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에 핀 봄소식
한겨울에 핀 봄소식
  • 손철주
  • 승인 2018.02.09 11: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북 '차가운 강 낚시질' (18세기, 개인소장)
최북 '차가운 강 낚시질' (18세기, 개인소장)

 

장안에서 쫓겨난 당나라 시인 유종원은 좌천의 낙담을 시로 곱씹었다. 낯설고 물 선 타관, 마음 둘 곳 없으매 진종일 외로움이 죄어쳤다. 그의 오언시 ‘강설(江雪)’은 한가한 서경(敍景)이 아니다. ‘산이란 산, 새 한 마리 날지 않고/ 길이란 길, 사람 자취마저 끊겼는데/ 외로운 배, 삿갓과 도롱이 쓴 늙은이/ 홀로 낚시질, 차디찬 강에 눈만 내리고’

원시의 운은 절묘하다. 절(絶) 멸(滅) 설(雪)이 압운이다. 입 밖으로 소리 내보라. 잇소리 ‘ㄹ’의 뒤끝이 적막강산으로 번진다. 산, 길, 강은 인정머리 없고, 버림받은 시인의 하소는 메아리 없다. 회한에 차 낚싯대 드리운들 세월 말고 무엇이 낚이랴.

최북은 조선 화단의 반항아다. 힘센 이가 그를 푸대접했다. 그는 유종원의 심회를 그림으로 옮긴다. 눈 내린 외딴 강마을, 맵짠 추위에 나는 새도, 지나는 사람도 가뭇없다. 큰 삿갓에 띠옷 걸친 사내가 오도카니 낚시질한다. 세상은 오롯이 적멸인데, 조각배 탄 저 사내 무엇을 기다려 요지부동인가.

다시 보니 솟은 나무가 점점이 푸르고 붉은 기운을 내뿜는다. 북풍한설에 이파리와 꽃이라니, 어림 반푼어치 안될 소리. 봄은 ‘무통분만’하지 않는다. 아, 알겠다. 봄이 조산(早産)을 꿈꾸는구나. 조리돌림당한 인재를 다독이려 이른 소식 전하는구나.

손철주(미술칼럼니스트·학고재 주간)