목을 달았고, 존재에 대한 아퀴나스의 사유를 소개합니다.

 

어떤 것들은 이미 있을 수 없으나 어떤 것은 이미 있다. 있을 수 있는 것을 잠재적 존재(esse pptentia)라고 한다. 이미 있는 것을 현실적 존재(ess actu)이다. 존재의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실체적 존재이고 이것은 단적인 있음(esse simpliciter)이다. 다른 하나는 우유적 존재이며 이것을 어떤 있음(esse aliquid)’라고 한다. 두 존재는 잠재태를 갖는다. 실체적 잠재태나 우유적 잠재태로 있는 것들 모두 질료라고 부른다. 우유적 잠재태를 기체라고 부르고, 실체적 존재에 대한 잠재태는 질료라고 부른다.

 

형상은 질료에게 존재를 주고, 기체는 우유에게 존재를 준다. 생성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세 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잠재적 존재자로 지료, 둘째는 현실적으로 있지 않음인 결여, 셋째로 현실적으로 되는 형상이다.

 

2장에서는 1장에서 소개한 질료, 형상, 결여를 좀 더 깊이 설명합니다.

 

형상은 생성이 향하는 바다. 질료와 결여는 기체의 관점에서 같지만 의미상으로 다르다. 구리(재료로서 금속이다)는 형상이 들어지기 전에는 형태 없음과 동일하다. 그래서 구리 자체로 존재하고 형태 없음으로 불린다. 질료는 결여(있지 않음의 상태)를 빼앗긴 채로 존재하지 않는다. 결여는 불이 아니나 불의 형상이 생겨날 소질을 본성적으로 지닌 그러한 것이다. 그러므로 결여는 원리가 된다.

 

[번역상의 문제인지 아퀴나스의 설명 자체가 난해한 것인지 알 수 없으나 2장의 결여 대한 부분은 쉽지 않습니다. 쉽게 풀어내면 결여는 구리로 동상을 만들 경우 동상이 만들기 전까지 과정입니다. 동상이 만들어지는 과정에는 동상의 결여’(동상이 없음)는 있으나 동상이 완성된 후로는 동상의 결여는 존재하지 않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여를 함축하지 않는 질료는 영속적이지만 결여를 함축한 질료는 일시적이다. 생성은 질료에서 형상으로 향한다.

 

3장은 작용인과 목적인, 원리, 원인, 요소를 다룹니다.

 

자연의 원리는 질료, 형상, 결여라는 세 가지가 있다. 잠재태는 스스로 현실태로 옮겨가지 못한다. 즉 구리가 스스로 동상이 되지 못한다. 중간에 작용자가 필요하다. 장신은 구리라는 질료를 동상이라는 현실태를 만든다. 장인은 작용자가 된다. 그렇다면 형상은 작용자 안에 있다. 작용하는 어떤 원리를 능동자’ ‘ 운동자’ ‘작용자’ ‘운동의 원리가 나오는 유래처라 한다.

 

자연적 작용자는 숙고 없이 목적을 지향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리고 이렇게 지향한다는 것은 어떤 것을 향한 자연적 경향을 지닌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우리는 이 부분에서 스콜라 철학이 갖는 자연신학적인 특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후에 이신론자들이 토마스 아퀴나스를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모르지만 그들도 자연이 자연적으로 움직인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이러한 자연에 대한 사유는 정교한 우주론으로 이어지며, 하나님 없이도 우주는 자연스럽게 움직인다는 계몽주의자들의 주장에도 잇닿아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학에서 네 가지 원인과 세 가지 원리를 가정한다. 그는 원인을 내적 외적 원인으로 구분한다. 내적 원인은 질료와 형상이다. 외적 원인은 능동인과 목적인이다. 외적인 이유는 사물 밖에 있기 때문이다.

 

[외적 원인을 작용자의 개념으로 받아도 무방해 보입니다. 즉 질료는 작용자의 손에 의해 형상으로 옮겨 갑니다. 이것이 사물의 외부에서 작용하는 원인이 됩니다.]

 

흙과 물은 요소이다. 요소는 다른 물체로 구성된 것이 아니다. 요소는 사물의 처음이며 사물 안에 있고, 형상에 따라 분할되지 않는다. 요소로부터 사물이 나온다. 빵은 피의 질료지만, 빵이 소멸되지 않으면 피가 생성되지 않는다. 따라서 빵은 피 안에 없다. 그러므로 빵은 피의 요소가 될 수 없다. 요소들은 사물 안에 남아 있어야 한다.

