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난 돌이 믿음직하다
못난 돌이 믿음직하다
  • 손철주
  • 승인 2018.02.13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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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와 시인이 만났다. 마당에 괴석이 놓였고 나무에 참새가 앉았다. 선비가 입을 뗀다. “돌은 좋구나. 말을 안 해도 되니까.” 시인이 응수한다. “참새는 고맙구나. 적막을 깨뜨려 주니까.” 말은 내뱉을수록 탈, 참새는 짹짹댈수록 흥이다. 고수들의 대거리가 어금지금하다.

돌은 응어리진 단단함과 오래 가는 믿음성이 덕목이다. 게다가 침묵한다. 근신하는 선비의 벗이 되기에 족하다. 지금 보이는 돌은 할머니 뱃가죽처럼 주름투성이다. 울퉁불퉁하기는 굴 껍질 같고, 위는 넓고 아래가 좁아서 기우뚱하다.

생긴 꼴이 괴상해서 ‘괴석’이다. 산이나 동물 형상, 아니면 꽃무늬마냥 유별난 수석도 많은데 굳이 못난이 돌을 그린 까닭이 뭔가. 그림에 사연이 적혀있다. ‘정신이 뛰어나서 귀한데 하필 모양 닮은 것을 찾겠는가. 함께 좋아할 듯해서 보내니 벼루 놓인 곳에 두게나.’ 흙은 바스러지고 나무는 휜다. 돌은 생김새가 안 바뀐다.

하지만 찧고 갈고 다듬는 수석 애호가도 있다. 이리 되면 교언영색이다. 돌의 미쁨은 ‘성형수술’하지 않는 데 있다. 모름지기 돌의 마음을 새길 일이다.

그린 이는 순조 때 병조판서를 지낸 황산 김유근이다. 그림 밑에 ‘겨울 밤 추사 자네를 위해 그렸네.’라고 썼다. 황산이 친구인 추사 김정희에게 선물했다. 친교를 담은 돌 하나가 설 앞두고 돌리는 굴비 두름보다 미덥다.

손철주(미술칼럼니스트·학고재 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