 

4장 원인들의 상호 관계

 

다시 정리해 보자. 동상은 질료인 구리와 작용자인 장인이 필요하다. 이것은 동상의 존재가 갖는 원인들이다. 산책하면 건강해지지만 건강을 위해서 산책하기도 한다. 원인과 목적이 서로 바꿔지기도 한다. 한편 신체는 영혼의 질료이고 반대로 영혼은 신체의 형상이다.

 

[신체와 영혼의 관계를 다루는 부분에 있어서 유물론적 관점이 스며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보편이 개체 안에 존재하다고 해석합니다. 즉 보편보다 개체가 앞섭니다. 플라톤은 보편이 있고, 개체는 보편의 그림자로 해석합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이 주장하는 보편의 개념을 무시하고 개체 안에 종속 시킵니다. 물질이 없으면 영혼이 없다는 유물론적 개념을 말합니다.]

 

능동자는 목적과 관련하여 원인이다. 작용자는 목적의 지향에 의해서만 작용한다. 목적은 질료를 질료로 만들고, 형상을 형상으로 만든다. 질료는 목적 때문에 형상을 받아들이고, 형상 역시 목적 때문에 질료를 완성한다. 그러므로 목적은 원인들이 원인이 된다. 결국 질료와 형상은 상호적이다.

 

[이해하기 쉽지 않은 부분입니다. 최적의 설명은 아니지만 덧붙여 말하면 이렇습니다. 질료는 재료이고 형상은 재료로 만들어진 건물이나 최종 형태입니다. 씨앗으로 예를 들면 씨앗은 씨앗 자체로도 완전체이지만 씨앗은 반드시 나무라는 형상을 향해 움직여 나갑니다. 그러므로 씨앗과 나무는 서로 상호적이 됩니다. 서로가 서로를 증명해 줍니다.]

 

자연의 작용이 불완전한 것에서 완전한 것으로, 그리고 완성되지 않은 것에서 완성된 것으로 진행한다. 질료는 형상보다 생성과 시간에서 앞선다. 질료와 능동자는 생성의 방식에서 앞서며, 형상과 목적은 완전성의 방식에서 앞선다.

 

필연성은 절대적 필연성조건적 필요성이 있다. 절대적 필연성은 죽음의 필연성 같은 것이다. 절대적 필연성은 질료의 필연성이다. 조건적 필연성은 생성에서 후차적인 것이다. 사람의 임신과 같은 것이다. 여성은 임신하면 아이를 낳는다. 이것을 조건적 또는 목적의 필연성이다.

 

[절대적 필연성은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막을 수 없는 것들입니다. 나이 듦, 죽음, 산화 현상 등을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조건적 또는 목적의 필연성은 외부적 작용에 의해 일어나는 필연성입니다. 아퀴나스가 언급한 것처럼 임신, 사고 등처럼 어떤 외부적 작용에 의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들입니다.]

 

5장 원인들의 종류

 

원인에는 네 가지 있다. 능동인, 질료인, 형상인, 목적인이다. 선차적 의미의 원인과 후차적 의미의 원인이 있다. 본질적 원인과 우유적 원인으로도 구분된다. 본질적 원인은 나무로 건물을 건축하는 것이다. 나무가 곧 건축물이 된다. 우유적 원인은 문법학자가 질료인 나무로 건축을 한다. 우유적 원인은 덧붙여진 원인이다. 현실적 원인과 잠재적 원인으로도 구분한다. 구리로 동상을 만드는 것은 현실적 원인이다. 건축하고 있지 않는 건축가가 끼어들면 잠재적 원인이 된다. 즉 후에 건축하게 될 것이므로 잠재적 원인이 된다.

 

6장은 유비의 문제를 다룹니다.

 

[내적 원리들인 질료와 형상을 맞춥니다. 개별자 자체에 해당하는 수적인 동일성이 있습니다. 소크라테스와 소크라테스를 가리키는 이 사람혹은 크산티페의 남편은 수적으로 동일합니다. 종적인 동일성은 링컨이라 플라톤은 사람으로서 동일합니다. 그러나 다른 개체이며, 수적으로도 다릅니다. 유에 기초한 동일성은 감각 능력을 지닌 실체라는 점입니다. 실체와 우유의 차이도 존재하지만 그것들마저도 특정한 의미에서 동일성을 갖습니다. 이것이 유비적 동일성입니다.

 

빈술(賓述)의 방식들로 일의적, 다의적, 유비적 세 가지가 있습니다. 일의적 빈술은 하나의 말이 두 사물들을 표현합니다. 플라톤과 소크라테스는 인간입니다. 이것을 일의적 빈술이라 합니다. 다의적 빈술은 동일한 지만 하나는 바다의 배이고 다른 하는 먹는 배로 다른 개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유비적 빈술은 다양한 단어들이지만 큰 범주 안에 넣을 수 있는 빈술입니다. 기침, 운동, 유기농 등은 건강이란 단어에 귀속 시킬 수 있습니다. 이러한 유비를 의속적 유비로 부릅니다. 짧은 장이지만 난해한 장입니다.]

 

소크라테스를 지시할 때 이 사람은 같은 사람이다. 이것은 수적으로 동일하다. 스크라테스와 플라톤은 종적으로 동일하다. 그러나 존재자는 일의적으로가 아니라 유비적으로 빈술되므로(praedicatur) 유가 아니다. 건강 소변 몰약 등은 하나의 목적, 즉 건강에 귀속된다. 당나귀, 영혼, 육체, 말의 영혼과 육체 등은 종적으로 차이 나지만 유적으로 동일하다. 마찬가지로 유비에 의해서만 일치하는 것들의 경우 그것들의 원리들은 유비 또는 비례에 의해서만 동일하다.

 

3. 나가면서

토마스의 아퀴나스의 초기의 저작인 동시에 자연철학이 무엇인지 설명해주는 중요한 책 중의 하나입니다. 실제로 <자연의 원리들>은 읽어 내기가 결코 쉬운 책이 아닙니다. 필자도 철학서를 즐겨 읽는 편이지만 이 책은 상당히 곤욕스러운 책이었습니다. 먼저 용어 자체가 굉장히 낯설었습니다. ‘빈술이란 단어는 이 책에서 처음 접했습니다. 한자어와 라틴어를 검색했지만 명료한 답을 찾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불필요하게 어렵게 번역한 것은 아닐까 생각됩니다. 또한 해제도 결코 쉽게 이해할 만한 내용은 아니었습니다. 인터넷을 검색하고 다른 자료들을 찾았지만 참고할만한 자료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원서도 번역도 어려운 책이었습니다. 필자가 이해한 바에 의하면 <자연의 원리들>의 핵심은 자연의 원리는 성경의 계시와 전혀 다른 개념이며 서로 반하는 것입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철학과 성경을 엄격하게 구분함으로 논쟁으로부터 피해 달아났습니다.

 

자연은 신의 간섭 없이도 자존하며, 보이지 않는 원리들에 의해 스스로 움직이는 존재인 것입니다. 아퀴나스는 인간의 이성을 통해 얼마든지 분석하고 연구할 수 있는 대상으로 자연을 대했고, 이러한 원리를 신학에도 적용하였습니다. 계시의 눈으로 철학을 보았던 어거스틴과 전혀 다르게 아퀴나스는 계시와 자연을 완전한 별개의 것으로 취급했습니다. 이러한 한계를 모르는 이성에 대한 숭배는 근대정신에 토대를 놓았던 데카르트와 맥을 같이 합니다. 데카르트 역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기저에 놓고 사유했고, 철저한 의심을 통해 의심할 수 없는 마지막 단계까지 끌어올렸습니다.

 

이 책은 복잡하고 난해하지만 결론은 자연은 스스로 움직인다입니다. 아퀴나스의 <신학 대전>은 이성적 사유 방식을 통해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한 스콜라적 철학의 결과물이 할 수 있습니다. 다음에는 동일한 역자가 번역한 <신앙의 근거들>을 다루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정현욱
책이라면 정신을 못차리는 책벌레이며, 일상 속에 담긴 하나님의 신비를 글로 표현하기 좋아하는 글쟁이다. <생명의 삶 플러스> 집필자이며, 한국컴퓨터선교회 및 여러 기독교 신문과 출판사 서평가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